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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분 간의 치열한 혈전이 일단락 되었다. 한 골씩을 주고 받은 양 팀은 이후로도 서로의 골문을 향해 살벌한 공격을 퍼부었다. 사이좋게 골대도 한 번씩 맞추며 양 팀 팬들의 심장을 들었다 놨다 한 양 팀의 선수들은 라커룸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저기 마사지 좀 해줘!"
"드링크 더 가져 오라고 했잖아!"
"빨리 움직여 빨리!"
전쟁통을 방불케하는 분위기, 스탭들이 가장 바쁜 시간이다. 그들은 길지 않은 휴식시간 동안 선수들을 최대한 회복시켜야 했다. 전면에 드러나지는 않는 이들이지만 그렇다고해서 이들의 역할이 작은 것은 아니었다.
"쉬면서 듣도록. 전반에는 나쁘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의 축구를 제대로 했어. 하지만 완벽하진 않았다. 루카스."
"네..."
숨을 고르며 조용히 대답하는 루카스, 클롭은 웃으며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이야기했다.
"침울해 하지마. 잘하고 있으니까. 조금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메시를 너무 의식하고 있다는 거야. 물론 그 친구야 여전히 잘하긴 하지만 자네의 역할은 맨 마킹이 아니잖아?"
포백의 앞에서 일차적인 저지 역할과 함께 수비 전반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수행하는 루카스였기에 감독의 말에 수긍하는 모습이다.
"그래, 메시를 일차적으로 마크하는 건 다른 친구에게 맡기라고. 이봐 오스카, 아직 체력 쌩쌩하지?"
"연장전까지 뛸 수 있으니 걱정 마시죠."
자신감을 드러내는 오스카의 모습에 휘파람을 불며 가볍게 박수를 쳐준다.
"연장까지 끌고 가면 방송국에서는 좋아하겠지만 말이야, 우리 팬들 건강에는 그리 좋을 것 같지 않아. 난 그것보다 일찍 끝내고 싶은데 자네 생각은 어때?"
"물론 그게 가장 좋죠. 빨리 빅 이어를 들어 올리고 싶네요."
"그렇지? 그럼 체력을 후반 45분 동안 소모한다고 생각하면서 뛰라고. 수비 시에는 평소처럼 자리를 선점하는 것과 동시에 메시에 대한 견제를 해줘야 해. 쉽지는 않겠지만 너라면 할 수 있을 거야. 그렇지?"
"당연하죠."
자신을 은근히 띄워주며 어려운 부탁을 하는 모습에 흐뭇함을 느꼈는지 오스카가 씩씩하게 대답한다.
"잘 알겠지만 메시는 지금 약간 뒤에서 전방의 양 날개인 네이마르와 이성우에게 패스를 공급하는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 지금은 얌전히 공을 돌리는 역할을 하고 있지만 언제 돌변해서 달려들지 모르니 주의하도록 해라. 준결승전에서 바르셀로나를 구원한 것은 네이마르도, 이성우도 아닌 메시였어. 30대라고 하지만 큰 경기에 강하고 극적인 상황에서 해결할 줄 아는 능력을 가졌으니 방심은 금물이다."
메시에 대한 경계심을 다시 한 번 강조하는 클롭, 그리고 이어 네이마르와 이성우에 대한 수비 사항에 대해서도 꼼꼼히 점검했다. 그들이 공을 받는 위치에 따라 대응을 달리할 것을 주문했고 대형 스트라이커가 없는 바르셀로나의 특성을 이용하여 중앙 쪽으로 몰고 나오지 못하게 하라고 강조했다.
"공격수들은 전반처럼 최전방에서 계속해서 압박해. 저들이 쉽게 볼을 소유하지 못하게 하란 말이야. 저들의 축구는 정교하고 아름답지만 난 축구는 좀 더 격정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해. 우리가 추구하는 축구처럼 말이야."
"헤비메탈처럼 말이죠?"
"그래 그거야. 열정적으로 달리라고. 저들이 우리 흐름에 따라 오게 만들어. 그게 내가 원하는 거야. 조단 너 임마. 좀 더 자신 있게 하라는 말이야. 알겠어?"
