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우는 엄청나게 잘했다.
다른건 몰라도 총을 쏘는 게임만큼은, 입이 딱 벌어질정도였다.
“대단한걸.......”
애저녁에 죽고 구경만 하던 내 감탄에 신우가 희미하게 웃는다. 아.......어릴적과 똑같은 웃음이다. 쑥스러워하는 것이다. 신우는 주목받거나 칭찬해주면 창피해했다.
“총은 좋아해.”
한 섹션을 끝내고 점수집계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신우가 말했다.
“.......써보고 싶어질때가 종종 생기거든.”
오싹, 했다. 나를 쳐다보지 않은 그 눈이 심각해서 저 말이 진심임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아까처럼 발광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신우를 여기에 남기고 도망가고 싶은 기분은 더더욱 아니었다.
“지루해?”
“아니......조금.”
인사치레로 대답하다 말고 솔직하게 말하자 신우가 아무렇지도 않게 총을 놓았다. 둥글게 둘러싸고 구경하던 구경꾼들 사이에서 약한 탄성이 터져나왔다. 그 쪽은 바라보지도 않은채로 신우가 “그럼 나가자.”며 나를 이끌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단 한번도 동성과 손을 잡아본 일이 없는데, 신우는 자연스럽게 내 손을 잡고 오락실을 나갔다.
나오고나서야,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기록인데......
모두가 대단하다고 놀라워하던 신우가 처음이라는 것을 말해준다면, 그 놀라움을 더욱 배가될테지.
그런 신우가 지금, 내 손을 잡고 어디갈꺼냐고 물어온다.
어릴때도 분명 이런 기분이었다.
약간은 무섭지만 많이 설레는.......이.......기묘한 느낌.
“집으로 돌아갈까?”
“집?”
신우가 차갑게 웃었다.
“어느 집? 어디가 집인데?”
“신우?”
그 빈정거림에 놀라 신우를 부르자 신우가 곧 다정하게 얼굴을 풀었다.
“.......아냐, 미안해. ......나도 너네 집에 살고 싶어. 그때가 제일 좋았던 것 같아.”
집으로 가는 쪽이 아닌 길로 걸으면서 신우가 입을 열었다. 이 쪽은 집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고 말할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눈을 떠도 네가 있고, 눈을 감아도 네 손을 잡을 수 있고. 좋았지, 정말로.”
신우는 알 수가 없는 녀석이다.
갑자기 말을 바꾸는가 하면
한순간 광기어려졌다가도 바로 온순해졌다.
십년전에도 그랬던가.
그랬다.
신우는 십년전에도 늘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는 아이였다.
“커피 마시지 않을래? 스타벅스 좋아해?”
신우의 말에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커피는 썩 좋아하지 않는다. 너무 써서 입이 텁텁해진다.
“커피 싫어해?”
“좋아하진 않아.”
“뭘 좋아하는데?”
“유자차나......”
“What?"
그게 뭐냐고 신우가 물어왔지만 나라고 그걸 영어로 표현할 능력은 없다.
“달콤한 차야.”
“Sweet tea? 그런 걸 좋아해? 그럼 밀크티어때?"
신우의 말투는 조금 이상하다. 영어가 나오는 곳에서 그 위화감은 두드러진다. 영어를 본토발음으로 일일이 말하는 녀석이라, 한국어가 요상해지는 것이다.
“그정도는 괜찮아.”
"No-"
내 말에 신우가 고개를 흔들었다. 잘생긴 얼굴을 마구 찡그린 표정이 꽤 귀엽다.
“네가 좋아하는 걸 먹고싶어.”
좋아하는 것?
그러고보니 특별히 좋아하는 것이 없다. 특별히 싫어하는 것도 없지만.
“특별히.....없는데.”
“Nothing? God-"
신우가 어깨를 움츠렸다.
“변했네. 넌 예전에 좋아하는 것도 무척 많고 싫어하는 것도 정말 많았는데.”
그렇게 말하는 신우는 기뻐보였다.
왜 기쁜것인지 모르겠는채로 여하간 커피숍에 가자고 하려던 찰나, 신우를 바라보던 눈에 그 등뒤에 서있는 둘째형을 보았다.
둘째형은 신우를 노려보면서 내게 손짓했다.
“신우야. 나 잠깐 손 좀 나줘.”
그 손짓은 마치 유괴범에게 끌려가는 아이를 발견한 어머니의 것과 비슷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신우를 속이고 이 자리를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신우는 안돼, 하고 살짝 웃더니 당연하게 둘째형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안돼요. 이젠, 절대로, 안돼요.”
“이신우!”
“.......Can you remember?"
신우가 비릿하게 웃었다. 그 웃음보다도 내 손을 잡은 그의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는게 더 신경쓰였다. 어머니의 경고가 생각났다. 적대감을 갖지 말되, 가까이도 하지 말으라는.
“난 잊지 않을거라고 했었죠.”
이게 무슨말인지 모른다.
