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he Answer-257화 (257/346)

00257      =========================================================================

"힘들겠네..."

프랭크 램파드는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전광판에 표시된 시각은 어느새 후반 40분, 그리고 방금 추가골을 허용하며 3 대 0으로 점수차가 벌어졌다.

세 번째 골의 주인공은 루이스 수아레즈였다. 이번 경기에서 자신들의 오른쪽 사이드를 탈탈 털어버린 마르코 로이스가 다시 한 번 폭발적인 돌파를 선보였다. 데이빗뿐만 아니라 자신도 드리블 돌파에 일가견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는 것처럼 순간적으로 첼시의 수비진을 붕괴시킨 로이스는 침착하게 라스트 패스를 수아레즈에게 연결시켜 주었고 이를 수아레즈가 침착하게 마무리하며 격차를 더욱 벌린 것이다.

"진짜 이제 챔피언스 리그밖에 남지 않게 된건가."

리그 우승은 이미 예전부터 물 건너 간 상황이다. 하지만 최소한 유로파 리그 진출권을 따낼 수 있는 순위는 확보해 두고 싶었다.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 진출하긴 했지만 우승을 장담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하지만 오늘 패배로, 비록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지만 거의 패한 것이나 다름 없었기에 6위 달성은 물 건너 가버린 셈이 되었다. 남은 한 경기의 결과로는 순위에 영향을 미칠 수 없었으니 말이다.

이를 알고 있는 동료들 역시 급격히 의욕을 잃어 버린 모습이었다. 경기 종료까지 로스 타임을 합쳐 봐야 7~8분 남짓한 시간, 아무리 기적과도 같은 역전이 일어나곤 하는 것이 축구라는 스포츠지만 3골을 뒤집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봐야 했다. 특히 오늘, 상대는 우승을 눈 앞에 두고 있는 리버풀이었으니 말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우승에 자그마한 불안요소도 발생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플레이에 절도가 있었고 맺고 끊음이 확실했다. 차라리 우승에 대한 흥분으로 무작정 달려들기만 했다면 자신들에게도 찬스가 있었겠지만 오늘 리버풀의 경기력은 확실히 우승자에 걸맞는 그것이었다.

"부럽다 부러워."

경기장 이곳 저곳을 누비며 마지막까지 동료들을 독려하는 제라드의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애써 냉정을 유지하려는 모습, 하지만 숨길 수 없는 환희와 격정이 느껴졌다. 그는 지금 빨리 전광판의 시계가 멈추길 바라고 있으리라.

"우리도 저 녀석만 있었다면..."

세번 째 골이 들어가자 리버풀에서는 주포 데이빗 장을 교체해 주었다. 남은 시간을 감안했을 때 굳이 공격 쪽에 힘을 실을 필요는 없었고 이대로 굳히기에 들어가도 충분한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이는 달글리시 감독의 배려이기도 했다.

짝짝짝짝짝짝-

오늘 40호 골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한 데이빗 장에 대한 관중들의 예우였다. 모든 관중들이 일어나 그들의 젊은 영웅을 향해 기립 박수를 보내주고 있었다. 데이빗은 천천히 피치 밖으로 움직이며 그들의 예우에 감사를 표했다.

"복 터졌네 스티비."

동료들에게 지시를 마쳤는지, 무뚝뚝한 표정으로 한숨 돌리고 있는 제라드를 향해 슬며시 말을 건다. 제라드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램파드의 시선을 확인하고 수긍했다.

"뭐...이대로 우승을 못하고 끝나란 법은 없는 것 같군."

"부럽네. 우리도 저런 친구 하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탐내지 마라. 더 이상 우리 선수들이 다른 팀에서 뛰는 건 보고 싶지 않아."

"농담이야 농담. 아무튼 축하해."

"경기 아직 안 끝났어."

방심은 금물이라는 제라드의 말에 램파드는 웃음을 흘린다. 얼마나 간절히 원했으면, 단 5분 조차도 마음을 놓지 못하는 것일까.

"그래, 그거야 그렇지."

굳이 더 이상 이야기를 나눌 필요는 없었다. 램파드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기 위해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오 제발..."

"신이시여..."

전광판의 시계는 멈추었다. 그리고 3분이 주어진 로스 타임도 거의 다 지나갔다. 이제 남은 시간은 고작해야 30초나 될까, 안필드는 미묘한 술렁임 속으로 빠져들었다. 폭발하기 직전의 화산과도 같은 느낌이랄까, 안절부절하지 못하는 팬들이다. 눈을 감고 기도하는 모습도 보였고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일어서길 반복하는 사람도 보였다. 그들에게 이 30초는 세상에서 가장 긴 시간이었으리라.

"도대체 언제 끝나는 거야?"

"미칠 것 같아. 젠장! 빨리 좀 끝내라고!"

남은 시간 첼시가 역전할 가능성은 물리적으로 0에 가까웠지만 팬들의 인내심은 그리 크지 않았다. 그들은 1초라도 이 초조한 마음을 벗어 던지고 싶었다.

