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he Answer-125화 (125/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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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와 웨일즈의 경기는 결국 5 대 0 이라는 큰 차이로 끝났다. 데이빗은 전반 35분만에 해트트릭을 달성했고 후반 10분에 시오 월콧과 교체되었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9만의 홈 팬들은 교체되어 나가는 데이빗을 향해 전원 기립하여 박수를 보내 주었다.

이날의 승리로 잉글랜드는 남은 몬테네그로와의 경기와 관계 없이 유로 2012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경기를 마무리 지은 대표팀은 런던에서 간단한 해단식을 진행하였다. 신나게 샴페인을 터뜨리는 축제의 분위기는 없었다. 올라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잉글랜드였기에 큰 소란을 떨 일도 아니라는 것이었다. 경기가 끝난 뒤 호텔에서 간단한 식사와 함께 와인 한 두잔을 곁들이는 수준. 그래도 기쁜 일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았기에 선수들은 밝은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오늘 경기 괜찮았어. 후반에도 골을 더 넣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아쉽게 됐지."

후반전에 웨인 루니와 교체 투입되어 경기장을 밟은 저메인 데포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옆에서 듣고 있던 애슐리 콜이 가볍게 타박한다. 포크를 들어 장난스레 그를 가리키며 입을 여는 애슐리 콜.

"야, 다섯골이나 넣었는데 부족해?"

하지만 저메인 데포도 할 말이 있었다.

"난 한골밖에 못넣었다고. 저기 저녀석이 죄다 몰아 넣었잖아. 욕심도 많은 녀석 같으니."

데이빗을 가리키며 부럽다는 시선을 보내는 데포, 데이빗은 멋적게 웃으며 고기 조각을 우물우물 씹어 넘겼다. 슬쩍 눈을 돌리며 시선을 피한다.

"애 체하겠다. 너도 잘했잖아. 뭘 더 넣으려 그래? 니네 팀 동료 가레스 그 친구 얼굴 보니 완전 하얗게 질려서 나가드만. 미안하지도 않냐?"

글렌 존슨이 데포를 쿡쿡 찌르며 말하는 모습, 자신의 팀 동료가 생각나서인지 데포는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니 한 골이면 충분한 것 같네."

"그렇지?"

"그 자식 안 그래도 요즘 은근히 혼자 해먹는 비중이 높아졌는데 말야, 이번에 토트넘으로 가면 날 죽일듯이 노려볼 지도 몰라."

그 말에 낄낄거리며 웃는 선수들, 데이빗은 내심 리버풀에 불가리아 선수도, 웨일즈 선수도 없다는 사실이 고마워졌다.

'아, 별로 상관 없으려나? 국가 대표는 국가 대표고 클럽은 클럽이니까.'

그렇게 따지자면 마르코 로이스는 리버풀에서 이미 왕따가 되어 있어야 했다. 독일과 잉글랜드는 사이가 좋지 않기로 유명했고 지난 월드컵에서도 독일이 잉글랜드를 제대로 박살내버린 전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다음 달에 있는 몬테네그로 전은 확실히 편하게 치를 수 있겠네."

누군가 중얼거린 말에 선수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본선 직행 티켓을 놓고 벌이는 데스매치는 아무리 한 수 아래의 팀이라 해도 피하고 싶은 일이었다. 죽기 살기로 달려들 것이 분명한 상대와의 개싸움은 이변이 가장 많이 나오는 경기이기도 하다. 선수들은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승리가 더욱 값지다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데이빗, 내일 몇시에 올라갈 예정이야?"

어느새 은근 슬쩍 같은 테이블로 합류한 프랭크 램파드,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걸어 왔다.

"글쎄요, 아마 아침 식사 이후에 바로 올라가지 않을까요? 캡틴하고 같이 올라가기로 해서 정확한 시간은 이야기를 해 봐야겠지만요."

제라드와 함께 올라갈 것이라는 말에 살짝 눈썹이 흔들린 램파드, 하지만 곧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잇는다.

"괜찮으면 점심 식사나 같이하고 가지? 리그에서야 서로 죽일 듯이 싸우는 사이지만 말야, 사적으로는 서로 친해져도 괜찮지 않겠어? 이런 기회가 아니라면 서로 친해질 기회가 없을텐데 말이야."

"이봐, 프랭키. 나는?"

