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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ter Smith-10화 (10/202)

Master Smith (10)

밤 12시. 땅거미가 기어 다니는 마을거리에는 날벌레만이 날아다니고 있다. 방금까지 술을 부어마셨다고 보기에는 이상할 정도로 바드의 걸음걸이는 멀쩡했다.

그가 향한 곳은 《메리데이》라는 작은 여관. 그곳은 레이나의 지인이 운영하는 작은 여관으로, 청결하고 있을 건 다 있는 값싼 숙박소로 유명한 곳이다.

“아! 죄송합니다. 지금은 방이 다 찼······ 우아앗?! 꺄악!”

여관 안으로 들어가자 에이프런 차림의 여자가 계단을 굴러 내려왔다. 자기 발에 걸려 고꾸라진 것이다. 무리 없이 일어나는 걸 보아하니 괜찮아 보인다.

“으으 아파라······. 앗! 죄, 죄송합니다.”

“그쪽에서 사과할 이유는 없어. 이사벨라 씨 맞지?”

꽤나 덤벙거리는 여자다. 딱 봐도 귀찮은 사람이 분명하군.

레이나에게 미리 알아둔 대로 이사벨라의 인상착의는 눈에 띄고 구별하기 쉬운 옷차림이었다. 그녀의 앳된 외견이 많은 이유를 차지했다.

“어? 혹시 레이나가 말한 일행이 그쪽인가보네요?”

“바드라고 불러. 방은 어디······.”

“아이참~ 왜 이제 오셨어요! 대화하고 싶은 것이 얼마나 많았는데! 일단 이리로 오세요. 마실 것 드릴까요? 주점 갔다 오셨죠? 휘유~ 술 냄새. 아참! 레이나는 씻고 있어요. 올 때까지 기다리죠!”

그녀가 수다스럽게 입을 놀리며 나의 등을 떠밀었다.

나는 이사벨라가 사용하는 개인독방으로 끌려가 구석진 자리에 앉게 되었다. 그 모습을 본 이사벨라는 푸훗! 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눈웃음 지었다.

“덩치에 맞지 않게 너무 소심한 자세 아니에요?”

“아무렴.”

“반박은 안하네요? 좋아요! 일단 제 소개부터 하죠. 저는 레이나의 유일무이한 친구 이사벨라에요. 보시다시피 수인족이며, 부업으로 여관 일을 하고 있답니다~”

수인족. 말 그대로 동물의 능력과 일부 형상을 가진 인간을 말한다. 평범한 사람들보다 신체적인 능력치가 높은 것이 특징인데 가장 큰 특징은 동물의 귀와 꼬리를 달고 있다는 것. 이사벨라의 귀를 보면 그녀가 토끼 수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청각이 월등히 발달해있다 소리.

“부업으로 여관 일을 하고 있다면 주업은?”

“당근농사를 하고 있죠. 막상 말하려니까 쑥스럽네요. 일손도 부족한데 이참에 아르바이트라도······.”

이사벨라가 간곡히 부탁하는 눈으로 눈을 반짝반짝 빛냈지만 어림도 없다.

“거절하지.”

남을 도와서 느긋하게 당근농사를 거둘 시간 없다. 당장 밀린 일들만 생각해도 그럴 기분이 아니다.

“아쉽네요. 그나저나 대장장이라고 했죠? 오늘 아침에 +9강화의 주인공이 설마?”

“정확히 +12강화야.”

이사벨라의 눈동자가 번뜩이더니 내려앉은 토끼 귀가 쫑긋 일어섰다. 호기심으로 가득찼다는 신호다.

“예에?! +12강화? 중급강화라고요? 듣던 거와는 다르잖아요? 그만한 실력으로 이런 변두리에 와있는 거예요? 게다가 +12강화는 엄청난 숙련도가 필요할 텐데······.”

그녀의 말대로 대장장이 숙련도를 증가시키기 위해서는 극악의 노력이 필요하다. 평범한 전투직이나 생산직은 몇 번의 칼질이나 노가다로 중급숙련도에 도달할 수 있지만 대장장이는 그러지 못하다.

