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Master Smith-26화 (26/202)

Master Smith (26)

“무슨 일이 일어난 모양이군.”

“쿠샨공작님! 선봉대가 전멸했다는 소식이 방금 전 도착했습니다.”

“뭐라? 그들은 다잔에서 최고의 엘리트들만 모아둔 암살부대다! 적들이 무슨 짓을 벌였기에 전멸이란 거냐!”

가죽망토를 두른 중년 남성의 우직한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그의 관자놀이에서 울긋불긋한 힘줄이 솟아오르고 두 눈알에서 가르다란 실핏줄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하자, 옆에 있던 부하가 다급하게 말을 덧붙였다.

“하, 하지만 적들 또한 30명 남짓. 궤멸이나 다름없습니다. 이대로 몇 명만 올려 보낸다면 적들은 전멸이 분명합니다!”

“지금 그게 문제란 말이냐! 중요한 것은 이런 허접한 변두리 지역에서 엠페러 길드가 습격 받은 걸로 모자라서 선봉부대가 궤멸했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만으로 엄청난 명예실추이거늘······!”

그는 온몸을 두른 가죽망토를 집어던졌다.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눈부신 광채와 기이한 오라를 풍기는 갑옷. 과연 엠페러 길드의 공작의 자리에 적합한 방어구였다.

쿠샨이 뽑아 든 거대한 만도는 도신의 길이만 자그마치 1미터50. 바드의 파천도와 견줄만한 크기였다. 무지막지한 도를 한손으로 들어 올려버리는 퍼포먼스 또한 감탄을 내두를 지경이다.

“전군 모두 돌격이다. 약탈품은 최후방으로 옮기고 최소한의 병력만을 남겨두도록!”

“쿠샨님! 어젯밤 통신한 론과 노엘님을 찾았습니다!”

한 병사의 외침에 쿠샨의 얼굴에는 약간의 미소가 그려졌다.

“그 두 사람이 말이지? 내 앞으로 데려와라. 어서!”

론과 노엘은 여유로운 걸음으로 쿠샨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론의 손위에는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휘황찬란한 망치가 들려있었다.

쿠샨은 감탄을 금치 못하며 망치를 내려다보았다.

“오오! 수고했다. 이 망치가 바로······!”

“예. 저희가 그토록 찾던 전설의 무기. 묠니르입니다.”

상당한 마력을 소유한 남색 샤키컷의 마법사. 그의 눈동자에는 기괴한 문양이 그려져 있으며 겉으로 농밀한 마나를 풍기고 있다. 그 옆에 나란히 서있는 소녀는 10살 남짓의 앳된 소녀이다. 보기와는 다르게 천부적인 재능으로 스켈레톤까지 소환이 가능한 실력자다.

“수고했다. 론, 노엘.”

“별 거 아닙니다. 그보다 저희가 파지천금의 행방도 알아냈습니다. 선봉대를 몰살시킨 범인. 그 자가 파지천금으로 만들어진 갑주를 입고 있습니다.”

론의 발언에 노엘이 당황한다.

노엘은 론의 어깨위로 올라가 소곤거렸다.

“그 말······ 계획에는 없었어······.”

“노엘백작님.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이제 저희는 자유라고요. 여기까지 와서 연기할 필요 없습니다. 나머지는 쿠샨공작님이 해결해 주실 테니까요.”

노엘이 깜짝 놀란 얼굴로 말했다.

“그럼······ 바드를 배신하겠다는 소리?”

“당연한 거 아닌가요? 우리 수중에 묠니르가 떡하니 있는데 굳이 그 남자를 도울 필요 없지 않습니까? 몰라도 너무 모르는 군요! 아직 어려서 그런가?”

노엘은 바닐라 단발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떽! 소리쳤다.

“나빠! 나빠! 론 나빠!”

“그 무서운 녀석이랑 있고 싶으면 멋대로 하세요! 하지만 저는 절대로 돌아가지 않을 겁니다!”

쿠샨은 헛기침을 날리며 두 사람의 대화를 끊었다.

“크흠! 아무튼 두 사람의 업적이 크군. 수고했으니 이만 후속부대로 돌아가거라. 보상은 다잔으로 돌아가 추후에 하도록 하겠다. 그리고 파지천금을 가지고 있다는 그 남자······.”