오늘 전반에 조금 소극적이었던 조단 아이브의 뺨을 가볍게 치며 웃는 모습, 아이브는 멋쩍게 미소를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데이빗, 전반에 골대를 맞췄으니 조준이 끝났겠지?"
마르코 로이스와 함께 후반의 공격 방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데이빗은 자신을 언급하는 감독의 말에 목에 걸치고 있던 수건을 손에 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자신감을 확인할 수 있었던 클롭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제 45분이다. 남은 45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된다. 승리자로서 모든 영광을 누릴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비참하게 눈물을 흘리며 경기장을 떠날 것인가. 여러분들의 손에 달렸다."
고조되는 목소리, 전술적인 지시가 끝났으니 이제 남은 것은 선수들의 정신력을 고취시켜야 했다.
"나는 우리 팀이야말로 정상에 어울리는 팀이라 생각한다. 우리 팀 위에 다른 팀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일어나서도 안 되는 일이다."
"우리는 챔피언이 될 겁니다."
데이빗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외친다. 그리고 선수들이 하나 둘 일어서며 호응한다. 어느새 라커룸 안을 가득 메운 함성, 클롭은 선수들과 하이 파이브를 나누며 출전하는 그들에게 마지막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양 팀의 선수들이 후반전 경기를 위해 다시 경기장으로 들어 옵니다. 정말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몰랐던 전반전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정말 세계 최고 수준의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는 양 팀입니다. 누가 챔피언이 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물론 왕좌에 오를 팀은 단 하나이고 우승컵도 하나이죠. 남은 45분, 어느 팀이 과연 접전을 제압하고 영광을 거머 쥘 것인가!]
[카메라에 스티븐 제라드가 잡히는 군요. 디르크 카윗과 글렌 존슨도 함께 왔네요. 의심의 여지 없는 리버풀의 전설들이죠. 오늘 예전 동료들과 후배들을 응원하기 위해 직접 찾아온 것 같군요.]
[은퇴한 이후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제라드입니다. 본인의 선수 커리어를 오직 리버풀에서만 보낸 그는 지금 리버풀 리저브 팀의 코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의 경험과 노하우라면 젊은 선수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 옆에는 바르셀로나의 레전드 사비 에르난데스가 보이는 군요.]
[몇 년전까지만 해도 직접 이 무대를 뛰던 선수들이 어느새 후배들의 건투를 기원하는 입장이 되었군요. 기분이 묘할 것 같습니다.]
[아마 아직 본인도 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요?]
[하하, 그럴 수도 있겠군요. 그만큼 대단한 선수들이었습니다. 과연 어느 팀의 레전드가 오늘 미소를 지을 수 있을까요. 후반전, 이제 시작합니다!]
"어떻게 생각해 스티비?"
"뭘?"
내용이 불분명한 질문에 제라드가 고개를 갸웃한다. 30대 후반이 된 제라드는 예전보다 주름이 짙어졌고 희끗희끗한 새치가 섞여 있었다. 물론 함께 경기를 지켜보는 글렌 존슨과 디르크 카윗도 세월의 흐름을 비켜갈 수는 없었다.
"오늘 경기 말이야. 생각보다 엄청 치열해서 좀 불안해지는데."
글렌 존슨이 입술이 마르는지 살짝 침을 바르며 말한다.
"잘 할거야."
짧고 무뚝뚝한 대답, 현역때와 같은 모습에 피식 웃음을 흘리는 존슨과 카윗이다. 가끔 만나는 친구였지만 여전한 모습이다.
"넌 리저브 팀이라고 해도 리버풀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잖아. 어때? 선수들 분위기는?"
"좋아. 우리의 현역 시절 만큼이나 아주 좋지."
망설임 없는 대답에 존슨과 카윗은 기분 좋게 미소를 짓는다. 자신들이 황금기를 보냈던 클럽에서 후배들이 잘 지내고 있다는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기분 좋은 이야기였다.
"데이빗 녀석이 잘 하고 있나 보네."
