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he Answer-315화 (315/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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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빗!"

눈을 감고 마음을 차분히 가라 앉히고자 무던히 애를 썼다. 어제 밤에 잠을 잘 잤던가. 자문에 돌아 오는 답은 '아니오'였다. 오랜만에 경기를 앞두고 잠을 설쳤다.

"...데이빗!"

꿈을 꾸었던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리 유쾌한 꿈은 아니었던 것 같다. 눈을 떴을 때 온 몸이 땀에 젖어 있었고 불쾌한 기분이 가득했으니까.

"데이빗!"

그렇다고 해서 그게 자신의 컨디션에 아주 큰 영향을 주진 못했던 것 같다. 다행이었다. 기다렸던 경기였다. 만약 오늘 컨디션이 좋지 못했다면 이번 올림픽에 후회를 남겼을 지도 모른다.

"데이빗! 뭘 그렇게 보고 있는거야?"

"...아?"

자신의 어깨를 흔드는 손길,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듯 주변을 살핀다. 소란스러운 함성, 그리고 차례로 줄 지어 서 있는 선수들이 보인다.

"입장해야 할 시간이라고. 준비 됐어?"

"아아."

"얘 왜 이래? 너 괜찮은 거 맞아?"

베컴이 걱정스럽다는 듯 흘끔거린다. 데이빗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경기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세상에, 도대체 얼마나 집중했으면 주변에서 그렇게 불러도 못 듣는 거야?"

사실과는 조금 달랐지만 베컴은 납득한 것처럼 보였다. 오히려 역시 집중력이 대단하다며 감탄하는 모습, 데이빗은 멋적게 웃으며 입장을 준비했다. 슬쩍 시선을 돌려 옆에 선 한국 선수들을 바라본다.

'...잘 모르겠네.'

비슷한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가끔 보는 중국 사람이나 일본인들과도 비슷한 것 같았다. 세 나라는 다른 민족이라고 하던데 자신이 보기에는 딱히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다.

'뭐...상관 없나.'

같은 나라, 같은 민족이라고 해도 생김이 다 비슷한 것은 아니고, 다른 나라 사람 중에서도 얼마든지 비슷한 사람이 있을 수 있으니까.

'독일 사람이나 네덜란드 사람이나...비슷하지 뭐.'

그런 것과 비슷한 느낌인 것 같다며 납득하고 넘어갔다. 어차피 이제 적으로 만날 선수들, 외모가 비슷하건 비슷하지 않건 중요하지 않았다.

에리카는 올림픽 들어 처음으로 경기장을 직접 찾았다. 조별 예선에서는 많이 뛰기 힘들 것 같다는 데이빗의 말도 있었고 본인 또한 해야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놀랐어요 정말. 데이빗에게 전화로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이해해요. 저도 그랬으니까."

하루에 한 두 번, 데이빗과 전화 통화로 안부를 전하는 그녀였다. 며칠 전, 데이빗의 상태가 평소와 다름을 느낀 그녀는 무슨 일이 있는지 끈질기게 물어 보았고 얼마 전, 데이빗으로부터 상세한 내막을 들을 수 있었다. 그랬기에 오늘 경기가 그녀에게도 평소와 조금 다른, 특별한 날이 되었다.

"괜찮을까요?"

"괜찮을 겁니다. 데이빗은 그렇게 나약한 친구가 아니에요."

제임스가 보기 드물게, 진중한 어조로 대답했다.

"그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지 모르겠어요. 화가 났을 까요? 아니면 슬픔을 느끼고 있을 까요?"

경기장에 들어서는 데이빗의 모습을 보며 안타깝게 중얼거린다.

"글쎄요.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데이빗이 켈리 씨에게도 말하지 않았나요?"

티티의 반문에 에리카가 조금은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난 괜찮아. 내가 고아였단 사실을 지금 알게된 것도 아니고. 딱히 내가 드라마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해 본 적 없어. 그냥 주변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잖아. 특별하지 않아. 지금 난 충분히 행복하니까. 에리카 너도 있고, 친구들도 있으니 괜찮아. 정말이야.'

"알고 있어요. 그래도 사람은 로봇이 아니잖아요. 괜찮다고 해도 그렇게 쉽게 털어질 리 없어요."

"맞는 말이에요. 하지만 데이빗의 옆에는 우리가 있잖아요?"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하는 티티, 그리고 시선을 그라운드로 돌리며 말을 잇는다.

"나는 저 친구의 과거가 중요하지 않아요. 어떤 삶을 살았다고 해도 데이빗은 데이빗이죠. 그가 지금 혼란스러워 할 수도 있어요. 괴로울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런 부분은 우리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켈리 씨의 생각은 어떤가요?"

"...저도 동의해요."

"그럼 됐어요. 시간이 해결해 줄 겁니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한다면 지금 일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닐 거에요."

