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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저 자식은 뭐하는 놈이야?'
정말 오랜만에, 데이빗은 극도의 짜증을 느끼고 있었다. 후반이 시작되고 나서 자신이 한 일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감독의 지시에 따라 최전방에서 피니쉬 찬스를 노리고 있었지만 단 한 번의 볼 터치도 하지 못하고 있었으니 짜증이 날 법도 했다.
'진짜 미치겠네. 왜 자꾸 사이드로 빠져서 크로스를 올리는 건데?!'
방금 전, 간만의 속공 찬스를 잡았던 잉글랜드였다. 후반 시작과 동시에 투입된 제임스 밀너가 공을 끊어 내며 곧바로 전방의 시오 월콧에게 공을 전달시켜 주었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카펠로 감독의 지시에도 어느 정도 부합하는 움직임이었으니 말이다.
'시오, 자네가 미드필드 진에서 넘어오는 패스를 받아 최전방까지 몰고가는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상황에 따라 직접 슈팅을 노리던지, 아니면 데이빗에게 라스트 패스를 이어 주던지 선택을 해야 해. 자네의 돌파 능력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거야.'
카펠로 감독은 멤버를 교체하며 세부적인 전술에 변경을 주었다. 섀도우 스트라이커에 가깝게 움직이던 데이빗을 최전방으로 올리며 피니셔의 역할을 맡겼고, 저메인 데포와 교체 투입된 시오 월콧에게 징검다리 역할을 맡겼다. 하지만 시오 월콧의 움직임이 그다지 효율적이지 못했고 이는 데이빗에게 답답함을 안겨 주었다.
어느 새 후반 20분, 잉글랜드는 여전히 점유율에서는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격 한 번 제대로 나서지 못한 것은 아니었는데, 문제는 이 공격이 영 효율이 떨어졌다는 데 있었다. 얼마 되지 않은 몇 번의 찬스에서 시오 월콧이 자신의 장점을 고려하지 않은, 무책임한 패스를 일관했기 때문이었다.
데이빗의 신장은 183cm, 아주 크다고는 볼 수 없었지만 아예 작은 키도 아니었다. 하지만 누구도 그가 공중전에 능한 선수라고 이야기하진 않았다. 기본적으로 프레임이 얇았고(체중이 73~74kg 정도 였다) 몸싸움이 크게 강한 편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공중전은 필연적으로 강한 몸싸움이 동반될 수 밖에 없는 영역이었다.
그런데 시오 월콧은 자꾸 돌파 루트를 사이드로 잡고 있었다. 그리고 크로스를 시도하는데, 차라리 낮고 빠른 크로스로 데이빗의 빠른 발을 노린다면 몰라도, 로빙 볼을 올려대니 데이빗으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193cm의 헤라르드 피케와 자신과 키가 같은 라모스 사이에서 헤더를 따 내는 것은 확률이 지나치게 낮았다.
'진짜 미치겠네. 저 자식은 생각이 있는 놈이야 없는 놈이야?'
리그를 치루며 충분히 만나본 사이였다. 거기에 대표팀 훈련에서도 서로 간의 스타일도 어느 정도 파악이 되었고 말이다. 그런데 도대체 왜 자신에게 하이 볼을 올려대는 지 알 수가 없었다.
'차라리 그냥 미드필드에서 한 번에 공을 보내 줬으면 좋겠어. 저 멍청한 자식이 어처구니 없는 짓을 못하게 말이야!'
전반에 기록한 선제골도 결국 단 한 번의 롱 패스에 이은 골이었다. 차라리 그게 낫겠다고 할 정도였으니 데이빗이 느끼는 답답함을 짐작할 만 했다.
"헤이! 월콧! 하이 볼은 좀 자제 하라고!"
크게 소리쳐 본다. 자신의 말을 들었는지 월콧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제발 알아 들었기를 바라며 데이빗이 자신의 자리를 찾아 움직였다.
'한 골 차로는 불안하단 말이다 이 자식아!'
