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화 (1/8)
  • How deep is your love?

    그 남자를 처음 본게 언제더라?

    -아주 어릴때 부터여서, 정작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여하간 굉장히 어릴때부터, 내가 기억하는 세살무렵에도 그는 내 인생에 존재해 있었다.

    그를 말하자면, 우선.......그의 집안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어머니는 굉장히 아름다운 분이셨다. 내 어머니의 평가에 의하면 ‘바비인형’이라고 의심될정도의 조각같은 미모를 지닌 프랑스인이었다고 한다. 너무나 아름다운 나머지 어머니는 눈앞의 그 분에게 손을 흔들어서 표정이 움직이는지 확인해보셨을 정도로. - 문제는, 그 분이 정말로 바비인형같은 사람이라는 것에 있다. 머리도 비어있는 점이 정말 딱이라고, 어머니는 나의 숙모에 대해 말씀하실 때 얼굴을 마구 찌푸리며 말씀하시고는 했다. 사람이 인정머리없는것도 어느정도지,라고.

    그의 어머니는 잘생기고 능력있는데다가 어딘가 신비로운 분위기까지 풍기는 동양인 -게다가 재벌 2세- 에게 완전히 빠져버렸다. 물론 모델지망이기는 해도 정말로 아름다운 그녀에게 그의 아버지도 완전히 빠져서 둘은 선남선녀커플로서 한국으로 왔다.

    .......여기서 해피엔딩이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했다. 그의 아버지는 재벌 2세로서 교육받고 자란, 엄격한 성격의 사람이었다. ‘놀 때’와 ‘일상생활’에서의 그의 차이를 그의 어머니는 견디지 못했다. 아침에 남편에게 밥과 국을 차려주고 넥타이를 골라주고 한국어를 배우는 것 따위 어린 그녀는 하고 싶지 않았다. 가정부도 고용하지 못하게 하고, 도토리묵까지 만들어내라는 남편의 요구에 지칠대로 지친데다가, 시집식구들의 등쌀에 거의 히스테리가 병으로 옮은 듯한 그녀는 그를 낳자마자 죽이려 들었다.

    도데체, 산모의 힘이 어떻게 그렇게 셀 수 있는 걸까. 아마 ‘미쳤기’ 때문일것이다. 그의 어머니는 프랑스어로 소리쳤다. 날 살려줘, 날 내버려둬, 날 고국으로 보내줘, 아니면 저 아이도 죽이고 나도 죽겠어! 남편의 밥보다는 자신의 옷에 더 신경쓰는 프랑스 여인을 그의 아버지는 애절히 사랑하고 있었지만, 둘의 가치관은 너무나 달랐다. 그녀는 스위트룸에서 멋진 동양인과 [귀여운 여인]을 한편 찍고 싶었던 그녀. 동양에 와서 가정부를 두고 자신은 백화점 명품관을 휩쓸고 다닐거라고 생각한 그녀. 친척 따위는 보고 싶지도 않아한 그녀.

    ......낳은 아들이 그녀가 그렇게 가면 어떻게 살아야할지는 전혀 관심도 없었던 그녀.

    진정한 불행은 그의 아버지가, 그의 어머니를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것에 있다. 그래서 그의 아버지, 즉 나의 큰아버지는 차가운 사람으로 변해버렸다. 자신의 아이를 특별히 증오하지는 않았지만 사랑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는 아이에게 신경쓰지 않기를 원했고, 실행했다. 그는 어릴 때 유차원에서 놀다가 가위에 눈이 찔려 실명위기를 맞았을 때도 내 부모님이 달려가서 병원에 데려가고, 유치원에 항의했을 정도로.

    우리는 꽤 오랫동안 함께 살았다. 나는 육남매중 막내였고, 나의 누나와 형들은 서로들을 죽도록 싫어하면서 나만을 좋아했다. 그런 그들의 방어선을 가볍게 뚫고 늘 나와 함께 있었던 그였다.(그래서 아직도 나의 남매들은 그를 싫어한다.) 그의 아버지가 그를 귀찮아하면서 우리집에 맡겨놓은 것이었다. 우리 형제들과는 달리 공부도 무척 잘한 그를 친자식이상으로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한 부모님은 나와 그가 같이 다니는 것을 장려하고 계셨다.

    할아버지가 큰아버지에게 달라스지점을 맡기기 전까지.

    우리는 늘.......함께였다.

    “누가 온다고?”

    그래서 놀란것이다. 그가 달라스로 가던 때가 열 살, 정확히 십년전이다. 십년이나 지나면 그전에 얼마나 친했던간에 ‘아주 모르는 사람’보다 조금 나은 정도에 불과하다. 어릴때는 꽤 울보였었지. 내가 없으면 무조건 울어댔고, 나를 조금만 괴롭혀도 벽돌을 던지는 과격함을 보여 우리 부모님이 걱정하시자 다음부터는 후미진 곳으로 끌고가서 안보이는 곳만 골라 팼다. 그런 주제에 나에게 혼나면 또 울었다. 사이좋게 지내, 라는 말에는 늘 고개를 흔들었다. 난 너랑만 놀꺼야. 난 너랑만 살꺼야. 늘.......그런 말을 해대서, 어린 나의 우월감을 한껏 만족시켜주었다. 어리다지만, 우월감에 젖어 기사를 데리고 다니는 공주님처럼 그를 수행시키며 다녔다니.......민망하다.