신우와 형은 서로를 노려보기만 하고 있었다. 갑자기 신우가 나를 콱 끌어안았다. 길가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이상스런 눈초리에 창피한 나도, 이를 악무는 형도 상관하지 않고 신우가 정말로 기쁜 듯이 내 귓가에 속삭였다.
“민형아. 같이 살자.”
하느님 맙소사.
내 잘생긴 사촌은 정말 미친놈이 맞나보다. 이 말이 얼마나 진심인지, 다이렉트로 심장까지 달려와서 내 숨을 가쁘게 만들었다.
같이 살자고?
내가 우리집 두고 왜 너네집에서, 큰아버지와?
내 얼굴을 본 신우가 또다시 웃는다. 너무 많이 웃어서, 마치.......피에로같다.
“No- Stupid! 내 실수야. 아냐, 그런뜻이 아니고. 나 따로 나와 살거든. 같이 살지 않겠느냐는 뜻이야. ”
독심술도 하는 것 같은 이 무서운 사촌의 품이 따듯하다는 것은 의외다.
그러나, 독심술이 상식까지 알려주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서먹서먹한 십년전에 자주 놀던 사촌이 같이 살자고해서 냉큼 그러겠다는 녀석이 세상에 어디 있다는 말인가;
“싫어.”
“왜?”
왜.....냐고 물어본다.
이유는 수십만가지 있을 것 같은데 정작 말하려니 또 할말이 없다.
“내가 싫어?”
“그렇지는 않지만.......”
“그럼?”
신우가 자세히 내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널 모르니까.”
“알아가면 되지.”
“별로 알아가고 싶지 않아.”
신우를 뿌리쳤다. 신우는 내 힘에 밀렸다기보다는 내가 뿌리치려고하자, 스스로 물러났다.
기분은 좋다.
누군가가 나만을 바라보고 내가 하자는대로 한다는 것.
나는 잊고있는 십년간, 나를 잊지 않았다는 것.
하지만, 그게 정상은 아니며, 지금은 단순히 기분좋을 일만 일 수 있어도 다음에도 그렇다는 보장은 없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고, 신우는 자신의 마음을 투자한 댓가를 바라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현재로서는.
아무것도 줄 마음이 없다. 줄 수 있는 것도 없고.
“그건 곤란하네.”
곤란하다는 표정의 신우는 등 뒤의 둘째형 따위는 잊은 듯하다.
“.......그건 굉장히 곤란한데.”
어느 새 다가온 둘째형이 나를 잡고 자신의 뒤로 끌었다. 그 웃기는 모양새에서 눈을 떼지 않으면서 신우가 곤란해, 라고 계속 중얼거리고 있었다.
“미,쳤구나.”
누나가 집앞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둘째형에게 연행되온 나를 보자마자 내뱉은 첫마디였다.
“걔가 누군데 어울려, 어울리길? 너 정말 죽고싶니? 그렇게 죽고싶다면 이 누나가 편히 가게 해주마, 어?!”
등짝을 연신 두들겨 맞을때마다 짝! 소리가 골목길에 진동했다. 아야, 아야, 아야! 구타로 죽겠다!
“누나, 아파! 아프다니깐!”
“넌 좀 아파야 해! 어?! 아무리 그때 어렸다지만, 어떻게 또.......!”
거기까지 말하던 누나의 입과 손이 동시에 멈춰졌다.
“뭐야!”
신경질을 낸 것은 되려 내쪽이었다. 신경질이 났다. 도데체 십년전에 무슨일이 있었던 건데!
내 신경질에 나를 잠깐 쳐다보던 누나가 담벼락에 몸을 기댔다.
“말할꺼야?”
둘째형의 말에 누나가 얼굴을 찡그리며 “담배.”라고 명령했다. 둘째형이 누나에게 담배를 물려주고 불도 붙여주는 것을 보면서, 역시 여자는 무섭다고 다시한번 생각했다.
“십년전일이야.”
누나는 강조하듯이, 서두를 열었다.
“네가 사라진 적이 있었어.”
누나의 담배연기가 하얗게 허공을 물들인다. 둘째형의 입김보다 그 연기가 더 희게 보였다.
“이틀이나. 실종신고를 하고 샅샅이 뒤졌지만 발견되지 않았지. 그리고.......신우가 이상하다고 느낀건, 신우가 밥을 몰래 싸서 어디론가 나가곤했다는 점이야. 신우가 그렇게 열성을 쏟는 상대는 세상에 너 하나밖에 없을테니까, 오빠와 난 신우를 의심했어. 뒤를 밟았지. 공터에는 버려진 쓰레기통이 있었어.”
.......생각났다. 벽돌색의 그 쓰레기통.