바르셀로나를 상대하는 느낌과 비슷한지라, 한 골의 리드로는 너무나 불안했다. 비록 평가전에 불과한 경기였지만 반드시 이겨서 본선 경기가 시작하기 전에 쾌적한 기분으로 출발하고 싶었기에 꼭 이기고 싶었다. 그런데 같은 팀 동료가 영 얼빠진 플레이를 해대고 있으니 짜증이 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는 사이, 데이빗의 불안감이 현실로 다가왔다. 순간 적으로 템포가 바뀐 스페인의 패스 워크에 잉글랜드의 왼쪽 사이드가 무너졌다. 사비 에르난데스가 다비드 실바에게 편안한 상태에서 패스를 연결 시켜 주었고 실바는 후반 시작과 함께 투입된 페르난도 토레스의 발 밑으로 정확한 스루 패스를 찔러 주었다.
비록 소속 팀 첼시에서 극도의 부진을 겪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가 월드 클래스의 선수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깔끔한 볼 터치로 공을 받아 낸 토레스는 침착한 인사이드 슈팅으로 잉글랜드의 골망을 갈랐다. 1 대 1, 경기가 원점으로 돌아갔다.
"교체다 데이빗."
허탈한 표정으로 허리에 손을 올린 채 자신들의 골대를 바라 보던 데이빗에게 제라드가 벤치 쪽을 가리켰다.
IN 대니 웰벡 22
OUT 데이빗 장 7
"후우..."
어쩔수 없었다. 오늘 자신의 시간은 여기까지였다. 아쉬웠지만 사인이 떨어진 이상 따라야 했다. 터벅터벅 사이드 라인으로 걸어 간다. 그리고 의욕에 불타고 있는 대니 웰백과 하이 파이브를 하고 벤치로 향했다.
"잘했어. 자 여기 수건."
"아 고마워 마틴."
마틴 켈리가 건네주는 수건으로 땀을 닦는다. 그리고 자켓을 걸쳐 땀이 한 번에 식는 것을 방지하는 데이빗, 더운 날씨였지만 대회를 앞두고 감기라도 걸렸다가는 낭패였으니 말이다.
"어땠어?"
경기에 대한 간단한 소감을 묻는 켈리, 데이빗은 가볍게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그럭저럭 할 만했어. 월콧이 공격 루트를 좀 더 효과적으로 잡아 줬다면 좋았을텐데, 이젠 뭐 상관 없나."
"하긴, 투 톱 중 한 명이 빠져서 크로스를 올리다니, 좀 당황스럽긴 하더라. 감독도 계속 소리질렀는데 못 들었는지 계속 사이드로 빠지던데, 답답하긴 하더라."
"어쩌겠어. 결과에 대해서는 경기가 끝난 뒤에 책임을 져야 겠지."
수분을 보충하며 크게 신경쓰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감독이 장님이 아닌 이상 그의 멍청한 플레이는 똑똑히 보았을 것이고 그렇다면 분명 조치가 취해질 것이다. 그에 대한 훈계가 되었든 어떤 것이든 간에 자신이 관여할 문제는 아니었다.
"나도 좀 뛰고 싶었는데, 오늘은 개점 휴업이네."
앉아만 있어서 지루하다며 기지개를 켜는 모습, 데이빗은 피식 웃으며 그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본선에서는 기회가 있을거야. 너무 조급해 하지마."
"알고 있어. 몸 상태도 괜찮으니까, 한 번은 기회가 오겠지."
"여기까지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렸다. 최종 스코어는 1 대 2, 스페인의 역전승으로 마무리 되었다. 확실히 데이빗 장이 교체되어 나간 이후, 잉글랜드는 활로를 찾지 못했다. 스페인으로서는 가장 위협적인 상대 선수가 없어진 터라 마음 편하게 공격에 전념할 수 있었고 결국 후반 39분, 교체 투입된 세스크 파브레가스의 결승골에 힘입어 역절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잉글랜드로서는 공격진의 균등하지 못한 레벨 차이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던 경기였다. 데이빗 장, 그리고 웨인 루니를 제외하고는 확실한 카드가 없었다. 저메인 데포가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고는 하지만 그 둘에 비해서는 확실히 무게감이 부족했다. 나머지 두 선수, 시오 월콧과 대니 웰벡은 아직 세계 최고 수준의 무대에는 어울리지 않음을 짧은 시간이었지만 증명해 버리고 말았다.
제라드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쉬운 부분도 있었지만 그럭저럭 소득도 있었다. 존 테리가 빠진 것 치고는 수비 라인이 꽤 안정된 모습을 보였다는 점이 대표적이었다. 패배는 아쉽지만 괜찮은 평가전이었다 자평하며 발걸음을 옮길 때, 뒤에서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음? 페르난도?"