그리고 마침내, 경기 종료를 알리는 심판의 휘슬이 울렸다.

"우아아아아악!!!!"

"우승이야! 씨발!!! 우승이라고!!!!"

관중석은 난리가 났다. 아니 관중들 뿐만 아니었다. 선수들도, 감독도, 코칭 스탭들도, 장내 아나운서까지 모두들 이성의 끊을 놓아 버렸다.

"캡틴!!"

교체되어 벤치에서 남은 경기를 지켜보고 있던 데이빗은 환하게 웃으며 피치 위로 달려 갔다. 리버풀의 우승을 축하하는 붉은색 색종이가 어지럽게 날리는 가운데 선수들이 한데 엉켜 감격을 누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과 한 발 떨어진 곳에서 차오르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울고 있는 제라드를 볼 수 있었다.

"울지 마요! 이 좋은 날에 왜 울고 그래요?"

소리를 지르지 않으면 알아 들을 수 없을만큼 경기장 전체가 광란에 휩싸여 있었다. 제라드는 뭐라 말을 하지 못한채 그저 데이빗을 얼싸 안으며 눈을 질끈 감을 뿐이었다.

"고맙다! 정말 고마워! 넌 정말 최고야!"

눈물을 흘리면서도 자신에게 감사를 표하는 제라드의 모습에 코 끝이 찡해졌다. 할 말이 많았지만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저 눈물을 흘리는 캡틴과 함께 이 순간의 감동을 즐기는 것으로 족했다. 그리고 그들의 머리 위로 붉은색의 색종이가 내려 앉았고 팬들의 노래 소리가 함께했다.

당신이 폭풍 속을 걸어갈 때

머리를 들어요

어둠을 두려워 하지 마세요

그 폭풍의 끝에는

황금빛 하늘과

종달새의 달콤한 은색 노래가 있을 거에요

바람을 헤쳐 나아가요

비를 헤쳐 나아가세요

당신의 꿈이 내던져지고 사라진다해도

계속 걸어요 계속 걸어요

가슴에 희망을 품고 걸어 가요

그럼 당신은 절대 혼자 걷지 않을 거에요

평소에도 리버풀의 경기가 있는 날에는 언제나 들을 수 있는 노래, 하지만 오늘은 조금 느낌이 달랐다. 울음 섞인 팬들의 노래 소리는 선수들에게 큰 감동을 안겨 주었다. 어느새 제이미 캐러거도 눈물 범벅이 된 얼굴을 훔치느라 바빴고 다른 선수들도 시큰해진 코를 매만졌다.

그리고 흥분을 이기지 못한 팬들이 결국 그라운드 위로 달려 나오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막아 보려고 하는 안전 요원들이지만 한 손으로 열 손을 막을 수는 없는 법, 결국 얌전히 있던 관중들까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경기장으로 뛰쳐 나갔다.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무려 20여 년을 기다린 그들이다. 선수들은 몰려드는 관중들의 모습에 순간 당황했지만 이내 환한 웃음으로 그들을 반겼다. 그들은 자신들의 소망을 이루어 준 영웅들과 한 번이라도 포옹을 나누고 싶어 했고 그들의 유니폼이라도 만지길 원했다.

"자...잠깐만요!"

데이빗은 관중들의 난입에 냉정히 대처하는 선수 중 한 명이었다. 그들과 웃으며 가벼운 포옹을 나누었고 하이 파이브를 한다던가 하면서 우승의 기쁨을 만끽했다. 한 남성이 저돌적으로 자신에게 달려들기 전까지는 말이다.

"오 씨발 데이빗! 넌 최고야! 난 널 사랑한다고!"

머리가 벗겨진 한 중년 남성이 코뿔소처럼 자신에게 달려 들었고 억센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잡았다. 이후 행동이 머리속에 그려지자 데이빗은 당황했고 반항(?)했지만 남자의 힘은 강했다. 그리고 입술을 강탈 당한 데이빗, 이후 다른 사람들도 자신과 키스랄까 뽀뽀랄까, 아무튼 입술을 들이밀기 시작했기에 기겁하며 도망다니기에 바빴다.

관중들의 난입은 쉽게 정리되지 않았다. 이미 수백, 수천에 달하는 인원들이 그라운드 위로 올라와 버린 상황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안전 요원들은 그들의 흥분이 가라 앉기를 기다린 뒤에야 자신들의 의무를 다할 수 있었다. 하나 둘 요원들의 통제에 따라 좌석으로 돌아가는 팬들, 선수들은 왁자지껄 이야기를 나누며 곧 들어올릴 우승 트로피를 기다렸다.

"입술을 빼앗긴 기분은 어때?"

"저 사람 게이는 아니겠지? 잠깐, 가까이 오지마. 멀찍이 떨어져서 이야기 하라고."

"젠장! 나도 피해자라고! 멀쩡한 사람 게이 취급하는 건 그만둬!"

