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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긴장감이 떨어질 때도 됐지."
달글리시 감독은 혀를 차며 고개를 흔들었다. 풀럼과의 원정 경기를 치르는 리버풀은 이곳 크레이븐 코티지 경기장에서 고전하고 있었다. 전반 15분, 데이빗 장의 중거리 슈팅에 이은 선제골을 성공 시켰을 때만 해도 나쁘지 않았다. 그는 재계약 이후 자신은 최고 수준의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가벼운 움직임으로 골을 성공 시켰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아닌, 다른 쪽에 있었다.
"스티븐이 빠진 것이 이렇게 치명적으로 작용할 줄은 몰랐군."
어제 훈련에서 스티븐 제라드가 갑작스러운 허벅지 통증을 호소했을 때 극도의 긴장감을 느꼈던 자신이다. 늘 허벅지와 엉덩이 근육 쪽에 부상을 달고 사는 제라드였기에 올 시즌에도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었다. 다행히 팀 내 의료진의 진단은 심각한 부상이 아닌 단순 근육통이라는 것이었고 며칠 간 휴식을 취하면 문제 없을 것이라 이야기했다.
사실 달글리시 감독의 계획은 이미 F조 1위를 확정 지은 챔피언스 리그 조별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스티븐 제라드를 포함한 주전들에게 대거 휴식을 줄 생각이었다. 오늘 풀럼 전에 전력을 기울여 승리를 따내 리그 1위를 좀 더 확실히 유지한 뒤에 말이다.
사실 제라드가 경미한 부상으로 이탈했음에도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큰 부상이 아니라는 사실이 다행이었고 한 경기 정도, 그것도 한 수 아래의 팀을 상대하게 되었으니 충분히 할 만 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오산이었다.
"나부터 반성해야 겠군. 팀이 잘 나간다고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어."
그는 파워풀한 슈팅으로 동점골을 기록한 풀럼의 에이스, 클린트 뎀프시를 바라 보았다. 그가 현재 자신의 팀 영입 대상에 올라 있긴 했으나 이런 식으로 그의 능력을 확인하고 싶지는 않았다. 애초에 영입할 수 있다는 확신도 없었고 말이다.
"단순히 골을 허용한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선수들의 플레이 자체에 문제가 있습니다."
클락 수석 코치 또한 그 점을 짚었다. 달글리시 감독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그의 말대로 지금 리버풀의 경기력인 이번 시즌 들어 최악에 가까웠다.
"요즘 너무 잘 나가지 않았나. 상대도 만만해 보이고, 자만할 때가 온거야."
지난 8라운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전 승리 이후 리그에서만 6연승을 달린 리버풀이다. 현재까지 리그에서의 패배라고는 5라운드에 만났던 토트넘 핫스퍼 전 밖에 없을 정도로 대부분의 경기에서 승리를 거둬 온 리버풀이다. 리그 컵에서 탈락하긴 했으나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무패 행진을 이어가며 팀 분위기가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하지만 이런 쾌진격이 마냥 긍정적인 효과만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그렇겠죠. 선수들 플레이에 오늘 겉멋이 들었다고 할까요. 평소처럼 승리에 탐욕적인 모습이 보이지 않네요."
쓸데 없는 움직임이 너무 많다고 느낀 클락이다. 그나마 평소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선수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골키퍼로 나선 호세 레이나는 가끔 집중력을 잃는 모습과 달리 오늘은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오른쪽 윙 포워드로 나선 디르크 카윗은 원래 방심을 모르는 남자였고 말이다. 데이빗 장은 그냥 평소와 같았다.
하지만 축구는 두 세명만으로 하는 스포츠가 아니었다. 대다수가 제대로 집중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만으로 경기를 대등하게 이끌어 가는 것은 힘들었다. 달글리시 감독은 테크니컬 에어리어로 나가 선수들을 독려하기 시작했다.
"좀 더 전투적으로 달려 들어! 확실하게 압박하란 말이야!"