"좋은 경기였어 스티비. 오랜만이야."
오늘 경기에서 오랜만에 골을 기록했기 때문인지 표정이 그럭저럭 괜찮은 토레스였다. 경기 전에 보았을 때는 상당히 어두워 보였던 것을 생각하면 이번 골로 어느 정도 자신감을 회복한 것처럼 보였다.
"그래. 괜찮은 게임이었지."
"괜찮으면 말이야, 유니폼 교환하지 않을래?"
"...얼마든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먼저 유니폼을 벗어 건넨다. 토레스도 씩 웃으며 자신의 유니폼을 벗어 그에게 전해 주었다.
"요즘 좋아 보이네 스티비."
"...뭐 그럭저럭."
"그래도 스티비, 너라도 우승을 해서 다행이야."
"운이 좋았지."
단답으로 끊어지는 대답, 원래 그런 사람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무언가 거리감이 느껴졌다.
"운이라, 그럴수도 있겠네. 저런 친구가 갑자기 나타날거라고 누가 생각했겠어?"
"갑자기라...글쎄, 너도 예전에 저 친구가 리저브에 있을 때 본적이 있었잖아?"
제라드의 말은 결국, 데이빗은 될성 부른 떡잎이었다는 것이다. 토레스는 힘없이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랬지. 어쩌면 난 도망쳤을지도 모르겠다. 저 친구가 내 자리를 위협할거라고, 본능적으로 느꼈을지도 모르겠어."
오랜만에 이 친구와 이야기하는 것 같다고 느꼈다. 한 때 둘도 없는 절친이었던 두 남자의 대화는 진솔했고 그간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로 채워졌다.
"...내가 원하고 꿈꿨던 건, 너와 데이빗이 우리 팀을 이끄는 거였어. 너희 둘이 내 패스를 받아서 골을 터뜨려 주면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을거라 믿었어. 하지만 그건 이제 이루어 질 수 없는 꿈이겠지."
이미 리버풀에서 배신자로 낙인이 찍혀 버린 토레스였기에 복귀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첼시로서도 토레스의 영입에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자한 만큼, 그를 쉽게 포기하긴 힘들었고 말이다. 아무리 부자 구단이라고 해도 5천만 파운드는 가볍게 여길 금액이 아니었다.
"...스티비 너에게는 정말 미안해. 내 고집으로 너에게 못할 짓을 시켰으니까. 어쩌면 난 지금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첼시 이적 후, 극도의 부진에 빠진 자신의 모습을 빗대는 모습에 제라드는 쓴 웃음을 지었다. 그가 자신에게 상처를 준 것은 부인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부진을 바란 적은 없었다.
"신경쓰지마. 프로 세계에선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야. 넌 지금 너무 생각이 많아 보여. 편하게 생각해. 내가 아는 넌 최고의 선수였어."
제라드의 격려에 흐릿한 미소를 짓는 토레스, 그리고 간만에 활기찬 미소를 짓는다.
"고마워. 조금은 편해지는 느낌이네. 아무튼 잉글랜드는 좋은 팀인 것 같아. 이왕이면 우리 나라하고 결승에서 붙었으면 좋겠어."
"그렇게 될 거야. 너희야 말로 우리와 붙기전에 떨어지지 말라고."
"너희나 잘하라고. 우리는 이번에도 우승을 할 거니까 말이야."
"헤이!"
"응?"
경기가 끝나자마자 세르히오 라모스는 잉글랜드의 벤치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자신의 목표를 발견했고 득달같이 달려 들었다.
"좋아 아직 늦지 않았군."
"...???"
숨을 몰아 쉬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스페인어)을 중얼거리는 라모스를 멀뚱히 바라보는 데이빗, 분명 자신에게 용건이 있는 것 같기는 한데 도무지 짐작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는 사이, 더듬더듬 어색한 영어로 대화를 시도하는 라모스.
"잘 하더라. 듣던 것 이상으로 말이야."
"아, 고마워. 당신도 훌륭했어."
발음은 어색했지만 알아듣는 데 문제는 없었다. 데이빗은 상대의 칭찬에 적절히 답례를 하고는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설마 이 얘기를 하려고 그렇게 달려온 것인가.
