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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식사는 썩 훌륭했다. 데이빗이 추천한 레스토랑은 제라드의 입맛에도 괜찮았다. 가끔 동료들로부터 '저 녀석은 미각이 썩었어! 아무거나 다 맛있다고 하는 녀석이야!'라는 놀림을 받기도 하는 데이빗이었지만 말이다.
"그러니까..."
식사를 하는 중에는 가벼운 화제를 나누었다. 경기에 대한 이야기 대신 신변 잡기에 대한 이야기, 자동차, 연애, 취미 생활 등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고 제라드는 자신의 경험, 그리고 생각을 그에게 말해 주었다. 그리고 디저트를 즐길때가 되어서야 데이빗은 본론을 털어 놓았다.
"올림픽 대표라..."
한숨을 쉬며 되뇌인다. 사실 제라드로서도 그가 올림픽 대표에 합류하는 것은 말리고 싶었다. 얼마 전 발표된 유로 2012 본선 명단에도 이름을 올린 데이빗이었다. 지난 국가 대표 경기에서 다른 공격수들을 압도하는 좋은 활약을 보인 그였기에 이번 본선 무대에서도 중용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대부분의 경기에서 선발로 나설 것이고 풀 타임에 가까운 시간을 소화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올림픽 대표 차출은 선수에게 부담이 너무 크다고 생각했다.
"사실, 난 말리고 싶은 게 사실이야."
그래서 숨기지 않고 본심을 먼저 이야기한다. 그는 데이빗 장이 지나치게 혹사당하지 않기를 원했다. 자신이 경력을 이어나갈 수 있는 시간도 이제 몇 년 남지 않았다. 그 시간동안, 이 최고의 선수와 함께 많은 성공을 맛보고 싶은 것이 솔직한 마음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니 생각이겠지. 어때? 꼭 가고 싶은 거지?"
진지하게 그의 진심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데이빗은 조심스레 수긍한다.
"네, 어쩌면 제 고집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번이 지나면 사실상 두 번 다시 올림픽에 나가지 못할 확률이 높겠죠. 다음 올림픽에서는 제 나이도 23살이 넘어가니까요."
"그렇지. 와일드 카드 차출은 좀 다른 이야기니까."
실제로 와일드 카드 폐지론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다음 올림픽에서 와일드 카드가 아예 없어질 지도 모르는 판국이라 반드시 참여하고 싶다면 이번에 나가는 것이 맞았다.
"그래서 좀 힘들어도, 이번에는 꼭 나가고 싶어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라고 하는 게, 별거 아닐 지도 몰라요. 하지만 나중에, 은퇴한 뒤에도 하나의 추억거리가 될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할 것 같아요."
자신의 속내를 가감없이 밝히는 데이빗의 모습에 제라드는 웃음을 흘렸다. 자신도 선수다 보니 잘 알 수 있었다. 보통 사람들이 불합리하다고 여기는 부분, 명예욕일 수도 있었고 나쁘게 보면 자기 과시욕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선수마다 추구하는 가치가 다를 수 있었고 데이빗이 원하는 가치를 존중해 주기로 했다.
"네가 그런 생각이라면 반대해 봤자 의미가 없겠지. 구단에서 아마 결사코 반대할 텐데, 그건 각오했겠지?"
"사실, 구단과 원만히 이야기를 끝내고 싶지만 구단에서 반대할 거라는 건 잘 알고 있어요. 그래서 다음 경기에서 우승을 확정 짓고 나서 이야기를 꺼낼 생각이에요. 덤으로 40호 골도 달성하고 말이죠."
자신의 계획을 밝히는 모습에 제라드는 괜찮은 생각이라고 여겼다.
"나쁘지 않아. 좋은 생각이야. 우승을 확정 짓고 나서, 그리고 최고의 기록을 달성한 뒤에 이야기한다면 너의 주장에 권위가 확실히 더 실릴테니까."
그리고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린다.
"그 얘기를 나에게 하는 건, 결국 구단에게 지원 사격을 좀 해달라는 거겠지?"
