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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nswer-332화 (33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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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9년 5월 2일, 2028-2029 프리미어 리그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오늘은 안필드에서 리버풀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37라운드 경기가 열리는 날이었다. 현재 순위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승점 88점으로 2위를 달리고 있었고 리버풀이 승점 89점으로 근소한 차이를 유지한 채 1위를 달리고 있었다. 사실상 이번 경기의 승자가 우승을 차지할 확률이 높은, 결승전이나 다름 없는 매치였다. 맨체스터와 리버풀이라는 라이벌리에 더해져 경기 전부터 엄청난 주목을 끄는 경기였다.

"에구구, 예나 지금이나 기자들이란."

앓는 소리를 내며 라커룸에 들어오는 한 선수가 있었다. 경기 전 휴식을 취하던 리버풀의 다른 선수들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진짜 노인네 같네."

"같은게 아니고 노인네 맞아. 이봐요 영감님. 이번이 몇 번째 노스 웨스트 더비라구요?"

"50번 째다. 그리고 노인네라고 하지마. 이 망할 꼬맹이 녀석아."

장난스럽게 이야기하지만 내용은 가볍지 않았다. 노스 웨스트 더비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리버풀 간의 매치를 지칭하는 말이다. 그 경기를  50번 뛰었다는 건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니었다. 매 시즌마다 리그에서 두 차례의 맞대결은 기본으로 잡혀 있다. 그 외에 챔피언스 리그, FA컵, 리그컵 등에서 만날 확률이 있긴 하지만 기본은 두 번이라는 이야기이다. 많아 봤자 한 시즌에 세 번 이상 만나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런데 50번 이라니? 10년으로는 택도 없고 15년, 20년은 현역 생활을 해야 가능성이 있는 수치였다.

"프리미어 리그에서 50경기도 못 뛰고 하부리그로 가는 선수도 많은 판에, 하여간 이 노인네, 정말 징하게 오래 해먹고 있구만!"

과장된 표정으로 놀려대는 아직 어린 티가 역력한 동료 선수의 모습에, 어느새 살짝 주름이 생기고 있는 얼굴에 미소를 띄우며 데이빗이 말했다.

"벽에 똥칠할때까지 해먹을 거란다. 꼬맹이 니가 은퇴할 때까지 있을 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으렴."

"우와, 이 영감 제 정신이 아니야. 누가 의사 좀 불러줘."

"은퇴한다고 얘기했잖아? 그만 좀 해먹고 후배들에게 자리 좀 양보해 주시지 영감?"

라커룸에 웃음이 맴돈다. 데이빗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 라커룸의 분위기에 만족한듯 웃음을 지었다.

'벌써 20년 째인가.'

기억을 되돌려 본다. 2009년 여름, 천운이 닿아 일개 부두 노동자에서 명문 리버풀의 선수로 스카우트 된 이후,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영광도 있었고 좌절도 있었다. 그 모든 것들은 지금 자신에게 천금으로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아쉬운 점이라면.

'그때의 동료들은 이제 한 명도 남지 않았네.'

비슷한 연배의 동료들도 있었다. 마르코 로이스, 루이스 수아레즈, 조단 핸더슨, 마틴 켈리, 오스카 등. 나이가 비슷했기에 친하게 지냈던 동료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이미 은퇴한지 오래였다. 리버풀의 새로운 황금기를 연 추억의 동료들 중 자신만이 남아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에 묘한 감상에 빠진 데이빗이었다.

"이봐! 이 노인네 금방이라도 운명할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어!"

"이게 바로 인생의 주마등을 느끼는 중인가? 장난 아니라고?! 누가 빨리 의사 좀 불러줘!"

"어이 꼬맹이들. 어르신의 깊은 생각을 방해하지 말라고."

