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33화 (33/366)
  • 33화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헌터들이 직접 뽑은, ‘가장 가고 싶은 신화 던전’ 대망의 1위는?! 바로 그리스 S급 던전이었습니다! 그리스 S급 던전은 유럽 던전 중 유일하게 공략법이 공개된 곳이죠?

    ―그렇습니다. 제우스가 크로노스를 몰아내고 최고신이 되는 과정이 담긴 신화 던전으로, 헌터들은 제우스와 동행하며 보스 몬스터인 크로노스를 함께 해치워야 합니다.

    ―이야~ 정말 특이하네요!

    ―난도가 높은 편에 속하지만 안에서 떨어지는 아이템의 성능이 뛰어나서 헌터들은 몇 번이고 이 던전을 클리어하고 싶어 하죠. 가장 빠른 클리어 기록은 브라질 팀이 보유한 5일 21시간 43분입니다.

    기사님이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사람들이 던전에 대해서 열심히 떠들고 있었다.

    “라디오 시끄러우신가요?”

    “네? 아니요. 괜찮아요!”

    “하하, 다행이네요. 그럼 남원까지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남원행 리무진은 도로를 따라 부드럽게 쭉 나아갔다.

    오늘 파견된 곳은 남원 S급 동화 던전, 헌터들 사이에서는 ‘춘향전’이라고 불리는 던전이었다.

    ‘춘향전’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다름 아닌 던전 내부가 춘향전의 내용대로 꾸며진 곳이었기 때문이다. 성춘향과 이몽룡의 만남과 시련, 그리고 재회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몬스터를 잡는 던전이라고 했다.

    ‘정작 보스 몬스터가 성춘향과 이몽룡이라는 점이 좀 웃기지만.’

    사실 오늘 파견이 조금 기대되는 이유는 이 흥미로운 내용의 던전보다 같이 가는 구성원에 있었다. 인벤토리에서 핸드폰을 꺼내 헌터넷을 켜, 파견 팀을 다시 살펴보았다.

    [파견 팀 : 신지의(SS급), 최민(S급), 이상욱(A급), 김수아(A급), 진주현(B급)]

    최민 헌터와 함께 가는 첫 번째 S급 던전. 그의 본 실력을 볼 수도 있는 기회였다.

    ‘어쩌면 뭔가를 떠올릴 수도 있고.’

    기대감 때문인지 긴장 때문인지, 심장이 평소보다 조금 빠르게 뛰었다.

    * * *

    “다 모였으니 이제 들어가겠습니다.”

    최민 헌터가 짧게 말하곤 가장 먼저 아이템 스캔을 받았다. 평소와 다름없는, 무뚝뚝하고 예민한 모습이다.

    “하하하! 신지의 헌터, 이번에도 잘 부탁해요!”

    “잘 부탁드려요!”

    이번이 두 번째 만남인 이상욱 헌터는 여전히 호탕하게 웃으며 나에게 악수를 청했다. S급 헌터보다야 그 수가 많지만 그렇다고 차이가 큰 건 아니라서 그런지, 몇몇 헌터와는 꽤 자주 호흡을 맞추게 됐다.

    ‘이번 파견 팀 구성도 정석적인 조합이네.’

    핵심 공격수인 나와 최민 헌터, 하이브리드계인 김수아 헌터, 방어의 이상욱 헌터와 치유계 진주현 헌터. 안전하게 클리어를 노리는 조합이었다.

    끼이익.

    최민 헌터가 태극 문양이 박힌 나무 대문을 밀자 그와 동시에 톡 쏘는 꽃 내음이 코를 찔렀다.

    던전 안으로 완전히 발을 들이자 날것의 비탈길과 함께 줄지어 선 기와집들이 보였다. 기와집 주변으로 푸른 나무들이 무성하게 나있었고 얼핏 보이는 마당 안에는 누가 봐도 ‘이 집 머슴이요’ 하는 사람들이 마당을 쓸고 있었다.

    “호남의 남원이라 하는 고을이 옛날 대방국이었다!”

    “와 씨, 깜짝이야.”

    소리꾼의 목소리가 던전 내부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소리만 들으면 국악 공연장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동으로 지리산, 서로 적성강, 남적강성허고 북통운암허니 곳곳이 금수강산이요, 번화승지로구나!”

    “춘향가네요.”

    가만히 듣고 있던 진주현 헌터가 말을 덧붙였다.