"안 될까요?"
헤헤 웃으며 물어오는 모습에 제라드가 피식 웃음을 흘린다. 안 될건 없다. 오히려 데이빗이 차출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밝힌 이상, 구단과 심한 갈등을 겪지 않도록 조정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최선일 터였다. 혹시나, 그럴리는 없겠지만 이런 일로 구단과 데이빗의 사이가 안 좋아진다면 그거야 말로 최악의 상황이 될 것이다. 그런 일은 절대로 사양하고 싶었다.
"오늘 식사는 뇌물같은 건가?"
장난스럽게 치즈를 씹으며 이야기했고 데이빗은 과장된 표정으로 손을 내저었다.
"그럴리가요. 이건 어디까지나 점심 식사에 불과할 뿐이에요."
그런 의도가 아니었노라며 홰홰 손을 젓는 데이빗의 모습에 제라드가 실소를 흘린다.
"뭐, 얻어 먹은게 있으니 거절하기도 힘들군 그래. 알겠어."
질질 끄는 성격이 아닌지라 시원하게 허락한다. 데이빗은 밝은 표정으로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캡틴!"
"뭐, 알아서 잘 하겠지만, 정말 몸 관리를 잘 해야 해. 알고 있지?"
"그럼요! 절대 무리하지 않을 거에요!"
'나가는 것 자체가 무리라고 생각되지만, 뭐 상관 없나.'
이왕 나가기로 마음 먹은 것, 기분 좋게 보내주는 게 낫겠다 싶었다. 그리고 이리저리 날짜를 계산해 보니 아예 터무니 없는 수준도 아니었고 말이다.
"일단, 다음 경기는 무조건 이겨야 겠군 그래. 뭐 원래 질 생각 따위는 눈꼽만큼도 없었지만 말이야."
그래야 네 휴식 시간이 길어지겠다며 제라드가 언급했다.
"그래야죠. 열흘 동안 추가로 쉴 수 있는 지 여부가 결정될테니 말이에요."
"뭐, 혹시 감독님이 이겨도 널 최종전에 내보낼 수도 있겠지만, 아마 그러진 않겠지. 마지막 경기가 홈 경기도 아니고 우승을 확정 지은 상황에서 굳이 주전들을 내보낼 필요도 없으니 말이야. 아마 리저브를 끌어 올려 경험을 쌓는 기회로 활용할 거야. 네가 첼시 전에서 40호 골만 기록한다면 말이지."
"그렇겠죠?"
"그래, 다음 경기에서 이겨도 골을 넣지 못하면 분명 출전하게 될 거야. 나같아도 그렇게 하겠지."
당연하다며 제라드가 덧 붙인다. 39호 골과 40호 골, 단 한 골차에 불과하지만 의미하는 상징성 자체가 다르다. 무엇보다 팬들이 간절히 원하는 대기록이다. 10여 년간 자신들의 팀에서 득점왕을 배출하지 못했다는 갈증이 쌓여 지금에 이르렀고, 그래서 그들은 데이빗이 리그 최초의 대기록을 달성하길 원했다.
"그럼...5월 말에 소집되는 국가대표 소집까지 거의 한 달...한 달이 조금 안되는 시간 동안 휴식을 취할 수 있겠네. 그리고 올림픽 대표 감독과 기술 위원이 사전 소집을 하지 않겠다고 했지? 그럼 유로 2012 일정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최대 한 달 이상, 혹은 3주 정도는 추가로 쉴 수 있고..."
손을 꼽으며 정리한다. 데이빗은 차분히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그래, 나도 적극적으로 구단을 설득해 볼게. 그래도 분명 난색을 표할테지만."
"충분해요. 고마워요 캡틴."
정중히 감사를 표하는 데이빗의 모습에 제라드가 손사래를 친다.
"괜찮아.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이적하고 싶다는 상담만 아니면 상관 없어. 넌 그런 상담 할 거 아니지?"
