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he Answer-218화 (218/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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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안 차는군..."

달글리시 감독은 허탈하게 웃으며 의자에 몸을 기댔다. 영상 분석을 시작한지 이제 고작 두 시간 남짓, 평소와 같았다면 그 정도로 피로를 느낄리 없겠지만 오늘은 좀 다른 것 같았다. 눈가를 마사지하며 한숨을 내쉬는 그의 모습은 상당히 피곤해 보였다.

"이 팀은 정말 반칙이야. 게임에서도 이 정도로 강한 팀은 만들기 어려울 걸."

투덜대며 식어 버린 차를 입에 가져 간다. 그가 보고 있던 영상은 챔피언스 리그 8강 상대인 바르셀로나의 경기 영상이었다. 현재 세계 최강의 팀답게 영상만으로도 기를 죽이는 포스를 보여주고 있었다.

지난 아스날 전에서 2 대 1로 역전승을 거둔 리버풀은 이어진 선덜랜드, 퀸즈 파크 레인저스, 위건 전에서 2승 1무를 거두었다. 선덜랜드 원정에서 감기를 털고 복귀한 루이스 수아레즈의 결승골에 힘입어 1 대 0 신승을 거둔 리버풀은 29라운드 퀸즈 파크 레인저스 전에서 의외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강등권에 머무르고 있는 퀸즈 파크 레인저스였던터라 원경 경기라 해도 리버풀의 우세가 점쳐지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경기는 서로 치고 받는 난타전으로 흘러갔고 결국 루이스 수아레즈와 데이빗 장이 나란히 한 골씩 기록하며 2 대 2, 무승부로 마무리 되었다.

이어진 위건과의 홈 경기에서 달글리시 감독은 3일 뒤로 다가온 바르셀로나 원정 경기를 위해 주전들 대부분에게 휴식을 주며 한 템포 쉬어가는 운영을 했다. 2위와 승점 차를 어느 정도 벌려 놓은 덕분에 할 수 있었던 부분인데 리버풀인 이 경기에서 디르크 카윗의 결승골로 승리를 거두며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결과를 이끌어 냈다.

데이빗 장, 루이스 수아레즈, 스티븐 제라드 등, 핵심 플레이어들에게 휴식을 준 만큼 현재 선수단의 체력 관리는 상당히 준수했다. 하지만 완벽한 상황이라고 해도 승리를 점치기 어려운 팀이 바로 이제 상대해야 할 바르셀로나였다.

"최전방의 파괴력이야 비슷한 수준이지만..."

리버풀의 데이빗 장-루이스 수아레즈-마르코 로이스로 이어지는 포워드 진은 다비드 비야-리오넬 메시-페드로의 조합에 비해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현재 리그와 챔피언스 리그에서 기록하고 있는 공격 포인트 숫자를 헤아려 보아도 비슷했다.

"문제는 미드필더야."

사실 리버풀의 미드필더 진이 어디가서 부족함을 느낄만한 스쿼드는 절대 아니었다. 두께가 좀 부족할 뿐이지 베스트 멤버의 실력만큼은 확실했다. 상대가 바르셀로나만 아니라면 말이다. 바르셀로나의 미드필더 진의 이름 값, 그리고 실력에 밀리지 않는 선수는 리버풀에서 스티븐 제라드, 단 한 명밖에 없었다. 루카스 레이바가 많이 성장햇다고는 하지만 그 정도 수준의 선수는 아니었고 디르크 카윗이나 무사 시소코는 활동량에 있어서는 그들을 압도할 지 몰라도 축구는 활동량만 가지고 모든 것을 커버할 수 있는 스포츠가 아니었다. 만약 그렇다면 메시는 세계에서 축구를 제일 못하는 수준의 선수여야했다.

"저 팀을 상대로 해서 미드필드 주도권을 쥘 수 있는 팀이 지구 상에 존재하기나 할까. 미칠 노릇이야."

그나마 다행인 것은 리버풀의 미드필더들이 루카스 레이바를 제외하고는 공수 양면에 걸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으면서도 활동량이 많다는 사실이었다. 스티븐 제라드는 원래부터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의 대명사와도 같은 선수였고 디르크 카윗과 무사 시소코는 알아 주는 하드 워커이다. 이 부분을 중점적으로 살린다면 어떻게 비벼볼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제일 큰 문제는 역시 메시로군."

혼자서는 막을 수 없는 희대의 크랙. 아니 둘이 붙어도 장담할 수 없는 선수가 현 시대의 최고라 불리는 리오넬 메시였다. 마침 영상에서는 메시가 특유의 드리블 돌파 이후 열린 공간을 향해 침투 패스를 넣어 주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무려 세 명의 수비를 혼자 끌고 다니다 보니 필연적으로 공간이 열릴 수 밖에 없었다.

"......"

할 말을 잃은 달글리시 감독이 신경질적으로 펜을 끄적인다. 마음같아서는 그가 감기라도 심하게 앓길 기도하고 싶을 정도였다. 이제야 비로소 다른 팀 감독들의 마음을 알 것 같은 달글리시 감독이었다.