    그러나 저 위의 말은 내가 한 것이 아니다.

    “말도 안돼, 엄마! 그 싸가지없는 애새끼가 한국에 왜 와?!”

    우리 누나다.

    십년전에 보고 처음 오는 사촌을 저런식으로 말하다니, 듣는 내가 다 부끄러울 지경인데도, 누나는 정말 싫은지 고개를 붕붕 흔들면서 추방해야 한다고 소리쳤다.

    -치다가, 어머니께 은쟁반으로 머리를 맞았다. 둥- 하는 묵직한 타격음 -마치 종소리를 연상케하는- 이 들렸다.

    “싸가지없는 애새끼가 누군데? 너냐?”

    “있잖아- 그 음산하고 재수없는 놈!”

    여자면 제발 여자답게 있어줘.......아니, 그런 비슷한 행태라도 갖쳐줘......제발 의자에 다리올리고 앉아서 귤 먹다말고 발가락을 긁고 그 손으로 다시 귤먹지 말아! 누나의 학교 친구가 왔을 때 그 꼴을 보고 기겁한-그는 남자였다.- 그가 누나에게 ‘여자답게는 바라지도 않으니 최소한의 깨끗함을 보여라’고 말했을 때도 그는 철썩 소리가 나도록 세게 맞았다. 나는 그렇게 맞을 리 없다. 누나가 나를 좋아하니까. 하지만, 저 말을 하면 누나는 사상교육에 들어간다. 남녀평등. 페미니즘. 하지만 난 남자가 저런다면 기필코 때려줄것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은 여성상위시대다. 남자라면 용서치 못할 일을, 여자라는 이유로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고 만다.

    형들도 서로서로는 용서없이 패주지만, 누나에게는 뒤에서 욕할 뿐 앞에서는 벙끗 못한다. 누나는 말을 무척 잘하기 때문이다......아니, 무엇을 숨기랴. 싸움도 잘한다. 누나가 얼마나 형들을 쥐어팼는지 어머니가 형들에게 호신술을 겸해서 태권도니 합기도니를 가르쳤을 정도다. 누나는 어릴때부터 싸움을 잘했고, 이미 중학교때 초등학생인 내게 ‘사람을 때릴때 맨주먹으로 때리는것보다는 라이터를 꽉 쥐고 패는게 낫다. 손이 덜 상한다.’ 따위를 가르친 사람이다. 형들이 아무리 호신술을 배워도 누나하고는 힘들다.

    무엇보다도......누나는......

    남자의 다리사이를 발로 까버리기 때문에. 모두가 두려워하는 진정한 지배자다. 그리고 그 누나를 은쟁반으로 두들겨 패는 우리 어머니는 우리집 절대지존이다.

    ‘여자는 약하니까 보호해야 해.“

    라는 두사람의 교육은 그래서 전혀 신빙성이 없다. 저 정도로도 충분히 살상용 무기구만.

    “어머, 신우가 얼마나 괜찮은 앤데 그러니? 전화통화 했는데 목소리가 많이 굵어졌더라구. 어른이 다되었더라~”

    “지도 사내새끼인데 어련하겠어. 큰아버지 핏줄이라 그런지 애가 아주 음험했어.”

    “너 자꾸 그럴래?!”

    어머니 고함에 어깨를 움츠리고 까놓은 귤을 두개나 입에 물고 달려가면서 그래도 누나는 작전상 후퇴라는 듯이 소리쳤다.

    “사실인걸!!”

    이미 이층으로 올라가는 쿵쾅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어머니가 파를 썰다말고 왼손으로 머리를 짚으며 “아이고 두야......”라고 신음소리를 내셨다. 식탁의자에 앉아 감자를 깎는 나를 보면서 어머니가 온화하게 미소지으셨다.

    “민형아. 신우 생각나니?”

    “대충.”

    거짓말.

    나는 얼굴이 붉어진걸 느끼고 시선을 내리깔아 감자를 열심히 깎는척 하면서 고개를 숙여버렸다. 기억난다. 나만을 좋아하고 쫓아다니던 그를 귀찮아 하던것, 우월감을 느꼈던 것. 추운 겨울에 개천에 빠트린 내 손목시계를 찾아 온몸을 흠뻑 적시고 밤에 돌아온 그가 건넨 그 차가운 미키마우스 손목시계의 감촉도 선명히 기억난다. 그가 폐렴에 걸렸을 때, 나는 다른 아이들과 밖에서 놀고 들어왔다. 하루종일 나를 기다리던 그의 슬픈 시선도.

    와도 보지 말아야겠다. ......보게되면, 어릴때 일이라도 사과해야지.

    그러나 십년전 일을 사과한다는건 너무나 낯뜨거운 짓이다. 그냥 모르는 척 하고 웃으며 인사하는게 좋을까?

    “신우가 너 잘있느냐고 물어보드라.”

    “......걔는 잘 있대?”