넌지시, 농담조로 은근히 진심을 담아 물어 온다. 데이빗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전 지금 정말 만족하고 있어요. 이 클럽이 절 필요 없다고 하면 모를까..."
"그럴 일은 없을테니 걱정하지 말도록."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거야?'
리버풀이 미치지 않고서야 데이빗이 필요 없어질리 없지 않은가. 메시, 또는 호날두와 같은 급의 선수 사오지 않는 이상 그럴 일은 없었다. 그리고 그런 급의 선수를 사올 돈이면 데이빗을 잡는 게 여러모로 보아도 이득이었다. 돈도 돈이지만 프랜차이즈라는 상징성은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가치였으니 말이다. 팬들의 충성심을 끌어 올리는 방법 중 한 가지는 클럽의 역사와 함께 하는 프랜차이즈의 존재였다.
"일단, 그 얘기는 그쯤 하고 다음 경기에만 집중하면 된다. 다음 경기에서 이기지 못하고, 기록 달성도 이루지 못하면 너에게도 부담이 커지는 거야. 알고 있겠지?"
"그럼요. 걱정하지 마세요."
자신감 있는 표정, 데이빗은 당당히 말했다.
"아무런 이변도,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에요. 우리는 경기를 잘 치를 거고, 우승컵을 들어 올릴겁니다. 그게 다에요."
"태워다 줘서 고맙다. 그럼 내일 훈련장에서 보지."
"오늘 얘기를 들어줘서 고마웠어요. 푹 쉬세요 캡틴."
데이빗과 일별한 제라드, 저택에 들어가기 전 휴대폰을 꺼냈다.
"어, 나야 스트런."
자신의 에이전트에게 전화를 건 제라드, 그리고 빠르게 용건을 밝힌다.
"아 별 일은 아니고 말이야, 조만간 인터뷰를 준비해야 할 것 같아서. 나? 이적? 그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야. 대낮부터 술이라도 마신거야?"
"그래 농담이겠지. 아무튼, 나와 관련된 인터뷰는 아니고, 어쩌면 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미리 준비해서 나쁠 건 없을 테니까. 그리고 아마 해야 할 것 같고 말이야."
"내 얘기는 아니라니까. 그래, 자세한 건...내일 한 번 만나서 이야기 하자. 그래 저녁 시간 쯤이 좋겠어. 오케이. 그럼 내일 보자."
띡-
통화를 마치고 쓴 웃음을 짓는다. 이왕 밀어 주기로 한 것, 확실히 해주고자 마음 먹었다.
"구단과 미팅이야 하겠지만 처음부터 흔쾌히 허락해줄 리는 없으니까."
어느 정도 인터뷰를 통해 여론을 몰 필요가 있었다. 자기 자랑 같지만 자신의 인터뷰는 꽤 영향력이 있는 편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래, 해줄테니 이적만 하지마라."
올림픽이 끝나고 나서도 감독, 그리고 스탭들과 상의하여 그에게 조금 휴식을 준다면 회복할 시간은 상당히 확보할 수 있으리라. 제라드는 고개를 흔들며 집으로 들어갔다.
"완성 되었대?"
"그래, 지금 몇 몇 친구들이 가지러 갔어. 조금 있으면 올 거야."
첼시 전을 앞두고 리버풀 팬들도 바빴다. 89-90 시즌 이후 우승을 차지한 적이 없는 리버풀, 만 22년 만에 우승을 눈앞에 두고 있는 만큼 그들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우승을 확정 지으면 역대 최대 규모의 대형 통천을 들어 올릴 계획을 준비했다. 그리고 그 거대한 작품이 준비 완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고 뜻을 같이 하는 몇 몇 지지자들이 그것을 운반해 오기로 한 것.
"왔다!"
"다들 이리 와 보라고! 정말 끝내주는 멋진 녀석이 도착했단 말이야!"
다들 하던 일을 내려 놓고 모여 든다. 성질 급한 이들은 빨리 펼쳐 보라며 아우성이었다.
"기다려 봐. 지금 펴고 있잖아."
