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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급 비명헌터-22화 (22/366)
  • 22화

    【늑대의 동반자】

    “하…….”

    씻고 나오자마자 이불 위로 몸을 날렸다. 머리에서 떨어지는 물이 이불을 축축하게 적셨지만 그런 걸 신경 쓸 만한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았다.

    던전 안에선 그렇게 피로한 걸 못 느꼈는데, 다시 돌아오면 피곤해 죽겠단 말이지.

    우웅.

    핸드폰이 울렸다.

    [수고 너무 많았다 우리 딸]

    [얼른 쉬어라…… ^^ ―엄마]

    집에 오면서 엄마한테 문자를 보내 놨는데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답장이 왔다. 이모티콘 하나를 보낸 후 다시 이불에 얼굴을 묻었다. 희미한 섬유유연제 냄새가 마음을 평온하게 했다.

    딱 이대로 잠들면 기분이 엄청 좋을 것 같은데.

    키이이잉.

    “아, 맞다.”

    이번엔 인벤토리에서 난 소리다. 고개를 들고 인벤토리를 열자 아까 캐비닛에서 발견한 실팔찌가 미친 듯이 진동하고 있었다. 꺼내서 손에 올려놓으니 그제야 잠잠해졌다.

    [주인을 잃은 늑대 / ???]

    [특이 사항 : 이름을 불러주자.]

    ‘아, 맞다. 이 팔찌…….’

    회귀 전의 내가 가져갔던 아이템이자, 아마도 내 소환수로 추정되는 아이템.

    “근데 왜 녹두지?”

    익숙한 이름이긴 한데 왜 이렇게 지은 건지 잘 기억나지 않았다. 딱히 내가 녹두를 좋아하는 것도 아닌…….

    “난… 녹두!”

    “…아.”

    순간 머릿속에 앳된 음성이 떠올랐다. 그리고 동시에 심장이 울렁거렸다.

    ‘왜 그걸 기억 못 한 거야.’

    녹두. 지유의 병실 침대에 같이 누워 정했던, 미래에 키울 강아지 이름이었다. 내가 온갖 멋있는 영어 이름을 댈 동안 지유는 한결같이 음식 이름을 고수했다.

    “음식 이름 붙이면 오래 산대!”

    그 이유 하나로.

    난 숨을 깊게 들이마신 후 조심스럽게 녀석의 이름을 불렀다.

    “…녹두야.”

    키이이이잉.

    나무 구슬에서 연두색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빛은 곧 내 방 전체를 집어삼키더니 이내 작은 구체가 되어 내 눈앞을 떠다녔다.

    [아이템 각성]

    [태양을 삼킨 늑대 / S급 장신구―소환수형]

    [유체]

    [특이 사항 : ‘태양을 삼킨 늑대’는 자신의 이름을 부른 동반자의 속성을 계승한다.]

    [소환수 스킬 획득]

    [S급 공격계 스킬 : ???]

    [S급 이동계 스킬 : ???]

    [S급 방어계 스킬 : ???]

    [소환수 스킬은 동반자와의 교감을 통해 개방된다.]

    구체에서 뾰족한 두 귀가 솟아나고 앙상한 다리 네 개가 삐죽 튀어나왔다. 알을 깨고 나오듯 빛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동시에 빛이 완전히 걷히며 ‘태양을 삼킨 늑대’의 모습이 서서히 나타났다.

    아우우―!

    <사명>

    [늑대의 동반자]

    [동반자를 성장시켜라.]

    [달성도 대폭 상승]

    [달성도 : 32%]

    팔찌에서 튀어나온 태양을 삼킨 늑대, 아니 녹두는 시골에서 자주 보이는 새끼 강아지 같았다. 복슬복슬한 새하얀 털 위에 촉촉한 코와 연두색 눈동자가 박혀 있었고, 묘하게 억울해 보이는 이목구비가 제법 앙증맞았다.

    꺄우― 낑… 컹!

    녹두는 내 품에 파고들어 앓는 소리를 냈는데, 그 와중에도 꼬리는 힘차게 돌아갔다.

    “녹두야, 나 기억해?”

    꺄앙! 낑! 끼잉……!

    “기억 못 하는 건 나뿐이구나…….”

    녹두는 앞발로 내 팔을 긁으며 어떻게든 곁에 붙어 있으려는 듯 안간힘을 썼다.

    마치 다시는 날 잃지 않겠다는 것처럼.

