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151화 (151/366)
  • 151화

    콰과광!!

    소설가가 만년필을 휘두르는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만년필이 만들어 내는 바람을 피하는 동시에 공격 지문을 수행하느라 숨이 턱 끝까지 찼다.

    [불의 무도가는 힘겹게 날아올라 마왕의 목을 졸랐다.]

    퍼버벙!!

    최민 헌터의 불꽃이 소설가의 목을 터트렸다. 소설의 내용대로 그가 정말로 지치기라도 한 건지 아까보다 화력이 떨어져 있었다.

    ‘레일리랑 라파엘라는 아직 멀었나?’

    우리가 지쳐서 나가떨어지지 않는 이상 승리는 보장되어 있겠지만, 계속해서 지체되니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현재 체력 : 141,583]

    [대지의 기사는 악몽에 빠진 어둠의 사제를 바라보며 혀를 찼다.]

    [“녀석의 악몽이라면 이 녀석이 동급생들을 기절시키고 신학교를 뛰쳐나온 그 순간뿐일 텐데.”]

    [“설마 아직도 그때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건가? 한심하군.”]

    그때 대지의 기사의 독백이 소설가의 주변에 떴다. 숨을 돌리며 나는 그 대사들을 한참 지켜보았다.

    ‘그래서 과거 얘기 하는 걸 꺼렸구나.’

    어떤 이유인진 모르겠지만 라파엘라는 동급생들을 해친 후 학교에서 퇴출당한 것 같았다. 레일리를 만난 건 그 이후인 것 같고.

    [어둠의 사제의 미간이 움찔거렸다.]

    [그것을 눈치채지 못한 대지의 기사는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평생의 목표가 사라진 셈이니까 어쩔 수 없나…….”]

    [대지의 기사는 어둠의 사제를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타고난 배짱과 여유로움을 가졌으면서, 빛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던 그의 모습을 말이다.]

    빛에 대한 동경이라. 마냥 속없어 보이는 라파엘라에게도 말 못할 사정이 있는 것 같아 영 마음이 쓰였다.

    좀 잘해줄 걸 그랬나.

    “지의야!”

    “윽……!”

    쾅!!

    그때 내가 소설에 열중한 틈을 타 서재에 꽂혀 있던 책들이 내 머리 위로 한 무더기 쏟아졌다. 내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검은 손들이 그것들을 튕겨내는 동시에 내가 곧바로 뒤로 굴렀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온몸의 뼈가 다 부러질 뻔했다.

    “많이 지쳤지?”

    “응, 조금…….”

    내 걱정을 하는 세빈이의 얼굴도 꽤 지쳐 보였다.

    곱슬거리는 앞머리가 땀으로 젖어 이마에 붙어 있었다.

    스으윽―

    펜촉이 종이 위를 돌아다니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나는 세빈이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그러곤 즉시 소설가의 뒤쪽으로 고개를 쭉 뺐다. 녀석은 책 안으로 들어갈 것처럼 허리를 한껏 숙여 제 눈앞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바보 같은 악몽에서 얼른 일어나라, 어둠의 사제.”]

    [대지의 기사는 그의 어깨를 잡아 흔들었다.]

    [“네가 약해 빠진 정신을 가진 놈이 아니란 건 내가 누구보다 잘 알아.”]

    [악몽의 사제의 몸이 앞뒤로 거칠게 흔들리자 그의 눈꺼풀이 사르르 떠졌다.]

    [“진작 좀 깨우시지 그랬어요.”]

    “깨어난 건가?!”

    내 외침에 세빈이와 알렌. 그리고 최민 헌터까지 목소리를 죽인 채 소설의 내용이 나타나길 기다렸다.

    [“악몽은 잘 꿨나?”]

    [“이것마저 악몽의 일부분은 아니겠죠.”]

    [“허무맹랑한 소리를 하는군.”]

    레일리와 라파엘라의 대화를 엿듣는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현실감이 느껴지는 대화다.

    [어둠의 사제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엔 대지의 기사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디 갔죠?”]

