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oraTio-88화 (88/133)
  • 0088 / 0133 ----------------------------------------------

    7. 나는 사장입니다

    그대로 식당에 있을 기분이 아니라, 나는 장소를 옮겼다. 마리는 지금쯤 아버지에게 전달 사항을 듣고 있을 테고, 나는 기다리면 된다.

    누구를? 바보같은 형을.

    아까까지만 해도 꽤나 나는 무덤덤하게 있었으나, 시간이 흘러가면서 슬슬 뇌가 깨어나기 시작하자 짜증이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괜히 죄 없는 날개 형제한테 화풀이 하는 중이였던 것이다.

    「워워 마이렌, 진정해.」

    날개 형제 중 동생인 로이스가 내가 아까 바닥에 내팽겨쳤던 종이봉지를 주워들어서, 주름이 생긴것을 손으로 피면서 지우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날개 형제도 내가 진짜 사장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 않은 아이들이였다. 이 형제는 본인들 스스로 '상담사'같은 것을 자처하고 있는 모양이라, 나도 가끔씩 이렇게 형이 회사에 온 날에는 찾아가서 상담을 하곤 한다.

    .. 아니, 정정한다. 상담은 개뿔 그저 화풀이.

    나는 형제가 쓰는 방의 거실에 있는, 검은 벨벳 소파에 드러누워서 팔로 눈을 가리고 있던 참이였다. 그저 그렇게 민폐를 끼치고만 있는데, 뭔가 향긋한 향이 풍겨온다.

    이 향은..

    「그래요, 화내면 몸에도 안좋아요.」

    「.. 라벤더인가.」

    「네, 들어요.」

    팔을 옆으로 치워버리고, 고개를 돌려서 바라보니 그곳에는 테이블에 차를 내오고는 싱긋 웃고 있는 날개 형제 중 형인 루이스가 있었다.

    나는 그제서야 몸을 일으켜서 제대로 소파에 앉은 자세를 취한다. 그러자 로이스가 방정맞게 달려오더니 나의 옆에 큰 소리를 내면서 앉는다. 그러고는 팔로 내 어깨를 감싸 자기쪽으로 끌어 당긴다.

    「...」

    그런 로이스를 살짝 째려보니 로이스는 뭐가 그리 재밌는지 나의 뺨을 쿡쿡 손가락으로 찌르면서, 발랄하게 말한다.

    「워워, 그렇게 무서운 표정 하지 말라니깐~」

    나는 그런 로이스를 그냥 무시하는 방법을 취한다. 루이스가 이쪽으로 다가오더니, 테이블에 놓여있던 차를 들고 일부로 내 손에 쥐어준다.

    「이 방에 왔다는 것은 화를 풀고 싶다는 거잖아요? 천천히 기분 풀도록 해요. 이야기라면 얼마든지 들어줄 거니까요.」

    「딱히 화난거 아니지만.」

    나는 퉁명스럽게 말하면서 루이스가 애써 쥐어준, 컵을 입에 갖다댄다. 그리고 한모금 마신다.

    「...」

    내가 아무말 없자, 루이스가 로이스와는 반대쪽에 앉으면서 묻는다.

    「어때요?」

    「뜨거.」

    「차가 뜨거운 건 당연하잖아요?」

    뭐, 그건 맞는 말이긴 하지만. 나는 고개를 숙였다.

    「뜨거운 거 잘 못먹는건 여전하네요, 고양이같아.」

    「험담이야?」

    「설마요, 내가 마이렌을 험담할리가 없잖아요?」

    그래도, 고양이 같다는 말이 딱히 나에게는 좋게 들리진 않는다. 일단 컵은 다시 테이블 위에 올려둔다. 그러자 형제들은 더 나에게 바싹 붙어온다.

    「그래서, 마이렌이 여기 왔다는 건 폴씨가 왔다는 말이지?」

    「그렇다면 전 사장님도 오셨다는 말인가요?」

    나는 조금 감정을 가라앉히고, 형제들의 질문에 답한다.

    「형은 아마 금방 도착할거야. 아버지는 들리시기는 하는데, 아마 회사에 머무르시지는 않을 것 같고.」

    로이스가 살짝 소리내어 웃는다.

    「도대체 전 사장님께서는 언제까지 이러실 생각이지?」

    그러자 루이스가 로이스의 말에 동조하듯 덧붙인다.

    「그러게 말이야, 이렇게 된다면 마이렌만 힘들 뿐이고...그렇죠?」

    로이스와 말을 주고받다가 루이스는 말을 덧붙이며 나를 보고 고개를 갸웃하고 기울였다. 나는 잠자코 있었다. 어라?

    나, 방금까지 왜 그렇게 화났던 거지. 또다시 감정은 놀랄 정도로 차분해져 있었다. 그래, 이건 내가 할 일이니까.. 그때 아버지의 말에 '네'라고 대답했던 것은 나였다. 물론 반 강제적인 일이긴 했지만, 그래도 나는 그때도 별 불만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라라? 뭔가 감정들이 꼬여가는 것만 같은 기분에 나는 표정을 찡그렸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본다면 이런 부당한 대우에는 화를 내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 같다. 그런데도 나는 그때 화내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일이 당연한 일이라는 듯 고개를 숙이고, 입술을 깨물으며, 조금은 암담한 기분으로 받아들였다.

    아, 이제서야 살짝 알게 된 것 같다.