물건하나 만드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필요한 재료도 많으며 대량생산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초급숙련도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다른 직업보다 10배, 20배의 노력과 수고가 들기 때문. 게다가 망치질 한번이라도 어긋나면 제작에 실패할 수 있기 때문에 《극악》이라는 단어만으로는 부족한 난이도다.

“······당신 정체가 뭐야? 그 나이에 벌써 +12강화를 할 만한 숙련도에 도달했을 리 없잖아. 만에 하나 그러기 위해선······.”

하루 6시간동안 쉬지 않고 장비만 제작하면서 인생을 보내야 한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생각하는 상상이상으로 지독한 사람이다. 6시간은커녕 하루온종일 24시간 장비제작에만 집념하지 않았던가? 식사와 수면시간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차고 넘치는 고급재료로 상당한 장비만을 만들면서 살아왔기에 지금의 경지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이미 마스터 찍었는데 뭘.”

이사벨라는 진심으로 당황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마스터의 경지? 그것도 대장장이가? 그녀는 불가능하다며 도리질 쳤다.

“스, 스킬목록 좀 볼 수 있을까요?”

스킬목록. 내가 소유한 기술의 목록을 눈앞에 떠올리는 기능이다. 이것은 타인의 눈에도 보이기 때문에 정보가 유출되는 것이 꺼려진다면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장소에서는 자제해야한다.

“역시 안 되겠죠?”

“상관없어. 마음껏 봐.”

이전에 한번 둘러봤는데 별것도 없었다. 기껏해야 대장장이 스킬인데 대단할 게 어디 있겠는가?

나의 태평함과 다르게 스킬목록 스크롤을 내리는 이사벨라의 얼굴은 여러 차례 굳어졌다.

‘말도 안 돼······. 신체강화 패시브가 셀 수 없이 많아. 게다가 그 수치가 일반 전투직보다 높다고? 생산직이 가능한 거야?’

이사벨라가 놀랄 수밖에 없던 이유는 셀 수 없이 많은 스킬목록에 있었다.

ⅰ)보유한 스킬의 개수.

ⅱ)각 스킬숙련도와 효과.

ⅲ)개방된 특수스킬.

ⅳ)특수스킬을 개방하는데 필요한 레벨.

ⅴ)보유한 칭호개수.

이사벨라가 헤아린 스킬만 자그마치 250여개 정도. 그중 히든 패시브가 10%가량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수준급 패시브 80%, 나머지는 자잘한 버프와 엑티브 스킬이었다. 스킬숙련도는 70%이상의 스킬들이 전부 마스터등급에 도달했으며, 특수스킬 11번째 칸의 개방조건인 레벨800의 벽까지 뚫어버린 모양이다.

한마디로 특수스킬이 11개나 있다는 소리! 패시브 효과만 중첩해도 바드의 신체능력은 이미 인간의 범주를 월등히 넘어섰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눈 앞의 남자는 멍청하게 앉아만있다.

“······그렇게 대단한 건가?”

“이봐요 대장장이 씨. 보유스킬이 200개가 넘었고, 절반이 넘는 스킬은 마스터 등급에 도달했어요. 특수스킬도 11개째이고 에픽등급 이상의 히든 패시브도 20개가 넘잖아요! 이건 대단하다는 범주가 아니라······.”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침을 한번 삼킨 뒤 이사벨라가 말을 이었다.

“완전 불가능의 영역인데요. 자신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지 인간인지 자각 좀 하시죠?”

“잘 모르겠는데.”

말은 그렇게 해도 실감이 나지 않는걸 어쩌냔 말인가? 내가 한 일이라곤 할아버지와 단 둘이서 장비제작 한 것이 전부였다. 드물게 몬스터를 잡아 족칠 때가 있기는 하다. 내 레벨이 높아진 이유라면 역시 이것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대장장이가 잡을 수 있는 몬스터라고 해봐야 얼마나 강한 몬스터겠어요? 그다지 대단한 몹은 아닐 거라 생각되는데요?”

이사벨라 그녀의 말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그녀의 말대로 나는 자주 조우하는 몬스터를 잡았고, 그놈들 역시 강한 놈들이라고 생각해본 적 없으니까. 이를테면 크라켄이나 레비아탄 같은 녀석들 말이다.

