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91화 (91/366)
  • 91화

    [식용 괴수 ‘해골 ■프’]

    [체력 : 10,000/10,000]

    [신라■ 어떤 승려■ 인정하는 해■ 수프! 여러분들도 드시러 오■■!]

    [식용 괴수 ‘트라■■ 파우■’]

    [체력 : 7,000/7,000]

    [수프에 뿌려 먹■면 더 맛■는 ■라우마 파우더~ 당신의 무■식에 있던 ■몽을 깨워■니다!]

    지난 시간선에서 내 목숨을 앗아갔던 놈들이 나타났다.

    투쾅!

    그림자 손이 트라우마 파우더를 잡아 그대로 바닥에 메다꽂았다. 흙먼지를 가득 실은 바람 사이로 반짝이는 가루가 날아다녔다.

    [부수지 말고~♪ 돌■서~♪ ■프에 뿌■주세요~♪]

    [체력 : 6,825/7,000]

    꼭 CM송 같다. 트라우마 파우더의 부탁에도 굴하지 않고 검은 손들은 그 양념 통을 집어 높이 들었다.

    “방어력이 너무 약한데.”

    휘우웅―

    세빈이가 짧게 말을 덧붙일 때쯤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연두색 화살이 트라우마 파우더를 관통했다. 녀석의 옆구리 부분에 금이 갔고 나무 조각이 밑으로 툭 떨어지기 시작했다.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모습을 보니 오히려 찝찝하네.

    경계에서 만난 인형 뽑기처럼 나중에 내 뒤통수를 제대로 칠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타, 타, 탕!

    일단 자아를 들어 충실히 트라우마 파우더를 공격했다. 새하얀 탄환이 박혀 녀석의 몸을 그대로 반 토막 냈다.

    [이건 치■이 아니에요~♪ 반■로 가르지 ■아도~♪ 파우■는 잘 나온답■다~♪]

    [체력 : 2,160/7,000]

    “잠깐, 다들 뒤로 물러나세요!”

    차도윤 헌터가 웬일로 큰 소리를 내며 우리의 앞으로 튀어나왔다. 활을 잠시 내려두고 양손으로 허공을 잡자 트라우마 파우더와 해골 수프의 위로 거대한 먹구름이 꼈다.

    퍼엉!

    “윽!”

    반으로 갈라진 트라우마 파우더의 틈새로 반짝이는 가루가 터져 나왔다. 급한 대로 옷소매로 코와 입을 가렸다. 한 손으로는 자아의 방아쇠를 당겨 실드를 펼쳤다.

    가루는 우리를 향해 무서운 속도로 다가왔지만 차도윤 헌터의 ‘천재지변’의 영향 범위 내였기에 폭풍우에 금방 휩쓸렸다.

    [물에 닿■면~♪가■가 굳어져서 ■이 없어요~♪]

    [트라우마 파우더는 보송보송■ 때! 가■ 맛있■ 가루~♪]

    [체력 : 1,215/7,000]

    자세를 다시 잡고 자아의 방아쇠를 당겼다. 비바람과 폭풍우를 뚫고 소리 탄환이 미사일처럼 날아갔다.

    콰그작.

    일부러 크게 뽑았더니 트라우마 파우더를 통째로 삼켰다. 녀석은 높은 곳에서 떨어트린 석고상처럼 여러 개의 파편으로 쪼개졌다.

    또다시 가루를 뿜을 것에 대비한 건지 한진우 헌터의 ‘진흙’이 그 잔해를 빨아들였다.

    [체력 : 0/7,000]

    [전국 ■든 마트에■ 찾아보■ 수 있습■다~♪]

    [식용 괴수 ‘트라우마 파우더’가 ‘신지의’에 의해 소멸되었습니다.]

    [식용 괴수 ‘전기양 스테이크’가 소환 대기 중입니다.]

    “체력도 낮고 방어력도 아예 없는 수준에 가깝군요.”

    최민 헌터가 땅으로 내려오며 중얼거렸다. 고개를 돌리자 어딘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살짝 구겨진 얼굴이 있었다.

