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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마라..."
땅에 엎드린 채 오열하고 있는 데이빗, 그리고 가까이 다가온 제라드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하지만 듣지 못한 것인지 여전히 눈물을 멈추지 못하고, 고개를 들지 못하는 데이빗의 모습에 제라드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나는 이렇게 슬퍼할 자격도 없지. 아니, 이 녀석을 제외하면 누구도 이번 경기에서 눈물을 흘릴 자격이 없을 거야.'
지금 자신의 눈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이 어린 친구가 아니었다면 오늘 자신들은 홈에서 치욕적인 경기를 치러야 했을 것이다. 골은 언감생심, 기록적인 대패나 당하지 않았으면 다행일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미안하다."
짓씹는 입술 사이로, 힘겹게 비틀린 음성이 새어 나온다. 힘겹게 사과하는 제라드, 그는 자신이 부족했노라 털어 놓는다.
"내가...널 도와주지 못했다. 넌...잘했어. 그러니까 고개를 들어."
그는 애처롭게 울고 있는 동료를 볼 면목이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어쨌거나 경기는 이제 끝났다.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 들여야 할 시간이다. 그가 자신과, 다른 동료들의 플레이를 비난한다고 해도 받아 들일 수 있었다. 차라리 그래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 정도였다. 이렇게 슬퍼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더 힘들었다.
"그만...일어 나라. 넌 정말 잘했어."
그의 어깨를 붙잡고 억지로 일으킨다. 힘없이 제라드의 손길을 따라 일어나는 데이빗, 팔로 자신의 눈가를 슥 훔친다. 완전히 닦이지 않는 눈물로 얼굴은 엉망이 되어 있었다. 그래도 스스로 진정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에 제라느는 조금 안도할 수 있었다.
"가자...오늘 수고 많았다."
가볍게 그와 포옹하며 그의 머리를 매만져 주었다. 데이빗은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조그만 목소리, 아직 울음기가 남아 조금 쉰 목소리로 조용히 화답했다.
"캡틴도...수고 많았어요."
"...그래."
대답하면서 자신에 대한 혐오감이 들 정도였다. 도대체 오늘 자신이 이 경기에서 한 일이 무엇이 있나 싶었다. 데이빗이 골을 넣는 모습을 뒤에서 멍하니 지켜 보기만 했다. 수비에서는 상대 공격수에게 해트트릭을 허용하며 데이빗이 벌어다 준 골을 까먹기만 했다. 수고라는 말이 가당키나 한가 싶었다.
"가자. 마지막까지 응원해준 팬들에게 인사를 해야지."
선수로서의 예의를 다 하자고 그를 이끈다. 비록 팬들이 원하는 최고의 결과를 이끌어 내진 못했지만 말이다. 제라드는 데이빗과 함께 동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움직였다. 허탈함, 분노, 슬픔, 부끄러움 등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고 있는 그들을 보며 무뚝뚝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경기는 이제 끝이야. 다들...여러가지로 생각이 많겠지만 지금은 일단 팬들에게 인사를 해야해."
경기를 끝까지 지켜보며 마지막까지 응원을 아끼지 않은 그들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어야 했다. 선수들은 주섬주섬 몸을 움직이며 관중석쪽으로 향했다. 선수들이 다가오자 쏟아지는 성원, 그들로서도 결과가 아쉽고 패배한 것이 슬플 것이 분명한데 눈물과 아쉬움을 감추고 선수들에게 성원을 보내주고 있었다.
"...차라리 욕을 먹었으면 시원할 것 같아."
그들에게 박수를 치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은 지 캐러거가 그렇게 읆조렸다. 다른 선수들의 마음도 마찬가지였다. 경기 결과로만 놓고보면 손에 땀을 쥐는 명승부였다. 하지만 리버풀 선수들 대부분에게 있어서는 치욕에 가까운 경기였다. 오늘 경기를 대등하게 끌고 가는데 그들이 한 역할은 미비하기 짝이 없었다. 데이빗, 그리고 그나마 1인분의 역할을 해준 것은 제라드와 레이나 밖에 없었다. 나머지는 꿔다 놓은 보리자루라고 해도 할 말이 없는 지경. 그러니 지금 팬들의 성원이 오히려 그들을 부끄럽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젠장..."
결국 자괴감을 이기지 못했는지, 다니엘 아게르가 눈물을 흘린다. 평소 다혈질적인 그는 그만큼 솔직했다. 팬들의 따뜻한 성원이 오히려 그를 눈물 흘리게 만들었다.
그라운드를 천천히 돌며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 선수단은 힘이 빠진 발걸음으로 경기장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잠깐만, 시간 좀 내 줄래?"
조금 딱딱한 영어가 들려 온다. 데이빗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반응했고 고개를 돌렸다. 의외라면 의외의 인물이 서서 자신에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리오넬 메시, 상대 팀의 에이스이자 세계 최고의 선수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조금은 잠긴 목소리로 데이빗이 용건을 묻는다. 메시는 시원한 미소를 지으며 조금은 어색한 영어와 함께 손을 내밀었다.