영국 베스트 11

--------------------------다니엘 스터리지-----------

----------------데이빗 장(Free)---------------------

-라이언 긱스--아론 램지--스콧 싱클레어--데이비드 베컴-

-크레이그 도슨--스티브 코거--마이카 리차즈--대니 로스-

--------------------잭 버틀랜드----------------------

sub. 제이슨 스틸, 라이언 버틀랜드, 닐 테일러, 제임스 톰킨스, 조 앨런, 톰 클레버리, 잭 코크, 아론 램지, 마빈 소델

한국 베스트 11

----------------박주용-------------------

-남태환----------구자훈-----------김보성-

---------기승준---------박종욱-----------

--윤석준-----김영원----김창환----오재식--

----------------정성훈-------------------

sub. 김기훈, 백성열, 지동수, 황석진, 정우성, 김현식, 이범석

"다니엘."

"응? 왜?"

한국 팀의 선축으로 시작되는 경기, 데이빗과 스터리지는 센터 서클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갑자기 자신을 부르는 데이빗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하는 스터리지.

"북쪽이 어느 쪽이었더라?"

"북쪽? 동서남북 할때의 그 북쪽?"

"어, 그 북쪽."

뜬금없는 질문이라며 의아한 기색을 보이는 스터리지, 하지만 곧 방향을 가늠하더니 한 쪽 스탠드를 가리킨다.

"저 쪽이 북쪽 스탠드니까 북쪽이겠지. 근데 왜?"

"아니야. 알려줘서 고마워."

"천만에."

데이빗은 스터리지가 알려준 방향을 바라본다. 스탠드를 넘어 이어진 하늘, 그 하늘은 리버풀과 닿아 있으리라. 가볍게 한숨을 내쉰 데이빗이 잡념을 정리했다. 기다렸던 일전이다. 오늘 자신은 그 동안의 모습과는 조금 다르리라. 데이빗은 오늘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대로 하겠다고 다짐했다.

삐익-

경기 시작을 알리는 심판의 휘슬이 울렸다. 그리고 상대가 공을 뒤로 돌림과 동시에 앞으로 박차고 나갔다. 평소와 별반 다를 바 없는 플레이, 하지만 오늘은 노림수가 있었다. 모험같은 플레이는 아니었다. 성공하면 좋고 아니면 말고 정도의 가벼운 기회 비용만으로 최고의 결과를 노려 본다. 확률이 높은 플레이는 아니었지만 시도해 볼만한 가치는 있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데이빗의 이 시도는 최고의 결과로 이어졌다.

"뭐...뭐야?"

미드필드 지역에서 공을 이어 받은 박종욱은 어느새 눈 앞에 나타난 데이빗의 존재로 인해 당황하고 말았다. 사실 이 부분은 상대의 패턴과 움직임에 대해 열심히 찾아 본 부분이 오히려 독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사실 데이빗은 데뷔 이후, 딱 한 번, 지난 시즌 아스날 전을 제외하고는 킥오프와 동시에 강한 압박을 보여 준 적이 없었다. 대부분 슬렁슬렁 공격 진영으로 올라와 자리를 잡고 패스가 오길 기다렸던 것이다. 그랬기에 경기 초반, 여유롭게 볼을 돌리며 점유율을 확보하려 했었고, 이렇게 곧바로 압박이 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빌어먹을!'

데이빗의 수비력은 그리 좋지 못하다. 농담으로라도 수비를 잘 한다고 이야기하기 힘든 선수였다. 하지만 이렇게, 기습적인 압박에는 꽤 효과를 볼 수 있었다. 워낙 발이 빨랐기에 공을 처리해야 하는 선수가 느끼는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결국 박종욱 또한 이런 부담감을 이기지 못했다. 평소였다면 깔끔하게 옆으로, 혹은 뒤로 돌려주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0.1초의 당황, 그것이 결과를 바꾸어 놓았다. 박종욱이 볼을 처리하기 전, 데이빗의 발이 먼저 뻗어 왔고, 박종욱으로서는 불행하게도 공이 앞으로 튕겨져 나가고 말았다. 달려오던 기세 그대로 공을 이어 받게 된 데이빗, 갑자기 출현한 그의 존재로 인해 한국의 수비진이 패닉 상태에 빠졌다.

"막아! 막으라고!"

골키퍼 정성훈이 악을 쓰듯 외친다. 하지만 혼선에 빠진 수비 라인이 그렇게 쉽게 정리될 리 없었다. 그리고 그 틈을 번개같이 파고드는 데이빗, 한 순간에 김영원과 김창환 사이를 뚫고 튀어 나오는 모습, 정성훈이 이를 악 물고 달려 나가고자 했다. 하지만 상황은 이미 그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지경이 아니었다. 그가 각도를 좁히기 전에 이미 슈팅을 때린 데이빗이다. 앞으로 달려 나오기 시작한 것이 오히려 역동작이 되어 버렸다. 자신의 옆을 스쳐 지나가는 공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흔들리는 그물, 밀레니엄 스타디움을 가득 메운 7만 여 관중들이 끓어 오르기 시작했다.

