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35 =========================================================================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리라는 말입니까? 내 몸은 이제 완전하다구요!"
달글리시 감독이 업무를 보는 집무실, 이곳에서는 때아닌 고성이 오가고 있었다. 살벌하게 경직된 분위기 속에서 냉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한번 말하겠네. 내가 납득할 수 있는 몸 상태를 원하네. 자네의 판단이 중요한게 아니야. 내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나? 자네가 예전의 모습을 완벽히 되 찾는다면 내 명예를 걸고 자네를 기용할 것을 약속하겠네. 이렇게 이야기해도 믿지 못하겠나?"
굳은 표정으로 엄히 말하는 달글리시 감독, 그 앞에서 소리를 질렀던 선수는 납득할 수 없다는 듯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불길이 이는 듯한 눈으로 감독을 잡아 먹을 듯이 노려 보며 외친다.
"솔직하게 이야기해요. 당신의 구상에는 내가 없는 거잖아요. 허울 좋게 내가 준비가 덜 됐다고 이야기하지 말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란 말이야!"
타앙!
"이봐 파비우! 이게 무슨 무례한 짓인가?"
탁자를 강하게 내리치는 파비우 아우렐리우를 향해 강하게 질책하는 스티브 클락 수석 코치, 파비우 아우렐리우는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 보았다. 클락 수석 코치는 조금 목소리를 부드럽게 하여 그를 달래고자 했다.
"일단 진정하게. 자넨 지금 감독님의 뜻을 오해하고 있어. 감독님이 자네를 무조건 배제하겠다는 뜻은 아니지 않나. 좀 더 몸 상태를 끌어 올리면..."
"하."
말이 안통한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는 아우렐리우, 그는 수석 코치를 노려보며 빠르게 불만을 쏟아 냈다.
"웃기지 말아요. 팀 닥터로부터 이제 부상은 완벽히 나았다는 소견을 받아 왔어요. 리저브 경기도 한 경기 문제 없이 치렀다구요. 그런데도 더 기다리고요? 당신 같으면 납득할 수 있겠어요?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리라는 말인데요? 이번 시즌 끝날때까지? 집어 치워요!"
"비약하지 말게. 아무도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어. 일단 흥분을 가라 앉히란 말이야."
그가 너무 앞서가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수석 코치, 하지만 아우렐리우는 더욱 강경하게 나섰다. 그는 이미 수석 코치가 통제할 수 없을 만큼 흥분해 있었다.
"아무도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구요? 말로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겁니까? 내가 바보로 보여요? 왜 뻔히 보이는 걸 속이려고 해요!"
씩씩거리며 계속 불만을 이야기한다. 코치는 뭐라 흐름을 끊고 싶었으나 아우렐리우의 입이 열리는 것이 빨랐다.
"만약 정말 내 상태를 체크하고 싶었다면, 지난 칼링컵 경기에서라도 날 내보냈어야 하는 게 아닌가요? 리저브 팀의 애송이들도 뛰는 경기에서 조차 내 자리를 찾을 수가 없는데, 나보고 더 기다리라고요? 진짜로 날 바보로 보지 않고서야 그렇게 말할 수 있어요? 지금 장난해요?"
한숨을 쉬며 고개를 흔드는 코치, 아우렐리우는 그거 보라는 듯 더욱 기세를 높여 외쳤다.
"할 말이 없겠죠. 사실이니까. 감독이 칼링컵 경기에 내보낸 선수들만 봐도 감독이 칼링컵에 큰 비중을 두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알 수 있어요. 모르는게 바보죠. 근데, 그런 세살짜리 어린애라도 감독이 중요한 경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는 시합에서, 그곳에서 조차도 내 자리가 없는데 나보고 믿으라고요? 웃기지 말아요!"
격해진 감정을 참기 힘들었는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파비우 아우렐리우, 문을 열고 나가기 전 마지막 한 마디를 남겼다.
"당신은 거짓말쟁이야. 날 속였다고! 당신을 믿을 수 없겠냐고? 물론이지! 이제 더 이상 당신의 허울 좋은 거짓말은 절대 믿지 않을 거야!"
콰앙-
문이 강하게 닫히는 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씩씩거리며 문을 열고 나온 파비우 아우렐리우는 거칠게 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가 문을 닫고 나온 방 안에서는 두 남자가 혀를 차고 있었다.
"성질머리하고는..."
문 쪽을 바라보며 혀를 차는 스티브 클락 수석 코치, 그는 고개를 돌려 달글리시 감독을 향했다.
"저건 너무 예의가 없는 짓인데요, 제가 가서 주의를 줄까요?"
코치의 말에 무겁게 고개를 젓는 달글리시 감독, 이미 말로 해결하긴 힘들다고 여기는 듯 했다.
"놔두게. 지금 저 친구는 너무 흥분했어. 이야기한다고 해도 들리지 않을 거야. 나중에, 좀 더 나중에, 열이 빠지고 나면 좀 더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수 있겠지."