"좋은 경기였어. 너와 너희 팀은 정말 최고였다고 생각해."
"...그쪽이야 말로. 그래, 좋은 게임이었어."
자신이 승자의 입장에서 그에게 악수를 청하고 싶었다. 그럴 수 있었다면 자신도 저렇게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경기를 마무리할 수 있었을 텐데.
"우리 팀이 올라가게 되긴 했지만, 승부를 가리지 못한 느낌이야. 실제로 두 번 다 무승부였고."
"위로해 주지 않아도 괜찮아. 룰이 그렇다는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고, 실제로 너희 팀은...올라갈 자격이 충분히 있는 팀이니까."
솔직한 마음이었다. 자신이 만나본 팀들 중에서 가장 강한 팀이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맨체스터 시티, 아스날, 첼시 등...프리미어 리그를 주름잡는 강 팀들과 모두 경기를 치러 보았지만 이 정도로 힘든 상대는 처음이었다. 메시는 자신들을 인정하는 듯한 데이빗의 발언에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 너희 팀도 정말 강했어.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으면서도, 또 만나서 이런 멋진 경기를 치르고 싶은...하하, 좀 말이 안 맞나? 내가 영어가 좀 어색해서. 양해 부탁해."
"아냐, 충분히 잘 하네.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
메시의 감상은 데이빗이 느끼는 감정과 거의 비슷했다.
다시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 복수하고 싶었다. 하지만 만나기 싫었다. 이 정도로 징하게 강한 상대는 또 만나기 무서웠다.
"그래서 말인데...사실 리그가 다르다 보니 언제 또 널 만날지 모르는 일이고."
주섬주섬 자신의 상의를 벗는다. 그리고 유니폼을 들어 자신에게 건네 온다.
"유니폼 교환하자."
"아, 그래."
그제야 부랴부랴 자신의 유니폼을 벗는 데이빗이다. 땀으로 범벅이 된 유니폼, 조금만 더 땀을 흘렸다면 이길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속을 스치지만 금방 털어 버린다. 그리고 메시가 들고 있는 그의 유니폼을 받아 들고 자신의 유니폼을 건넨다.
"고마워. 사실 내년 챔피언스 리그에서 만날 수 있을 것 같긴 한데...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그때 또 교환하면 되겠네."
"하하, 네 말이 맞아. 그래. 그때도 이런 멋진 경기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가볍게 포옹을 나누고 작별한다. 데이빗은 손에 든 메시의 유니폼을 바라 보았다. 자신이 입는 사이즈보다는 좀 작았다. 같은 등 번호, 그리고 자신의 유니폼과 마찬가지로 땀으로 절어 있었다. 그 또한 이 경기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증거.
'다음에 만날땐...내가 너에게 먼저 악수를 청할 거야.'
다시 만났을 때는 반드시 이기겠다는 다짐을 남기며 데이빗은 경기장을 떠났다. 두 번 다시 경기를 마치고 무력한 눈물을 흘리고 싶지 않았다.
"......"
라커룸으로 돌아온 리버풀 선수단, 다들 아무말 없이 멍하니 앉아 있었다. 숨막히는 적막, 선수들은 이제 정말 패배했다는 실감을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평소 활기찼던 분위기와 너무도 다른 지금, 달글리시 감독은 굳은 표정으로 선수들을 바라 보았다.
"우리는...졌다."
확인 사살하듯 현재의 상황을 다시 한 번 정리한다. 현실을 인정해야 앞으로 나갈 수 있다. 아프지만 상처를 직시할 줄 알아야 했다.
"다들 스스로 부족함, 힘이 모자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을 거라 생각한다. 리드를 잡았음에도 그것을 지켜나갈만한 힘이 부족했다. 상대의 추격을 뿌리칠 만한 저력이 부족했다."
덤덤히 말을 계속한다. 입술을 짓씹는 선수들, 달글리시 감독 본인 또한 분한 마음을 억누르기 힘들었다.
"여러분들과 함께 알리안츠 아레나로 가고 싶었다. 그리고 우리 팀의 6번 째 빅 이어를 함께 들어 올리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 그 꿈은 잠시 내려 놓을 때다."
그리고 애써 힘 주어 말을 이어 나간다.
"챔피언스 리그는 끝났다. 하지만 우리의 시즌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반성하고 되돌아 보는 것은 좋다. 하지만 깊이 빠져서는 안된다. 다들 수고 많았다. 오늘 푹 쉬고 내일 평소처럼, 훈련장에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말을 마치고 선수들과 악수를 나누는 달글리시 감독, 한 명 한 명, 손을 맞잡으며 그들의 수고를 격려하고 상심하지 말라는 위로를 건넨다. 그리고 가장 끄트머리에 앉아 있던 데이빗의 차례가 다가 왔다.
"수고 많았어 데이빗. 너는 정말 잘해 주었어. 그만큼 오늘 결과가 아쉬울테지만...자네라면 금방 털고 일어날 수 있을 거라 믿네."
