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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nswer-129화 (129/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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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4일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의 홈 구장 스타드 벨로드롬

챔피언스 리그 F조, 리버풀과 마르세유의 첫 경기가 열리는 곳, 리버풀 선수단은 경기 시작을 앞두고 마지막 미팅을 가지고 있었다. 신발끈을 다시 한번 정리하는 선수도 있었고 눈을 감은 채 명상을 하는 선수도 있었으며 옆의 동료와 농담을 주고 받으며 긴장을 푸는 선수도 있었다. 달글리시 감독은 박수를 두어번 치며 주위를 환기시켰다.

"이제야 챔피언스 리그라는 느낌이 드는군. 그렇지 않은가?"

"확실히 그래요."

"플레이오프는 뭐랄까, 커뮤니티 실드 같은 단판 대회같은 느낌? 아무튼 좀 그래."

챔피언스 리그 플레이오프를 걸치긴 했지만 역시 본격적인 챔피언스 리그라고 한다면 조별 예선부터라고 생각했다. 달글리시 감독은 선수들을 바라 보며 입을 열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속한 F조가 무난한 조라고, 우리 리버풀이 별 문제 없이 16강 토너먼트에 진출할 거라고 이야기 한다"

사실이었기에 선수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선수들 중에서도 그런 생각을 하는 이들이 많았다. 쉬운 상대는 없다고, 방심하지 말자고 이야기하는 선수들 또한 죽음의 조로 꼽히는 D조(레알 마드리드, 올랭피크 리옹, 아약스, 디나모 자그레브), E조(첼시, 레버쿠젠, 발렌시아, 나폴리) 에 비하면 괜찮은 상황이라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어느 정도는 편한 조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나는 한 수 아래의 평가를 받는 상대라고, 약 팀이라고 방심하지 말자는 뻔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의외의 말, 선수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흔하게 들을 수 있는, 사자는 토끼를 잡을 때도 전력을 다한다거나, 절대 얕봐서는 안된다는 등의 말을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달글리시 감독의 음성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D조나 E조가 죽음의 조라고 이야기 한다. 비슷한 수준의 팀들끼리 뭉쳐있으면 보통 그런 말을 하곤 한다. 하지만 나는 우리 리버풀이 들어가는 조야 말로 죽음의 조라고 생각한다. 우릴 상대하는 팀들에게 있어서 말이다."

달글리시 감독의 목소리가 높아짐에 따라 선수들의 사기도 점점 올라가기 시작했다. 달글리시 감독은 주먹을 불끈 쥐며 더욱 강하게 외쳤다.

"우리가 어떤 조에 편성되었을 지라도 조별 리그를 가장 먼저 뚫고 올라가는 것은 우리 팀이었을 거다. 난 우리 팀에 조 편성 따위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떤 상대를 만나도 이길 수 있고 상대가 우리와 경기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두렵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한가?"

피를 끓어 오르게 만드는 감독의 자극, 불 붙지 않으면 남자가 아니었고 선수들은 크게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패기 넘치는 대답에 달글리시 감독이 만족스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그라운드로 나가야 할 시간이다. 발걸음을 옮기며 자신의 말을 마무리 지었다.

"나가지. 불행하게도 우리와 같은 조가 된 첫 번째 녀석들에게 차라리 바르셀로나나 레알 마드리드를 만나는 게 나았을 거라는 사실을 알려 주자."

"너구리 같은 영감님이야."

뭐가 그리 재미있는 지 수아레즈가 킥 오프 휘슬을 기다리며 쿡쿡거리며 웃는다. 데이빗은 고개를 갸웃하며 입을 열었다. 그가 생각하기에는 딱히 이상한 점이 없었기 때문이다.

"뭐가요? 감독님이 뭐 이상한 말이라도 했어요?"

데이빗의 질문에 손을 저으며 대답하는 수아레즈.

"아니, 딱히 그런 건 없는데, 사실 나도 아까 라커룸에서는 정말 감명 받았거든. 피가 막 끓어 오르고 말야. 근데 나오면서 생각하니까 좀 다른 기억이 떠오르더라고."

"무슨 기억요?"

감이 안 잡힌다는 듯 데이빗은 질문을 계속했다.

"예전에 조 추첨식때 말야, 우리 감독님 모나코에 직접 가서 참관했었던 거 기억나? 그때 올림피아코스를 뽑고 나서 카메라가 우리 감독님 비춰줬잖아. 애써 덤덤한 척 하려고 했지만 입 주변이 실룩이던거 말야. 본인도 솔직히 꿀조에 걸렸다고 생각했으면서 지금 우리 사기를 올려주겠다고 다르게 이야기하니까 재밌는거 아니겠어?"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뭐 라커룸에서 감독들이 하는 얘기가 다 비슷비슷하고 선수들의 사기를 올려주기 위해 없는 말도 지어낸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듣고 보니 뭔가 맥이 빠지는 느낌이 드는 지라 조금 힘이 빠지는 어조로 대답했다.