    나랑 비슷한 기분인가 보네. 너무 일이 척척 풀려서 오히려 불안한 그 기분 말이다.

    [해골 수프는 트라우마 파우더가 있어야 맛이 두 배가 되는데!]

    [제대로 먹을 줄 모르는군요!]

    [체력 : 5,000/5,000]

    해골 수프의 체력이 반으로 줄었다.

    ‘우리에게 마냥 유리하게 흘러가는 분위기가 이상하다고.’

    녀석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때를 떠올렸다. 트라우마 파우더는 소환되자마자 스스로를 희생해 해골 수프에게 온갖 버프를 걸었다. 체력, 공격력, 방어력 모두가 수십 배씩 오른 해골 수프를 당해내기엔 그때의 나는 너무 약했다.

    내가 잘못 기억하고 있는 건가 싶어 ‘회귀자의 오른쪽 눈동자’로 녀석들을 바라보았다.

    [해골 수프]

    [분명 사물 몬스터인데 지능이 왜 이렇게 높지?]

    [체력이 너무 높아]

    [수프에 닿으면 몸이 녹음]

    [트라우마 파우더와 만나면 능력이 몇 배로 상승하는 듯]

    [트라우마 파우더]

    [해골 수프의 버프 덩어리]

    [해골 수프에 들어가기 전에 파괴해야 해]

    아니야, 내 기억은 틀리지 않았어. 달라진 건 이번 시간선의 몬스터들이다.

    촤아악.

    해골 수프가 머리를 흔들자 안에 들어있던 보라색 수프가 용암처럼 끈적하게 흘러나왔다. 보랏빛 액체가 사방으로 뻗어 나가자 그것에 닿은 잔디가 순식간에 썩어 문드러졌다.

    ‘낮말을 듣는 새’로 공중으로 도약해 수프의 범위에서 벗어났다.

    “차도윤 헌터, 잡으세요!”

    “감사합니다.”

    한진우 헌터가 ‘행운의 토끼발’에 올라탄 채로 차도윤 헌터 쪽으로 빠르게 날아갔고, 그의 손을 잡아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 놓았다.

    아―우!

    녹두가 하울링을 하자 흰 기둥이 해골의 머리를 꿰뚫었다. 그 틈으로 최민 헌터가 불꽃을 폭발시켰다. 아슬아슬하게 수프를 담고 있던 녀석의 두개골이 깨져버렸다.

    [체력 : 0/5,000]

    [언젠가 맛을 보면 놀랄 거예요~ 맛있는 해골 수프!]

    [식용 괴수 ‘해골 수프’가 ‘최민’에 의해 소멸되었습니다.]

    [식용 괴수 ‘알콜 중독자의 백포도주’가 소환 대기 중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S급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이죠…….”

    한진우 헌터가 땅 쪽으로 내려오며 입을 열었다. 그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었는지 모두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상태창의 글씨는 깨져 있고 몬스터는 약해졌다.

    어쩌면 이 공간 자체가 엉성하게 만들어졌을 수도 있어.

    ‘이대로 시시하게 해결됐으면 좋겠는데.’

    철그덕.

    그때 쇠끼리 맞닿는 소리와 함께 고소한 기름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소리의 근원지로 고개를 돌리자 뜨거운 불판 위에서 익어가는 커다란 쇳덩이가 보였다. 끝에는 새하얀 뼈도 붙어있었다.

    쿵.

    그리고 또다시 지면이 울렸고, 내 키만 한 와인병이 떨어졌다. 와인병은 중심을 잡기 위해 핑그르르 돌았고 그 움직임 덕분에 안에 있던 희멀건 액체가 흘러나왔다.

    [식용 괴수 전기양 스테이크]

    [체력 : 8,000/8,000]

    [전기양의 꿈을 꾸는 건 누군가? 아니면 무언가? 그런 건 알 필요 없어. 일단 먹어!]