자신의 나이에 절반 수준에 불과한 어린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장난을 치는 데이빗, 그때 라커룸의 문이 열렸다. 얼굴에 잔주름이 가득하고 어느새 머리가 희끗해진 스티븐 제라드가 특유의 무뚝뚝한 표정으로 들어 오는 모습.

"적당히들 하라고. 과도하게 긴장하지 않는 것은 좋지만 너무 풀어져서도 곤란해."

"예 보스!"

"보스! 그런데 이 노인네가 자꾸 이상한 소릴 하잖아요. 좀 전에는 진짜 죽은 줄 알았다니까요?"

"어이 존, 너무하잖아. 선배에 대한 예의를 좀 갖추라고."

"범생이같은 소리는 그만해 브램. 너희 아버지도 얼마전에 이야기했잖아. 저 영감 빨리 은퇴나 하라고 말이야."

존의 말에 브램은 난처한 미소를 지으며 데이빗을 돌아본다. 그리고 그게 아니라며 변명하듯 말을 잇는다.

"데이빗 씨, 사실은 그게 아니에요. 아버지는 데이빗 씨가 은퇴하고 같이 놀러가고 싶은 곳이 있다는 뜻으로..."

"알고 있어 브램, 그나저나 디르크 씨도 여전한걸. 요즘에도 이곳 저곳 돌아다니나 보지?"

데이빗이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자 브램 카윗의 얼굴이 밝아진다.

"네, 어머니하고 여행하는 재미에 푹 빠지셔서, 얼마전에는 히말라야로 트래킹을 가신다고 하시면서..."

"좋네. 나도 은퇴하고 나서 우리 집사람하고 여행이나 다녀 볼까?"

"잡담은 그쯤하지."

사설이 길어지는 듯하자 스티븐 제라드, 현재 리버풀의 감독을 맡고 있는 그가 개입한다. 약속이나 한 것처럼 입을 다물고 감독의 말에 집중하기 시작하는 선수들, 그것은 팀 내 최고참이자 살아 있는 전설이 된 데이빗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다들 알겠지만 오늘 경기는 특별하다."

선수들의 반응에 만족한듯 고개를 끄덕이며 제라드가 말을 잇는다.

"노스 웨스트 더비는 언제나 그렇지. 너희들도 경험해봐서 알겠지만 이 경기에 대한 주목도는 다른 경기에 비할 바가 아니다. 특히 오늘 경기처럼 우승이 걸린 매치는 더욱 특별하다."

"알겠나. 38라운드는 없다고 생각해라. 오늘 이기면 우승이고 오늘 이기지 못하면 2위에 머무르는 거다. 간단하다. 우리는 오늘 승리할 것이고 지난 시즌, 눈앞에서 우승컵을 놓친 것에 대한 갚음을 확실하게 하는 거다."

"오오!!"

선수들은 우렁찬 기합으로 의욕을 드러냈다. 그리고 선수 한 명 한 명에게 오늘 경기에서 해야할 일을 지시하기 시작하는 제라드, 감독으로서의 연차도 꽤 쌓인 지라 상당히 자연스러웠고 날카로운 모습이었다.

"데이빗, 너는 알아서 잘 하겠지만, 오늘 경기는 너에게도 특별하다. 노스 웨스트 더비를 50번이나 치르는 선수는 너밖에 없어. 여태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거야."

"부담되는 걸요."

전혀 부담을 느끼지 않는 표정으로 너스레를 떤다. 제라드 또한 미미한 미소를 띄우며 그의 어깨를 두드려 준다.

"50번 째 매치를 승리로 이끄는 것만큼 의미있는 일은 없겠지. 오늘은 공격형 미드필더로 뛴다. 네가 원하는 대로 게임을 만들어라. 그리고 저 멍청한 맨유 녀석들에게 리버풀의 전설이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줘."

"알겠습니다. 어이 꼬맹이들. 똑바로 뛰어라. 특히 존 너 임마. 제대로 안 뛰면 패스 없는 줄 알아."