"우리 팀에도 비슷한 녀석이 하나 있긴 한데...이 정도로 골치 아픈 녀석들일 줄은 몰랐군."

스타일도 세부적으로는 달랐지만 크게 보면 비슷한 면이 많은 두 선수였다. 무엇보다 수비수 한 명으로는 견적이 나오지 않는 선수들이라는 점. 그간의 상식을 파괴하는 속도로 골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두 선수는 붕어빵이었다. 역시 자신이 직접 당해 봐야 남의 마음을 알게 된다고 피식 웃음을 흘렸다.

"우리가 미드필드에서 세밀한 빌드업을 하기 힘들다면...결국 역습을 노리는 수 밖에 없을 것 같군."

바르셀로나를 상대하는 팀들은 언제나 수비를 굳힌 뒤 역습을 노리곤 한다. 현재 프리미어 리그에서 최강으로 꼽히는 리버풀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

숙고에 빠진 달글리시 감독, 풀리지 않는 난제를 탐구하는 학자처럼 고민이 깊어져갔다.

"마지막으로 바르셀로나와 만났던 때가 몇 년전이었더라?"

2011-2012 UEFA 챔피언스 리그 8강 첫 번째 경기, 리버풀 선수단은 바르셀로나 원정 경기를 앞두고 있었다. 경기 전 미팅까지 약간의 시간이 남은 상황, 선수들은 잠시 후 펼쳐질 치열한 경기를 준비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마음을 안정시키고 있었다.

챔피언스 리그 명가라는 리버풀의 위상은 지난 몇 년간의 부진으로 인해 많이 희석된 상태였다. 실제로 현재 주전 라인업에는 챔피언스 리그 8강이 처음인 선수들이 다수 포진하고 있었다. 데이빗 장, 루이스 수아레즈, 마르코 로이스, 호세 엔리케, 루카스 레이바, 무사 시소코 등의 선수들이 챔피언스 리그 상위 라운드 경험이 없었고 이는 상대가 바르셀로나라는 부담감과 더해진다면 문제가 될 수도 있었다. 그랬기에 경험 많은 베테랑 선수들은 일부러 평소보다 말을 많이 하며 그들의 긴장을 풀어주고자 하고 있었다.

"2007년인가? 2006-2007 챔피언스 리그 16강에서 만났었지."

캐러거의 말을 제라드가 받는다. 두 선수 모두 그 당시 바르셀로나와 상대해 본 경험이 있는 선수들 중 하나였다. 캐러거가 박수를 치며 기억났다는 듯 말한다.

"아 맞다. 그랬지? 오래되서 기억이 가물가물하단 말이야."

"그때 정말 장난 아니었지. 우리 스티비가 혼자 아주 들었다 놨다 하는데 어휴..."

마찬가지로 당시부터 팀에 있었던 카윗이 고개를 흔들며 그 시절의 기억을 회상했다. 캐러거는 껄껄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그래 그래. 기억난다. 스티비 그때 진짜 장난 아니었지!"

푸하하 하고 폭소까지 터뜨리며 제라드를 향해 짖궂은 표정을 지어 보인다. 제라드는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회피한다.

"내가 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안 나긴. 그런 끝내주는 경기를 기억 못할리가 있겠어? 그때 분명...상대 팀 골과 우리 팀 골을 모두 어시스트 해 줬지?"

"에? 캡틴이 그랬어요?"

데이빗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끼어들자 캐러거는 아예 배를 잡고 웃어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라드는 손으로 얼굴을 덮으며 '빌어먹을'이라고 중얼거렸다.

"진짜야. 오, 이런. 헤이, 스티비! 너의 귀여운 추종자에게 이런 걸 말해줘도 될란가?"

"어차피 말할 거면서 묻는 척 하지마!"

퉁명스럽게 쏘아붙이는 제라드, 캐러거는 의기양양하게 '그럼 사양하지 않겠어'라고 말한 뒤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데이빗쪽을 돌아 보았다. 그리고 슬쩍 주변을 살피니 다른 어린 선수들도 아닌 척하면서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주시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좋아.'

내심 기분 좋게 웃으며 자신들의 의도가 먹혔음을 자축한다. 그리고 여전히 호기심 어린 눈빛을 보내고 있는 데이빗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그때 분명히 지금처럼 우리가 1차전 원정이었을거야. 너 호나우지뉴는 아냐? 아 당연히 알겠지. 그래, 그 미친 외계인의 마지막 불꽃이랄까, 아무튼 그때도 장난 아니긴 했어. 메시? 메시도 그때 있었지. 슬슬 호나우지뉴로부터 팀의 중심 자리를 계승하는 중이었다고나 할까? 지금처럼 미친 놈은 아니긴 했는데 그때도 진짜 잘했어. 아무튼."

잠깐 이야기가 샌다며 헛기침을 하고 말을 정리하는 캐러거.