“······크라켄요?”

“······레비아탄?”

언제부터 있었는지 레이나가 이사벨라와 함께 동요했다.

바다 속 문어괴수 크라켄과 전설의 해수 레비아탄. 그녀들은 그런 놈들을 잡몹 취급하면서 때려잡았다고 주장하는 바드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크라켄이나 레비아탄 따위의 것들을 쉴 새 없이 잡지 않으면 레벨888에 도달할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천 명이 모여서 대규모 레이드 파티를 짜도 겨우 잡을까 말까한 레전더리급 보스몬스터를 어떻게?!”

이사벨라는 황당하다는 듯이 목소리를 높여 질문했다.

“내 할아버지가 밥상 좀 차려줬지. 크라켄의 다리를 장난감 상자 리본마냥 잘 가지고 놀더군.”

“크라켄을 가지고 놀아요? 할아버님께서 무슨 직업을 가지셨기에······.”

바드는 당연한 거 아니냐며 즉답했다.

“대장장이였지.”

“······.”

이제는 그만하자는 듯 대화하기를 포기한 이사벨라와 레이나. 바드와 대화하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의 지식과 상식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는 걸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하아~ 알았어요. 피곤하니까 대화는 여기에서 마치도록 하죠. 이만 올라가 보세요.”

“잘 자. 이사벨라.”

레이나가 수줍은 목소리로 인사했다.

“응 너도. 그리고 알다시피 나는 잠귀가 밝으니까 야밤에 너무 뜨겁게 보내진 말아줘. 두 사람 모두 어른이니까 참을 땐 참아야지?”

“무, 무슨 소릴······!”

이사벨라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만이 희미하게 그려졌다. 레이나는 얼굴을 잔뜩 붉힌 채 항의하듯 소리쳤지만 결국 고개를 수그렸다. 사태를 파악하지 못한 것은 바드 혼자뿐이다.

“무슨 뜻이야? 뜨겁게 보내지 말라니?”

“머, 멍청아! 말하지 마 바보야!”

그녀가 내 입을 틀어막으며 왁왁 소리 질렀다. 나는 이사벨라의 말을 되감아 생각했다. 그리고 겨우 알아차린 눈으로 동공을 확장시켰다.

“설마?”

레이나는 한숨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사실 방이 부족해서 같은 방을 써야 되거든.”

미치겠네. 오늘 처음 본 남자랑 같은 방을 쓰는 게 말이 돼? 방 있으면서 괜히 거짓말 하는 거 아니야?

“너랑 이사벨라랑 여기서 자면 되잖아. 굳이 왜?”

바드의 질문에 이사벨라가 완강하게 소리쳤다.

“안 돼! 나는 혼자 아니면 잠 못 자!”

“그게 무슨 억지······!”

“아무튼 안 돼! 빨리 방으로 올라가!”

답정너다. 나는 별로 신경 쓰지 않지만 레이나는 어떨지 모르겠다.

“올라갈까?”

“엥? 진짜로 같이 쓰려고?”

그녀가 어쩔 줄 모르는 얼굴로 손을 퍼덕거렸다. 귀도 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나가 어깨를 으쓱였다. 이사벨라는······ 이불 속에서 키득거리며 음흉하게 웃고 있다.

코지부락의 심야가 더욱 깊어져간다.

***

신경 쓰인다, 신경 쓰여! 방이 작다더니 이게 뭐야? 솔직히 말해서 방이 아니라 옷장 아니야?

“비좁네.”

“역시 안 되겠다. 그냥 내가 이사벨라 방에서 잘게!”

어색하고 비좁은 공간에서 잠을 청할 바엔 강제로 이사벨라의 방을 사수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판단. 그러나 문손잡가 돌아가지 않고 철컥─── 이라는 불길한 소리만 들려왔다.

‘문이 잠겼어?’

외부에서 문을 잠그는 잠금장치라니 뭔가 이상하다. 설마 이것도 이사벨라의 짓이라면?

“이사벨라! 문 열어!”

