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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비었잖아!"
"넋 놓고 있지마! 빨리 움직여!"
"사비 마크! 스위치 스위치!"
전쟁터, 이 말이 지금 경기를 표현하는 데 가장 적합하리라. 10만에 가까운 관중들의 광기, 그들의 열기에 전염된 것일까. 선수들은 서로 잡아 먹을 듯 필드를 누비기 시작했다. 아니, 이는 리버풀 선수들에게만 해당 되는 것일지도 몰랐다. 바르셀로나 선수들은 얄미울 정도로 침착하게 자신들의 페이스대로 경기를 끌고 가기 시작했다.
"커버가 늦어!"
미드필드에서 팀을 통솔하던 리버풀의 캡틴 제라드가 무사 시소코를 향해 호통을 치듯 외쳤다. 리버풀 선수들이 현재 미친 듯이 뛰어다니고는 있지만 이는 딱히 흥분으로부터 비롯된 행동이 아니었다. 경기 전부터 준비된 그들의 전략이었다. 볼 키핑력과 패스 워크에 있어서 세계 최고 수준인 바르셀로나의 미드필더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한 발이라도 더 움직여야 했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이 피지컬에서 압도적으로 강한 선수들이 아니라는 점을 이용하여 거센 몸싸움을 거는 것이 유리했다.
하지만 상상 이상으로 바르셀로나의 패스 플레이는 정교했다. 몸을 부딪힐 시간도 주지 않고 짧게 짧게 공을 돌리는 모습이 마치 성난 소를 이리 저리 농락하는 투우사의 그것과 닮았다. 사비 에르난데스, 안드레스 이니에스타가 주축이 되어 마치 한 몸처럼 움직이는 그들의 모습에 리버풀 선수들은 혼란을 느껴야 했다.
"제기랄!"
잠시 마크에 혼란을 느낀 시소코,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날카로운 패스, 루카스 레이바는 이를 악 물고 몸을 날려 간신히 걷어 내는 데 성공한다. 급하게 움직이긴 했지만 정확히 차내는 데 성공했고 공은 멀리 바르셀로나의 진영까지 날아간 뒤 사이드 라인으로 나갔다.
"헉헉...나이스. 잘했어 루카스."
공을 가져 오지는 못했지만 잠시 시간을 버는 데 성공했다. 디르크 카윗이 다가와 몸을 날린 그를 일으켜 주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간신히 막았을 뿐이네요. 정말이지...영상으로 보던 것 이상이에요."
바르셀로나가 강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었다. 축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현재 최고의 팀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대부분은 바르셀로나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만큼 쉬울거라 생각하진 않았다. 하지만 자신들도 충분히 강하다고 생각했다. 이번 시즌, 그들이 거두고 있는 성적을 본다면 충분히 그런 자부심을 가질만 했으니까.
하지만 하늘 위에 하늘이 있는 법이라고, 분명 강해진 리버풀이었지만 팀 전체의 레벨이 균형있게 올라간 것은 아니었다. 냉정히 이야기하자면 공격진의 파워가 업그레이드 된 것일뿐, 미드필드에서의 경쟁력은 크게 변한 것이 없었다.
분명 리버풀의 창 끝은 유럽에서도 최고 수준으로 날카롭다 자부할만 했다. 실제로 메시를 주축으로한 바르셀로나의 쓰리 톱에 비해 리버풀의 그것이 뒤쳐진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창 끝으로 상대를 찌르기 위해서는 창 대가 움직여야 하는 법. 현재 리버풀은 자신들의 창 대를 상대에게 꽉 잡힌 상황이나 다름 없었다.
"이제 15분이라니...저는 후반전이라고 해도 믿겠어요."
죽도록 막아내고 시간을 확인하니 허탈할 지경이라고 루카스가 한숨을 쉬었다. 카윗은 그런 동료의 등을 두드리며 약한 소리하지 말라고 격려했다.
"잘하고 있어. 이대로 버텨내기만 하면 이길 수 있다고. 단 한 번, 한 번만 전방에 있는 친구들에게 공을 보내면 어떻게든 해 줄거야. 너도 그렇게 될 거라 믿지?"
그 말에 슬쩍 고개를 돌려 전방을 확인한다. 밀리고 있는 중임에도 하프 라인 근처에서 맴돌며 수비에 크게 가담하지 않고 있는 검은 머리의 동료가 눈에 들어 온다. 걱정스러운 눈빛, 당장이라도 내려와 한 손 거들고 싶은 기색이 역력하다. 루카스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 친구의 힘을 이런 곳에서 써먹을 수는 없다. 이건 자신들이 해야할 일이었다.
"그렇네요. 그럼 조금만 더 힘내서 해보죠."
쓰로인을 준비하는 상대를 확인한 루카스가 다시 한 번 결의를 다진다. 카윗도 기분 좋게 웃으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아직 그들에게는 많은 시간이 남아 있었다.
"젠장..."