    녹두를 꼭 끌어안고 등을 토닥이자 안절부절못하던 녀석은 서서히 진정했고 내 어깨에 양발을 올린 채 색색 숨을 쉬었다.

    ‘―두…야!’

    갑자기 자아가 소리를 질렀다.

    ‘녹두 기억해?’

    ‘당연하― 우리 소중… 데!’

    여전히 통신 상태는 안 좋았지만 자아가 하는 소리를 어느 정도 알아들을 수는 있었다.

    지지직.

    ‘아, 아. 이제 잘 들리지?’

    ‘어? 응.’

    ‘후, 이제야 에너지가 돌아왔거든.’

    오래도 걸렸다.

    자아는 잠시 목을 가다듬었다.

    ‘너가 죽기 직전에 회귀한 거라서 녹두도 용케 목숨은 건졌나 봐.’

    ‘내가 죽으면 얘도 죽어?’

    ‘응. 소환수는 동반자와 목숨을 공유하니까.’

    내가 얘랑 목숨을 공유한다고?

    고개를 빼 슬쩍 녹두의 얼굴을 보았다. 아까까지 낑낑대던 녹두는 어느새 편안하게 잠들어 있었다.

    ‘녹두… 태양을 삼킨 늑대는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아이템이야. 어느 던전에 나타날지도 모르고, 나타났다고 해서 무조건 네 걸로 만들 수 있는 아이템도 아니지.’

    ‘그럼 맨 처음에 내가 녹두를 만난 건 완전 기적이었네.’

    ‘기적이란 말로도 모자라. 녹두가 너를 직접 선택했다고밖에 볼 수 없어.’

    ‘녹두가 나를…….’

    어깨에 매달린 녹두를 조심스럽게 요 위로 내려놓았다. 이불을 덮어 주려 잠깐 손을 뗀 사이에 잠에서 깬 녹두가 자기를 두고 갈까 싶은지 또다시 낑낑거리기 시작했다.

    “아니야, 나 어디 안 가.”

    등을 토닥여 주자 녹두는 눈을 끔벅끔벅 하더니 금세 다시 잠들었다.

    ‘녹두는 너와 교감하고 함께 싸울수록 강해지는 애야. 웬만하면 던전에 매일 데리고 가.’

    피유…….

    웅웅거리던 자아가 다시 조용해지자 좁은 방 안은 녹두의 숨소리만이 감돌 뿐이었다.

    ‘더 반갑게 맞아 줄걸.’

    기억은 없지만 그 누구보다 각별한 사이였을 텐데. 제대로 반응을 못 해준 것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녹두의 옆에 누워 품 쪽으로 끌어당겨 녀석의 이마에 내 이마를 댔다. 서로의 영혼이 맞닿는 기분을 느끼며 나도 곧 까무룩 잠에 들었다.

    * * *

    “…넌 내가 수의사로 보이냐, 이 멍청아?”

    슬리퍼가 안 날아온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생각해야 하는 걸까.

    녹두, 태양을 삼킨 늑대에 대해 좀 알아야 할 것 같아서 일어나자마자 미래 씨의 연구실 앞으로 냅다 달려온 나는 결국 지금 죄인처럼 서서 미래 씨의 타박을 듣고 있었다.

    아웅?

    아무것도 모른 채 내 품에 안겨 헤헤 웃는 녹두와 함께.

    미래 씨는 녹두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며 혀를 한 번 차더니 이내 연구실 안으로 들어오는 걸 허락했다.

    그동안 긴팔을 입고 있어서 잘 인지하지 못했는데, 지금 보니 미래 씨의 온몸은 타투투성이였다. 목이 다 늘어난 티셔츠 밑으로 보이는 쇄골은 물론, 팔뚝과 손가락까지 전부 알 수 없는 그림과 글자로 빼곡했다.

    “그래서 지금 이 늑대 새끼 해부하란 거냐?”

    “해부라니요. 끔찍한 소리하지 마세요.”

    “그럼 뭔데.”

    “이 팔찌에 대해 좀 알고 싶어서요.”

    태양을 삼킨 늑대를 빼서 미래 씨에게 내밀자 그가 눈을 가늘게 뜬 채 핀셋으로 그것을 집어 들었다.

    “녹두는 그 아이템에서 소환된 애예요.”

    “아이템으로 소환됐다고? 그건 처음 보는 케이슨데.”

    미래 씨는 책상 위를 굴러다니던 고글을 쓴 후 본격적으로 태양을 삼킨 늑대를 살펴보았다.