론이 눈치빠르게 대답했다.

“본래 계획대로라면 저 위에 어딘가에서 후속부대를 노리고 있습니다. 놈을 속여놨으니 이쪽에서 대처만 잘하면 역으로 붙잡을 수 있을 겁니다.”

노엘은 절망했다. 론의 간사한 계획대로라면 바드가 위험한 상황에 처하기 때문이다.

“론······ 그러면 안 돼······.”

어린 소녀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론은 비열하게 조소했다. 쿠샨 또한 덩달아 웃었다.

“크하하하! 일이 잘 풀리는군! 전군, 녀석의 습격에 대비한다. 잠시 후 놈이 후방을 공략하면 그대로 덮치는 거다!”

쿠샨의 명령이 병사들에게 또렷이 전달되었다. 병사들은 하나같이 비장한 모습이다. 그들의 행진을 멀리서 지켜보는 바드.

‘계획대로군.’

널찍한 포대자루로 위를 덮어놓은 마차. 그 안에 어떤 물건이 있는지 확인 불가능이지만 그것들이 약탈품이라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론의 졸렬함이 통했을지 모르겠군. 전방에서 차차 무너트려주겠어. 어차피 엠페러 길드는······.’

안 그래도 내 손으로 끝낼 생각이었거든.

방금 전 엠페러의 암살자 부대와 게임을 즐기면서 몇 가지 재밌는 사실을 알아냈다. 바로 전설등급에 이르는 방법이다. 엠페러 길드의 내부자 중에서 그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극히 일부. 하지만 그들이 전설등급의 장비를 제작하지 못한 이유는 단 한가지라더라.

‘전설등급의 아이템을 제작하기 위해선 전설등급의 재료를 사용할 것.’

내 수중에 전설이라는 태그가 붙어있는 아이템은 묠니르 하나뿐이다. 물론 묠니르는 대장장이 전용 망치가 아니거니와 장비제작에 쓸모없는 잠재능력만 잔뜩 부여되어있다. 즉, 그것은 무식하게 공격력만 높은 살상 무기라는 소리다.

설상가상으로 그 내구도 마저 못 쓰는 지경까지 이른 상태. 이유 불문하고 장비제작에 사용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

‘내가 놈들에게 바라는 것은 한 가지. 엠페러 길드의 본진을 찾아내서 장비제작에 관련된 배후를 몽땅 뒤진 뒤에 전설등급의 재료를 빼앗는 거지.’

내가 아쉬울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엄청 높은 레벨, 수백 개에 달하는 각종 스킬, 장비만 셀 수 없이 많은데 뭐가 부럽겠는가? 하지만 장비제작의 한계를 맛본 뒤로는 삶의 즐거움을 느낄 수 없었다.

전설등급의 장비를 제작할 수 있다면 그만큼 꿈같은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심지어 목적지는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 엠페러 길드의 껍질을 벗겨내서 그 안의 알맹이를 쥐어짜내는 한이 있더라도 목적은 반드시 이루겠다.

다잔에서 활동하고 있는 길드원의 수를 따지면 저 병력은 세발의 피라고 한다. 그들의 약탈품과 정보를 억지로 끄집어내기 위해선 저 정도 병력은 스스로 해결할 힘이 필요하다는 한다는 소리다.

‘장비의 수준만 봐도 조무래기 집합체라는 사실이 뻔하군.’

나는 파천도를 고쳐 쥐고 협곡아래도 몸을 날렸다. 초고속 낙하! 그 뒤를 따르는 무시무시한 폭음! 바닥에 착지하는 동시에 강렬한 충격이 땅속 깊은 곳까지 전해졌다.

“하늘에서 뭔가 떨어졌습니다!”

“흠? 전방에서 등장했군. 마법 방어막을 생성하라!”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이 확실한 대처. 나는 재차 감탄 했다.

“역시 훈련하나는 제대로군. 그래봤자 조무래기지만.”

“네놈이군. 선봉대를 몰살시킨 녀석이!”

분노에 물든 쿠샨의 눈동자가 격렬히 타오르기 시작했다. 아니, 이미 이성을 놓은 모양이다. 동공이 사라지고 눈알이 뒤집어져서는 커다란 송곳니가 뿌드득 드러났다.

