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he Answer-178화 (178/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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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

데이빗은 집에서 얌전히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훈련도 금지라고 하여 멜우드에 출근하지 않았다. 에리카에게 놀러 올 수 있느냐고 물어 보았을 때 그녀는 미안해 하며 준비해야하는 과제때문에 시간을 내기 힘들 거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 하루 종일 집안에서 TV나 보며 시간을 때우고 있었는데 슬슬 지겨움에 지쳐갈 무렵, 그의 친구이자 에이전트인 티티가 제임스와 함께 그의 집을 방문했다.

"어, CF. 광고 있잖아 광고."

제임스는 그가 못 알아 들었다고 생각했는지 반복하여 확인해 준다. 데이빗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나도 알지. 근데 갑자기 무슨 CF?"

뜬금 없는 일이라는 듯한 데이빗의 반응에 제임스는 한숨을 쉬며 '이런 멍청한 녀석' 이라고 중얼거렸고 당연히 데이빗은 발끈했다. 의사가 격한 움직임을 삼가라 이야기했기에 일어나서 달려들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제임스 너한테 그런 말을 들을 이유는 없어!"

"헹. 웃기고 있네. 그런 소릴 한다는 게 멍청하다는 거야."

대수롭지 않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넘기는 제임스의 모습에 데이빗은 더욱 약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상대의 여유로움이 뭔가 더 기분이 나쁘다고 할까? 다시 한번 반박하려는 데이빗을 티티가 웃으며 말렸다.

"진정해. 그런데 갑자기는 아니야. 너는 좀 갑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야."

티티의 개입에 데이빗은 살짝 제임스를 노려보고는 시선을 티티에게로 돌렸다.

"그 동안 너한테 CF 제의가 들어오지 않았다는 게 왜 그런거라 생각해?"

"왜냐니...그야..."

당연한 것 아니냐며 대답하려던 데이빗은 할 말이 궁색한 것을 느꼈다. 인지도? 차고 넘쳤다. 지난 시즌까지야 그렇다고 해도 이번 시즌에는 달랐다. 리그에서의 활약은 물론이고 국가 대표에까지 뽑힌 데다 뛰어난 활약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이미 축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 중에서 자신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했다.

생각해보니 그동안 CF 제의가 없었던 게 이상할 지경이라 데이빗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런 말하기에는 그렇지만 생긴 것도 이정도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딱히 외모로 보아도 크게 문제가 될 건 없다고 생각했다.

'어...그러니까 호나우지뉴 같은 선수들도 찍는데 말이지.'

속으로 굉장히 실례되는 생각을 하며 데이빗은 티티의 대답을 기다렸다. 티티는 차분한 어조로 설명을 시작했다.

"너도 알고 있는 모양이네. 그래. 넌 그동안 이미 기업들에게 열렬한 러브콜의 대상이 될 만큼의 인지도를 쌓았어. 그들은 라이징 스타를 좋아해. 특히 스토리가 있는 선수면 더할 나위가 없지. 넌 그 모든 것을 만족 시키는 선수야."

실제로 그런 면이 있었다. 정규 엘리트 코스를 밟지 않은 선수, 영화나 책으로 만들어도 될 법한 스토리를 가진 선수였다. 거기에 나이도 어렸고 실력은 말할 것도 없었다. 사생활로 문제를 일으킨 적도 없었기에 이미지에 신경을 쓰는 기업들이 군침을 흘릴만한 모델이 데이빗이었다.

"그런데 왜 그동안에는 제의가 없었느냐고 궁금하겠지?"

자신의 마음을 읽은 듯한 티티의 말에 데이빗은 고개를 끄덕였다. 티티는 그럴만 하다며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거야 그동안 니가 에이전트가 없었으니까 그렇지. 접촉하기가 힘들었다는 거야. 걔네가 구단 관계자도 아닌데 경기장 라커룸에 찾아와서 너한테 어떻게 이야기 하겠어? 그리고 너에 대한 연락처를 그쪽이 알기도 힘드니 개인적으로 컨택하기도 힘들고. 그러니까 이제서야 연락이 온 거야. 그동안 연락하지 못했던 것까지 몰아서 말이지."

티티의 설명에 그제서야 납득이 간 데이빗이다. 하긴, 만약 자신이 연락을 받았다고 해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을 것이다. 티티는 고개를 끄덕이는 데이빗을 보며 탁자 위에 서류 뭉치를 올려 놓았다. 상당한 두께를 자랑하는 종이 뭉치를 보고 데이빗이 입을 벌리며 중얼 거렸다.

"설마 이게 다...?"