레이나의 절규가 좁은 방 안에 쩌렁쩌렁 울렸다. 완벽 방음처리가 된 이곳은 단 하나의 목적을 두고 만들어진 것임을 두 사람은 알지 못했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었다는 듯 홀연히 모습을 드러내는 검은 인영. 당근무늬가 들어간 에이프런복장은 범인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는 복장이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비단 같은 머릿결,  분홍색 빛을 그리는 도도한 입술. 순박함이 물씬 느껴지는 당돌한 미모였지만 지금만큼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이 갇힌 방 열쇠를 들고 있다.

이사벨라는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미안해 레이나~ 불편해도 오늘은 거기서 지내. 두 사람 진도 빼려면 이 방법이 최고거든!”

물론 이사벨라의 목소리가 방음처리 된 방안까지 닿을 리 없었다. 그만한 청각은 이사벨라의 청각이 필요로 하리라.

“부수고 나갈까?”

바드의 한 마디에 이사벨라가 당황했다. 바드의 스펙을 생각하면 그 말이 농담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 잠깐! 진짜야?!”

“하나, 둘······!”

설마 무식하게 방문을 부수고 나온다는 판단이 나올 줄은 몰랐다. 자칫 문 앞에 있다가 봉변을 당할 뻔했지만 레이나의 목소리가 바드를 제제 했다.

“너무 그러지 마. 이사벨라가 나쁜 의도로 이런 건 아닐 테니까.”

이사벨라는 감탄과 감동을 동시에 느꼈다.

‘웅웅! 바로 그거야 레이나. 나쁜 의도는 없었어! 그나저나 예상 밖인데? 설마 레이나가 저런 말을 할 줄이야. 순진한척해도 사랑 앞에선 앞뒤 가리지 않겠다는 걸까~?’

이사벨라가 부모 같은 마음으로 입 꼬리를 올렸다.

‘자아, 당신은 어쩔 거야? 그 방은 완전한 밀실, 그리고 방음처리도 완벽하게 되어있으며 방해할 사람은 없어. 설마 레이나 같은 천상천하유아독존 절대미인을 놔두고 참을 생각은 아니겠지? 참지마세요. 참는 것은 몸에 해로우니까요!’

문란한 변태 토끼가 이런저런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이제 남은 것은 레이나와 바드가 하는 행위에 대해서 귀를 쫑긋 세우고 엿듣는 일만 남았다. 하지만 문 너머로 들려오는 둘의 대화는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이대로 자야겠네.”

“불편하면 일어설까?”

“먼저 자. 내가 서있을 테니까.”

바드가 자리를 양보하고 일어섰다.

뭘 하는 거야? 그러라고 두 사람을 좁은 밀실 안으로 가둬 놓은 게 아니잖아! 당장 내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까!

이사벨라는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방방 뛰었다. 그러나 둘은 이사벨라의 기대와 다르게 전혀 생각이 없는 듯하다.

“그, 그럼 등만 맞대고 앉아있자. 딱히 불편하지도 않고. 잘만하면 이대로 잘 수 있을 것 같은데.”

“······?!”

설마 레이나가 대쉬하는 거야? 이사벨라는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보다 그냥 문을 차고 나가는 게······.”

레이나는 어느새 무릎을 끌어안고 앉아있다. 한명이 아예 불편한 것은 못 봐주니 둘이서 불편한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사벨가 잠긴 문에 얼굴을 바짝 붙이고 귀를 쫑긋 세웠다. 빳빳하게 서버린 토끼 귀가 모든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별 수 없네.”

바드가 레이나의 등에 기대었다.

‘······드, 드디어!!’

별별 망상을 시작한 이사벨라는 오만가지 상상의 나라를 펼치기 시작했다. 상상의 끝에 도달한 문란한 토끼는 쌍코피를 터뜨리고 뒤로 나자빠지는 최후의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으헤헤······.”

기절한 그녀의 머리위로 보일 리 없는 상상의 설명창이 하나 생겨났다.

[이사벨라 아웃]

한편 비좁은 방에선 아무런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다. 맞댄 등으로 서로의 심장박동을 느끼며 어색한 상황이 지속될 뿐이다.

“레이나.”

“어, 어?”

이름을 불렀을 뿐인데 레이나는 화들짝 놀라며 몸을 움츠렸다. 당장이라도 이성을 놓을 것 같았지지만 레이나는 이를 악물고 필사적으로 버텨냈다.