    [식용 괴수 알콜 중독자의 백포도주]

    [체력 : 3,000/3,000]

    [뜨, 딱! 딱 한~ 잔만 하고 갈, 끅, 게!]

    찝찝한 기분에 명확한 정답을 내리기도 전에, 전기양 스테이크가 우리를 향해 몸을 날렸다.

    쾅!

    방금까지 불판 위에 있던 터라 주변에 있는 것만으로도 얼굴에 열기가 훅 끼쳤고 숨까지 막았다. 그림자 손이 쇳덩이를 옭아맸고, 잠깐 모습을 숨겼던 세빈이가 허공에서 다시 튀어나와 영으로 내리찍었다.

    “앗 뜨.”

    “괜찮아?!”

    세빈이가 무심코 전기양 스테이크 위에 착지하자마자 곧바로 발을 뗐다. 내 물음에 세빈이는 씩 웃어 보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후웅.

    갑자기 내 위로 그림자가 생겼다. 고개를 들어 확인할 시간에 빨리 피하는 게 낫다고 판단해 곧바로 뒤로 굴렀다. 그와 동시에 투명한 액체가 쏟아졌다.

    [아니, 진~짜로, 끅, 이거 한 잔이면 뻑 간다니까?]

    [체력 : 3,000/3,000]

    글자에서 술 냄새가 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을 불태우는 액체를 피해 자아를 들고 와인병 입구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쨍그랑!

    주둥이 부분이 그대로 날아갔고 날카로운 잔해는 차도윤 헌터의 천재지변에 휩쓸려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뚜, 끅, 껑을 따랬…지~ 누가 입~구를, 꺽, 날리냐!]

    [체력 : 1,152/3,000]

    차도윤 헌터가 인상을 찌푸리며 곧바로 활을 들어 시위를 당겼고 수십 개의 바람 화살을 날렸다. 화살이 날아가는 경로를 따라 연둣빛 궤적이 남았다. 화살에 포위된 알콜 중독자의 백포도주는 그 자리에 서서 자신의 운명을 맞이했다.

    찰그랑.

    [체력 : 0/3,000]

    [내일부터는… 진짜, 끅, 정신 차리고… 살 거야~!]

    [식용 괴수 ‘알콜 중독자의 백포도주’가 ‘차도윤’에 의해 소멸되었습니다.]

    이제 남은 건 저 이상한 쇳덩어리뿐이다. 다른 몬스터들에 비해 방어력이 좋은지 세빈이의 공격을 꽤 열심히 버티고 있었다.

    [지금 먹으면 미디엄웰던이긴 해. 상큼한 민트젤리를 얹어서 한번 먹어봐. 네가 안드로이드든 사람이든 간에 말야.]

    [체력 : 2,415/8,000]

    “다른 몬스터에 비해선 튼튼해.”

    한참 붙어서 공격하던 세빈이가 뒤로 물러나 내 옆으로 다가왔다. 열기 때문에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전기양 스테이크는 여전히 불판 위에서 춤을 추며 우리를 놀리는 듯한 몸짓을 했다. 최민 헌터도 공중에서 내려와 요란하게 움직이는 저 쇳덩이를 바라보았다.

    “회피 능력은 없는 것 같으니 동시에 공격하죠.”

    “오케이, 알겠어요.”

    모두가 자세를 잡았다. 세빈이가 손을 뻗어 그림자 손으로 전기양 스테이크를 감싸는 동시에 새빨간 불꽃과 굵은 화살이 허공을 가르고 날아갔다.

    퍼버벙!!

    엄청난 파열음과 함께 불과 바람이 얽혀 쇳덩이를 삼켰다. 나는 허공에 떠서 빙글빙글 도는 전기양 스테이크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콰그작.

    [체력 : 0/8,000]

    [결국 너희들도 ■■■의 ■■에 올라갈 거야.]

    [식용 괴수 ‘전기양 스테이크’가 ‘신지의’에 의해 소멸되었습니다.]

    “…이렇게 끝난다고?”