    [“널 기다리면서 마왕과 싸우고 있다.”]

    [어둠의 사제는 눈을 크게 뜨더니 피식 웃곤 한 손으로 마른세수를 했다.]

    사라락―

    책을 넘기는 소설가의 손이 분주해졌다. 그럴수록 글자도 더욱 빠르게 떠올랐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수년도 더 지난 일을 꿈으로 꾸다니, 어이가 없네요.”]

    [“너, 설마 아직도 빛을 동경하는 건 아니지?”]

    [“그럴 리가요. 저는 그저…….”]

    [어둠의 사제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더니 싱긋 웃었다.]

    [“나중에 말씀드리죠. 지금은 일단 마왕을 쓰러트려야 하니까요.”]

    [“그래.”]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신뢰의 미소를 지으며 마왕을 향해 나아갔다.]

    치이익―

    마지막 문장이 사라지기 무섭게 라파엘라와 레일리가 방공호에서 빠져나와 모습을 드러냈다. 다행히 두 사람 모두 멀쩡한 모습이었다.

    “길드장님, 라파엘라 씨! 괜찮으세요?!”

    “시끄럽다.”

    “걱정 끼쳐드려서 죄송해요~ 알렌 형제님~”

    알렌이 부리나케 달려가자 전혀 다른 두 개의 반응이 동시에 나왔다. 알렌은 숨을 길게 내쉬며 옅은 미소를 입가에 띄웠다.

    ‘응?’

    알렌에게 대답을 한 라파엘라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는 나를 빤히 보더니 이내 허리를 살짝 숙여 난데없이 인사를 했다.

    “왜 그러는 거…….”

    쿠구궁―

    그때, 갑자기 땅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감동적인 장면에 오만한 소설가가 눈물을 흘립니다.]

    [현재 체력 : 140,583]

    [현재 체력 : 139,583]

    .

    .

    [현재 체력 : 135,583]

    라파엘라의 행동에 의문을 가지기도 잠시, 갑작스러운 소설가의 오열에 녀석의 체력이 빠르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후두둑―

    “큭……!”

    용암 같은 잉크 눈물과 함께.

    후웅―

    낮말을 듣는 새로 뛰어 올라 부글거리는 잉크 눈물을 피했다. 소설가는 라파엘라와 레일리의 재회를 보며 깊은 감동을 받았는지 눈물을 멈추지 않았다.

    “체력이 줄고 있으니까 이번 공격으로 끝냅시다!”

    “알겠다!”

    “네!”

    여러 개의 대답과 함께 모든 사람들이 무기를 고쳐 쥐었다. 전투의 끝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해, 발끝까지 떨어졌던 체력을 다시 끌어올렸다.

    [“다들 공격해!”]

    [빛의 구원자가 소리쳤다.]

    [그러자 밤의 암살자가 가장 먼저 반응했다.]

    [그는 마왕의 다리를 베었다.]

    [불의 무도가는 마왕의 팔을 재로 만들었다.]

    [바람의 저격수는 마왕의 심장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대지의 기사가 그의 무기로 마왕의 머리를 내리쳤다.]

    문장이 연달아 뜨자마자 사람들이 일제히 소설가를 향해 뛰쳐나갔다.

    서걱―

    [현재 체력 : 104,374]

    세빈이가 소설가의 다리를 끊어놓자.

    퍼버벙!!

    [현재 체력 : 83,285]

    최민 헌터의 불꽃이 녀석의 팔을 한순간에 없애버렸다.

    타앙!

    [현재 체력 : 80,371]

    알렌의 탄환이 잉크 범벅이 된 가슴팍에 박힌 후.

    쾅!!

    [현재 체력 : 68,182]

    레일리가 메이스로 잉크병을 반으로 쪼개 놓았다.

    [어둠의 사제가 마왕에게 마지막으로 저주를 걸었다.]

    [“해치워 버리세요!”]

    [그러곤 빛의 구원자를 향해 소리쳤다.]

    “자매님!”

    “지의!!”

    “지의야!”