낄낄거리며 자신을 놀리는 동료들의 모습에 발끈한 데이빗,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동료들의 짖궂은 놀림은 멈추지 않았다. 그들의 장난은 바클레이스 프리미어 리그 우승컵이, 그들의 구단주와 함께 그라운드로 입장할 때가 되어서야 멈췄다. 말끔하게 단장한 차림으로 밝은 미소와 함께 경기장으로 들어온 존 헨리 구단주는 준비된 마이크를 잡고 소감 연설을 시작했다.

"오늘은 아주 멋진 날입니다."

우와아아아!!!

간단한 축사의 시작이었지만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존 헨리 구단주는 만족한 듯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제가 리버풀이라는 구단을 맡게 된 이후 언제나 즐거운 모험의 연속이었습니다. 리버풀이라고 하는 클럽은 저에게 생활의 일부가 되었고 저는 완벽히 이 클럽의 매력에 빠진 추종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이 클럽의 영광스러운 역사가 재현되는 장면을 이 자리에서 볼 수 있게 되어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의 승리는 이곳에 모인 팬들 여러분의 것입니다. 앞으로도 우리에게는 많은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흥미진진한 새로운 모험이 시작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에 승리의 영광이 가득할 거라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짤막한 축사가 끝나자 다시 한번 함성이 쏟아진다. 존 헨리는 이어 선수들과 하나 씩 악수를 나누며 그들의 노고를 치하했다.

"역시 캡틴 제라드 다웠네. 자네의 리더십은 정말 특별한 것이었어. 물론 플레이어로서도 완벽했지. 앞으로도 이 클럽을 위해 헌신해주게나."

"물론입니다."

제라드는 평소 성격대로 짤막하고 묵직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여러 선수를 거쳐 마지막으로 데이빗의 앞에 선 존 헨리.

"우리의 젊은 영웅을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군."

대뜸 영웅이라 칭하는 구단주의 말에 데이빗이 어색한 미소를 띄운다.

"자네가 없었다면 오늘 이런 멋진 결과가 있을 수 있었을까? 정말 세계 최고의 선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네. 앞으로도 좋은 활약을 보여주길 바라네."

"감사합니다. 저도 그럴 생각입니다."

악수를 마치고 드디어 프리미어 리그 우승컵이 그들에게 왔다. 가장 먼저 존 헨리가 우승컵을 들고 기쁨을 누렸다. 그리고는 선수단의 대표, 스티븐 제라드에게 트로피를 넘겼다.

"역시 이건 자네들이 들어야 빛이 나는 물건이지. 한 시즌 동안 정말 수고 많았네."

"감사합니다."

구단주의 손에서 우승컵을 받아 든 제라드, 그리고 감회서린 눈빛으로 은색의 트로피를 바라 보았다. 상단 부분에 금색의 왕관 모양이 씌워진 이것을 들기 위해 얼마나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던가. 제라드는 떨리는 손으로 트로피를 움켜 쥐었다. 그리고 가슴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격정을 숨기지 않고 토해냈다.

포효하며 트로피를 흔드는 제라드, 선수들은 곁에서 함꼐 뛰며 최고의 순간을 만끽했다. 한 시즌 동안의 고생이 모두 보상받는 느낌, 말로 표현하기 힘든 벅찬 감동이 밀려 왔다.

"자, 들어봐."

제라드에 이어 부주장 제이미 캐러거가 우승컵을 번쩍 들어 올리는 세레모니를 맛 보았다. 캐러거는 다음 차례를 데이빗에게 넘겼다.

"제가요?"

"그래, 니가 먼저 들어도 아무도 뭐라고 할 사람은 없을거야. 넌 그럴만한 자격이 있어."

그보다 경력이 오래된 많은 선수들이 있었지만 다들 웃으며 어서 들어 올리라고 종용할 뿐이었다. 데이빗은 그들의 배려에 감사하며 트로피를 번쩍 들어 올렸다. 자신도 모르게 격한 목소리로 환호하게 되는 마력이 있었다.

'기분 좋다. 정말로.'

이 트로피가 무엇이길래 사람을 이렇게 열광하게 하는 것일까. 확실한 것은 데이빗은 이미 우승이 주는 감동, 희열을 맛보았다는 사실이다.

'더 많이, 더 자주 이 기분을 느끼고 싶어.'

자신과 자신의 동료들이 아닌, 다른 팀이 이 기분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다.

============================ 작품 후기 ============================

-아오...

-로유진 작가님을 언급한 것이 실수였을 줄이야

-하아...

-이 무시무시한 코멘 숫자라니..ㅠㅠ

-저 남자입니다. 남자라구요

-올해 예비군 6년 차, 이제 내년이면 7년 차인 성인 남성이란 말입니다

-차라리 마법사라고 불러줘요

-)*( ...에 추천 날린다고 해도 괜찮으니

-저의 성 정체성을 바꾸지 말아주세요 ㅠ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