동점골을 허용한 이상 기세가 저쪽으로 향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달글리시 감독은 선수들에게 분발을 촉구했다. 전반이 거의 끝나가는 시점이다. 이 타이밍에 골을 허용한 것은 아쉽지만 더 이상의 추가 실점없이 전반을 마치는 것이 더 중요했다.
"물러서지마! 자리를 내주지 말라고!"
소극적으로 뒤로 물러나 있는 모습에 달글리시 감독이 호통을 친다. 상대방이 자신들의 진영에서 자유롭게 공을 돌리는 데 아무런 제어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수동적인 움직임, 달글리시 감독은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다.
"제기랄!"
대니 머피와 브라이언 루이스의 2 대 1 원 투 리턴에 리버풀의 왼쪽 사이드가 완벽하게 공략당했다. 루이스는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는 상황에서 크로스를 올렸다. 살짝 뒤쪽으로 향하는 크로스, 리버풀의 수비진은 2선에서 달려드는 무사 뎀벨레를 완벽히 놓쳐 버렸다. 달려오는 기세 그대로 강하게 공에 머리를 맞추는 뎀벨레, 호세 레이나가 놀라운 집중력을 보이며 무게 중심을 잃은 상황에서도 억지로 몸을 날려 보았으나 미치지 못했고 리버풀은 동점골을 허용한지 5분도 되지 않아 역전골마저 허용하고 말았다. 달글리시 감독은 욕설을 내뱉으며 바닥을 찼다.
와아아아아아!!!!!!!!!!!!!!!!!!!!!
크레이븐 코티지 경기장은 광란의 도가니가 되었다. 2009-10 시즌, 유로파 리그 준우승을 거두며 기대감을 끌어 모았으나 지난 시즌의 풀럼은 평범했다. 강등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으나 아주 인상적이지도 않았다. 그리고 이번 시즌에는 초반 고전을 거듭하며 하위권에 머무르고 있었다. 아직 강등권까지 떨어진 것은 아니지만 오늘 경기에 패한다면 강등권에 있는 팀과의 격차도 확 줄어들게 된다. 반드시 승점을 따내야 하는 경기였지만 상대는 최근 적수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리버풀이었다. 리그에서 6연승, 그들은 9월 17일 토트넘 전에서 패한 이후 거의 3달에 가까운 시간 동안 패배를 모르고 지냈다. 풀럼으로서 승리는 커녕 무승부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고 했던가. 비록 아직 후반이 통째로 남아 있었지만 전반전은 확실히 그들의 게임이었다. 선제골을 허용할때까지만 해도 역시 안되는가 싶었다. 하지만 묘하게 경기가 비벼지기 시작하더니 동점골을 기록했다. 당연히 기뻐 날뛴 풀럼의 팬들, 그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곧바로 역전골까지 들어가 버렸다. 그들은 기뻐하다 쓰러지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격하게 소리를 질렀고 이 순간을 만끽했다.
삑삐익-
그리고 기다렸다는듯 울리는 전반 종료 휘슬, 풀럼 선수들은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라커룸으로 향했다. 홈 팬들은 그런 그들에게 아낌없는 성원을 보내며 더욱 기를 세워 주었다. 반면 전반 막판에 동점골에 역전골까지 연달아 허용한 리버풀은 귀신에 홀린 듯한, 멍한 표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콰앙-!!!
"젠장!!"
거칠게 라커에 신발을 집어 던져 버리는 디르크 카윗, 그는 자신의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그는 전반전에 동료들이 보인 퍼포먼스가 극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호세 레이나도 표정을 딱딱하게 굳힌 채 소리쳤다.
"니들 지금 뭐하냐? 지금 소풍 나왔어?"
골키퍼로서 전반에만 2골을 허용한다는 것은 굴욕이었다. 그것도 두 번 모두 자신으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골, 그런만큼 그가 동료들을 질책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 딸을 경기장에 세워놔도 니들 보단 나았을 거다. 치마라도 입혀 줄까? 겁쟁이처럼 주춤주춤 거리고, 뭐하자는 거야?!"
"페페! 말이 심하잖아!"