    “응. 대학은 이쪽에서 다닐 모양이던데. 아마도 Y대라는 것 같더라?”

    나는 재수하고 있다.

    왠지 모를 열등감에 잠깐 목 안쪽이 따끔해졌다. 침을 삼켜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면서,  그래도 조금 우울해졌다. 나는 희망하던 학교를 생각하며 열심히 재수하고 있지만, 그 곳은 Y대보다는 낮은 선이다. 그런데 그는 Y대에 아예 입학 예정이 되어있는 것이다.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고 늘 울거나 싸움밖에 안했는데. 십년이란 깊은 골을 지나 만난 사촌은 똑똑해졌다. 쳇, 그녀석은 예전부터 그랬어. 맞아, 똑똑했지. 내가 우는 것에 약하다는 걸 알고, 나랑 싸우면 늘 울면서 매달렸다.

    “공부잘했나보네.”

    스스로가 말하고도 약간 샐쭉한 어조에 놀랐다. 내 빈정거리는 말투를 들은 어머니가 잠시 나를 내려다보다가 손바닥으로 딱-하고 내머리를 쳤다. 그것은 쳤다기보다는 갖다댄것에 가까운 것이었다.

    “어리구나, 김민형. ......넌 아직도 큰아버지를 모르니?”

      올려다 본 어머니의 얼굴에는 약간의 그늘이 있었다.

    “......뭐가?”

    “큰아버지에게 아들대우를 받으려면 신우도 노력해야 한다는 얘기야. 그것이 애정인지 아닌지는 둘째쳐놓고, 큰아버지와 둘이 미국에 갔어.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 자신을 쳐다도 보지 않는 사람과.”

    큰아버지를 본 적이 있다. 신우를 내려다보는 장신의 남자- 나의 큰아버지는 차갑게 물었다.

    -얘던가?

    자신의 아이를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것이다. 나하고는 달리 무척이나 예쁘게 생긴 신우였는데도. 나는 그냥 평범하게 생긴 아이였다. 하지만 신우는 남달랐다. 동네 사진관에서 신우가 나온 사진을 대문짝만하게 확대해 쇼윈도에 걸어놓았을 정도로 예뻤다. 하지만 큰 아버지는 턱짓으로 마음에 안든다는 듯 물었었다.

    그런 사람과 단 둘이 말도 통하지 않는 곳으로......

    오싹했다.

    “오면 잘해줘라. 니 누나처럼 인정머리없이 굴지 말고. .....나는, 예전에 줄리에뜨가 지나치다고 생각했었어.”

    줄리에뜨. 신우의 어머니이자 나의 큰어머니. -지금은 큰아버지와 이혼하셨지만.

    “하지만, 이제는 니 큰아버지나 줄리에뜨나 똑같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해. 과연, 끼리끼리 눈맞았다고-말이지.”

    어머니는 늘 책도 많이 읽고 똑똑하신 분이다. 그래서 어머니의 말이라면 늘 믿고사는  -여자가 약하다는 그 말 빼고-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신우는 좋은 애야.”

    잘해주겠다고 다짐하듯 고개를 세게 끄덕여보이자 어머니가 “착하네.”라며 웃었다.

    신년회.

    망년회와 겸하는 이 신년회는 우리집안의 모임이다. 재벌인 할아버지, 후계자인 큰아버지, 회사중역이시라는 작은아버지, 그리고 전혀 상관없이 학교선생님이신 우리 아버지. 그들의 식구들. 특히 십년만에 돌아오신 큰아버지를 위해 어머니와 작은 어머니는 분주했다. 여자들은 힘든데, 남자들은 즐거히 사담중이다.

    “저게 즐거워보이냐?”

    기가 막힌 듯이 셋째형이 눈살을 찌푸렸다.

    “아버진 거의 도망가고 싶어하는 얼굴이신데?”

    넷째형도 어머니의 등쌀에 못이겨 음식을 나르면서 예리하게 지적했다.

    “누구라도 싫을꺼야, 작은아버지와 할아버지 사이에 있는건. 게다가 큰아버지까지 꼈으니 죽이지.”

    “......나도 싫어, 우리아버지랑 얘기하는 건.”

    작은아버지의 아들이자, 자신의 아버지를 공공연히 미워하는 진오가 눈살을 찌푸리며 속삭였다. 

    “으아아......아버지 자기 회사 자랑중이네.”

    다과를 가져갔던 진희, 즉 진오의 여동생이 닭살돋는다는 제스츄어를 펼치며 부르르 떨었다. 진희와 진오는 자신의 아버지를 정말 싫어한다. 작은 아버지는 욕심이 많은 분이라, 자식들에게도 많은 강요를 하셨다. 진오는 반항적이어서 좀 나았지만(작은 아버지가 금새 포기하셨으므로), 진희는 공부도 무척이나 잘해서 중학교 1학년때 학원은 고등학교 3학년반을 다닐정도였다. 작은아버지의 기대는 급상승했고, 그것이 진희를 힘들게 했다. 진희는 중학교 3학년때 수업중에 발광했다.

    자신의 머리를 커터칼로 자르면서.