데이빗은 무력감에 몸을 떨었다. 경기가 시작하고 20분이 다 되도록 아직 공을 단 한 번도 만져보지 못했다. 멀거니 서서 동료들이 이리 저리 휘둘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자신에게 공을 보내주지 못하는 동료들에 대한 원망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이 보아도 정말 치열하게 뛰어다니고 있었으니까. 다만 그들을 농락하듯 공을 돌리고 있는 상대 선수들에 대한 적개심이었다.
"한 번만 걸려라. 딱 한 번만..."
만약 패스가 온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마무리 짓고 오겠다고 다짐했다. 혼자서는 아무리 날고 긴다고 하는 데이빗이라 해도 무리였겠지만 수아레즈도 있었다. 공격 2명, 수비 3명. 수적으로 한 명이 부족하지만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었다. 당장이라도 내려가서 한 손을 보태고 싶은 심정을 억누르며 데이빗은 기다렸다. 그가 내려간다면 리버풀은 사실 상 공격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 없게 된다. 만약 무승부를 노리고 나왔다면 달글리시 감독이 굳이 그를 선발로 출장 시키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과 조금 떨어져 있는 수아레즈도 초조한 지 연신 발로 잔디를 꾹꾹 누르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오히려 마음을 가라 앉히는 데이빗이다. 자신만 초조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조급한 마음을 억누르지 못해서야 찬스가 왔을 때 냉정한 플레이를 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괴롭지만 지금은 버텨야 했다.
바르셀로나의 일방적인 우세 속에서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점유율은 거의 7 대 3에 가깝게 벌어진 상황, 리버풀은 공을 잡는다고 해도 자신들의 진영에서 무의미한 횡 패스를 주고받을 수 밖에 없었다. 한 번에 길게 전선으로 투입하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롱 패서가 필요했는데 스티븐 제라드를 제외하고는 롱 패스에 일가견이 있는 선수가 미드필더 중에서는 없었고 수비수로 나선 다니엘 아게르가 나름 롱 패스에 일가견이 있는 터라 밀집된 중반 지역을 생략하고 한 번에 최 전방으로 연결을 몇 차례 시도했으나 아쉽게 정확도가 조금 부족했다.
그나마 데이빗 장에게 가깝게 날아간 공이 있긴 했으나 한 발 먼저 카를레스 푸욜이 먼저 처리해 버렸고 말이다. 데이빗이 아무리 빠른 주력을 자랑한다고 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은 있기 마련이다.
결국 리버풀은 시종일관 자신들의 진영에 갇혀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전반 30분이 넘어가는 시간 동안 몇 번의 위태로운 장면을 겪기는 했지만 실점 없이 잘 막아 오고 있었다. 이는 과르디올라의 철학, 그로 인한 바르셀로나의 전술에 기인한 바가 컸다.
과르디올라의 바르셀로나를 한 마디로 표현하는 것은 역시나 티키타카, 짧은 패스를 끊임 없이 주고 받으며 상대에게 혼선을 주고 이를 통해 공략하는 방식이었다. 바르셀로나의 경기를 보면 상대의 페널티 박스 근처에서 짧은 패스를 계속 주고 받으며 완벽한 찬스를 만들어 내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로 인해 환상적인 골 장면이 많이 양산되지만 중거리 슈팅 시도가 거의 전무하다는 단점도 있었다.
패스를 통해 완벽한 찬스를 노리다 보니 점유율에 상대적으로 슈팅 숫자가 적은 부분도 있었고 그것이 지금 리버풀이 버티고 있는 이유 중 하나였다. 하지만 바르셀로나가 단지 티키타카만을 무기로 삼고 있는 팀이었다면 과연 세계 최강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을까? 그들에게는 그보다도 더욱 치명적인 무기가 있었다. 그리고 골이 들어가지 않는 다는 사실이 조금 거슬렸는 지 살짝 아래로 내려가 공을 받아 낸 메시가 드리블을 시작했다.
완벽한 티키타카는 사실 드리블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드리블을 최소화 한 채 골키퍼 이외의 10명의 선수들이 각자 패스를 받을 위치를 잡고 계속 패스를 돌리며 경기를 풀어나가는 것이 티키타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경기 운영 방식은 되려 점유율의 오류에 빠질 가능성이 있었다. 결국 경기는 골이 들어가야 하고 골을 넣기 위해서는 슈팅을 때려야 하니 말이다. 바르셀로나에는 이 부분을 완벽하게 해결해 줄 존재가 있었다. 심지어 평소에는 얌전히 티키타카의 일부분이 되어 패스의 기점이 되기도 하는, 현 시대의 최강의 크랙 리오넬 메시가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그는 패스에도 일가견이 있지만 드리블 돌파야말로 그의 능력을 제대로 보여주는 부분이었다.
"젠장! 막아!"