"우와 이 영감, 당당하게 협박하고 있잖아? 똑똑히 보라고. 멋지게 뒷공간을 파고 들테니까. 영감이야 말로 내 움직임을 놓치지 말라고. 뭐, 나이가 나이인 만큼 반응이 좀 늦겠지만 말이야, 그 정도는 내가 감안해서 뛰어 줄게."

"...캐라는 아무리 생각해도 자식 교육을 잘못 했어."

"우리 아버지 욕하지 말라고 영감! 오늘 경기도 우리 아버지가 해설할텐데 영감 제대로 뛰지 않으면 욕 바가지로 먹을 걸?"

"호오, 전에 아버지한테 뒤지게 혼났다고 징징거리던 꼬맹이가 할 말은 아닌걸?"

여전히 으르렁거리는 데이빗과 존 캐러거의 모습에 선수들이 다시 한 번 웃음을 터뜨린다. 제라드도 간신히 웃음을 참으며 박수를 친다.

"자자, 그쯤 해두라고. 이제 슬슬 나갈 시간이야. 오늘 경기, 너희들은 승리자가 될 거다. 그리고 우리 클럽에 다시 한 번 우승을 가져다 줄거야. 내가 장담하지."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나는 선수들, 옆의 동료들과 하이 파이브를 나누며 라커룸을 나선다. 흐뭇하게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데이빗이 마지막으로 자리에서 일어난다.

"데이빗."

"네? 무슨 일이에요 보스?"

"...미안하다."

뜬금없이 사과하는 제라드의 모습에 데이빗이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뭐가 미안하다는 거에요?"

"이번 시즌을 마치고 은퇴한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너의 은퇴 경기를 생각했다. 나는 37라운드, 그러니까 이번 경기를 너의 은퇴 경기로 만들어 주고 싶었어. 하지만 마땅히 따냈어야 할 경기에서 승점을 놓쳤고 지금에 이르렀지. 우승이 걸린 매치에서 너의 은퇴식을 만들기는 어려웠다. 미안하다."

눈을 돌리며 미안함을 표현하는 제라드, 데이빗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손을 흔들었다.

"무슨 말이에요. 당연히 우승이 중요하잖아요. 그리고 오늘 경기에서 이기면 우승 확정이잖아요. 마지막 경기도 홈 경기니까 그때 부담없이 은퇴식을 치르면 되는거 아니에요? 이미 그렇게 준비 중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거야 그렇지만, 50번 째 노스 웨스트 더비에서 은퇴식을 치르는 것만큼 명예롭지는 않을 거야. 그렇지 않아도 한 번 은퇴하겠다고 했던 너를 억지로 복귀시켰는데..."

지난 시즌을 마치고 데이빗은 은퇴를 선언했다. 30대 후반, 40에 가까운 나이, 그럼에도 여전히 데이빗은 프리미어리그에서 통용될 만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데이빗 본인은 슬슬 마무리를 해야 한다고 느꼈다. 시간이 지날 수록 점점 힘에 부침을 느끼고 있었고 리버풀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이 자리를 비켜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록 자신의 은퇴로 인해 한동안 팀이 흔들린다고 해도 당연히 겪어야 할 성장통이라 여겼다.

리버풀 팬들은 난리가 났다. 매년 데이빗의 은퇴를 두고 갑론을박 토론을 벌이던 그들이었지만 막상 그들이 가장 사랑하는, 사랑했던 선수가 은퇴를 발표하자 패닉에 빠진 것, 그들은 연일 데이빗이 은퇴 결심을 번복해 주길 요구했고 팀의 사령탑 스티븐 제라드 역시 데이빗에게 조용히 말했다.

'이 팀은 아직 젊어. 그라운드에서, 그리고 라커룸에서 그들을 이끌어 줄 리더가 필요해. 언제나 너에게는 부탁만 하게되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한 번만, 한 시즌만 더 힘을 빌려줄 수 없겠나? 아직 이 팀에는 네가 필요해.'