"뭐 어쨌든 감독님의 말은 참 마음에 드니까, 오늘도 잘 해보자고. 우리가 실제로 그렇게 만들면 되는 거 아니겠어?"

북치고 장구치고, 병주고 약주는 것도 아니고 기운 빼놓고 다시 힘내자며 으샤으샤하는 모습에 데이빗이 황당한 웃음을 터뜨린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자신은 이 승부욕 강한 우루과이 청년이 마음에 들었다.

진심으로 한 이야기든, 선수들의 사기를 끌어 올리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든, 달글리시 감독의 의도는 적중했다. 선수들은 평소보다도 사기가 충천한 상태에서 경기를 치르게 되었다. 실제로 달글리시 감독은 선수들 사이에서의 평가도 좋았고 신뢰도 높았다. 그가 부임한 이후의 리버풀의 성적은 그 신뢰의 원천이었다. 지난 시즌 후반기부터 팀을 지휘한 케니 달글리시는 오늘 경기 전까지 총 22경기를 치르며 17승 4무 1패라는 아주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었다. 혹자는 달글리시 감독의 역량보다 선수들의 능력이 빛을 발했다며 그의 능력을 폄하했으나 인재를 적재적소에 기용하는 것이야 말로 감독의 능력이라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이는 오히려 칭찬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달글리시의 전임 감독이었던 호지슨은 데이빗 장이라는 희대의 크랙을 벤치에만 처박아 놓으며 팀을 수렁에 빠뜨렸고 본인도 경질되지 않았던가. 과거 팀의 레전드라는 명성, 그리고 감독으로서 성적도 잘 내고 있었으니 신뢰가 쌓이지 않을 수 없었다.

"디르크!"

공격형 미드필더 롤을 맡았으나 하프라인 부근에서 공을 잡은 제라드는 오른쪽 측면 공격수로 나선 디르크 카윗을 부르며 공을 강하게 찼다. 습관적으로 가장 먼저 왼쪽 사이드의 데이빗을 찾았으나 마크가 삼엄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터라 반대쪽을 공략하기로 했다.

'뭐...애초에 저녀석을 90분 내내 저렇게 막아두는 건 불가능하니까.'

천천히 가자고 생각하는 제라드였다. 그리고 본인의 성실한 활동량과 수비가담 능력에 가려져서, 데이빗 장이라는 반대쪽 사이드의 현실감 없는 공격수에 비하여 저평가를 받을 뿐이지 디르크 카윗의 공격력은 준수한 편이었다.

"나이스 패스!"

무식하게 기운 좋은 녀석(카윗)의 목소리가 자신에게까지 들려오자 제라드는 피식 웃었다. 약 30m의 거리를 두고 연결한 롱패스였는데도 목소리가 들릴 정도면 얼마나 크게 소리를 지른걸까 하는 생각에 웃음이 절로 났다. 아마 저 무식하고 단순한 녀석은 감독의 말에 제대로 불이 붙었음이 틀림 없었다. 투닥거리기도 하고 장난도 치지만 그는 365일 내내 언제나 헌신적인 플레이어였고 팀을 생각할 줄 아는 소중한 동료였다. 그리고 본인도 라인을 끌고 올라가며 공격진의 뒷받침을 시작했다.

카윗의 신장은 184cm, 183cm인 데이빗 장과는 1cm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으나 실제로 사람들은 그가 더 크다고 느꼈다. 10kg 가량 더 차이가 나는 체중 탓도 있었으나 그만큼 그가 강인한 플레이어라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리버풀 공격진에 워낙 빠른 선수들이 많이 있어 상대적으로 느려보이는 감이 있었으나 실제로 그는 주력도 준수했다. 아무리 스타일 차이가 있다고 해도 발이 기준 이하로 느려서는 윙 포워드로 뛰기 힘들다.

"이 고릴라 같은 자식!"

마르세유의 왼쪽 측면 수비를 맡은 제레미 모엘은 죽을 맛이었다. 이번 경기에 나서며 그는 자신이 오른쪽 측면 수비수가 아니라는 사실에, 그러니까 리버풀의 왼쪽 공격을 막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본인 스스로의 실력에 자신감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리버풀의 왼쪽 공격수는 인간적으로 좀 너무했다. 팀 전술 관련 미팅에서는 그에 대한 이야기, 대책 수립이 절반을 차지했다. 코칭 스탭은 입을 모아 이야기했다. 그를 막으면 리버풀을 이기는 것은 생각보다 쉬울 수도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비디오를 통해 본 그는 같은 인간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였다. 평범한 선수의 커리어 전체 하이라이트 필름에 한 두개씩 들어갈 만한 장면을 그는 숨쉬듯 당연하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해내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 경기에서 오른쪽 측면 수비수로 출장한 로드 파니가 안쓰러웠던 그였다. 하지만 그는 남 걱정할 처지가 아니라는 것을 리버풀의 이번 공격에서 깨달았다.