    퐁.

    그러고는 투명한 액체에 담갔다 다시 뺐다.

    “뭐 하시는 건지 말 좀 해주시면 안 되나요.”

    “이 이상한 팔찌 구성 성분을 읽을 거다. 침 들어가니까 입 좀 다물어.”

    미래 씨가 짜증을 내며 한 팔로 나를 슥 밀었다. 녹두가 나를 올려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찬밥 신세를 받은 것보다 나랑 같이 있다는 사실이 더 기쁜가 보다.

    “으이구, 귀여워.”

    꺄―우!

    위이이잉.

    태양을 삼킨 늑대가 작은 캡슐 안에 들어가 웬 레이저를 맞았고, 동시에 바로 옆에 있던 스크린에는 온갖 숫자가 떴다.

    “흐음… 기가 막히네.”

    미래 씨가 스크린을 확대하며 한 손으론 컵에 있던 얼음을 입에 털어 넣었다.

    “일반 아이템이나 무기 같은 경우엔 주로 던전 부산물로 구성되어 있어.”

    “이 아이템은요?”

    “너가 직접 와서 봐봐.”

    탁.

    미래 씨가 가리킨 곳엔 태양을 삼킨 늑대에 대한 정보가 나와 있었다.

    [태양을 삼킨 늑대]

    [S급 장신구―팔찌]

    [특이 사항 : ‘태양을 삼킨 늑대’는 자신의 이름을 부른 동반자의 속성을 계승한다.]

    [귀속 상태]

    [성분 : 몬스터 87.1%, 부산물 10.4%, 기타 2.5%]

    “몬스터?”

    “보통 소환수들이 이런 구성 성분인데, 니 늑대도 그런가 보네.”

    후루룩.

    미래 씨는 로봇이 가져다준 커피를 마시며 말을 덧붙였다.

    “헌터 된 지 아직 한 달도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소환수까지 생기다니. 너도 운 하나는 X나게 좋다.”

    “보통 소환수들은 뭘 먹어요? 아프면 어떡해요?”

    “그러니까 넌 내가 수의사로 보이냐고, 멍청아. 그 정도는 X튜브에 치면 다 나와.”

    조금 더 있다간 정말로 욕 한 바가지 듣게 생겼다. 녹두와 함께 미래 씨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 연구실을 빠져나오자 아니나 다를까, 뒤통수로 힘찬 육두문자가 날아왔다.

    “야! 이거 챙겨 가라고!”

    “악!”

    찹.

    미래 씨가 던진 것을 한 손으로 낚아챘다.

    [곰 고기]

    [연신내 C급 던전산]

    [*인간은 절대 섭취하지 마시오.]

    “소환수들은 몬스터고기나 부산물 먹고 살아. 애 굶기지 말라고, 멍청아!”

    “미래 씨……!”

    쾅!

    연구실 문이 굳게 닫혔다.

    그래, 입이 좀 걸고 성격이 더러워서 그렇지, 나쁜 사람은 아니라니까.

    ‘말하고 보니 욕 같네.’

    곰 고기를 인벤토리에 넣어 두고 협회 건물 로비로 올라왔다. 소파에 앉아 멍하니 녹두를 바라보며 부드러운 털을 쓰다듬어 주자 녹두가 앞발로 내 손을 잡아 손가락을 안 아프게 물었다.

    “하아…….”

    크르릉, 컁.

    영 실감이 나지 않았다.

    기억이 없다는 건 생각보다 더 답답한 일이구나.

    혼란스러워하는 와중에도 녹두는 내 손에 얼굴을 비비느라 정신이 없었다.

    “녹두야.”

    꺄웅?

    “전에 내가 어떤 동반자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녹두와 눈이 마주쳤다. 에메랄드빛 눈동자가 밝게 빛났다.

    “다시 한번 잘 부탁해.”

    아우우―

    녹두는 울음을 길게 빼며 내 품 안으로 뛰어들었다. 작고 따뜻한 온기가 가슴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우웅.

    이번엔 또 무슨 일이지.

    인벤토리에 넣어 둔 핸드폰을 꺼내 헌터넷을 켜자 알림창이 반짝거렸다.

    [파견 업무 1건 배정되었습니다.]

    [위치 : 일본 도쿄 시부야 S급 던전(일반)]

    [날짜 : 추후 안내 예정, 5월 중]

    [파견 팀 : 추후 안내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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