    “이 애, 방자야~!”

    진주현 헌터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멀리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걸어가니 다른 집보다 훨씬 으리으리하고 큰 기와집이 있었다. 마루 안쪽에 있는 방에는 한복을 입은 젊은 남자가 앉은 채로 제 머슴을 부르고 있었다.

    ‘딱 봐도 이몽룡이군.’

    선이 수려하고 예쁜 이몽룡의 얼굴에는 따분함이 잔뜩 끼어있었다.

    “거기 뉘슈?”

    이몽룡의 집을 기웃거리는데 뒤쪽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극에서 볼 법한 허름한 차림의 여자와 남자가 순식간에 우리를 둘러쌌다. 손에 낫과 호미 같은 농기구를 든 그들은 우리를 향해 절대 우호적이지 않은 태도로 다가왔다.

    “으랏차!”

    여자의 손에 들린 낫이 그의 키보다도 크게 변하자마자 이상욱 헌터가 앞으로 튀어나와 나무 방패를 세웠다.

    쾅!!

    낫의 엄청난 중량을 견디지 못한 방패가 결국 반으로 갈라졌고, 그 틈을 비집고 남자가 달려들었다. 남자가 들고 있던 호미가 이상욱 헌터의 허리를 베기 전 자아의 방아쇠를 길게 당겼다.

    우우웅―

    “우욱……!”

    탱그랑.

    공기를 진동시키자 남자가 양손으로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했고 날카롭게 갈린 호미가 바닥 위로 떨어졌다.

    ‘모습만 사람인 거지 결국 몬스터인데, 영 못 할 짓하는 기분이 드네.’

    엎어져 있는 남자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펑!

    “우왓!”

    남자의 몸이 연기와 함께 소멸한 순간, 갑자기 몸이 뒤로 당겨졌다. 그리고 곧바로…….

    콰그작.

    방금까지 내가 서있던 곳에 커다란 낫이 꽂혔다. 겨우 중심을 잡고 자아를 앞으로 겨누는데, 이미 낫과 여자는 시뻘건 불길에 휩싸여 재가 되어 가고 있었다.

    “끼야아아악!!”

    여자가 비명을 지르며 나를 향해 손을 뻗었지만 이미 재가 된 손가락은 힘없이 파사삭 흘러내릴 뿐이었다.

    “하, 놀라라…….”

    “괜찮으십니까?”

    고개를 살짝 들자 최민 헌터의 눈이 무심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인간형이라고 동요하지 마십시오. 어차피 몬스터일 뿐입니다.”

    “…네.”

    최민 헌터가 내 옷 뒷덜미를 놓고 나를 슬쩍 살피더니 금방 시선을 옮겼다. ‘유키온나’나 ‘조바심’ 같은 애들은 인간형 몬스터여도 인간이라는 느낌이 잘 안 들었는데, 정말로 사람처럼 생긴 몬스터를 향해 공격하려니 찝찝함은 어쩔 수가 없었다.

    진주현 헌터가 이상욱 헌터의 손목을 치료해 준 후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신지의 헌터, 그 아이템으로 게이트 위치 좀 봐주세요!”

    “아, 네. 음…….”

    ‘길을 비추는 자’는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시장 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저쪽이요.”

    “이야~ 사람 많네.”

    “몬스터들도 섞여 있을 겁니다. 조심하면서 가죠.”

    인파에 떠밀려 공격당하면 속수무책이겠군.

    자아를 꽉 쥐고 시장에 들어섰다.

    “고급 비단~ 구슬~ 장신구~”

    “생선 팔아요~!”

    소 달구지가 지나가고 사람들은 물건 파는 데에 여념이 없는, 전형적인 시장의 모습이었다. 이상욱 헌터가 커다란 방패를 들고 시장 한가운데를 가로질렀지만 이상하게 보는 사람 없이 그냥 길을 비켜 줄 뿐이었다.

    툭.

    색동저고리를 입은 어린아이가 방패에 부딪혀 뒤로 나동그라졌다.

    “아이쿠, 괜찮니?”

    “우애앵~”

    아이는 훌쩍거리더니 금방 울음을 터트렸다.

    “이마를 부딪쳤나 봐요.”

    본능적으로 몸이 앞섰다. 이상욱 헌터의 앞으로 나와 아이를 살피고 멍이 들 것처럼 붉어진 이마를 손으로 쓸어주었다.