    입가에 맴돌던 말이 결국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주위를 살펴보니 이상하게 일렁이던 하늘과 땅도 원래의 자리를 되찾았고, 아까 게이트에 들어갔을 때처럼 평화로운 정원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음… 일단 해결은 된 거겠죠?”

    한진우 헌터가 입을 열었다. 삭막한 분위기를 띄워보려는 듯 얼굴에 옅은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누가 봐도 억지로 웃는 얼굴이었다.

    애초에 허술한 파편이었잖아. 소멸 조건도 허술할 수 있지. 이렇게 창조자의 파편 하나를 부쉈다고 생각하고 기뻐하면 돼.

    좋은 쪽으로 생각을 하려 했지만 오히려 더욱 불안해졌다.

    고개를 들어 최민 헌터를 바라보자 검붉은 눈동자와 시선이 맞닿았다. 이 세상이 종말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그이기 때문에 다른 헌터들보다 이 상황을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다.

    스윽, 스윽.

    ‘뭐지?’

    그때 천 위로 무언가가 스치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지면과 하늘이 닿는 부분이 하나의 색으로 섞이기 시작했다. 굵은 붓으로 두 색깔의 경계를 없애는 것처럼, 지평선에 작위적인 세로줄이 생겼다.

    [작품 활동에 지친 미식가가 가게에 들어와 오늘의 알 라 카르트(a la carte)를 주문합니다.]

    “이게 대체……?”

    [주방장이 미식가를 보고 미소 짓고는 입을 엽니다.]

    [“오늘의 알 라 카르트(a la carte)는 악몽 코스입니다.”]

    “잠깐, 다들 조심하세요!”

    “지의……!”

    세빈이의 목소리가 끊겼고, 그와 동시에 내 시야도 어둠으로 물들었다.

    내 몸은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분명히 나는 소리를 지르며 팔과 다리를 휘젓고 있는데,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입장한 식재료 5개]

    [편집된 시간선에 입장합니다.]

    [미식가의 테이블에 올라가기까지 남은 시간 : 24시간]

    ‘속이 울렁거려…….’

    새카맣게 물든 시야에 검푸른 글자만이 깜박거렸다.

    편집된 시간선, 식재료, 미식가.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단어들이 머릿속을 배회했다.

    [오류 감지]

    [식재료 ‘신지의’의 악몽이 정량을 초과하였습니다.]

    [■■째 ■■■의 ■■, ■의 ■이 해당 ■억을 삭■합니■.]

    혼란스러운 와중에, 내 기억을 삭제하는 놈이 또다시 나타났다. 더 이상 떠올려 낼 것도 없는데 집요하게 내 기억을 갉아먹었다.

    [식재료 ‘신지의’의 악몽이 마구 흘러넘칩니다.]

    [‘신지의’의 악몽으로 주방이 아수라장이 됩니다.]

    [당황한 주방장이 ‘신지의’를 분리합니다.]

    [9■째 구■자의 권■, ■의 힘이 해당 ■억을 삭제합니■.]

    ‘…글자가 조금씩 보이는데.’

    [9■째 구원자의 권■, ■의 힘이 해당 ■억을 삭제합니다.]

    [9■째 구원자의 권능, 말의 힘이 해당 기억을 삭제합니다.]

    그동안 깨져서 보이지 않던 글자들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98번째 구원자의 권능, 말의 힘이 해당 기억을 삭제하지 못했습니다.]

    [구원자의 기억 복구 완료]

    [사명 ‘카르마를 밟는 자’ 초기화]

    [구원자의 모든 기억을 전송합니다.]

    상상해 본 적도 없는 문장이 떠올랐다.

    치지직.

    끔찍한 노이즈가 귓속에 파고들자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시야에 작은 손이 들어왔다.

    ‘내 손인가……?’

    천천히 손을 움직이자 눈앞의 작은 손도 따라 움직였다. 누군가의 몸에 빙의된 것처럼 이질적인 느낌이 들고 나서야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하나는, 내 악몽은 내가 겪었던 모든 삶이라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첫 번째 기억을 재생합니다.]

    그 모든 삶을 지금 보여주려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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