    철컥―

    각기 다른 음성이 나를 불렀다. 난 자아를 들어 우리를 통해 연극을 한껏 즐긴 듯한 소설가를 향해 겨눴다.

    [빛의 구원자가 마왕을 향해 마지막 일격을 날렸다.]

    타아앙!!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흔들릴 정도로 묵직한 탄환이 미사일처럼 날아가 소설가의 가슴 한가운데를 꿰뚫었다. 가슴에 생긴 동그란 구멍 속으로 녀석의 몸이 빨려들어가기 시작했다.

    너덜너덜해진 몸이 그 안으로 완전히 들어가자, 의자엔 녀석이 읽던 책이 놓였다.

    [현재 체력 : 0]

    [오만한 소설가가 책을 덮습니다.]

    [영웅 소설은 언제나 그를 설레게 합니다.]

    [그는 만족스러운 기분과 함께 영원한 잠에 빠집니다.]

    파아앗―

    주위의 풍경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언제 전투를 치렀냐는 듯 서재의 풍경은 온데간데없어지고 새하얀 공간에 헌터들만 둥둥 떠 있을 뿐이었다.

    “여러모로 기묘한 던전이었군.”

    레일리가 무기를 집어넣으며 중얼거렸다.

    다들 지치긴 했는지 별다른 말 없이 허공만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엘리자베스 베넷, 빛의 구원자…신지의]

    [피츠윌리엄 다아시, 대지의 기사…레일리 힐데가르트 아서 프레데릭]

    [찰스 빙리, 밤의 암살자…강세빈]

    [조지 위컴, 불의 무도가…최민]

    [제인 베넷, 바람의 저격수…알렌 빅토리아]

    [윌리엄 콜린스, 어둠의 사제…라파엘라]

    허공엔 우리의 이름이 영화 속 엔딩 크레딧처럼 아래에서 위로 천천히 올라가고 있었다.

    [만들어진 시간선이 영원히 소멸합니다.]

    스으윽―

    종이 위에 펜이 글씨를 쓰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하나둘씩 이 공간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알렌이. 그리고 그다음은 세빈이와 최민 헌터가 차례로 사라졌다.

    “자매님.”

    그때 라파엘라가 나를 불렀다.

    “고해 성사를 해도 될까요?”

    “나한테?”

    “네.”

    그는 옅은 미소를 입가에 건 채로 살짝 고개를 숙였다.

    “신학교에 입학한 그 순간부터 제 목표는 오직 교황이었습니다.”

    “엄청나네.”

    “주님에 대한 믿음이 없던 건 아니지만 저 스스로의 야망을 이루는 게 더 중요했죠.”

    그의 입에서 과거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라파엘라의 어깨 너머에 있는 레일리는 다 알고 있는 눈치였다.

    “하지만 덜컥 어둠 속성으로 각성했고, 그걸 동급생들이 알아버렸습니다. 그 이후엔 뭐, 온갖 조롱을 다 당했죠.”

    “…….”

    “그럴 때마다 문득 유치한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빛 속성이었다면 조금 다른 결과를 맞이할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 말이에요.”

    [“녀석의 악몽이라면 이 녀석이 동급생들을 기절시키고 신학교를 뛰쳐나온 그 순간뿐일 텐데.”]

    그의 말을 듣고 나니 아까 봤던 문장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사실 자매님을 질투했습니다.”

    “날?”

    “제 저주를 보란 듯이 풀어내질 않나, 일주일 만에 길드장님의 신뢰를 얻어내질 않나.”

    라파엘라의 눈동자가 서늘한 빛을 띠었다.

    “제가 되고 싶었던 완벽한 메시아의 모습이었으니까요.”

    이내 다시 웃는 얼굴로 돌아온 라파엘라가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막상 과거의 제 모습을 마주하고 나니, 오히려 머릿속이 깔끔하게 정리된 기분이네요.”

    “…….”

    “추한 질투를 하게 된 것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라파엘라가 고개를 숙이자마자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솔직하게 말할 줄 아는 녀석이었네.’