    “킁, 흐어엉~”

    “괜찮아, 괜찮…….”

    ‘잠깐.’

    지금까지 몬스터가 아닌 사람들은 그냥 옆으로 피해 갔는데, 얘만 부딪힌다고?

    왠지 모르게 쎄한 느낌이 들어 곧바로 뒤로 물러나기가 무섭게 아이의 손톱이 내 손목을 파고들었다.

    “크윽!”

    “물러나세요!”

    퉁!

    이상욱 헌터가 방패로 아이를 튕겨내자 아이의 몸이 저 멀리 날아갔다.

    “꺄하하하~ 멍청이~”

    쉬이이익.

    시장에 있던 수십 개의 식칼이 우리를 향해 날아왔다. 멀쩡한 손으로 자아를 들어 방아쇠를 당기자 새하얀 파동이 식칼들을 전부 튕겨냈고, 그것들은 곧바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퍼버벙!!

    불씨와 함께 최민 헌터의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고, 아이와의 거리가 금방 줄어들었다. 지옥불 같은 불길이 아이를 삼키기 직전, 난 그냥 고개를 돌려버렸다.

    “으아악! 아파, 아프다고!!”

    “읏!”

    “신지의 헌터?! 괜찮으세요?”

    아이의 끔찍한 비명이 귓속을 파고들었다. 난 그 자리에 주저앉아 귀를 틀어막았다.

    ‘왜 하필 지유랑 비슷한 나이의 여자아이인 거야.’

    지유가 소리를 지르는 것 같다. 치료받기 싫다고, 자신을 여기서 꺼내달라고, 집에 가고 싶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죽고 싶다, 진짜.’

    차라리 고막을 뜯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쯤 아이가 완전히 소멸했다.

    “하아, 하아…….”

    “괜…찮으세요?”

    “아…….”

    그제야 주위가 좀 눈에 들어왔다. 모든 헌터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다들 저마다의 방식으로 나를 걱정했다.

    ‘좀 창피한 모습을 보였네.’

    “아, 괜찮아요.”

    “안색이 많이 안 좋으신데…….”

    “일단 손목부터 치료해 주시죠.”

    최민 헌터가 짧게 말을 얹었다.

    “아, 맞다! 아까 다치셨죠?”

    그 말에 진주현 헌터가 허겁지겁 내 손목을 자기 손 위에 올렸고, 얼마 안 있어 그의 손에서 검은 연기가 나왔다.

    “으, 따가워.”

    “조금만 참아 주세요.”

    검은 연기는 내 상처에 촘촘히 스며들기 시작했다. 한진우 헌터의 치유 스킬보다 등급이 낮아서인지 살이 돋는 감각이 더욱 생생하게 느껴졌다.

    “정신계 스킬이라도 쓴 건가요?”

    “아뇨, 그건 아니에요. 그냥…….”

    굳이 말할 필요는 없겠지.

    그냥 입꼬리를 올려 웃어 보였다.

    “제가 어린아이한테 좀 약하거든요.”

    “하하… 아무래도 그렇죠.”

    진주현 헌터가 내 말에 동조했고 이상욱 헌터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치료를 끝낸 후 바로 저잣거리를 빠져나오자 수풀이 우거진 거친 길이 우리를 반겼다. 길의 끝에는 커다란 기와 건물이 보였고, 언제 온 건지 이몽룡과 방자가 그 위에 있었다.

    술까지 마시고, 팔자 좋네.

    두둥탁!

    “유막황앵 환우성은 벗 부르는 소리요. 황봉백접 쌍쌍 비는 향기 찾는 거동이라. 물은 보니 은하수요. 산은 장관 옥경이라. 옥경이 분명 허면 월궁항아 없을쏘냐?”

    이번에도 판소리가 또랑또랑하게 울려 퍼졌다.

    “저기가 아마 광한루일 겁니다. 이제 이몽룡이 방자를 보내 춘향이를 데려오라고 하겠죠.”

    “진주현 헌터 되게 잘 알고 있네요?”

    “각성 전에 국어 선생님이었거든요.”

    그래서 그런 거였군.

    궁금증이 해결되자 김수아 헌터가 ‘아~’ 하는 소리를 내며 다시 광한루 쪽을 쳐다보았다.

    길을 비추는 자도 광한루 저 너머를 가리키고 있었다. 내가 아무런 말 없이 손으로 게이트 방향을 가리키자 다른 헌터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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