그가 사랑하는 팬들, 그리고 존경하는 선배이자 팀의 감독의 계속된 요구에 데이빗은 결국 마음을 돌렸다. 하지만 확실히 선을 그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이번 시즌이 정말 마지막이 될거라는 것, 그리고.

'난 지난 시즌에도 팀 내에서 최고 주급을 받았어요. 분에 넘치는 일이었죠. 제 실력은 이제 그런 높은 주급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이번 시즌 저는 연봉을 포기하겠어요.'

1년 계약을 체결하는 자리에서 데이빗은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말을 그대로 지켰다. 그의 연봉은 신축 예정에 있었던 리저브 팀 전용 경기장 건설 비용에 넣기로 이야기가 되었다.

데이빗이 딱히 언론에 떠들지 않았음에도 이는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이 소식을 접한 많은 이들은 마지막까지 팀을 위해 자신을 양보하는 레전드의 모습에 열광했다.

'그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었어요. 그런데 떠나는 순간까지 그는 팀을 생각하는 군요.'

팬들은 자신들 또한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미 그가 은퇴한 뒤에 안필드 앞에 그의 동상을 세우기로 이야기가 된 상황이었다. 몇 개의 서포터 그룹이 주축이 되어 동상 건립을 직접 추진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20년 동안 자신들을 기쁘게 해준 선수에게 무언가 선물을 해주고 싶었고 사비를 모아 동상 건립 비용을 충당했고 은퇴식을 성대히 준비하겠노라 이야기했다. 구단에서도 손 놓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팬들과 연계하여 떠날 때가 된 레전드에 대한 예우를 제대로 해주겠다는 뜻을 밝혔다. 먼저 50번 째 노스 웨스트 더비를 기념하여 특별히 제작한 상패와 기념 메달을 제작했고 그 경기에 그의 가족을 모두 초청하여 시축을 맡기기로 했다. 그의 은퇴 경기로 내정된 38라운드 경기는 입장 수익의 전부를 데이빗 장 개인 기념관 건립에 사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전혀 상관없어요. 은퇴 번복도 결국 제가 선택한 일이고...은퇴식이나 은퇴경기는 역시 시즌을 모두 마치는 자리에서 해야 의미가 있겠죠. 그러니까 그런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말아요. 지금은 제 은퇴식을 생각할 때가 아니에요."

그리고는 씩 웃으며 가슴을 두드린다.

"지금은 이기는 것만 생각하자구요. 그보다 중요한 건 아무것도 없어요."

나이가 들었지만 여전히 소년과도 같은 순수한 미소를 짓는 데이빗의 모습에 제라드가 어쩔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너는 나이가 들어도 여전하군."

"캡틴이야 말로요. 여전히 세심하고...솔직하지 못하고..."

"...그만. 그쯤 해둬. 그리고 언제까지 날 캡틴이라고 부를 거야? 내가 주장직을 그만둔 지가 언제인지 기억이나 하고 있는 거야?"

"한 번 캡틴은 영원한 캡틴이니까요. 뭐 저도 이젠 캡틴이 아니니까 거리낄 것이 없죠."

"...말을 말아야지. 아무튼 슬슬 나가자. 팬들이 기다리고 있어."

점점 커지는 함성을 느끼며 제라드가 데이빗을 이끌었다.

"얼마남지 않은 시간이지만, 마지막까지 The Answer의 클래스를 보여주라고."

데이빗은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그게 제가 해야할 일인 걸요."

============================ 작품 후기 ============================

-할배가 된 데이빗

-현실에서 노스웨스트 더비 최다 출장 선수는 긱스(48회)입니다

-리버풀이 2000년대 중후반 이후로 맛탱이가 가지 않았다면 50회를 채웠겠죠

-으아아

-아직 다 못한 교정 통합 작업도 해야하고

-차기작도 얼른 확정해야 하는데

-으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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