    능글거리는 태도에 사람 속을 은근히 긁는 구석이 있어 평생 어떤 인간인지 모르고 살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 외로 라파엘라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사람이었다.

    “이제 남은 건 너와 나, 둘뿐이군.”

    레일리가 내 쪽으로 성큼 다가왔다.

    치지직―

    그와 동시에 검푸른 보석의 형태를 하고 있는 창조자의 파편이 우리의 앞에 떴다.

    [소설가의 파편]

    [아름다운 이야기를 보고 싶은 소설가의 섬세한 욕망이다.]

    레일리가 그것을 빤히 내려다 보다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웃어 보였다.

    “부숴도 되나?”

    “마음대로 해.”

    쨍그랑!

    가만히 두면 알아서 깨지겠지만, 레일리의 성격상 스스로가 절대자의 파편을 부수고 싶을 거다.

    선택을 레일리에게 넘기자 그는 망설임 없이 주먹으로 소설가의 파편을 산산조각 냈다.

    [소설가의 파편이 파괴되었습니다.]

    이로써 두 개째, 창조자의 파편이 소멸했다.

    “후련하군.”

    “나도.”

    “이걸로 나도 세계의 종말을 막는데 발이라도 걸친 셈이 된 건가?”

    레일리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왠지 모르게 개구쟁이 같은 모습이라 나도 모르게 잇새로 웃음이 샜다.

    ‘이제 제일 중요한 게 하나 남았네.’

    가루가 되어 사라지는 소설가의 파편에서 시선을 뗀 나는 레일리를 바라보았다.

    ‘레일리를 창조자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것.’

    숨을 깊게 들이마신 후 자아를 고쳐쥐었다.

    “레일리.”

    “왜 그러지?”

    철컥―

    팔을 올려 그를 향해 자아를 겨눴다.

    내가 저를 해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어서일까, 레일리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내가 이걸로 널 쏘면 넌 창조자와의 계약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돼.”

    “기대가 되는군. 얼른 당겨…….”

    “종말을 막는 건 네 상상보다 아주 긴 싸움이 될 수도 있어.”

    레일리를 향해 경고하자 그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반드시 말해야 하는 일이다. 창조자의 손아귀에서 벗어난다고 해서 우릴 기다리고 있는 게 평화가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하니까.

    “단 한 번도 이긴 적이 없던 싸움이고.”

    “…….”

    “그래도 나와 함께 싸워줄 거야?”

    내 물음에 레일리는 보다 진지해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물론이다.”

    터벅―

    그는 내 쪽으로 더욱 가까이 다가와 자아를 자기 가슴팍으로 끌어당겼다.

    “기꺼이 방패가 될 준비가 됐으니, 망설이지 말고 당기도록.”

    “…고마워.”

    인류의 방패를 향해 씩 웃은 후 방아쇠를 건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카르마의 탄환.’

    [카르마의 탄환]

    [각성자에게 씌워진 업을 파괴할 수 있다]

    [파괴 시 업으로 인한 모든 효과가 사라진다]

    [*말의 씨앗이 개화한 상대에게만 사용 가능]

    [파괴할 수 있는 업이 감지되었습니다]

    [‘카르마 : 오만한 소설가’]

    [절대자 ‘창조자’가 각성자 ‘레일리 힐데가르트 아서 프레데릭’에게 씌운 오만한 소설가의 업. 시나리오에 대한 집착이 강해진다.]

    우웅, 우웅, 우웅

    자아가 진동하고 주변 공기도 울기 시작했다.

    반짝거리는 빛무리 같은 것이 내 주위를 맴돌았다. 이 세상을 구성하는 모든 것들이 내 편이 된 듯한 안정감이 느껴진다.

    “함께 이 세상을 지켜보자.”

    타앙!!

    내 말이 끝나자 새하얀 탄환이 레일리의 몸을 관통했다.

    [카르마 : 오만한 소설가가 파괴되었습니다]

    [각성자 ‘레일리 힐데가르트 아서 프레데릭’이 절대자 ‘창조자’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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