그는 내심 데이빗이 팀에, 동료들에게 불만을 가질까봐 걱정이 되었다. 개인으로서 완벽한 경기를 펼쳤음에도 팀이 받쳐주지 못했기에 다음 라운드 진출이 좌절된 상황이다. 나는 잘했는데 너희들때문에 망쳤다고 말해도 할 말이 없다. 물론 이것은 팀 차원에서 최악의 상황이 될 것이다. 맞는 말이라고 해도 다른 선수들의 자존심을 짓 밟아 버리는 일이 될테니 말이다.
그동안 데이빗이 보여준 모습을 보았을 때 그럴 거라 생각되진 않았지만 아직 어린 선수였으니 자신의 감정을 순간 이기지 못할까봐 걱정이 된 것이다. 하지만 이어진 데이빗의 대답은 그의 걱정을 한 번에 날림과 동시에 감동을 안겨주었다.
"아뇨, 결과는 모두의 책임입니다. 제가 골을 좀 넣었다고 해서 면죄부가 생기지는 않아요."
눈물과 함께 아쉬움, 실망을 털어버린 듯 데이빗이 침착하게 대답했다. 달글리시 감독은 흐뭇하게 그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립 서비스일지언정 어린 선수가 이런 성숙한 모습으 보여준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았던 것이다.
"그렇게 말해 줘서 고맙네. 자네는 오늘 정말 영웅적인 활약을 보여 주었어. 스스로 자부심을 가지게.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 팀을 잘 이끌어 주길 바라네."
데이빗을 끝으로 선수들 모두와 대화를 마쳤다. 달글리시 감독은 푹 쉬라는 말을 남기고 먼저 라커룸을 떠났다. 그제야 선수들은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나며 돌아갈 준비를 시작했다. 가장 먼저 준비를 마친 다니엘 아게르가, 아직도 충혈된 눈으로 데이빗에게 다가 왔다. 그리고 그와 살며시 포옹했다.
"미안하다. 넌 자책하지 않아도 돼. 넌 정말 멋졌어."
자존심 강한 그가 이렇게 말할 정도였으니, 데이빗은 아게르가 지금 진심으로 미안해 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런말 하지 말아요 다니엘."
그리고 약속이나 한 것처럼, 다른 선수들도 하나 씩 다가와 데이빗에게 한 마디씩 남겼다. 미안하다는 말, 그리고 그의 활약에 대한 칭찬. 제 몫을 다해준 에이스에 대한 팀원들의 예우였다. 조금 민망함을 느낄 정도가 된 데이빗이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난 정말 괜찮아요. 결과는 아쉽지만 다니엘이나, 캐라, 그리고 다른 동료들에게 실망하지 않았어요. 축구가 개인 종목도 아닌데 누구는 잘했고 누구는 못했다고 말하는 것도 웃긴 일이에요."
데이빗의 진심이었다. 만약 그가 수비에 있어서 조금 밸런스가 괜찮았다면, 리버풀은 조금 다른 전술을 취할 수도 있었을 거라 생각했다. 자신이 다재다능하지 못했기에 하염없이 전방에서 공을 기다려야 했다고 생각했다.
"챔피언스 리그 우승컵은 내년으로 기약하면 되요. 우리에게는 리그 우승컵이 남아 있잖아요. 다들 이렇게 침울해서야 다음 리그전을 잘 치를수 있겠어요?"
"그래, 아직 우리에겐 리그가 남아 있지."
"이제 정말 남은 것은 리그 뿐이야."
자신들을 배려해 주는 데이빗의 모습에 선수들이 애써 쾌활한 모습을 보인다. 에이스가 괜찮다고, 정신차리라고 이야기하는데 계속 궁상을 떠는 건 멍청한 짓이다. 앞을 바라 보기 시작한 그와 보조를 맞추어야 했다. 또다시 그의 발목을 잡고 싶은 선수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많이 컸어. 정말 이제...이 완장을 물려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네.'
제라드는 흐뭇한 미소로 동료들과 웃고 떠들기 시작한 데이빗을 바라 보았다. 사실 그는 오늘 동료들에게 쓴 소리를 할 생각이었다. 스스로 떳떳하지 못한 활약을 보였다고 하지만 오늘 경기를 그대로 넘어가긴 힘들었다.
하지만 가장 화가 났을, 가장 억울할 데이빗이 먼저 웃으며 그들을 다독였다. 감싸주는 것이 무조건 좋은 방법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팀 분위기를 보니 데이빗의 선택이 적절했다고 느꼈다.
"다들 슬슬 돌아가자. 리그에 집중하기로 했으면 푹 쉬어야지. 다음 경기가 3일 뒤라고."
============================ 작품 후기 ============================
-이제 정말 남은 것은 리그 뿐이야
-오늘 낮에 야구를 하고 와서
-도저히 두 편 연재 사이즈가 안나오네요
-이 글을 보고 계실때는 기절해서 자고 있을듯...
-내일부터 다시 2연재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