"사실 그때도 바르셀로나는 진짜 강했거든. 미드필더들이 지금 같지는 않았다고는 하지만 오히려 수비라인은 더 강한 느낌도 있었어. 잠브로타 알지? 얼마전에 밀란에서 만났던 수비수. 그래, 그 친구도 그때 바르셀로나에 있었다고. 지금과 비교하면...글쎄다? 큰 차이가 없지 않을까?"

카윗도 슬쩍 끼어들어 거든다.

"그때도 대부분의 언론에서는 우리가 질거라고 이야기했어. 선수단의 몸값을 비교하면 지금이나 그때나 상대가 안되었으니까."

"맞아. 그랬어. 아무튼 그 경기에서 우리 스티비가 멋지게 한 마디를 한 거야. 저 빌어먹을 기자들의 입을 좀 닥치게 만들자고 말이야. 그리고는 전반 초반 쯤이었던거 같은데? 아무튼 우리 스티비가 패스를 한다는 것이 완벽하게 상대에게 공을 갖다 바쳐버린 거야. 어려운 상황이었냐고? 천만에. 그냥 아무 것도 없었어. 다들 귀신에 홀린 줄 알았을 거야. 거짓말 같다고? 너 나중에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그 경기 한 번 찾아봐."

"정말이야. 나도 진짜 갑자기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싶었다니까? 멀쩡히 있다가 갑자기 공을 상대에게 패스해 버리는데 얼마나 황당했겠어?"

카윗도 실소를 흘리며 맞장구를 치자 데이빗에 헤에 하는 탄성을 흘리며 제라드를 슬며시 돌아 보았다. 제라드는 살짝 얼굴이 상기된 채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그래서 선제골을 먹었지. 이야, 그때 스티비의 표정이란..."

"젠장."

한 대 때려주고 싶은 표정인지라 제라드가 조그맣게 욕설을 내뱉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캐러거는 신경쓰지 않고 신나서 말을 이어 나갔다.

"그 이후로 크게 문제는 없었어. 우리 팀도 잘했고 상대도 괜찮았지. 팽팽한 경기가 펼쳐졌다는 거야. 근데 전반 끝날때 쯤인가? 우리 스티비가 본인의 실수를 만회한거지. 오른쪽인가? 아마 오른쪽이었을걸?"

"오른쪽 사이드 맞아."

"아 고마워 디르크. 오른쪽 사이드에서 진짜 끝내주는 크로스를 올린거야. 그걸 크레이그, 아 지금은 우리 팀에 없지만 다들 알지? 크레이그 벨라미라고. 아무튼 그 친구가 머리로 받아서 골을 터뜨렸던거지. 이야 그때 진짜 분위기 최고였다고. 솔직히 상대 골키퍼가 좀 실수해 준것도 있긴 한데 멋진 골이었어. 스티비의 크로스는 정말 명품이었다고."

"흥."

이제와서 띄워줘 봐야 늦었다는 듯 제라드가 코웃음을 친다.

"그 골을 넣고 전반이 종료되었는데, 이야. 라커룸으로 들어가는데 스티비가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면서..."

"그만, 알겠어. 거기까지만 해줘."

흑역사를 기억하고 싶지 않다는 제라드의 간절한 바람에 캐러거가 껄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초 집중 상태로 듣고 있던 데이빗이 눈을 반짝이며 외쳤다.

"역시! 역시 캡틴이야! 자신의 실수는 스스로 만회한다는 거죠?"

"......"

"어...뭐...그렇게 되나."

"그건 그런데..."

영웅담을 들은 소년처럼 신난 모습의 그를 보고 있자니 자신이 과연 그런 의도로 말을 했나 싶은 생각에 혼란스러운 캐러거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데이빗은 신이 나서 말을 이어갔다.

"역시 캡틴은 대단해요. 최고라니까 정말!"

"...그만해줘..."

제라드가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한숨을 쉬었고 캐러거는 땀을 삐질 흘렸다.

'이 녀석은 정말...무슨 헐리우드 팝스타의 열혈 팬도 아니고...'

마지막에 분위기가 좀 요상하게 흐르긴 했지만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싶은지라 캐러거는 만족하기로 했다. 어쨌든 어린 선수들의 긴장이 풀렸다는 사실은 좋은 일이다.

"험험, 어쨌든 말야. 중요한 건, 큰 경기에서는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는 거야. 아니 평소에도 마찬가지지. 그런데 이런 큰 경기에서 실수하게 되면 위축되는 정도가 다를거야. 아마 진짜 죽고 싶은 생각이 들 수도 있어. 하지만 그럴 필요 없다고. 만회할 시간은 충분히 있어. 정말 얼간이 같은 실수를 저질렀다고 해도 마지막에 영웅이 될 수도 있다는 거야? 다들 내 말 알겠지?"

"이왕이면 전 영웅만 되고 싶네요 캐라."

수아레즈가 씩 웃으며 자신만만하게 말했고 다른 선수들도 하나 둘 호응했다. 그런 동료들을 보며 만족한 미소를 피워 올렸다.

============================ 작품 후기 ============================

-빠가 까를 부릅니다

-우리 캡틴은 역시 최고거든여?

-그 그만해 미친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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