    나는 지금 이 상황에 화난 것이 아니라, 나에게 화가 난 것이구나.

    「.. 마이렌?」

    내가 오랫동안 고개를 숙이고 대답이 없자, 루이스가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고개를 들고 말했다.

    「아니, 난 괜찮아. 내 일이라고 생각해.」

    그러자 로이스가 질린 얼굴로 소파에 등을 기대면서 말한다.

    「에에~ 또 이런다, 마이렌은 자꾸 말을 휙휙 바꿔서 문제라니까.. 어느쪽인지 확실히 해주지 않을래?」

    아마도, 나는 살짝 발끈했는지 조금 하이톤의 목소리로 대꾸했다.

    「어쩔 수 없는 걸, 나도 어느쪽인지 잘 모르겠으니까..」

    「그 말은?」

    「..이 일이 부당하다는 것은 알고 있어, 하지만 내가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니까.. 내가 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어..?」

    내가 생각해도 꽤나 앞뒤가 들어맞지 않는 말이다. 형제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의아한 얼굴로 눈만 깜빡이고 있을 뿐이였다. 그러다가 먼저 입을 연 것은 루이스였다.

    「애초에 말이야...」

    어느새 루이스도 로이스도 편한자세로 소파에 기대고 있었다. 테이블에 놓인 라벤더 차에서 향과 함께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나는 루이스가 뜸을 들이자, 빨리 말하라는 듯 그를 빤히 바라본다.

    「그거, 정말로 마이렌만이 가능한 일이야?」

    그 순간 나는 누군가가 내 머리 뒷쪽을 거대한 망치로 후드려 팬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약 2초간, 루이스의 말 뜻을 받아들이지를 못해서 나는 멍하게 앉아 있었다.

    그리고 3초가 되는 순간, 내 입에서는 내가 의도하지 않은 얼빠진 소리가 흘러나왔다.

    「에?」

    로이스가 몸을 앞으로 내빼서 루이스와 대화하기 시작한다.

    「그게 무슨 말이야 형?」

    「아니, 예전부터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 폴씨의 대리를 할 수 있는게 정말로 마이렌 뿐인가 하고.. 」

    로이스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그거야 마이렌이 폴씨의 배가 다른 형제니까...」

    로이스는 그렇게 말하다가, 어째서인지 말 끝을 흐렸다. 로이스의 눈동자는 흔들리고 있었다. 루이스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나와 로이스를 번갈아 쳐다보며 말했다.

    「그렇지? 대리를 맡기는 것이라면 굳이 그렇게 피가 이어져 있지 않아도 상관없는 거 아니야? 물론 마이렌이 워낙 똑똑한 그런 것도 있겠지만, 폴씨의 대리를 맡을 수 있는 사람은 꽤나.. 많을 거라고 생각해?」

    점점 루이스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알것만 같다. 동요하지마, 혼란스러워 하지마. 천천히 생각해. 머리를 굴려서 루이스가 하는 말을 진지하게 검토해.

    「내가 알고 있기에는 전 사장님께서는 마이렌을 회사로 데려오셨던 목적이 그저 실험대상자들에게 신뢰를 주기 위해, 마이렌을 이용했던 거라고 들었어. 마이렌에게는 조금 실례되는 표현이겠지만, 마치.. 한번 사용하고 버리는 일회용품 같은...」

    살짝 앉은 자세가 불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루이스의 말은 사실이라, 이쪽에서 부인하고 싶어도 부인할 수가 없다. 애초에 본인이 가장 그렇게 느꼈었으니까.

    루이스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우연적으로 생겼던, 마이렌의 능력이 정말로 상상을 뛰어넘을 대단한 능력이였지만 그게 사장이라는 일과 연관되어있는 능력은 아니였어. 물론 권력은 물론이고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 능력이지만, 전 사장님이라면 마이렌을 다른 쪽으로 이용했지 폴씨의 대리로 삼을 이유로는..」

    왜 하필 나였을까.

    「..오히려 대리를 다른 사람으로 삼고, 마이렌을 뭔가 뒤에서 움직이는 것이 더 효율적이잖아? .. 어째서 전 사장님은..」

    왜 나는 태어났을까.

    「루이스.」

    「아, 미안.. 나 너무 주절주절 떠들었나봐요. 미안해요, 마이렌..」

    루이스는 놀라더니 자신의 입을 손으로 가렸다. 나는 루이스를 바라보았다. 나는 내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루이스는 내 표정을 보고 살짝 놀란 것도 같았다.

    「고마워, 너의 말을 듣고 확실하게 결론을 지을 수가 있게 되었어.」

    「네?」

    루이스가 놀란 눈빛을 한다.

    「아버지가 왜 날 대리로 삼았는지, 그 이유는 잘 모르겠어. 하지만 확실한 것은..」

    「확실한 것은?」

    내 말을 다 못기다리고 로이스가 성급하게 물어왔다.

    「아버지는 날 대리로 이용하고, 그게 끝난 다음에도 날 계속 이용할 것이라는 걸.」

    나는 테이블 위의 찻잔을 들었다. 이미 다 식은 차가운 감촉은, 내 손에 전해져 왔다.

    「본보기로 실험을 당할 때, 죽었으면 좋았을걸.」

    ============================ 작품 후기 ============================

    추천과 코멘트, 해주시면 기쁘겠습니다!

    <코멘트 답>

    외로운사신님- 네, 이 에피소드가 끝나면 등장인물들을 정리해 드릴게요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