"넌 같은 런던에 있잖아. 언제든지 볼 수 있고. 안그래?"

"쳇."

저메인 데포의 가벼운 투정, 램파드는 가볍게 받아 넘겼다. 그리고 대답을 요구하는 듯 손을 벌리는 모습. 사람 좋아 보이는 램파드의 제의에 데이빗은 마음이 혹하는 것을 느꼈다.

"일단 캡틴에게 일정을 물어보고..."

"그건 좀 곤란하군."

갑작스레 들려오는 목소리, 데이빗은 깜짝 놀라 뒤를 돌아 봤고 어느새 자신의 뒤에 서 있는 스티븐 제라드를 볼 수 있었다. 평소에도 밝은 표정은 아니었으나 오늘따라 영 찌푸린 얼굴이 부각되는 느낌이다. 데이빗은 죄진 것도 없이 뭔가 오한이 들었다. 그리고 엉거주춤 일어서는 저메인 데포를 볼 수 있었다.

"하하하...그럼 난 저쪽으로 가서 웨인하고 놀아 볼까."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후다닥 자리를 비키는 저메인 데포, 제라드는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 앉았고 램파드를 물끄러미 쳐다 보았다.

"야, 이거 뭔가 데쟈뷰 같은 느낌인데?"

"몰라 조용히 해."

옆에서 조그맣게 소곤거리는 소리, 램파드는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왜 그래? 그냥 식사만 하고 가자는 건데. 뭐 바쁜 일이라도 있는거야?"

"나와 함께 올라가기로 했다. 난 오후에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했어. 지체할 시간이 없어서 그러니 양해를 해줬으면 좋겠군."

"그럼 따로 올라가면 되잖아. 데이빗이 차가 없나? 그럼 내가 차편을 알아주도록 할게. 내일 너희 팀 일정에 차질만 안생기면 되는 것 아냐?"

논리정연한 램파드의 말에 제라드는 할 말이 없는 지 묵묵무답이었다.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은데 할 말은 떠오르지 않는 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한다. 데이빗은 분위기가 더 썰렁해지기 전에 나서야겠다고 생각했다.

"아, 램파드 씨. 권해주셔서 감사하지만 다음에 함께 하는 걸로 해도 될까요? 생각해보니 저도 여자 친구가 기다릴 것 같네요."

데이빗의 말에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램파드, 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여자 친구가 있었다고 했지. 며칠동안 못봐서 많이 보고 싶겠네. 그렇다면 어쩔수 없지. 다음에 런던에 오면 꼭 연락하라구."

다음 날, 해단식을 마친 국가 대표 선수들은 다음 달에 있을 소집때 다시 보자는 작별 인사를 주고 받은 뒤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데이빗은 며칠 전 약속한대로 제라드의 차를 타고 함께 올라가게 되었다.

"저 캡틴, 부탁이 있는데요."

"음?"

"괜찮으면 제가 차를 운전해봐도 될까요?"

"너 차를 몰고 다녔던가?"

고개를 갸웃하며 의문을 표하는 제라드, 데이빗은 고개를 저으며 그건 아니라고 말했다.

"아뇨, 아직 차를 사진 않았는데 얼마전에 면허는 땄어요. 차는 조만간 살 예정인데 한번 몰아보고 싶어서요."

반짝반짝 눈을 빛내며 운전하고 싶다는 뜻을 전하는 데이빗, 제라드는 한숨을 쉬었다.

'내 애마를 초짜의 손에 맡겨야 하나.'

평상시였다면 누군가 대신 운전해주는 것이 반가웠을 것이다. 어제 경기를 뛴 상태라 피곤하기도 했고 말이다. 다만 운전을 제대로 해 본적이 없는 초보에게 자신의 차를 맡겨야 한다니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저 반짝거리는 눈을 보고 있자니 매몰차게 거절하기도 힘들었다. 결국 제라드는 한숨을 내쉬며 허락할 수 밖에 없엇다.

"그래, 그럼 한번 해봐. 조심해서 몰도록 해."

"예스! 감사합니다. 잘할 거에요. 걱정하지 마세요."

'걱정이 안될리 있나...'

타박하기에는 어린애처럼 좋아하는 데이빗의 모습이 재미있었다. 결국 제라드는 조수석으로 향했고 데이빗은 결의에 찬 표정으로 운전대를 잡았다.