"열살인 신우의 키보다도 큰 쓰레기통이었어.......신우는 버려진 벽돌을 세 개나 그 앞에 쌓고 그것을 밟아서 안을 들여다보더군. .......그리고 가방에서 밥을 꺼내서 새모이주듯이 안으로 한숟갈 한숟갈씩 떨어뜨렸어. 신우는 부모님에게 신뢰받고 있었으니까, 우리는 숨어서 신우가 가길 기다렸어. 신우는 꽤 오랫동안,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 그 쓰레기통안을 보고 또 보다가 어둑어둑해져서야 아쉽게 집으로 돌아갔고, 신우가 사라지자마자 오빠랑 난 그 쓰레기통을 열어보았지.“
희미하게 생각하는 그 기억이, 천천히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네가, 울다지쳤는지 울지도 않으면서 신우가 바닥으로 떨어뜨린 밥을 주워먹고 있더라. 머리에도 옷에도 반찬이며 뭐며 잔뜩 묻은채로. 더러워져서. 데리고 갔더니 난리가 났지. 정신이상자의 소행이라고. 어머니도 아버지도 부들부들 떨었지만 정작 범인은 모르고 계셨지. 말씀드릴 수가 없었어. 어머니는 신우를 상당히 예뻐하셨거든. 어린나이에도 그 애정을 알고 있었으니깐. 그래서 우린 모두를 불러서 말했고, 모두는 신우로부터 너를 지키겠다고 다짐하고 다짐했어. 큰아버지가 신우를 데려갈때까지 우리도 신우도 서로 처절했지. 하지만 신우의 친 아버지가 신우를 데려갔고, 우리는 그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
누나가 담벼락에 담배를 비벼 껐다.
“그 놈은 미친놈이야. 정신이상자라고. 넌 잊고 있었지. 내 생각에 네가 그걸 잊은 건 너무 상처가 커서일거야. 실제로 집으로 돌아와서 계속 앓았기도 했고, 너는 그 이후로 신우와 잘 놀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나는 잊지 않아. 절대로 잊을 수가 없어.”
[민형아. 여기서 영원히 사는거야. 내가 밥을 가져다줄께. 내가 너랑 놀아줄께. 나하고만......나하고만 있는거야.]
신우의 말이 생각났다.
잊어버렸던 것은 상처가 커서가 아니다. 단지 시간이 너무 지났고, 곧 큰 아버지가 신우를 데려갔기 때문에 신우를 잊으면서 같이 잊어버린 것일 뿐이다.
하지만.......신우에 대한 거부감은 분명 그 탓일지도 모른다.
그 일이 모두 생각나는 것은 아니다. 단편적인 생각들이 난다. 그 쓰레기통에 빠진건 나였다. 신우와 숨바꼭질을 하다가 못 찾게 한답시고 그 곳에 들어갔다. 신우가 감금한 것이 아니다. ......그저 빼주지도 않았고, 누군가에게 알리지도 않았을 뿐이다.
그러나, 두려움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내가 신우에게 배신감을 느낀 것은, 그가 날 빼주지도 않았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내가 그에게 배신감을 느낀 것은.
나를 가둔 그 아이가 정말로 행복하게 웃었기 때문이었다.
내 고통으로 그가 행복을 느끼고 있다는것.
빼달라고 엄마를 불러달라고 소리를 쳐도, 들리지 않는다는 듯이 자기 할말만 하면서, 자기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자기 듣고 싶은 것만 들으면서 나를 좋아했다는 것.
그것이었다.
신우는.......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변했다.
“알겠어. 신우와 가까이 하지 않을께.”
누나에게 말하고 자신에게 다짐했다.
나를 도와주거나 나를 생각해주거나 내 행복을 빌어주는 사람이 아닌, 나를 가두고 싶어하는 상대에게 내 마음을 주지 않겠노라고.
할아버지댁에 돌아온 신우는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했다. 나에게 말도 걸지 않고 그는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있었지만 그래도 나를 아예 잊고 있지는 않았다. 때때로 내가 필요한 것을 건네주거나 머리에 붙은 벌레를 떼주는 그는 나를 신경쓰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완전히 그를 무시하고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는 어릴 때 생각을 하면서 자꾸 말라가는 입술을 깨물어서 피맛을 보고야 말았다.
신우는 그때 웃었다.
영원히 나를 그곳에 둘거라면서, 해맑게.
내 말을 듣지도 않고
내 눈을 보지도 않고
가둬진 나를 향해 만족한 표정을 지으면서.
.......내 생각과 내 마음따윈 송두리째 무시한 신우는, 자신만의 행복에 빠져있었다. 그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나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상대였는데.
신우는 ‘나’를 좋아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나이기 때문에 좋아한 것이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면, 내가 소리치고 우는 것을 아예 보지도 않고 무조건 행복해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신우는 아무나 좋아했고.
거기에 선택된게 나일 뿐이다.
어린시절, 아무것도 모르고 헤실거렸다가 뒷통수를 맞은 나는, 십년이 지나서도 또 그 상대를 보지 않고 아무에게나 던져버린 애정이 진심이라고 믿으며 즐거워한것이다.
신우가 기만한 것은 나.
그를 기만했다고 여기며 우월감을 느낀 나다.
빌어먹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