    그렇게, 작은 아버지의 자식에 대한 욕심은 끝이 났다. 아니, 사실은 끝이 나지 않았는데, 작은 아버지와 정략결혼하신-우리 어머니와 무지하게 비슷한 타입의 작은 어머니가 작은 아버지에게 경고했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병실에서 그걸 들을 수 있었는데 작은 어머니는 나직하게 한마디 하셨다고 한다.

    [네가 그만둘래, 내가 널 죽일까.]

    ......과연, 작은 어머니다웠다.

    진오, 진희, 작은어머니 - 세사람은 똘똘뭉쳐서 작은아버지를 싫어한다. 그러고도 같이 산다는건 꽤나 고역인 일일것이다.

    “근데 신우는 왜 아직이지?”

    진오의 무심한 한마디에 우리집 형들은 모두 얼굴이 굳었다. 어지간히 신우를 싫어했던 모양이다. 십년이면 그만 싫어할 법도 되었는데.

    “신우오빠는 잠깐 서점들렸다 온대. 나 봤어! 아침에 오빠들 오기전에 먼저 인사드리러 왔었거든.”

    “......여전히 개싸가지든?”

    셋째형이 왠지 신우에게 높은 점수를 주고 있는 듯한 진희에게 차갑게 물었다.

    “민성오빤, 개싸가지가 뭐야아- 무지 멋져. 연예인 같드라구~”

    “걔가 잘생긴건 당연한거야.”

    진오도 진희의 그 호감어린 표정이 마음에 안드는지 흥, 하고 콧소리를 냈다.

    “혼혈이니까.”

    셋째형, 넷째형, 진오는 동시에 그렇게 말했다. 시간차공격이라도 하는 것처럼 그 순간 차임벨이 울렸다. 어머니가 튀김을 하시다 말고 나가려는 걸, 잡채를 무치던 작은 어머니가 제지하고 종종걸음으로 가서 인터폰을 든다. 

    그 순간, 신우일거라고 생각한 것은 나만이 아닌지 우리의 대화를 가만히 듣기만 하던 둘째형이 얼굴을 일그러트리면서 “이층으로 올라갈 사람?”라고 물어왔다.

    나와 진희를 뺀 전원이 “나!”라고 소리치고 대규모 형제단(;)은 이층으로 올라가버렸다. 작은 어머니와 어머니의 사나운 눈초리도 아랑곳하지 않고. 

    가는 길에 셋째형이 당장 올라오라고 손짓하며 험악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그것도 잠깐, 막내까지 꼬드기지 말라는 어머니의 엄포에 꼬리를 말고 사라졌다.

    “엄마하고 약속했지?”

    잘해주자.

    불쌍한 아이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다짐시킬무렵, 현관문이 열렸다. 작은어머니가 상냥하게 “서점을 찾는건 어렵지 않았어?”라고 묻는 것을 보면서, 나와 우리 어머니는 얼이 빠진 표정으로 위를 올려다보았다.

    컸다 - 지나치게.

    어머니가 모델지망 프랑스인이었다지만 이렇게 커도 되나?

    네가 무슨 농구선수냐? 얼굴은 정말 연예인처럼 생겼지만 어릴때가 더 예뻤다. 잘생긴 남자. - 그 이상의 감정이 드는 얼굴은 아니었다. 

    나는 어머니를 다시 쳐다보았다. 우리 어머니눈에는 불썅해보이나 싶어서. 그는 자신만만한 느낌이었고, 게다가 무표정했다. 전혀 불쌍해보이지 않았다. 아니, 큰아버지를 판에 찍은 듯한 아들이었다. 큰어머니를 닮은 것은 너무나 옅어서 금색을 띈 것 같은 갈색눈 정도일까.

    혼혈로도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는 내 시선을 느끼고 ‘보기와는 달리 불쌍한 애라니깐!’이라는 시선을 주었지만, 난 실감나지 않았다. 그는 작은 어머니에게 허리를 꾸벅이고 들어가려다가 나를 바라보고 멈췄다.

    한동안 우리는 시선을 맞대고 그렇게 서 있었다.

    “......민형이?”

    그가 확신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물었다. 난 보자마자 너인줄 알겠더구만. 약간 서운한 감정과 정말 십년이 흘렀다는 감개무량한 마음속에서 갈팡질팡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끄덕이자마자 그가 나를 위아래로 살짝 훑어보더니 무심하게 나를 스쳐가버린다. .......가버렸다. 나는 최소한 잘지냈어,정도는 말할 줄 알았다.

    아아, 나는 거짓말쟁이다. 나는 당연히 그가 [보고싶었어.]라고 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냥 들어가버린다........벙쪄서 뭘 잘해주라는 거냐는 항의를 보내기위해 어머니를 바라보았는데 어머니의 눈이 말하고 있었다.

    ‘따라가지 않고 뭐해?’

    아니, 내가 쟬 왜 따라가요?

    내가 뭐가 아쉬워서!

    결국은 그가 들어간 일층의 작은방으로 노크하면서 한숨을 쉬었다. 안에서 “네.”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 민형이. 잠깐......들어가도 되?”

    “어.”