상상을 초월하는 서류의 양에 데이빗이 놀란 기색을 보이자 티티는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전부 너를 모델로 쓰길 원하는 기업들이야. 어차피 지금 한가하지? 오늘은 같이 어떤 광고를 취하고 버릴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 것 같아. 결국 찍어야 하는 건 너니까 니 마음에 드는 걸 찾아야 겠지? 아, 저녁 식사는 여기서 해결하자. 오면서 먹을 만한 걸 좀 사왔으니까 문제 없을 거야. 제임스, 우리가 사온 봉투에서 음료수 좀 꺼내 줄래?"

"이건 무슨 기업이야?"

서류를 보는 것은 질색이라며 데이빗이 소리쳤으나 티티는 단호했다. 원래 티티와의 논쟁에서 이겨본 역사가 없는 데이빗이었으나 특히 티티가, 저런 미소, 그러니까 웃고 있는데 묘하게 웃고 있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지을 때는 바로 꼬리를 내려야 했다. 딱히 그가 자신에게 언성을 높이는 것도 아니지만 저런 표정을 지을 때는 압박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데이빗? 몇 번이나 이야기하지만, 이건 너의 일이야. 내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게 아니라고. 아니면 내가 정말 마음대로 정해 버려도 상관 없을까?'

마지막 멘트를 날리며 진한 미소를 짓는 모습에 불길함을 느낀 데이빗은 빠르게 고개를 가로 저었다. 제임스와 달리 티티는 보통 진지했고 자신의 대답 여하에 따라 진짜 자신의 마음대로 잡아 버릴지 몰랐다. 데이빗도 종종 TV 시청을 해서 알고 있었지만, 가끔 CF 중에서 보는 사람이 화끈 거릴만큼 오글거리는 광고도 많았다. 그런 광고는 절대로 피해야 한다는 생각에 데이빗은 더 이상 항변하지 않고 이렇게 얌전히 앉아 서류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어떤 거? 아, 그거? 거긴 태국의 맥주 회사야. 그쪽 나라에서 상당히 유명한 회사라고 하던데, 자세한 정보는 나도 아직 잘 몰라. 그거 마음에 들어?"

티티의 질문에 데이빗은 고개를 흔든다. 딱히 마음에 들어서 물어 본 것이 아니었다.

"아니, 지금까지 본 것들은 전부 우리 나라 기업들이고, 잘 몰라도 몇 번 들어본 적은 있는데 여긴 처음 듣는 데라서 궁금했을 뿐이야."

그러면서 생각이 난 듯 질문을 추가한다.

"태국이라고 했지? 그럼 이쪽의 제안을 받아 들이면 태국까지 가서 CF 촬영을 해야 하는 거야?"

그건 질색일 것 같다며 데이빗이 말한다. 대체로 데이빗은 귀찮은 일을 달가워 하지 않았다. 티티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건 아직 모르겠는데. 지금 보고 있는 서류는 대략적인 계약의 가이드 라인에 대한 언급 밖에 없어. 금액 규모나 아주 기본적인 광고 컨셉 같은 것만 알 수 있어. 그런 세부적인 일정이나 내용은 서로 협상을 해 봐야 알 수 있겠지? 그쪽으로 와 주길 원할 수도 있고, 아니면 그쪽에서 우리 쪽으로 인원을 보내올 수도 있고. 지금으로서는 확실하게 대답하긴 어렵겠어."

그러면서 말을 덧붙이는 티티.

"그러고보니, 태국이면 리버풀에서 프리 시즌 투어를 거의 매번 가는 곳이잖아? 겪어 봤으니 네가 더 잘 알겠지만 그쪽에서 리버풀 인기가 장난이 아니라며? 그래서 제안이 왔나 보네. 만약에 그쪽의 제안을 받아 들일 생각이 있다면 프리 시즌 일정에 맞춰서 그쪽 방문했을 때 CF 촬영한다고 이야기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어, 장난 아니었어. 나도 이해가 되긴 하네. 그래도 확실히 받아 들일지 여부는 좀 더 고민 좀 해봐야 할 것 같아."

그러면서 탁자 위를 가득 메우다시피 한 서류 뭉치를 가리키며 말한다.

"아직 볼 건 산더미처럼 남아 있으니까. 너무 많이 하고 싶지는 않고...그 중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걸 골라 볼래."

데이빗의 말에 티티가 가볍게 박수를 치며 칭찬한다.

"좋은 선택이야. 나도 너무 많은 일을 한번에 하라고 하긴 싫어. 네가 헐리우드 스타는 아니지만, 그래도 너무 한번에 많이 광고를 찍으면 이미지가 값 싸 보일 수 있어. 널 모델로 삼은 쪽에서도 그리 좋아하지는 않을 거고."

희소성이 있어야 계약을 할 때 좋은 대우를 받기 쉽다며 티티가 말한다. 그리고 당부하듯 말을 덧붙인다.

"아 그리고 너도 알겠지만, 경쟁 업체나 동종 업계의 광고는 하나만 선택하는 게 좋을 거야. 잘 보면 계약 조건에 그런 내용을 붙인 곳도 많아."