씁쓸한 어조로 손을 들어 눈가를 누른다. 갑자기 극도의 피로감이 몰려우는 듯 했다. 한동안 눈가를 누르며 피로를 달래든 달글리시 감독은 이미 식어버린 차를 입에 가져가며 중얼거렸다.
"감독은 선수들 모두와 화목하게 지낼 수 없어. 자리는 정해져 있고 선수는 그보다 많지. 그들은 언제나 자신들이 준비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이야 말로 그 자리에 적합하다고 생각하지. 하지만 감독은 그들을 냉정히 바라 보아야 하네. 어느 것에도 치우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보아야 한단 말일세."
"그렇죠..."
감독의 모습이 쓸쓸하게 보였는지 클락 수석 코치는 조금 숙연해진 모습으로 대답했다. 오히려 감독이라는 자리는 선수들과 소리 지르고, 싸우고, 질책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혈기 왕성한 선수들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감독에게 강력한 카리스마와 지휘력이 요구되었고 그들에게 자신의 철학을 이해 시킬 수 있어야 했다. 이런 과정이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되는 경우도 있었으나 서로 대립을 통해 싸워서 결과가 나오는 경우도 흔한 일이었다. 방금 전과 같은 출전 시간, 팀 내 위상의 문제를 놓고 선수와 감독이 대립하는 일은 아주 흔한 일이었고 말이다.
"감독이란 자리가 마냥 행복한 자리가 아닌 것은 자네도 알지 않나. 저들과 행복한 시간도 있는 반면, 이렇게 서로 원치 않는 시간을 보내야 할 때도 있지."
"......"
"저 친구가 나를 거짓말쟁이라고 생각하는것도 저 친구가 봤을 때는 맞는 말이겠지. 하지만 이게 우리의 숙명인걸 어쩌겠나. 그리고 저 친구는, 아니 선수들은 대부분 자신은 멀쩡하다고, 완전하다고 생각하지. 주변에서 자신을 어떻게 보고 있는 지 냉정하게 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누가 저 정도 되는 선수에게 너는 지금 경쟁력이 없어 라고 따끔하게 이야기해 주겠나? 대부분 컨디션만 회복하면 주전 자리를 되찾을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말하겠지."
어찌보면 지난 이적 시장에서 호세 엔리케를 영입해 왔을 때, 이미 이런 일은 예견되어 있는 지도 몰랐다. 리그 최정상급의 왼쪽 풀백을 영입해 온 이상 리버풀의 주전은 그로 결정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 측면 수비수의 백업은 한 명이면 충분한 상황, 그리고 그 중요한 시점에서 파비우 아우렐리우는 부상을 당하며 경쟁에서 이탈했다. 그리고 그 틈을 타 리저브와 퍼스트 팀을 오가며 꾸준히 자신의 능력을 키워 온 마틴 켈리가 백업 풀백으로 부상했다. 현재 파비우 아우렐리우의 입지는 그만큼 좁아진 상황. 현실적으로 그가 출장하기 위해서는 둘 중 하나가 장기 부상을 당하거나 본인이 완벽하게 예전의 폼을 되찾는 수밖에 없었다. 한 팀에 왼쪽 측면 수비수를 세명이나 엔트리에 넣고 운영하는 팀은 없었다.
"비슷한 기량이라면 당연히 어린 선수를 쓰는 것 아니겠나. 그리고 저 친구를 믿고 한 시즌을 치르기엔 그는 건강하게 시즌을 치른 적이 단 한 시즌도 없어. 심지어 지금 본인은 괜찮다고 하지만 예전보다 못하다는 건 저 친구 빼고 다 알고 있지 않나."
"그렇습니다. 안타까운일이죠..."
계속된 부상은 선수의 본질적인 실력을 갉아 먹게 된다. 잠깐의 부상이야 금방 회복하고 일어날 수 있다지만, 장기 부상을, 그것도 자주 당하다 보면 신체 능력의 저하 뿐만 아니라 볼을 다루는 스킬에도 문제가 생긴다. 달글리시 감독은 그 점을 지적하고 있었고 코치도 동의했다.
"애초에 저 친구가 잘했다면, 건강하게 리버풀의 왼쪽을 지켜 주었다면 우리가 여름에 엔리케를 사 왔겠나. 저 친구는 리버풀의 왼쪽이 약점이라고 지목 받는 이유가 본인이 부상 당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맞는 말이야. 하지만 건강을 잃은 선수는 냉정히 이야기해서 그보다 급이 떨어지는 건강한 선수보다도 쓸모가 없네."
안타깝다는 듯 달글리시 감독이 찻잔을 내려 놓으며 중얼 거렸다.