"아, 물론이지. 나나 사미와는 다른 스타일의 주장이지만 선수단을 잘 융화시키고 있어. 다들 그 친구를 좋아해. 우리가 그 친구를 좋아했던 것처럼 말이야."
"그립네. 그때 정말 좋았는데 말이야. 안 그래?"
눈빛이 아련해지는 카윗, 제라드와 존슨도 동감이었다. 선수 생활의 황혼기에 만난 한 선수로 인해 그들의 커리어가 바뀌었다. 조금만 더 몸이 허락했다면 그 기쁨을 더 누릴 수 있었을텐데 라는 생각이 세 레전드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그 풋내나던 꼬맹이가 말이야, 이제는 의심의 여지 없는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된데다 팀을 통솔하는 캡틴이라니...우와 진짜 안 어울려."
카윗이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고 글렌도 한 마디 거들었다.
"전에 라커룸에 한 번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진짜 뭐랄까...주장이라기 보단 그냥 만만한 친구같은 느낌이더라. 선수들하고 농담따먹기나 하고 있고 다른 녀석들은 데이빗을 놀리기 바빴지."
"우리도 그랬잖아?"
"...그건 그런데 그땐 주장이 아니었잖아."
카윗은 뭐 어떠냐는 듯 말을 이었다.
"뭐 굳이 여기 스티비처럼 카리스마 넘칠 필요는 없잖아. 째려보지마 스티비. 칭찬이잖아. 주장이 뭐 별 건가? 선수들을 뭉치게 해 주는 역할을 해 준다면 스타일은 상관 없잖아."
"그거야 그렇지. 사실 저 녀석이 스티비처럼 무게 잡고 무뚝뚝하게 말하는 건 어울리지 않아."
"강아지 같은 녀석이잖아. 장난칠 때 앙탈부리는 모습을 보면 가끔 귀엽다고?"
"...취향하고는..."
혀를 차며 시선을 그라운드로 돌린다. 잡담을 주고받는 사이 어느새 후반 15분이 지났다. 경기는 여전히 팽팽했고 치열했다.
"이렇게 팽팽한 상황에서 말이야...누군가 해결해 줬으면 싶을때 저 녀석이 언제나 결과를 만들어 줬는데..."
"확실히. 가끔 많은 골을 넣는 친구들이 영양가 논란에 휩싸이는 경우가 있는데 저 녀석은 언제나 예외였지. 승부처에서 괴랄할 정도로 집중력이 강해지는 녀석이라서 말이야."
"오늘도 아주 잘하고 있잖아. 저 바르셀로나의 어린 수비수 녀석은 데이빗의 상대가 아니야. 뭐 현존하는 수비수 중에 저 친구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지만..."
그 말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타이밍 좋게 데이빗에게 패스가 연결되고 그리말도와 다시 한 번 대치한다. 결과가 뻔히 보인다는 듯 제라드가 짧게 말했다. 그리고 동시에 글렌 존슨과 카윗도 함께 말했다.
"불쌍하군."
"불쌍하네."
"자살하고 싶어 질거야."
한 선수를 상대로 경기 내내 당하다 보면 일단 냉정을 유지하기가 힘들어진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게되고 자신감이 떨어지며 그로 인해 플레이가 위축되기 시작한다. 혹은 흥분하여 지나친 플레이를 일삼게 되거나. 이는 사람이라면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 팀이었다면 리저브에서 뛰어야 할 것 같은데...아 혼잣말이야."
"...으득."
바르셀로나의 베테랑 선수들도 시간이 될 때마다 어려운 임무를 맡은 어린 선수가 자신감을 잃지 않도록 독려를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데이빗은 그가 멘탈을 회복하도록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잠깐 여유가 생길 때 마다 은근 슬쩍 그의 멘탈을 건드렸고 이는 그리말도에게 큰 시련으로 다가 왔다. 그리말도도 바보가 아닌지라 그의 말이 자신을 완벽히 무너뜨리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안 다고 해서 타격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눈 앞에서 자신을 무시하고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을 듣고 어찌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마크 맨을 바꾸는 게 낫지 않겠어?"
"...닥쳐!"
"널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싫으면 뭐 관두고."
