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146화 (146/366)
  • 146화

    너무 놀라서 입 밖으로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도 라파엘라는 나를 보자마자 씨익 웃곤 다시 복음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촤라락―

    나는 누가 볼세라 커튼부터 쳤다. 그러곤 곧장 라파엘라의 앞에 앉아 그의 상태를 살폈다.

    ‘피 냄새……!’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자마자 비릿한 피 냄새가 코를 찔렀다. 고개를 내리니 검붉은 피가 고인 복부가 있었고, 검은 빛 무리가 그 주위를 맴돌며 상처를 치료하고 있었다.

    “하아, 죽는 줄 알았네요…….”

    “대체 무슨 일이야? 몬스터라도 만났어?”

    목소리를 낮춘 채 조심스럽게 말을 걸자 그가 어깨를 으쓱였다.

    바스락―

    어느 정도 치료를 끝냈는지 라파엘라는 반쯤 누워 있던 몸을 천천히 일으켜 쌓여 있던 의자에 등을 기댔다. 다행히 피는 완전히 멎은 것처럼 보였다.

    “잘 모르겠어요. 수상해 보이는 녀석을 찾다가 갑자기 당한 거라서.”

    라파엘라를 공격한 존재가 몬스터였다면 연회장이 아수라장이 됐을 텐데. 커튼 밖의 사람들은 너무나 평화롭게 이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원작에서 콜린스가 누군가에게 습격당하는 장면은 없던 거지?”

    “없어요. 이건 애거사 크리스티 작품이 아니니까요.”

    내가 모르는 작가 얘기를 하곤 라파엘라가 커튼의 틈을 슬쩍 보았다.

    “혹시 길드장님 보셨나요?”

    “어. 아까 같이 춤추면서 몬스터 있다고 말해줬어.”

    “…전 괜찮으니까 길드장님한테 가 주세요.”

    순간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아무런 말없이 그를 바라보자 그는 평소보다 차가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콜린스의 열등감이 다아시를 노린다는 상태창이 떴어요.”

    “뭐……!”

    나는 바로 몸을 일으켰다. 라파엘라는 피로 흥건해진 블라우스를 손으로 쥐어 짠 후 나를 올려다보았다.

    “재빠른 녀석이에요. 조심하세요, 자매님.”

    “알겠어.”

    커튼 밖으로 나와 연회장을 빠르게 훑었다.

    이곳의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할 정도면 엄청나게 작은 몬스터거나, 인간형 몬스터 둘 중 하나다.

    ‘젠장, 인간들이 너무 많아.’

    인간들을 의심하려니 한도 끝도 없었다. 포크를 들고 있는 남자도 의심스럽고, 벽에 기댄 채 댄스홀을 흘끔거리며 쳐다보는 여자도 의심스러웠다.

    “빙리 씨는 역시 베넷가의 장녀와 추는구나.”

    “벌써 두 번이나 췄다지?”

    “아까는 다아시 씨와 추더라고.”

    귀족들의 대화에 댄스홀 쪽을 바라보니 세빈이와 알렌이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알렌이 레일리와 먼저 춤을 췄다면 그에게도 몬스터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전해졌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세빈이의 귀에도 들어갔겠지.

    ‘그럼 레일리는 지금 혼자인 건가?’

    댄스홀 쪽으로 급히 들어갔다. 방의 한가운데서 춤을 추는 사람들과 벽에 기대어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 그 어느 무리에도 레일리는 없었다.

    두근, 두근―

    라파엘라의 상처로 봤을 때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로 위협적인 공격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여긴 어디까지나 소설 속. 아무리 레일리가 이곳에 몬스터가 있는 걸 알고 있더라도 항상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진 않을 것이다.

    만약 레일리가 방심해서 당한다면 그 이후의 이야기 전개는 장담할 수 없다.

    드르륵―

    오케스트라의 음악 사이로 왠지 모르게 이질적인 걸음 소리가 들렸다. 발을 질질 끌면서 걸어가는 듯한 기묘한 소리.

    황급히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누군가 파트너도 없이 댄스홀 쪽으로 천천히 나아가고 있는 게 보였다.

    귀족 남성 옷을 입은, 왜소한 체구의 남자.

    어딘가 눈에 익은 구석이 있어 그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잠깐 저 자식……!’

    아까 나를 두 번이나 치고 지나간 그 쓰레기였다.