    왜 이렇게까지 정중해야하는 걸까? 스스로가 낯설게 느껴졌지만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문을 여는데 안이 컴컴했다. 이 방은 앞에 나무가 있어서 낮에도 어둡다. 이런방에서 불도 켜지 않고 뭘 하고 있었던 걸까. 잠깐 둘러보는데 그가 없었다.

    .......분명 소리가 들렸었는데?

    의아해진 그 순간 갑자기 시야가 휙 돌았다. 뭐야- 아무것도 보지 못한 상태에서 나는 신우에게 끌어안겨 있었다. 농구선수같이 큰 몸, 단단한 품속에 나를 넣어둔채로 신우가 조금 몸을 떨었다.

    “오랫만이야.”

    신우의 몸만 떨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신우는 목소리도 떨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을뿐더러 불편하고 조금 무서워졌다. 신우가 미친 사람같이 느껴졌다. 십년만에 만난 사촌을 방문옆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바로 끌어안는다는게 정상인가?

    그러나 놓으라고 바로 말할 수 없었던 것은 신우가 지나치게 떨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게, 정말 오랜만이네.”

    안긴채로, 어색하게 나는 그의 말을 반복했다.

    “잘 지냈어?”

    “너는?”

    우리가 로미오와 쥴리엣이냐.

    좀 놓지......라고는 도저히 말 못하겠다. 이 열정적인 반응에 아연해진 상태로, 세게 끌어안겨 어딘가는 좀 아프고 호흡이 불안정했지만, 나는 가능한한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려 노력했다.

    “잘 지냈지.”

    그 대답을 하고, 신우의 대답을 기다렸지만 신우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한참동안 그렇게 아무말도 없이 우리는 조용히 있었다. 방문밖에 들리는 어머니의 목소리나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나를 두렵게 했다. 왠지 이러면 안될 것 같은데, 이 품에서 빠져나와야 할 것 같은데.

    신우가 너무 강하게 잡고 있어서.......나는 안겨있을 수 밖에 없었다.

    한참만에, 신우가 내 어깨를 잡아 나를 조금 떨어뜨려 내 눈을 들여다보았다.

    “......나는 하나도 잘 지내지 못했어. 편지 왜 안했어?”

    아아, 그렇다.

    그가 가기전에 나는 편지한다고 약속했다. 정말이야, 정말이야, 하고 몇 번이나 되물어보고 약속을 요구하는 그에게 지쳐하면서도 반드시 하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편지지를 사서 편지를 썼지만 처음에는 글씨가 마음에 안 들고 다음에는 쓸 말이 없고 그러더니 귀찮아져 버려서 결국 쓰지 않았다.

    “......할말이 없어서.”

    “뭘 하는지, 학교에서 무슨일이 있었는지, 시험은 잘 봤는지, 그런 이야기라도 쓰면 되잖아.”

    그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의 말에는 ‘편지를 무척 기다렸다’라는 마음이 포함되있어서 나는 왠지 내가 그를 괴롭히기라도 한 것 같은 죄책감이 들었다.

    “......미안.”

    내 말에 그가 웃는다. 여리여리해보이는 약한 웃음이었다.

    “괜찮아, 다시 만났으니까. 학교......어디갈꺼야? 원래는 이거말고 다른걸 물어보려 했지만, 이게 좀 급해서........”

    왜 급해?

    내 학교가 어딘지와 자기가 뭐가 급하다는 건가. 그는 분명 Y대라고 했다. 이제와서 뭐가 급하다는거지? 그는 유명대학에 가는데 나는 재수를 한다. - 그 열등감을 비겁하게 생각하면서 가능한한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려고 애썼지만 목소리가 조금 떨려나왔다.

    “재수할거야.”

    “재수?”

    그러더니 그가 잠깐 얼굴을 찌푸린다. 뭐야, 저렇게 노골적으로 굴건 없잖아! 열등감에 젖어있는 마음이 불타오르는 듯, 얼굴이 뜨거워졌다.

    “재수대라는건가?”

    열 살에 미국으로 간 그는 한국어를 잘 하지만 ‘재수’라는 단어는 잘 이해하지 못하는 듯 하다. 재수대라는 학교가 있는 것으로 생각한건지 그렇제 물어왔다.

    재수가 뭔지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하자 더더욱 목소리가 잠긴다. 내가 왜 이런것까지 설명해야하지? 마음이 답답한데도 그가 눈짓으로 재촉하자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어야만 했다.

    “다시 시험을 보겠다는거야. 원하는 것은 G대지만......떨어졌거든.”

    “아. 그럼 결국 G대를 가겠다는 말이네? OK, I got it."

    뭐, 뭐라고? 방금 영어로 뭐라 씨부렁거린거냐? ......창피하지만 나는 특히 영어에 약하다.;

    “나도 거기 갈래. .....저녁에 할아버지가 물어볼테니까 그 전에는 너한테 물어보려 했는데, 어떻게 물어봐야 할지 난감했었거든......근데 네가 와줘서 정말 다행이다.”

    .......너 방금 뭐라 했냐?

    Y대를 두고 나를 따라 재수하겠다는 말이냐? 설마......아니지?

    “나도 너랑 같이 재수할래. 음......학원다녀? 그럼 같이 다니자.”