"그래도, 정말 저 친구를 내 계획에서 완전히 배제할 생각은 없었어. 그랬다면 이번 시즌, 호세를 데려 오면서 저 친구를 방출했겠지. 그걸 이해해 주지 못하니 정말 안타깝군."
"빌어먹을!"
감독의 집무실에서 뛰쳐 나온 파비우 아우렐리우는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알 수 없을 만큼 분노해 있었다. 그가 발걸음을 멈춘 곳은 건물 안의 화장실, 그는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오른 열을 식히기 위해 세면대에 앞에 섰다. 숨을 몰아 쉬며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노려 본다.
쏴아아-
차가운 물에 얼굴을 적셔 보지만 열은 가라 앉지 않는다. 오히려 더 뜨겁게 타오르는 느낌이었고 그는 자신을 분노케 한 대상을 향해 욕을 내뱉었다.
"빌어먹을 영감탱이같으니, 뭐? 내 생각은 중요하지 않다고? X발! 개같은!"
좀 전에 있었던 면담을 떠 올렸다. 사실 이렇게까지 화를 내고 나올 생각은 없었다. 그동안 경기에 나서지 못했던 것은 사실 자신의 부상때문이라고 인정하고 있었다. 그래서 팀에서 호세 엔리케라는, 꽤 괜찮은 왼쪽 측면 수비수를 영입해 왔을 때 납득할 수 있었다. 자신은 시즌 개막에 맞추어 몸을 완전히 만들 수 없었고 지난 시즌까지 자신을 대신하여 가끔 경기에 나섰던 마틴 켈리는 아직 애송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불안한 마음이 아예 없지는 않았으나 자신의 미래가 부정적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부상만 회복된다면야 자신은 여전히 리그에서 경쟁력이 있는 선수라 생각했고 새로 들어온 엔리케라는 친구와 제대로 경쟁을 펼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오산이었다.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 호세 엔리케는 완벽하게 자신의 빈 자리를 지워 버리며 리버풀의 왼쪽 측면 수비수 자리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마틴 켈리라는 애송이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았으나 백업 수비수로는 충분한 경쟁력을 갖췄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재활하고 있던 그로서는 마음이 급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마음을 추스리며 간신히 재활을 끝마치고 부상을 완전히 떨쳐내는 데 성공했다. 리저브 경기를 통해 경기 감각도 충분히 살아 있음을 확인했다. 하지만 지난 칼링컵 32강전의 출전 명단이 발표되고, 그는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고 느꼈다. 납득하기 힘들었고 자신의 활용 방안에 대하여 감독과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싶어 그를 찾았다. 하지만 자신은 원하는 답을 찾지 못했다. 오히려 감정의 골을 깊어지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으아아아!"
콰앙!
치밀어 오르는 울화를 참지 못한 아우렐리우는 온 힘을 다해 화장실 문을 걷어 차 버렸다. 폭발하듯 터져 나오는 굉음, 그리고 복도에 진동이 울려 퍼졌다.
"뭐야, 무슨 일이야? 안에 누구 있나요?"
소음을 듣고 누군가 찾아오는 듯 했다. 아우렐리우는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다. 지금 이렇게 비참한 자신의 모습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서둘러 자리를 피하려는 아우렐리우, 하지만 그보다 먼저 화장실에 들어서는 이가 있었다.
"무슨 일이...파비우 아냐?"
"스티비..."
화장실로 찾아온 것은 리버풀의 캡틴, 스티븐 제라드였다. 파비우 아우렐리우는 흔들리는 눈빛을 감추기 위해 시선을 피했다.
"무슨 일이야? 화장실에서 큰 소리가 들려서 달려와 봤는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
제라드의 질문, 하지만 아우렐리우는 묵묵무답이었다. 제라드는 그의 상태가 평소와 같지 않음을 알아 챘다. 눈이 흔들리고 있었고 불안해 보였다.
"무슨 일 있는거야? 안색이 좋지 않은데?"
"...아무 일도 아니야."
"아무일도 아닌게 아닌 것 같은데. 나한테 하기 어려운 얘기야? 혹시 팀 내에서 문제가 있다면 이야기해 줘. 주장으로서가 아니라 너의 동료로서 돕고 싶어."
진심이 깃든 제라드의 말에 아우렐리우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입술을 몇번 달싹이던 아우렐리우는 결국 고개를 흔들었다.
"신경써줘서 고마워. 하지만 이건 너라도 해결해 줄 수 없는 문제야."
단호한 거절, 제라드는 걱정이 되었으나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주장이라고 해도 말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들을 권리는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래, 혹시라도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이야기 해줘."
"꼭 그럴게. 고맙다. 그럼 난 이만 먼저 들어가 볼게."
힘 없이 일별을 고하는 아우렐리우, 제라드는 표정을 굳힌 채 그의 뒷모습을 지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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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예약 등록이에요
-물론 두 편입니다
-리얼성실 라이즈리얼
-연중한 놈이 말은 잘해
-...앞으로 안할게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