“지, 진정하십쇼. 쿠샨님! 이대로 폭주하시면 저희도 무사하지 못합니다!”

“닥쳐!”

마법사는 쿠샨이 휘두른 두꺼운 팔에 짓눌려 천천히 고통을 느끼기 시작했다. 마법사의 얼굴에는 암담한 공포가 스쳐지나갔다.

“히, 히이이익───!!”

쿠샨의 손아귀에 약간의 힘이 들어갔다. 꾸드득거리는 강제적이고 이질적인 소리가 새나왔다. 강제로 압축. 그대로

퍼엉───!

바드는 그의 행동을 비웃었다.

“크큭! 이만한 병사들을 이끈다는 지휘관이 이렇게 다혈질이어서야 되겠나? 병사들이 싸울 마음이 사라지면 네가 책임 질 거야?”

“병사? 부하? 내 알 바 아니다. 지금은 내 앞길을 막는 놈을 처단할 뿐!”

“그렇다면 할 수 없지.”

결과는 바뀌지 않겠지만 일처리는 빨리 할수록 좋다. 그래야 남는 시간에 장비 하나라도 더 만들고 1실링이라도 더 벌어들이니까.

“바드······ 도망쳐!”

“음? 노엘. 아직 후속부대로 이동하지 않은 것이냐?”

쿠샨의 눈가에 의혹이 내려앉았다. 아까부터 노엘의 거동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바드는 상황을 대강 파악했다.

‘예상대로 노엘은 아직 내 편인가?’

“간만에 신명나게 싸워보자고. 단 둘이서.”

나는 파천도를 집어넣고 등에 매단 곡괭이를 꺼내들었다. 적색 아우라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조잡한 곡괭이를 말이다. 쿠샨의 표정이 한순간 일그러졌다.

“그딴 걸로······ 나를?”

그딴 것인지 아닌지는 직접 상대하고 말하시지. 바드가 사악한 미소를 그렸다. 쿠샨과 마찬가지로 감정 선을 놓친 짐승의 눈빛. 한껏 부풀어 오른 삼두근과 이두박근이 엄청난 괴력을 쥐어짜내기 시작했다.

곡괭이가 바닥을 꿰뚫자 양쪽으로 솟아난 절벽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불길한 소리는 끝없이 퍼져나갔고 쿠샨의 부대는 일제히 기겁했다.

“어, 어어?!”

청천벽력의 소음과 함께 협곡 전체가 붕괴하기 시작했다. 천금협곡은 폭이 좁기 때문에 머리위로 떨어지는 바위를 피할 공간이 어디에도 없었다. 한동안 이어지는 지형 파괴. 수십 킬로미터나 이어지는 천금협곡에 작은 오릉이 생성되었다.

“끄아아악!!”

압도적인 파괴력과 힘. 엠페러의 군사들은 일제히 생매장 되었다. 마법으로 만들어낸 장벽이라 한들 덩어리째로 함몰하는 절벽 전체를 막아낼 여력이 없던 것이다.

“후우~ 힘 좀 썼군.”

돌무더기에서 빠져나온 바드는 옷에 묻어난 흙먼지를 털어내며 한숨을 돌렸다. 일개 조무래기들은 몰살한 모양.

쿠르르르······.

“이······자식!”

바위틈에서 불쑥 솟아 오른 바위 같은 주먹. 사자갈기의 수염을 가진 사내가 분노의 치를 떨며 눈을 부라렸다. 아무래도 성질이 미리내까지 차오른 것이 분명하다.

“죽여 버리겠다. 망할 녀석! 잘도 내 병사들을!!!”

“가능하다면 해보시지. 실력차이는 충분히 보여줬다고 생각하는데.”

“네놈은 뭐냐. 무슨 목적으로 우리 길드를 건드리는 거지? 우리길드가 어떤 길드인 줄 알고······!”

“알고 있어. 보물 창고.”

가치를 매기기 힘들다는 호화스런 재료가 잔뜩! 엠페러 길드는 각종 시료들과 재료를 쟁여놓은 엘도라도나 다름없다. 바드에겐 그 이상의 의미는 존재하지 않았다.

바드는 되레 쿠샨을 매도하듯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네놈들이야 말로 터무니없는 목적을 가지고 이런 변두리 마을까지 왔더군. 전설의 망치와 파지천금? 그것들 때문에 사람들의 목숨을 얼마나 앗아간 거냐?”