    맑고 맑게 웃는 신우녀석을 올려다보며 뒷골이 징하고 울리는 것을 느꼈다. .......그래, 이런 녀석이었다. 변함이 없구나, 너는.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너는 강산보다 끈질긴거냐?

    아까의 그 무표정하던 얼굴은 어디에도 없다. 애같은 미소, 그런 얼굴. 어릴 때의 그 예쁘장하게 웃던 그런 얼굴은 아니지만 아직도 나를 신봉하는 듯한 녀석의 표정에 소름이 끼쳤다.

    나는 그 때의 어린애가 아니다.

    십년이나 만나지 못했는데, 이런 집요함이라니.

    불쾌함이 갑자기 증가해서, 나는 그를 확 떠밀었다.

    “엇......!”

    하고도 그는 가까운 벽을 짚어서 자신의 몸을 지탱해냈다.

    “왜 그래......?”

    그러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다가온다. 문득 호러영화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트루먼쇼의 장면도 생각났다. 광기어린 눈동자로 친절히 웃으며 다가오는 그에게 많은 것들이 겹쳐졌다.

    “형!!!!!!!”

    내가 왜 그랬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나는 누구라고 할 것 없이 형을 부르며 뛰쳐나왔다. 뒤에서 신우가 쫓아오든지 말든지, 나는 어머니의 아연한 표정을 아랑곳하지 않고 이층으로 뛰어올라가면서 계속 형을 외쳤다. 누나도 형들도 방에서 뛰어나와 나를 바라보았고 누나가 나를 끌어안아주었다. 누나의 익숙하고 부드러운 품속에서도 나는 계속 헉헉거렸다.

    .....미친 사람의 눈동자.

    그 광기어린 눈동자가 반짝인다.......

    “누나, 누나........”

    내가 계속 누나를 부르는 것을 듣는지 듣지 못하는지, 누나는 계속 나를 토닥여주었다. 옆에서 형들의 말이 귓가를 친다.

    “씨발, 이럴 줄 알았어.”

    “어머니는 그때 그거 모르시지?”

    “알리 있냐. 신우, 그 개새끼가 변할 리가 있냐.”

    바로 욕설을 뱉는 형들사이에서 진오도 모를 소리를 한다.

    “......그래도 십년인데, 그대로라니......”

    “십년이 뭐냐. 그 새끼는 평생 그럴새끼야. 누나, 민형이 괜찮아?”

    누나가 “괜찮아.”라면서 내 눈을 바라보았다.

    “괜찮지, 그렇지? 민형아.”

    형들도 누나도 무슨말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우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민형아, 신우새끼 근처에도 가지 마라.”

    “신우랑 무슨 일 있었어?”

    “야, 설마 그 개자식이 너한테 또.......”

    다들 시끄러웠다. 뭐가 또라는 건가? 신우랑 내가 무슨일이 있었지? 천천히 뚜벅뚜벅 올라오는 걸음소리에 다시 소름이 올라온다. 삐걱거리는 나무계단소리가 무섭다.

    “......민형아.”

    저 낮은 목소리가 무섭다.

    “누나!”

    내가 소리지르며 다시 누나품으로 파고들자, 누나가 꽉 안아준다. 저쪽 상황은 귀로밖에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아까의 신우처럼, 아니 아까의 신우보다 더 나는 몸을 떨고 있었다.

    “이신우. 그만둬, 민형이를 괴롭히지 마라.”

    이것은 첫째형의 목소리. 차갑게 얼어붙은 그 목소리 뒤로 열기를 띈 목소리가 이어진다.

    “민형이는 그때 일을 기억하지 못해. 하지만 우리는 기억해. ......너는 정말 변하지 않는구나. 반성이라는 단어를 알고있다면, 다시는 민형이 곁에 나타나지 마.”

    그 말에 쿡, 하는 웃음소리가 이층의 공기를 긁었다.

    “......웃기지마세요, 형들. 형들도 그때와 전혀 변함이 없군요. 저는 반성도 후회도 하지 않아요.”

    “내려가, 이신우!”

    둘째형의 명령조에도 신우는 태연자약한 소리만을 낸다.

    “들어야할 이유는 없겠죠. ......민형아.”

    신우의 부름에 피가 얼어붙는 것 같았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없었다. 목소리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 누나가 힘을 주어 끌어안았지만, 아까 신우의 그 거센 안음과는 비교할 수 없을정도로 약했다. 신우는 나를 끌어안았다. 꽉- 힘을 준 그것은 너무나도 셌다.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뭘 무서워하는 것인지조차 모르는체로 나는 무서워하고 있었다.

    “오랫만이야. 보고싶었어. 정말......늘......네가.......”

    그렇게 말하던 신우에게 차마 달려들 수 없었던 형들이 그를 노려보고 있다는 것을 보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닥쳐.”

    넷째형의 소리죽인 협박에도 그는 느긋하게 말을 이었다.

    “민형아, 이리 와.” 

    “싫어!”

    나도 모르게 거부했다. 내 날카로운 소리가 이층을 흔들고, 아까 내 반응에 놀라 어머니가 올라오다가 멈추신 듯 하다.