"쉽게 이야기하면 아디다스 광고를 찍으면 나이키는 안된다는 거잖아?"

"그렇지. 그쪽은 안 하는게 아니라 못하는 거지만 말이야."

애초에 그쪽은 서로 미친듯이 경쟁하는 기업들이니 계약 조건 상에 무조건 타 기업과 계약 금지, 나아가서 타 기업의 용품 사용 금지 조항을 붙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알겠어. 어, 여기 아디다스에서 제의 온게 있네."

서류를 들추며 방금 말한 아디다스의 제의를 살펴 본다.

"아, 그거 전속 모델 계약일 거야. 어디 보자..."

슬쩍 다가오며 함께 서류를 살펴 보는 티티, 제임스는 조용히 노트북을 꺼내 데이빗이 이미 확인한 서류에 대하여 정리를 하고 있었다. 조용히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상당히 위화감이 드는 데이빗이었지만 곧 시선을 서류로 돌렸다.

"아디다스에서 리버풀의 스폰을 하고 있잖아? 이번에 초상권의 일부 지분도 가져 왔으니 이쪽의 제안을 받아 들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나도 그렇게 생각해.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용품도 아디다스가 많고, 난 나이키보다 아디다스가 더 좋더라."

"아디다스 관계자가 들으면 좋아할 말이네. 그럼 이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거지?"

티티의 질문에 데이빗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다른 제안과 달리 아디다스의 제안에 상당히 호감을 보이고 있었다.

"예전에 아디다스에서 나온 광고를 본적이 있었는데, 메시하고 지단이 나오는 광고였거든? 기억 나?"

데이빗이 조금 신난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그런게 있었나?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광고는 나이키가 더 멋있지 않냐?"

입맛을 다시며 제임스가 의견을 피력한다. 데이빗은 손가락을 흔들며 말을 이었다.

"분명 있었어. 그거 보고 진짜 멋있다고 생각했었거든. 나도 그렇게 멋진 광고를 찍을 수 있겠지? 나이키 광고도 멋있기는 한데, 난 아디다스 제품이 더 멋진 거 같아. 스타일이 그래."

"분명 그럴거야. 아마 진짜 멋진 장면이 나올게 분명해."

어쨌거나 의욕을 보이는 모습은 좋았기에 티티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디다스의 전속 모델 계약이 적힌 서류를 따로 빼 내어 챙겼다.

"그럼 이건 우리가 챙겨 놓을게. 제임스, 이거 정리 좀 부탁할게."

"알겠어. 드디어 하나 챙겼군."

씩 웃으며 서류를 받아 들고 빠르게 키보드 위로 손을 놀린다. 데이빗은 그 모습을 신기한 듯 바라 보았다.

"저기 제임스? 언제부터 그렇게 컴퓨터를 잘 다루게 된거야? 원래 할 줄 알았어?"

"앙? 날 뭘로 보는거야? 이쯤이야 우습지."

에헴 하며 어깨를 펴는 제임스, 데이빗은 '제임스가 이럴리 없는데' 라고 중얼거렸다.

"내가 시험 공부할 때 제임스도 이것 저것 준비를 많이 했으니까."

"그렇구나. 되게 달라 보인다 제임스."

"...그거 칭찬이냐?"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영 거슬린다며 제임스가 투덜거렸다. 데이빗은 어색하게 웃으며 변명하듯 말을 이었다.

"아니 그래도...뭔가 그러고 있으니 인텔리 같다고 해야 되나? 뭔가 지적으로 보여."

"...망할 자식. 고용주라 팰 수도 없고."

주먹을 들어 보이며 툴툴거리는 제임스의 모습에 티티와 데이빗은 웃음을 터뜨렸다. 데이빗은 이래야 제임스 답다고 말하며 박수를 쳤고 제임스는 코웃음을 치고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근데 이거 생각보다 힘드네. 벌써 한 시간 반이 넘게 봤는데 고작 이거 밖에 못봤어."

굴러다니는 서류를 몇장 들어 부채를 부치듯 팔랑거리며 투덜대는 데이빗, 봐도 봐도 끝이 없는 서류의 산에 질려 버린 것 같다.

"그래도 많이 봤잖아. 조금만 더 힘내라고."

"그래! 지금 좀 귀찮아도 열심히 보라고. 그럼 너도 돈 많이 벌고 우리도 돈 많이 벌고, 모두가 해피한 거 아니겠어?"

천연덕스러운 제임스의 말에 티티와 데이빗은 웃음이 터져 버렸다.

"알겠어 알겠어. 제임스를 위해서 그럼 열심히 볼게. 됐지?"

"지도 좋은 일인데 왜 나 때문이라는 거야?"

============================ 작품 후기 ============================

-예전에...2000년대 초반이었나

-그때 나이키에서 축구 스타들 대거 출연시킨 광고가 있었는데

-엄청 멋있었던 기억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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