불길함을 느낀 호세 레이나가 아직 페널티 박스와 어느 정도 거리가 있음에도 크게 소리를 질렀다. 패스를 받으며 돌아서는 동작이 마치 한 동작처럼 매끄럽다. 리버풀에서 데이빗이 종종 보여주곤 하는 움직임이었기에 익숙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유려한 동작에 감탄하고 있을 수는 없다. 제대로 시동이 걸리고 나서는 도저히 막을 수가 없는 것이 리오넬 메시였기 때문이다.
일차적으로 루카스 레이바가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제쳐졌다. 메시 본인과 같은 팀의 동료 이니에스타가 자주 활용하곤 하는, 소위 라 크로케타, 일부에서는 팬텀 드리블이라고 말하는 스킬을 활용하여 간단히 제쳐 버린 것. (사실 라 크로케타는 드리블 스킬이랄 것도 없었다. 그저 양 발을 활용하는 드리블인데 과거 90년대를 풍미한 명 선수 미카엘 라우드럽이 워낙 현란하게 잘 구사하다 보니 그가 자주 구사하는 무브먼트에 언론에서 이름을 붙인 것 뿐이다)
루카스 레이바가 간단히 나가 떨어지고 가속을 끝낸 메시가 특유의 볼 터치를 선 보이며 페널티 박스로 접근했다. 다니엘 아게르가 끈질기게 따라 붙기 시작했다. 좀 더 거리가 있었다면 파울로 끊었겠지만 지금은 페널티 박스 근처였다. 만약 한 발만 더 가서 넘어진다면 페널티 킥 확정이고 프리킥이라고 해도 위험성은 상당했다. 저 세계 최고라는 녀석은 프리킥에도 일가견이 있는 선수였으니 말이다. 태생적인 키의 한계로 인해 제공권 장악에 약점을 보이는 것 빼고는 못하는 게 없는 선수가 바로 메시였다.
파울로 끊을 수 없다면 그저 마크를 놓치지 않고 더 이상 파고 드는 것만 막는 수 밖에 없었다. 섣부르게 빼앗기 위해 달려 든다면 눈 앞에서 메시가 왜 세계 최고인지 확인하게 될 뿐이리라.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듯한 민첩성을 활용하여 순식간에 볼 터치를 이루어 내는건 메시의 트레이드 마크나 다름 없었으니 말이다.
다행히 아게르의 마크가 효과가 있었는 지 페널티 박스로 직진해 오던 메시의 경로가 조금씩 세로 방향으로 변했다. 마치 아게르를 달고 페널티 박스 선을 따라 움직이는 듯한 모양이 연출된 것. 하지만 본질적인 스피드 차이, 민첩함의 차이로 인해 아게르가 점점 앞 쪽의 공간 선점을 하지 못하는 듯 하자 결국 스크르텔이 커버를 나올 수 밖에 없었다. 그 공간은 왼쪽 풀백 호세 엔리케가 메우기 위해 움직였다. 그리고 그것이야 말로 메시가 노리던 바였다.
투웅-
장난치는 것처럼, 가볍게 공을 차는 메시였다. 성의 없어 보일만큼 무신경한 패스, 하지만 대충 찬 것 같은 그 패스가 리버풀에게는 사신의 낫과도 같았다. 커버를 들어 오던 스크르텔을 지나 완벽히 커버가 이루어 지지 않은 리버풀의 수비 로테이션 틈을 정확히 찌르는 치명적인 패스, 그리고 그 공간을 보고 달리는 바르셀로나의 페드로가 있었다. 좁은 공간에서 공을 주고 받는 축구를 하다 보니 공간에 대한 이해가 남다른 바르셀로나 선수들이었고 약간의 틈을 귀신처럼 포착할 줄 알았다.
메시 혼자서 3명의 수비를 몰고 다녔으니 당연히 공간이 열릴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이야말로 메시가 티키타카라는 전술 속에서도, 전술을 해치지 않으면서 자신의 능력을 극대화 시키는 방법이었다. 페드로는 완벽한 노마크 찬스를 잡았고 골키퍼 밖에 남지 않은 골대에 편안하게 슈팅을 날렸다. 넣을 곳은 많았고 골키퍼가 사람인 이상 그 공간을 모두 지키는 것은 무리였다.
출렁-
가볍게 흔들리는 골망. 허탈한 표정으로 고개를 바닥으로 떨어 뜨리는 리버풀 선수들, 그리고 기쁨에 겨워 세레모니를 시작한 페드로를 따라 가는 바르셀로나 선수들이다. 관중석에서는 지진이 일어난 것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전반 32분, 홈 팀 바르셀로나가 선제 득점에 성공하며 한 발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오늘은 한 편이에요
-밤새고 야구까지 하고 왔더니
-두 편은 무리데스요
-근성으로 어떻게 버틸 수준이 아니네요ㅠ
-바르샤는 몇 년째 짱을 먹고 있는지
-주인공 대신 메친놈이 날뛰고 있네요
-퍼스트 블러드
-아군이 당했습니다
-적(Messi)이 학살 중입니다
-전설의 메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