욱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다니엘 아게르, 곱상한 외모와 달리 한 성격하는 그였기에 레이나의 비판에 발끈하며 나선 것이다.
"심해? 니들이 한 플레이는 심하지 않고? 지금 장난해? 욕 먹기 싫으면 똑바로 하란 말이야!"
레이나는 자신의 발언을 철회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제기랄, 미드필드에서 죄다 공간을 내주고 뒤에서 때려 버리는데 나보고 뭘 어쩌라는 거야? 어?"
아게르 또한 할 말이 있다는 듯 지지 않고 소리 친다. 그 말에 평소 묵묵한 편이었던 루카스가 성난 기색으로 입을 연다.
"남 탓하지 마 다니엘. 니들이 라인을 멍청하게 뒤에 내려 놓으니 우리가 내려갈 수 밖에 없잖아. 간격 유지가 안되는 원인부터 생각해 보시지."
"말 다했냐? 누가 멍청하다고?"
으르렁 거리며 루카스에게 다가 간다. 루카스 또한 지지 않고 눈을 똑바로 노려보며 맞선다. 일부 선수들은 그들을 말리기 시작했고 그저 방관하는 선수도 있었다. 라커룸의 분위기는 흉흉 그 자체였다.
쾅-
그때 거칠게 라커룸의 문이 열렸다. 감정 대립이 극한으로 치닫던 선수들의 움직임이 멈춘다. 달글리시 감독이 성난 표정으로 문 앞에 서서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지금 뭐하는 건가?"
낮은 목소리, 그가 지금 극도로 화가 났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었다.
"힘이 넘치는 군 그래. 하긴, 경기에서 하고 나온게 없으니 힘이 남아 돌겠지. 남아 도는 힘을 어찌하지 못하겠나?"
조롱에 가까운 말투, 선수들의 표정이 구겨진다. 그들도 당연히 전반에 자신들의 플레이가 비판받아 마땅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욕을 먹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달글리시 감독은 개의치 않고 선수들을 둘러 보며 말을 이었다.
"알겠지만, 전반전에 너희들은 정말 최악이었다."
차가운 목소리로 질책한다. 선수들은 말이 없다.
"지금 승점을 한 100점은 따 놓은 건가? 이미 우승을 확정 지었어? 그래서 그렇게 여유가 넘치는 건가?"
라커룸은 쥐죽은 듯 고요하다. 오직 달글리시 감독의 목소리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최근 몇 번 이기니까 벌써 우승했다고 생각하는 건가? 어?! 자만하지마 이 멍청이들아!"
강하게 소리를 지른다. 오랜만에 분노를 표하는 감독의 모습에 선수들은 찔끔했따. 원래 화를 잘 내지 않는 사람이 화를 내면 더 무서운 법이다.
"당장 눈 앞의 경기에 집중하지 못하는 녀석들이 우승? 지나가는 개가 웃겠군 그래. 웃기지 마. 웃기지 말라고."
숨을 크게 내쉬며 호흡을 정리한다. 그리고 조금은 가라 앉은 목소리로 이야기 한다.
"우리가, 그리고 너희들보다 먼저 이 클럽을 거쳐갔던 많은 선수들이 우승을 못한 이유가 이거야. 한 시즌을 치르며 쉽게 집중력을 잃어버리곤 하지. 우승을 한다는 건 그런거야. 매번 자신에게 냉엄해 져야 해. 스스로 계속 채찍질을 해야 한다고!"
선수들과 하나 하나 눈을 마주친다.
"여기에 있는 사람 중에, 혹시 우승을 하기 싫은 선수가 있나? 아니, 다들 우승을 하고 싶은가?"
"물론이죠!"
"반드시 할 겁니다!"
가장 먼저 대답하는 디르크 카윗, 그리고 뒤따라 다른 선수들도 외쳤다. 달글리시 감독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했다.
"그럼 우승할 자격이 있다는 것을 보여줘. 너희들도 알겠지만 전반전은 농담으로라도 우승을 노린다는 팀의 경기가 아니었어. 나가서 제대로 된 플레이를 하고 와. 챔피언에 어울리는 경기를 하고 오라고. 알겠나?"