    “엄마......”

    셋째형이 그렇게 말하는 것으로 봐서는, 그런 것 같다.

    “왜, 큰집에서 소란들이니? ......민주야, 민형이 왜그래?”

    “엄마, 별거 아냐. 내려가요, 민형이 잠깐 신우를 오랜만에 만나서 그런가봐.”

    “별게 아니라니! 얘 얼굴이 왜 저렇게 하얘?!”

    엄마의 목소리가 가장 나를 안도하게 했다. 잠깐 그 쪽을 보자 계단에서 올라온 어머니가 내 근처에 서서 신우에게 어떻게 된거냐는 얼굴을 하고 있다.

    “......작은 어머니, 오랜만이에요. 열 살 때 , 민형이 그거...... 제 짓이에요.”

    순간 어머니의 안색이 파리해졌다. 그 순간 넷째형이 참지 못하고 신우에게 달려들었다. 둘은 잠깐 엎치락 뒷치락했지만 신우의 승리였다. 유단자인 형을 간단히 깔아눕히고 두들겨패기 시작한다. 볼 수가 없어서 내가 달려들었다. 형을 때리려는 주먹이 내 턱에 부딪쳤다.

    “민형아!!”

    신우가 놀래서 나를 붙잡는다. 그리고 턱의 여기저기를 살펴보는 걸 내가 억지로 떼내었다. 그 손길이 싫었다. 아픔에 어쩔 수 없는 눈물이 맺힌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면서 내가 소리쳤다.

    “우리 형 때리지 마!”

    “그럼, 다른 사람에게 안겨있지 마!”

    신우도 같이 소리질렀다.

    그 험악한 고함에 놀라 다시 몸이 움찔거렸다.

    우리가 서로를 노려보는 것이 끝난 건, 작은 어머니가 올라와서 ‘할아버지가 시끄럽다고 하신다’며 주의하라고 모두를 일깨웠기 때문이었다. 할아버지에게 밉상보여서 좋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완고한 지배자인 할아버지를 들먹인 말은 효과가 컸다.

    “......십년전.......그 일이 너라고?”

    어머니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으시는걸 나는 신우의 바로 앞에서 들었다. 고개를 돌리자 어머니가 차갑게 말했다.

    “민형이, 이리 와.”

    가지 못한 것은 신우가 뒤에서 잡았기 때문이었다.

    “......이민형, 보고싶었어.”

    모두의 주목속에서, 모두의 반발을 태연히 넘기면서 신우가 나를 살펴보듯 이리저리 보면서 말했다.

    “너는 나를 잊었겠지. 내가 보고싶지 않았겠지, 나도 알아. 하지만 나는.”

    거기서 끊고 신우가 내 턱을 어루만졌다. 멍이 든걸까? 신우의 손이 닿자, 약간의 통증을 느꼈다. 통증은 어쩌면신우의 손에서 비롯된것일지도 모른다.

    “한번도 잊지 않았어.”

    눈을 떼지 못한것은......신우가 정말로 미친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셋째형이 힘으로 나를 끌어 어머니근처까지 데려다놓을 때도, 신우와 나는 서로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신우야. 내려가보는거 어떠니?”

    나는 기억나지 않는 십년전 일을, 작은어머니도 알고 계신지 얼굴이 딱딱하시다. 신우는 자신을 쳐다보는 사람들을 휙 둘러보더니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나 그 뿐으로, 눈은 전혀 웃지 않았다.

    “정말......여전들 하시군요.”

    그 말투는 조금 아련했지만, 지긋지긋하다는 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들도, 누나도, 어머니도, 작은 어머니나 진오조차도, 전부 신우를 노려보고 있었다.

    신우가 누군가를 해치기라고 할 것 처럼.

    ......만약 그렇다면, 그 누군가는 분명 나라는 듯이.

    “See you next time."

    저건 영어를 아무리 못하는 나라지만 알아들을 수 있었다.

    모두에게 화를 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여하간 모두를 싫어하고 있는 (그리고 그 모두가 싫어하는) 신우가 나를 향해 다정히 웃었다.

    또 보자.

    신우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내려가는 신우의 뒷모습을 노려보던 어머니가 천천히 내게로 걸어와 나를 끌어안으셨다. 어머니의 손에는 음식을 하시던 중인지 뭔가가 묻어있고,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났다.

    “......신우는 불쌍한 애야. 그러니 절대로 적대감을 가지지 말거라.”

    어머니의 첫마디에 모두가 반발했다.

    “엄마!”

    “......지금 무슨 말씀하시는거에요?”

    “말도 안돼!”

    “큰 엄마!”

    “시끄러!”

    어머니가 모두를 주의시키고, 내 눈동자를 번갈아 바라보시며 약속하라고 재촉하시는 것을, 나는 멍한 기분으로 듣고 있었다.

    “이 엄마와 약속하렴, 절대로 신우와 가까이하지 않겠다고.”

    “......형님.......”

    작은 어머니가 그런 어머니 뒤에서 신음처럼, 어머니를 불렀다. 어머니가 시선으로 한번 더 재촉하는 걸 느끼고 나서야 나는 고개를 조금 끄덕여보였다.