"그러니까, 경기를 봤거든. 리버풀의. 그때부터...아오, 말을 잘 못하니 영 답답하네."
뒷 부분은 다시 스페인 어였던지라 데이빗은 멀뚱히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무언가 대화를 하고 싶어하는 것 같은데 영어가 제대로 안 되니 답답해 하고 있다는 건 느낄 수 있었다.
'통역사가 근처에 있었는데...'
슬쩍 주변을 살펴 보지만 눈에 들어 오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라모스의 어색한 영어가 계속 되었다.
"...라고 생각했어.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유니폼을 교환해 달라는 거야."
"에?"
자신의 부족한 영어실력 탓에 데이빗이 제대로 알아 듣지 못했다고 생각한 것인지, 라모스가 또박또박 재 확인 시켜주듯 말했다.
"유.니.폼.교.환. 부탁해."
"아, 그러니까 저기..."
"헤이, 세르히오. 뭐하고 있는 거야?"
난감한 표정으로 입을 여는 데이빗에게 구원자가 나타났다. 스페인 대표팀의 세스크 파브레가스가 멀뚱한 표정으로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라모스는 파브레가스의 출현이 반가웠는지 신나게 말하기 시작했다.
"오, 잘왔어 세스크. 넌 잉글랜드에 오래 있었으니까 영어를 잘하지? 이 친구한테 통역 좀 부탁해. 내 발음이 구려서 그런지 잘 못 알아 듣는 것 같아. 유니폼 교환 좀 해달라고 전해줘."
"...미안한데 그건 좀 힘들 거 같은데?"
"...응? 왜?"
고개를 갸웃하는 라모스에게 밝은 표정으로 대답하는 파브레가스.
"미안하지만 내가 먼저 선약이 되 있거든. 그렇지 데이빗?"
"아, 그래 맞아. 갑자기 전화를 받았을 때는 좀 놀랐지만 말이야."
"그만큼 네 유니폼을 노리는 녀석이 많았으니까. 여기 세르히오도 그렇고. 물건은 하나밖에 없으니 미리 예약해놓는게 현명한 일이지."
실제로 파브레가스는 데이빗과 유니폼을 교환하기 위해 아스날 시절의 동료였던 시오 월콧에게 전화를 걸어 그와 연결시켜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리고 성사된 통화에서 평가전이 끝난 뒤 유니폼을 교환하자고 제안했고 거절할 이유가 없었던 데이빗이 흔쾌히 허락함으로써 약속이 성사된 것이다.
두 사람의 유니폼 교환을 멍하니 지켜보고 있는 라모스, 그는 비로소 자신이 한 발 늦었음을 깨달았고 괜시리 파브레가스에게 심술을 부렸다.
"이 여우같은 녀석. 교활하게 미리 선수를 치다니!"
"이왕이면 똑똑하다고 해줘. 준비성이 철저하다고 해도 좋고."
"젠장, 그럼 이거라도 통역해줘. 다음 번에 경기를 하게되면 그때는 꼭 나와 유니폼을 교환해달라고 말이야."
이상하게 전달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으름장까지 놓는 모습, 파브레가스는 낄낄거리며 그대로 전해주었고 데이빗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제서야 어느 정도 마음이 풀리는지 데이빗과 악수를 나누고 터벅터벅 돌아가는 라모스.
"뭐, 성질이 불 같을 때도 있는 친구지만, 보시다시피 그렇게 나쁜 녀석은 아니야."
"어, 재밌어 보이네."
"그렇지. 아무튼 유니폼 교환 고마워. 결승에서 만났으면 좋겠다."
"그렇게 될 거야. 나도 네 유니폼을 받게 되서 기쁘네."
"그럼 다음에 보자."
"그래. 다음 기회에."
============================ 작품 후기 ============================
-아놔..
-예약 등록하는데
-등록 오류가 생기면서 두 번째 편이 날아갔어요...
-멘탈 붕괴
-진짜 키보드 부술뻔
-아 진짜 미치겠네요
-ㅁㅇ리먼이러밍러ㅣ커.터ㅓ재ㅑㅓㄱㅂ
-...내일은 멘탈 회복해서 반드시 두 편 들고 오겠습니다...ㅠㅠ
-지금은 의욕이 팍 떨어져서 좀 쉬어야 겠어요
-아오 진짜...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