"조심해. 혹시 망치기라도 하면 끝장이야. 이제는 만들 시간도 부족하다고!"
조심스럽게 말린 통천을 펼치기 시작했다. 조금씩 펼쳐지는 통천, 이윽고 완벽히 모습을 드러내자 모두 벅찬 표정으로 감상했다. 이것을 만드느라 각자 비용을 각출하긴 했지만 전혀 아깝지 않았다.
"정말 멋지네."
한 남성이 코 끝을 문지르며 말했다. 붉은 색 바탕에 리버풀의 로고가 큼지막히 박혀 있었다. 그리고 19번 째 우승이라는 멘트와 함께 적혀 있는 검은색 문구.
You Will Never Walk Alone Ever and Ever
"문구를 좀 더 특별하게 만들었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이게 어때서 그래? 우리 팀의 모토잖아. 이보다 더 상징적인 말이 어디있다고?"
"아니, 그래도 응원가와 비슷하니까. 이상하다는 건 아니었아."
"그래, 그래도 우리의 진심이 담긴 말이면 충분해. 아니면 문구를 정하느라 우리가 밤새 토론했던 거 기억 안나? 그걸 다시 반복하고 싶은 건 아니겠지?"
다들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았지만 마음은 같았다. 얼마나 이런 순간을 기다려 왔는지 모른다. 며칠 뒤면 드디어 자랑스럽게 최고의 순간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닥쳐."
"뭐! 왜? 아직 말도 안 꺼냈다고."
억울한 듯 항변하는 남자, 하지만 다른 동료들의 눈총을 받아야 했다.
"너 이 자식아, 분명 다음 경기에서 뭐, 우승을 못하면 어쩌지? 이딴 소리를 하려고 했잖아?"
"그래, 재수 없는 소리는 하지도 마. 무조건 우승할거야. 우리는 반드시 이걸 다음 경기에서 사용할 거라고."
연달아 쏘아붙이는 말에 침몰한다. 궁시렁거리며 펼친 통천을 다시 정리하는 작업을 시작하는 남자.
"아무튼, 다들 다음 경기를 위해 몸 관리 잘 하라고. 우리는 그 어느때보다 큰 목소리를 내야 해. 우리의 목소리가 선수들에게 힘이 된다, 그게 우리의 자부심 아니겠어?"
"당연하지. 다음 날 목소리가 안나와도 좋아. 무조건 끝까지 달린다."
"걱정 말라고. 지금부터라도 소리를 지를 수 있을 것 같으니까. 경기가 끝날 때까지 말이야."
가슴을 팡팡 두드리며 자신감을 보이는 동료들, 리더로 보이는 남자는 엄지를 세우며 그들의 의기를 높이 샀다.
"혹시나 몸이 아파서 그날 경기에 오지 못하게 되면 평생 후회할 테니 다들 알아서 잘 하라고."
"장사 한 두번 하나. 걱정 말라니까."
"그나저나, 이거 미리 예행 연습을 좀 해봐야 겠는데? 실제 스탠드에서 얼마나 차지하게 될지, 몇 명이 들고 있어야 할 지 확인을 해봐야 하지 않나?"
일리 있는 지적, 하지만 리더는 괜찮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제작할 때 이미 스탠드 사이즈를 고려해서 제작했어. 빌이 경기 전에 미리 좌석에 표시를 해 둘거야. 그러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역시 꼼꼼하네. 그럼 더 준비할 건 없겠지?"
"그래,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고."
============================ 작품 후기 ============================
-데이빗은 주장에게 징징거리기 스킬을 시전했다
-주장은 이 씨..ㅂ이 아니라 상태이상- 설득 상태가 되었다
-어디가나 서포터들 목소리 부심이랄까
-목이 쉬지 않으면 너 응원 열심히 안했다는 눈총을 받기도....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부심
-전 예전에 한 팀을 응원할때 언제나 목이 맛탱이가 갔다는
-성대가 약해서
-딱히 응원을 열심히 안해도 열심히 한 것처럼 부심을 부릴 수 있었다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