    녀석은 또 다른 희생자를 찾는 건지 아예 춤을 추는 사람들 틈으로 들어갔다.

    “……어?”

    그 순간 불길한 예감과 함께 아까 저 녀석과 있던 일이 생각났다.

    ‘저 녀석이 처음으로 내 어깨를 치고 지나갔을 때, 주변 사람들 반응이 어땠더라?’

    보통 그런 상황이면 나한테 괜찮냐고 물어볼 법한데. 그들은 그냥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아까 라파엘라를 찾아내기 전에도 비슷했다. 저 자식의 뒷모습에 대고 소리를 치니, 사람들은 나한테만 주목하고 내 시선의 끝에 있던 녀석은 본 체도 하지 않았다.

    소설 속 인물들에겐 보이지 않지만 나에겐 보이고, 악의 가득한 얼굴로 누군가를 계속해서 찾아다니는 녀석은 이 공간에서 단 하나뿐이었다.

    ‘콜린스의 열등감.’

    또각―

    녀석을 쫓아 나도 춤추는 사람들 사이로 들어갔다. 그들의 움직임에 맞춰 몸을 살짝 돌리고 비슷한 속도로 움직였다. 그러는 동안 눈으로는 콜린스의 열등감을 좇았다.

    녀석은 댄스홀을 가로지르며 세빈이와 레일리가 있는 낮은 단상 쪽을 향하고 있었다.

    ‘젠장, 조금만 더……!’

    나는 살짝 도약해 손을 앞으로 쭉 뻗었다.

    턱―

    그리고 드디어 녀석의 어깨에 내 손이 닿았다.

    팔에 힘을 주어 콜린스의 열등감을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몸을 돌린 녀석이 나를 보자마자 눈을 크게 떴다. 당장이라도 눈이 튀어나올 것 같은 그 모습에 속으로 묘한 통쾌함이 들었다.

    녀석의 얼굴 너머로 레일리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며 나와 콜린스의 열등감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오른쪽 검지를 입가에 가져다 댄 후 곧장 콜린스를 이끌어 댄스홀 쪽으로 걸어갔다.

    또각―

    그대로 녀석의 허리를 잡고 춤추는 사람들과 섞여 들어가자, 콜린스의 열등감은 예상치 못한 전개에 당황한 것인지 나의 리드에 그대로 끌려다닐 뿐이었다.

    ‘분명 저쪽에 발코니가 있었는데 말이지.’

    곁눈으로 살짝 뒤를 보니 출구 앞쪽으로 발코니 문이 보였다.

    스윽―

    콜린스의 열등감은 은근슬쩍 단상 쪽으로 향하려 했다. 나는 그런 녀석의 허리를 잡은 손에 힘을 꽉 주었다.

    “으극……!”

    “잠깐 얘기 좀 하시죠, 콜린스 씨.”

    단단한 살이 내 손 안에서 짓눌리자 녀석은 이를 갈며 나를 노려보았다. 그럼에도 그 어떤 저항도 할 수 없었다.

    끼익―

    댄스홀의 가장자리로 발을 옮겨 그대로 녀석을 발코니 쪽으로 밀었다. 다행히 발코니엔 차가운 밤공기만이 우리를 맞이할 뿐 그 누구도 없었다.

    쿵―

    발코니 문을 닫고 나는 그 앞을 막듯 기대어 섰다.

    콜린스의 열등감은 불안한 얼굴을 하곤 나와 대치했다.

    “다아시를 죽이려 했지?”

    “역시 엘리자베스 양도 여느 여자와 다를 바가 없었군요. 잘생긴 얼굴의 대부호를…….”

    “몬스터 주제에 말이 많아.”

    철컥―

    말이 긴 녀석을 향해 자아를 꺼내 들었다. 발코니 문 너머로 들리는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더욱 고조되자 사람들의 발소리가 경쾌해지기 시작했다.

    누구 하나가 죽어도 전혀 알아챌 수 없을 정도로 소리가 커졌다.

    탕―

    나는 망설임 없이 자아의 방아쇠를 당겼다.

    새하얀 탄환이 뽑아져 나온 동시에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절정에 달했다. 그리고 탄환은 녀석의 몸에 박혔다.

    탄환에 명중당한 녀석이 그대로 뒤로 쓰러지자.

    [전개 달성률 : 79%]

    짝짝짝짝짝―

    연주는 종료되고 사람들의 박수 소리가 이 무도회장을 가득 채웠다.