바드의 살기가 공기를 짓눌렀다. 쿠샨은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위압감에 마른침을 삼켰다.

‘만만치 않은 녀석이다. 하지만······.’

쿠샨은 손에 들린 황금망치를 내려 보며 승리를 확신했다.

‘내 손에는 전설의 망치가 들려있지 않은가?’

쿠샨이 망치를 움켜쥐고 바드를 겨누었다.

“보여주마. 전설 무기의 위력을 말이다!”

패기 있게 자세를 잡은 쿠샨공작. 그러나 바드의 표정은 일체 변함이 없었다. 여전히 냉담하고 싸늘했다. 그런 여유가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 무기 가짜야.”

“······뭐?”

나는 론과 노엘에게 묠니르를 양도했었다. 다름 아닌 묠니르를 미끼로 엠페러 길드의 뒤통수를 치기 위해서. 하지만 내가 바보도 아니고 진짜로 넘겨줄 리 없잖아?

“처음부터 론의 배신을 예상했지. 그래서 묠니르와 똑같은 가짜 망치를 하나 더 만들었어. 예상대로 론은 엉터리 망치를 네게 넘겨주었고······.”

나는 바닥에 널브러진 상처투성이의 론을 들어올렸다.

“계획대로 론은 내 손에 뒤지는 거야.”

“끄으으윽······.”

론은 게거품을 물면서 괴로운 신음을 내뱉었다. 이미 낙석으로 인해 상처투성이가 된 몸이지만 어쨌든 나를 속이려던 괘씸함은 내 손으로 청산하고 싶다.

“감히 내 부하를!”

“부하? 지들 살려고 이런저런 정보를 술술 까발리는 녀석들이 무슨 부하?”

몇 분전 협곡 위에서 즐겼던 미니게임은 재밌는 여흥거리였다. 살기위해 주절주절 입을 놀리고, 발언권을 얻기 위해 필사적으로 단검을 투척하는 절박한 모습은 희열을 가져다주었다.

“왜 이런 짓을······ 잔인하고 비열한 자식! 우리 길드를 고작 보물 창고로 생각하는 녀석이 감히!”

점점 흐느끼는 쿠샨의 울대. 공포와 분노라는 두 감정이 바드를 향했다. 바드는 론의 턱 끝에 곡괭이를 갖다 대고 감사납게 대꾸했다.

“입바른 소리 마. 인간말종 주제.”

동료? 부하? 누가 들으면 내가 선량한 길드를 이유 없이 패고 다니는 사람처럼 들리겠다?

“착각하고 있는데, 당신들은 단순한 살인집단이 아닌가? 동료니 어쨌느니 입바른 소리할 때마다 얼마나 닭살이 돋는지 알아? 너희들을 공격한 이유는 사리사욕 때문이기도 하지만 최종적으로 내 동료들에게 위협이 될 만한 놈들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정의고 뭐고 그딴 거 실현하려는 이유는 쥐똥만큼도 없어!”

나는 론의 목 안으로 곡괭이를 밀어 넣었다. 뜨거운 핏물이 솟구쳤고 그의 몸이 미친 사람 마냥 경련을 일으켰다. 일시적인 쇼크. 곧 잠잠해 질 것이다.

“그게겍······.”

론의 그로테스크한 신음이 멈춘 뒤에야 그의 몸은 바위 구석탱이로 던져졌다. 방해꾼은 이걸로 사라졌다. 이제 오붓하게 시간을 가져볼 차례다.

“너희 같은 놈들 때문에 요즘 경제가 어려워지는 거라고. 안 그래도 몇 시간 전에 완료한 의뢰물품의 가격이 폭등한 바람에 손해 봤잖아!”

바드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험악해져 있었다. 얼마 안 되는 의뢰보상으로 몇 실링 손해를 본 것이 주된 원인이었다.

‘악질이다. 이 녀석은 우리 길드보다 더한 악질이야!’

쿠샨의 눈동자에 미세하게나마 눈물이 차올랐다. 별 거 아닌 이유로 멱살을 붙잡힌 게 억울하고 어처구니가 없었던 탓이리라.

“제, 제기라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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