“이사벨라가 우리를 가둬놨고, 이 방에 들어올 사람은 아무도 없잖아?”

“그······렇지?”

“그럼 오늘 밤은 단둘이 남겨진다는 소리고?”

여기까지 말했는데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 사람은 눈치도, 코치도 없는 멍청이 또는, 매우 순수하고 청렴한 그런 사람일 것이다. 사제의 흰 얼굴이 발그레 상기되었다.

‘그러고 보니 단둘이 남았잖아? 게다가 이 남자 무슨 생각으로 이런 말을?!’

레이나는 머리를 감싸 쥐고 끙끙 앓는 신음을 내뱉었다. 어째선지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기 시작한 것이다.

고민을 너무 많이 했나? 생각을 깊이해서 그런가?

아니다. 이건 진짜로 머리가 아픈 거다.

“아······.”

레이나는 갑작스런 현기증에 신음했다. 머리가 어질어질해지고 의식이 희미해진다.

‘숨쉬기가 힘들어······ 이거 설마?’

“레이나?”

“완벽······밀실······.”

알고 보니 완벽 방음된 이 공간은 외부와의 공기가 들락날락할 수 있는 공간마저 완전히 차단된 구조였던 것. 가뜩이나 비좁은 공간에서 성인 둘이 호흡하고 있었으니 산소결핍증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다행히 바드는 빠른 결단력으로 밀실 문을 파괴했다.

“이런 제기랄! 이사벨라는 이런 것도 생각하지 못했던 거냐!”

나는 밖으로 빠져나오자마자 온갖 불만을 쏟아냈다. 아니나 다를까 복도에는 앞에는 쌍코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져있는 이사벨라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의미심장하게 웃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어딘가 음흉하다.

호흡이 안정된 레이나는 거칠게 기침하며 밀실에서 빠져나왔다.

“콜록, 콜록! 휴우~ 죽는 줄 알았네.”

“괜찮아? 어디 아픈 덴 없고?”

“그런 것 같네.”

그녀가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별 일 아니라며 제스처 했다.

“호오~ 분위기 풋풋한데?”

어느새 일어난 이사벨라가 코에 흐르는 피를 닦았다. 그녀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레이나와 바드 사이에 끼어들었다. 쫑긋 귀를 세운 그녀는 소리뿐만 아니라 또 다른 무언가를 감지한 듯하다.

“이거 미안해서 어째? 둘만의 공간을 마련해죽고 싶었는데, 방음에 신경을 쓰다보니까 환풍구를 만들지 못했네.”

레이나는 토끼 멱살을 부여 쥐며 소리쳤다.

“애당초 방음이 되는 방을 왜 만든 거야 이사벨라! 요단강 건널 뻔했잖아 망할 토깽이 자식아아아~!”

그대로 기절했으면 죽을 뻔했다고 빌어먹을 토끼야!

이사벨라는 능글맞게 시선을 피하며 대꾸했다.

“어허, 낸들 알았나? 아무튼 바드 같이 든든한 남자가 생겨서 좋겠네~ 나중에 애 생기면 꼭 알려줘라?”

“무, 무슨 소릴?!”

한 대 더 쥐어박으려던 참에 이사벨라가 나를 향해 짜증을 부렸다.

“아, 뭐! 설마 나를 속이려는 거 아니지? 네가 바드를 좋······”

“거기까지! 그 이상 말하면 다시는 너랑 말 안 섞을 거야? 너도 뭐라 말 좀 해봐! 이 녀석 때문에 죽을 뻔했잖아요!”

나는 ‘정확히 당신이 죽을 뻔했지.’ 하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바드는 아옹다옹 어린애같이 잘도 싸우는 그녀들을 바라보며 건조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날은 레이나와 이사벨라가 함께 방에서 밤을 지내기로 하고, 나는 지붕 위에서 가죽이불을 덮은 채 새벽을 맞이했다. 실로 추운새벽녘. 그날 아침햇살은 어딘지 모르게 서두르는 것 같았다.  아침 6시. 수탉의 울음소리가 코지부락의 아침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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