    콜린스의 열등감은 발코니 바닥 위로 끈적하게 녹아내렸다. 그러더니 이내 결국 저택 밖으로 주르륵 흘러내렸다.

    주르륵 흘러내리는 녀석의 잔해를 눈으로 좇으며 발코니 난간에 기대 밑을 바라보니, 녀석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덜컹―

    그때 발코니 문이 열렸다.

    갑작스러운 방문객에 나도 모르게 어깨를 흠칫 떨며 뒤를 돌자, 그곳엔 약간 굳은 얼굴의 레일리가 있었다.

    “하, 참…….”

    쿵―

    그는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리더니 이내 발코니 문을 닫았다.

    “몬스터였나?”

    “응. 널 공격하러 가고 있었어.”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레일리 힐데가르트 아서 프레데릭’이 동요한다.]

    [발언 결과 : 놀람]

    레일리의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하긴 사람이 그렇게 많았으니 눈치 못 챌 수밖에.’

    댄스홀을 빼곡히 채운 사람들의 움직임과 커다란 음악 소리 때문에 주의가 분산됐을 것이다.

    레일리는 다시 표정을 가다듬은 후 내 쪽으로 다가와 난간 밑을 바라보았다.

    “콜린스의 열등감이야. 저 녀석이 라파엘라도 공격했어.”

    “많이 다쳤나?”

    “심하진 않은 것 같아. 배를 찔린 것 같긴 한데 치료는 다 끝냈어.”

    그 말에 레일리가 짧게 숨을 뱉었다. 묘하게 힘이 풀어진 눈으로 그 숨이 안도의 한숨이라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오늘 여기서 볼일은 다 본 것 같군.”

    “응. 이제 남은 건 최민 헌터와 리디아의 야반도주뿐이네.”

    무도회가 끝나고 내가 가드너 부부와 함께 다아시의 영지로 놀러갔을 때, 최민 헌터가 리디아와 함께 도망쳐야 한다.

    “리디아가 워낙 철이 없는 애긴 한데,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최민 헌터를 덥석 따라 나갈까?”

    “사탕 발린 말 두세 마디면 금방 넘어오겠지. 뭐, 그 붉은 머리가 하기 나름이겠지만.”

    리디아를 꼬시는 최민 헌터라……. 정말 상상이 안 가는걸.

    어떻게 됐든 간에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다시 날이 밝으면 엔딩이 엇나가지 않도록 바쁘게 뛰어다녀야 한다.

    그렇게 무도회의 밤은 시원한 바람의 냄새와 함께 막을 내렸다.

    * * *

    무도회가 끝난 후 원작대로 베넷 부인의 남동생네 부부인 가드너 부부와 다아시의 영지에 놀러 갔다.

    다아시 가문의 별채를 구경하며 시간을 보내던 중 마침 그곳에 있던 다아시, 레일리와 만났다.

    앞으로 남은 사건은 단 세 개다.

    첫 번째는 최민 헌터가 리디아와 함께 야반도주에 성공해 우리 집에 결혼 자금을 요구하는 것.

    두 번째는 레일리가 그 돈을 대신 지불해 주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빈이는 알렌에게, 레일리는 내게 청혼하는 것.

    어차피 청혼이야 보여주기식으로 대충 하면 되는 것이고, 돈이야 레일리의 저택에 썩어날 정도로 많다고 했다.

    즉, 최민 헌터가 리디아와 함께 도망치는 것만 성공한다면 적어도 3일 안에 원작의 엔딩을 볼 수 있다.

    “아 맞다, 리지. 집에서 편지가 온 것 같은데?”

    “편지요?”

    그때 가드너 부인이 내게 편지 봉투를 내밀었다. 난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태도로 그것을 들어 천천히 봉투를 열었다.

    ‘제발 도망쳤다는 편지여라……!’

    마침 별채 정원에서 안으로 들어온 레일리가 내 뒤에 섰다. 난 그의 시선을 느끼며 봉투 안에서 편지를 꺼냈다.

    모르는 영어 단어 천지다.

    대충 읽을 수 있는 것만 띄엄띄엄 읽어 내릴 때쯤 레일리의 숨이 귓가에 닿았다.

    “녀석이 리디아를 데리고 튀었다고 하는군.”

    치지직―

    [전개 달성률 : 90%]

    레일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전개 달성률이 올라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