골을 넣고 데이빗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리고 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리버풀과 닿아 있는 그 하늘, 가만히 서서 그곳으로 손을 뻗고 있었다. 첫 골의 기쁨에 동료들이 달려와 얼싸 안을때까지 가만히, 그리고 계속.

[오 마이 갓! 지금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 난 거죠?]

[믿을 수 없군요! 방금 전에 킥오프 휘슬이 울리지 않았나요? 그런데 벌써 한 골이 들어갔습니다! 심지어 영국 팀의 선축도 아니었어요!]

[아마 킥오프 휘슬이 울리고, 잠시 휴대폰의 메시지를 확인하던 분들은 이 장면을 못 보셨을 겁니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일이 벌어졌습니다!]

[한국 팀에게 시작하자마자 시련이 찾아 왔네요! 너무 가혹합니다! 이게 바로 세계 최고의 선수를 상대할 때 일어날 수 있는 일이겠지만 말이죠!]

[리플레이로 다시 나오는 군요. 많은 분들이 기다리셨을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 이 장면을 못 보신 분들도 많을 겁니다. TV를 1분만 늦게 틀었어도 못 봤을 게 분명하니까요.]

[순간적인 압박이 정말 엄청나게 빨랐네요. 사실 이렇게 성실한 압박을 수행하는 선수는 아닙니다만, 오늘은 아예 작정을 하고 나왔던 것 같습니다. 노린 풀레이가 분명하네요.]

[그렇습니다. 킥오프 휘슬과 동시에 최고 속도로 달려 나갔죠. 이 속도에 한국의 박 선수가 당황하고 말았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모습이죠. 사실 당황하지 않았다면 전혀 어렵지 않게 넘길 수 있었던 장면이었습니다. 데이빗 장 선수가 혼자 모든 패스 코스를 막는 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니까요.]

[하지만 당황해 버렸고 볼 처리가 늦어 졌습니다. 그리고 데이빗 선수의 발에 걸리고 말았죠. 공이 앞으로 튕겨져 나간 순간 부터는 사실상 골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데이빗 장 선수는 달리던 기세 그대로 돌파를 이어나갈 수 있고, 한국의 수비진은 정돈되지 않았으니까요.]

[마치 순간 부스트라도 사용한 건가요? 엔진의 기어를 바꾸는 것처럼, 엄청난 가속으로 한국의 두 센터백 사이를 뚫고 나오는 모습입니다. 사실 이 상황에서 너무 무기력하게 뚫린 감도 없지 않습니다만, 섣불리 파울을 범할 수도 없었습니다. 이미 페널티 박스 안으로 진입했거든요.]

[깔끔한 마무리를 선보이며 선취골을 달성합니다. 세레모니의 모습이 평소와 다른데요? 무슨 의미가 있을 까요?]

[저도 잘 모르겠군요. 아무튼 정말 멋진 골이었습니다. 역시 이 선수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엄청난 특권이네요!]

"잘했어 임마! 골 넣고 왜 이렇게 표정이 시무룩해? 웃으라고."

동료들이 자신의 머리를 헝클어 뜨리며 얼싸 안을때가 되어서야 얼굴에 미소를 띄운다. 그리고 하늘을 가리키던 손을 내려 가까이 다가온 스터리지와 포옹을 나누고 베컴과 하이 파이브를 나눈다.

"아까 벽보고 혼자 생각하고 있던 게 이거였어?"

"아, 좀 다르지만...뭐 상관 없나요. 네 그런 걸로 하죠."

"좋네! 앞으로 경기 전에 니가 혼자 집중하고 있으면 건드리지 말아야 겠다. 이런 거라면 얼마든지 환영이지!"

베컴의 말에 데이빗은 씩 웃음을 지었다.

'생각보다는...'

그리 후련한 기분은 들지 않았다. 막연히 한국이라는 나라를 상대로 골을 넣으면 통쾌한 기분이 들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딱히 그런 느낌은 들지 않았다.

'...뭐 애초에 응어리랄 것도 없었으니까.'

한국이라는 이름이 자신에게 조금 특별해 진 것은 맞았다. 그리고 그 특별함이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는 것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나라가 미워서 못 견디겠다거나 원수처럼 느껴지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였는지 골을 넣은 지금, 딱히 평소와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한 골로는 부족해서 그런가.'

씩 웃으며 한국 선수들이 알았다면 기겁할 생각을 하는 데이빗이다. 아직 경기는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었다.

============================ 작품 후기 ============================

-요즘 계속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데

-글이 영 안 써지네요

-하루 이틀 글 쓰고 마는 게 아니니 조급해지지 않으려 합니다만

-조금 답답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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