    “내려가지, 할 일이 많은데......”

    작은 어머니를 재촉하는 어머니의 안색은 하얗게 질려있었다. 그 두분도 내려가자 누나도 형들도 시끄러웠다.

    “야, 불쌍하기는 개뿔. 신우새끼랑 아는체도 말아라.”

    “눈도 마주치지 마.”

    “아, 씨발. 민형이 지금 집에가면 안되는거야?”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마. 할아버지가 잘도 내버려두시겠다.”

    “정말 씨발이다.”

    다들 시끄러운 가운데서, 나는 영문을 몰라 - 내가 왜 신우에게 이정도의 공포심을 느끼는지, 그리고 십년전일이  뭔지 - 입을 열었다.

    “......십년전 일이 뭐야?”

    대답은 커녕,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바쁘다며 들어가버리는 희귀한 체험을 하면서, 약이 올랐을 뿐이지만. 

    홀로 남아 심심하기도 하고, 신우와 마주볼 용기는 더더욱 없고, 일층으로 내려가봐야 갈 수 있는 곳이라고는 신우가 있는 작은 방 뿐이고해서, 나는 내려가서 어머니에게 나갔다 오겠다고 말했다.

    “어딜?”

    평소의 어머니다. 일하시면서 살짝 시선을 주시고, 다시 일에 몰두하신다.

    “그냥......오락실이나......”

    네 나이가 몇인데 오락실이니! - 라고 핀잔 한마디를 각오했던 나는 어머니가 아무렇지도 않게 “그러렴.”이라고 하는 것에 놀랐다.

    하지만 어머니는 왠지 내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아 하시는 것 같았다. 아까 놀라신 여운때문일것이다. 뭔지는 몰라도, 신우가 총명하고 예의바르고 착한 아이에서, 다른 의미로 어머니에게 남았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신우가 무서웠던 것은 그가 미친사람같은 눈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십년전 일이 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 일이 나에게 얼마만한 데미지를 입혔는지 또한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저 분명한 것은, 신우가 웃으면서 다가오던 그 때 나는 분명 공포심을 느꼈고, 나를 구해줄 누군가에게 달려가야 한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했을 뿐이었다는 것이다.

    다시 생각해봐도 왜 잘생긴 사촌이 무서웠는지 잘 모르겠다.

    탁.

    뒤에서 누군가 치는 바람에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농구선수처럼 키가 껑중한 사촌이 시원스레 웃고 있었다. 본가에서 오락실로 가는 골목길에 왜 신우가 서 있는지 영문을 몰라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리며 생각하고 있는데 “나왔어.”라고, 독심술이라도 하는 듯 그가 대답해줬다.

    “그러니까, 어디로?”

    신우가 가르킨 곳은 담이었다. .......담을 넘었다고?

    “왜?”

    “너가 나가길래.”

    “내가 나가는 거랑 너랑 무슨상관인데?”

    아마도, 누나와 형 그리고 어머니의 그 만류와 진오의 믿을 수 없다는 목소리가 귓가를 울린 탓이었을 것이다. 나는 차갑게 말로서 그를 밀쳐냈다. 내가 아까 몸으로 밀쳐낸것과 똑같이 넘어지지 않는 신우가 웃었다.

    “오락실도 가고 싶고.”

    엿들은 거다........

    작은 방에서 엿듣고 내가 나오는 타이밍에 맞추어서 몰래 나온것이다. 나를 보려고. 포획된 사냥감이 되버린 심정인지, 끈질긴 구애자에게 느끼는 우월감인지, 알 수 없는 심정으로 나는 신우를 다시한번 떨구고 집에 돌아가야 할지 같이 오락실에 가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런 나를 내 마음만큼이나 알 수 없는 눈으로 내려다보면서 시종일관 신우는 따듯하게 웃고있었다.

    “......어떻게 할래?”

    내가 뭘 고민하는지 안다는 투다.

    “오락실 가고 싶어?”

    “어.”

    “정말?”

    “어.”

    단호한 대답과는 달리 표정은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부드러웠다.

    “......내가 이대로 집에 돌아가도?”

    거기에 잠시, 신우의 웃음이 멈췄다. 그러게 왜 얍삽한 수를 쓰고 그러냐고.

    “......아니. 너랑 가고 싶어.”

    눈에 뻔히 보이는 거짓말은 하지말라고 할려는 순간, 신우가 돌연 진지하게 나와서 당황했다. 사랑고백을 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저 담담한 어투에 숨어있는 열렬함 때문이리라. 

    어머니도 형도 누나도, 모두가 만류하는 이 사촌의 열렬함에 조금 기뻐졌다. 마음 속 한구석에 찝찝한 감정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오락좋아해?”

    잠깐 침묵하던 신우가 난감하다는 듯 웃었다.

    “해본적이 없어.”

    “해볼래?”

    “너가 한다면.”

    어릴때도 이랬었다. 자기 주장 따위는 없다는 듯이 내가 하는 걸 하고 내가 가는 곳을 갔다. 그의 주장은 일관되게 ‘나’ 하나만이었다.

    십년동안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 무섭고도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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