자신은 모르겠다는듯 어깨를 으쓱하는 모습이 진정 얄밉기 짝이 없다. 심판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곳이었다면 발로 걷어 차 버렸을지도 모르겠다.
"...당신이 지금 나보다 높은 레벨이라는 건 인정해. 하지만 그래도 이기는 건 우리 팀이야."
"호오..."
의젓한 발언에 데이빗이 기특하다는 듯 미소를 짓는다. 물론 그 말에 동감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조금은 겸허해졌네. 그래도 말이야..."
말하면서도 가볍게 움직이며 자리를 찾고 있었다. 주변 상황에 대한 판단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동료들이 돌리는 볼의 흐름을 읽었고 이제 자신에게 패스가 넘어올 것임을 직감했다.
"네가 날 막지 못하는데 너희 팀이 어떻게 이긴다는 거야?"
그리고 그리말도가 대꾸할 시간도 주지 않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번에는 등을 지고 서서 공을 받아 내는 모습, 체격에서 밀리는 그리말도로서는 그가 공을 키핑하는 것에 대해 견제하기 힘들었다. 그저 그가 쉽게 돌아서지 못하도록 버티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1선과 2선 사이에서 데이빗이 공을 지키기 시작하자 리버풀이 라인을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마르코 로이스가 가장 먼저 전선에 합류했고 오스카 또한 가담했다. 패스와 드리블 능력을 동시에 갖추고 득점력도 준수한 마르코 로이스와 팀 플레이가 뛰어난 오스카의 합류는 데이빗에게 큰 힘이 되었다.
"오스카!"
단단하게 버티던 데이빗이 자세를 풀고 오스카에게 공을 내어 준다. 축구 지능이 높은 친구답게 언제나 좋은 위치를 찾아 움직여 주는 모습이 기꺼웠다. 덕분에 운신의 폭이 넓어졌다. 자신만 신경쓸 수 없게 된 바르셀로나였고 그 말은 그리말도만 제압하면 좋은 찬스를 다시 잡을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페널티 박스 왼쪽 부분으로 접근하는 데이빗에게 패스가 다시 한 번 연결된다. 오스카에서 마르코로 이어지는 패스의 최종 목적지, 데이빗은 속도를 죽이지 않았다. 그리고 죽을 힘을 다해 따라 붙던 그리말도에게 왼발로 크로스를 올리는 듯한 모션을 보여 주었다. 발을 휘두르는 속도나 자세가 정말 진심으로 보였기에 그리말도가 이를 악물고 발을 뻗어 크로스를 견제하려 한다. 하지만 이것은 크나큰 패착이 되었따. 왼발 킥 모션을 그대로 캔슬한 데이빗은 왼발을 거두며 자신의 뒤로 빼낸다. 깔끔한 크루이프 턴, 크로스를 견제하기 위해 몸이 쏠려버린 그리말도는 이제 자신의 중앙 진출을 막을 수 없다. 가볍게 방향을 중앙으로 꺾고 달리기 시작하는 데이빗, 커버에 나오는 수비수를 앞에 두고 슈팅을 때릴듯 말듯한 모션을 계속 보여주며 타이밍을 뺐는다. 달려들지도 못하고 자리를 지키지도 못하고 애매하게 따라갈 수 밖에 없는 수비수, 그리고 계속된 데이빗의 페인트에 균열이 점점 커졌고 드디어 데이빗에게 슈팅 코스가 포착되었다.
콰앙-
20대 초반에 비해 월등히 강력해진 슈팅 파워, 정확히 발등에 걸린 슈팅은 폭력적으로 골대를 향해 날아갔다. 그가 존경하고 좋아했던 우상 스티븐 제라드의 그것에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 강력한 슈팅, 골키퍼로서는 도저히 손을 쓸 도리가 없었다. 그물을 찢어 버릴듯 강하게 흔드는 공을 뒤로한 채 데이빗이 포효하며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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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보다 좀 뻔뻔하고 능구렁이 같아진 데이빗을 표현하고 싶었는데
-써놓고 나니 그리 마음에 들진 않네요
-공부가 많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