"감독님 이렇게 화내는 거 처음 보네요."
라커룸을 나서며 데이빗은 카윗에게 말을 걸었다. 신발을 집어 던질 만큼 불같은 분노를 표출했던 디르크 카윗이었으나 지금은 많이 안정된 것처럼 보였다.
"그럴만 하지. 그래도 상당히 신사적이네. 난 진짜 의자라도 집어 던질 줄 알았는데."
"감독님이 그럴 것 같지는 않은데요."
데이빗의 말에 카윗은 손가락을 흔들며 부정했다.
"뭐, 지금까지야 그랬지만 말이야. 사람이 머리가 돌아 버리면 무슨 짓을 할 지 모르는 거야. 되게 점잖아 보이는 감독들이 훼까닥 돌면 아주 환상적으로 변하는 모습을 많이 봤었거든."
그러면서 자신이 알고 있는 일화를 이야기해 준다.
"그 맨체스터의 영감이야 성질 불 같기로 유명하니까 잘 알거고, 지난 시즌까지 첼시 감독했던 안첼로티 그 양반 알지?"
"네 이름은 알고 있죠."
축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 봤을 이름이기에 데이빗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그 양반,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마음씨 좋은 동네 할배 같잖아. 근데 실제로는 장난 아니야. 네덜란드 대표팀 동료 중에 클라렌스라고 있는데 혹시 알아? 아무튼 그 양반이 말해줬는데 장난 아니라고 하더라. 한 시즌을 치르다 보면 의자가 한 5개는 기본으로 작살난다고 하던데."
"그건 또 의외네요."
전혀 그럴 것 같지 않다며 데이빗이 말한다.
"이탈리아 쪽이 아무래도 다혈질이 많다고 하지만, 솔직히 감독도 답답하겠지. X같은 플레이 하는 꼬라지를 보고 있으면 자기가 뛰고 싶어지지 않겠어?"
완전히 흥분을 가라 앉힌 모습, 카윗은 앞서 가던 동료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후반에는 정신 차려야 할거야. 만약에 후반에도 전반처럼 지랄하면 진짜 참지 않을 거니까."
"잘 할거에요. 다들 생각한 바가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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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을 주신 분이 계셔서 답변 드릴게요
Ken12 2015-11-08 21:17
여기서 작가에게 질문하나...원래 리버풀은 라이벌이며, 으르렁대는 사이가 에버튼으로 알고 있는데 작중에서는 에버튼은 별로 언급이 없고, 맨유와 라이벌인데...실제로도 그런가요??
-리버풀은 에버튼과 연고지를 공유하고 있긴 한데요, 두 팀간의 사이는 실제로 일반적인 연고지 더비에 비해서 온건한 편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프렌들리 더비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서로에 대해 크게 의식하지 않는 편이라고 하네요. 그래도 같은 지역 팀인 만큼 기본적으로 사이가 완전히 좋지는 않겠죠? 어디까지나 '더비' 치고는 사이가 좋다는 의미로 받아 들이시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리버풀하고 맨유는 그냥....역사적으로 사이가 더럽게 안좋은 동네에요.
레알 마드리드 VS 바르셀로나, 뉴욕 양키스 VS 보스턴 레드삭스 정도의 라이벌리 라고 생각하시면 적절한 설명이 될 것 같네요.
-역시; 직관 가셨다가 선수들로부터 된서리 맞아 보신 분들이 많네요
-팬들이 무례한 부분도 있다는 말씀도 동의합니다. 예를 들어 식사중에 카메라를 들이 댄다거나 사인을 요청하는건 안되겠죠
-근데 우리 나라 대부분의 선수들은 기본이 글러 먹었어요;
-다크엔젤 님 께서도 말씀해주셨는데 스포츠 관련 사이트에서 팬 서비스에 대해 이야기가 나오면 일치단결해서 까기 시작한다고 하는게 괜히 나온 말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근데 칼이무서 님;; 사인해달라고 공을 줬는데 사인해서 옆에 여자한테 준 선수는 도대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