분명 투박했다. 생각보다 빠르긴 했지만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는 속도였다. 그래도 리버풀이라는 클럽에서 뛰고 있고, 강호 네덜란드의 국가대표인만큼 쉽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의 장점은 활동량, 수비적인 능력이라고 이야기했기에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 상대해 보니 알 것 같았다. 그의 장점이 성실함이라 평가받는 이유는 '빅 클럽' 레벨에서나 그렇다는 것이지 약 팀을 상대로는 충분히 공격력이 우수하다는 것을 말이다.

투박한 드리블이었지만 강인한 피지컬로 밀고 들어오니 빼앗기는 커녕 자리를 지키기도 힘들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페널티 박스 근처까지 밀려나 있었다. 중앙 쪽으로 꺾어 들어오려는 그를 결사적으로 저지했다. 하지만 빅 클럽 레벨에서도 뛰어 나다는 평을 받는 그의 장점, 이타적인 플레이가 발휘되었다.

"나이스."

무뚝뚝하게 흘리는 한 마디, 그리고 서로 교차되듯 지나치며 공을 넘겨 받고 달려가는 스티븐 제라드, 그리고 마치 스크린을 서는 것 처럼 자신의 마크맨과 제라드의 마크맨을 동시에 묶어 버리는 디르크 카윗이었다. 한번 걸려버린 발, 잠깐의 시간이었지만 스티븐 제라드를 완전히 놓쳐버리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얌전히 있으라고. 곧 끝날거야."

자신의 몸에 걸린 두 명을 향해 씩 웃으며 카윗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의 자랑스러운 동료들이 보여줄 작품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그는 직감적으로 골을 예감했고 동료들은 그런 그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다.

중앙으로 파고 들던 카윗과 스위치 하듯 움직였기에 제라드는 엔드라인 쪽, 즉 사이드 라인을 따라 돌파하는 형태가 되었다. 마크맨은 카윗의 센스 넘치는 스크린에 걸려 전혀 따라오지 못하는 상황, 좀 더 나은 찬스를 만들기 위해 골대쪽으로 각도를 좁히듯 파고 들어 갔다.

그리고 자신에게 커버를 들어온 수비수 한 명을 확인하자 마자 크로스를 시도했다. 카윗에게 묶여버린 수비가 2명, 자신에게 붙는 수비가 1명, 이렇게 되면 극단적으로 전원 수비 태세를 갖춘 팀이 아니고서야 프리로 남는 공격수가 존재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제라드는 그를 확인했고 그를 향해 골이 들어가기 직전의 라스트 패스를 넘겨 주었다.

제라드가 찬 킥이라고 하기에는 평범한 크로스, 하지만 검은 머리를 휘날리며 달려오고 있던 남자의 보폭에 정확이 맞았고 높이도 적당했다. 헤딩 솜씨에 있어서는 아직까지 그리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데이빗이었지만 이렇게 혼자 공중으로 떠오른 상황에서 헤딩을 못할 만큼 얼간이는 아니었따. 데이빗은 가볍게 뛰어 올라 머리로 공의 진행 방향을 가볍게 돌려 놓기만 하는 헤더를 시도했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마치 제라드의 크로스가 그대로 골대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만큼 부드럽고 자연스러웠다. 카윗은 두 팔을 벌리고 골을 넣은 동료에게 뛰어가기 시작했다.

'역시 대단한 자식이다 넌.'

살짝 올라오려는 질투의 감정을 밀어 넣는다. 자신은 저 친구만큼의 빛나는 재능이 없었다. 무뚝뚝한 스티븐도 자신에게 없는 그 무언가를 가지고 있었다. 이번 시즌, 자신의 입지를 점점 빼앗아 가고 있는 마르코 로이스나, 승부욕의 화신 루이스 수아레즈도 가지고 있는 그 어떤 것이 자신에게는 부족했다.

처음, 리버풀에 입성했을 때, 자신도 저리 빛났던가 싶었다. 에레디비지에를 평정하고 온 자신에게 많은 기대가 쏟아졌다. 제 2의 반 니스텔루이가 왔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자신은 한계를 절감해야했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모인 이곳에서도 남들과 다른 빛나는 무언가를 가진 선수들이 있었다. 자신에게는 없는 그 어떤 것.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실망하지는 않았다. 대신 그는 그들이 정말 밝게 빛날 수 있도록, 뒤에서 그들을 뒷받침하리라 생각했다. 씁쓸함이 없었다면 거짓이리라. 하지만 이것이 그가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었다. 환하게 웃으며 동료들과 얼싸 안는 그의 모습은 이미 승리자였다.

============================ 작품 후기 ============================

-연애부분이 아쉽다고 하신분들

-소개팅 좀 시켜주세요 그럼 잘 쓸듯ㅠㅠ

-연애 끊긴지 몇년째야...

-하늘도 울고 작가도 울고 독자도 울었다

-전 편에 주급 얘기가 나왔는데요

-제가 연중(;;)을 해서 되게 오래전이라고 느끼실수도 있는데 얘 주급 오른 지 반년정도 밖에 안됐어요.

-아무리 잘해도 잘할때마다 선수들 주급을 올려주면 재정파탄은 순식간이겠져

-조만간 오를거에요

-추천수도 조만간 오를거에요

-응?

-나믿독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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