"그럼 출발합니다."

"그래."

둘을 실은 차가 부드럽게 출발했다. 데이빗은 부드러운 승차감에 탄성을 흘렸다.

"와우! 면허를 딸 때 몰았던 차하고는 비교할 수도 없네요. 이 차 롤스로이스죠? 모델 명이 뭐에요?"

데이빗의 감탄에 제라드는 자부심어린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차가 칭찬 받는 데 싫어할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롤스로이스 팬텀, 2008년형 모델이다. 아주 우아하고 멋진 녀석이지."

"정말 그래요! 저도 이런 멋진 차를 사고 싶어요!"

"롤스로이스 쪽을 원한다면 내가 괜찮은 대리점을 소개해 주지. 그쪽 매니저도 알고 있으니 잘해 줄거야."

그렇게 한동안 차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제라드의 핸드폰이 울렸다.

"네 스티븐입니다."

-아 스티븐, 나 케니야. 해단식은 잘 마쳤나?

"네 감독님, 지금 올라가는 중입니다. 데이빗도 함께 올라가고 있습니다."

-그런가? 다행이군. 둘 다 몸은 어떤가? 경기는 나도 보았네만 다치진 않은 것 같은데.

"저도, 데이빗도 멀쩡합니다. 물론 경기를 연달아 소화해서 조금은 피곤한 상태이긴 합니다만, 다음 경기 전까지는 회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거 고마운 얘기군. 앞으로의 일정은 차근차근 논의하면 되니 조심해서 올라 오도록 하게. 그 외에 혹시 별다른 일은 없었나?

"......"

잠시 침묵하는 제라드, 이걸 이야기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듯 했다.

"딱히 없습니다."

데이빗은 운전을 하면서도 힐끔 제라드의 눈치를 살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마 달글리시 감독과 통화를 한 것 같은데 통화 이후 침묵을 유지하는 것이 뭔가 불편한 게 있는 것 같았다. 달글리시 감독의 말은 듣지 못했으나 통화 내용에서 딱히 문제가 될 것 같은 내용은 없어 보였기에 의아함이 컸다.

"데이빗."

"네, 네?"

갑자기 말을 걸어오는 제라드, 데이빗은 놀랐는지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대표팀에서 내가 프랭키가 너에게 친근하게 구는 걸 못마땅해 하는게 마음에 들지 않나?"

"......"

갑작스러운 질문, 데이빗은 순간 뭐라고 대답해야할 지 몰랐다. 하지만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제라드가 확실히 램파드가 자신에게 친하게 구는 걸 싫어하는 기색은 느꼈다. 하지만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왜 그러는지 몰라 의아하다는 생각이었다.

'아뇨, 그런건 아니에요. 다만 같은 대표팀 동료인데 왜 그렇게 싫어하시는 지 궁금하긴 했어요."

데이빗의 대답에 제라드는 한숨과 함께 '그런가'하고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내가 질문을 바꿔 보지. 데이빗, 너는 리버풀에서의 생활이 행복한가?"

"네? 당연히 행복하죠."

당연한 걸 왜 묻느냐는 데이빗의 반응에 제라드는 자신의 질문이 직설적이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아직 경험이 부족한 이 어린 녀석을 위해 좀 더 대놓고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럼, 만약에 다른 구단에서 너를 영입한다고 하면, 예를 들어 첼시나, 맨체스터 시티,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이런 구단에서 지금 받고 있는 연봉의 몇 배를 줄 테니 오라고 하면 팀을 떠날 생각이 있나?"

"?"

갑작스러운 질문에 데이빗은 고개를 갸웃한다. 갑자기 왜 이런 걸 물어보는 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 하지만 제라드의 표정은 진지했다. 데이빗은 그가 장난으로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자신의 솔직한 생각을 숨김없이 말하기로 했다.

"갑자기 왜 그런 걸 물어 보시는 지 모르겠지만, 전 안 갈거에요. 글쎄요. 아직 프로 경력이 짧아서 일지는 모르겠지만 어마어마한 금액이라고 해도 와 닿지가 않아요. 그리고 그런 많은 돈이 그곳에서 지금만큼 행복할 거란 보장을 해 준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데이빗의 대답에 만족한듯 제라드의 표정이 조금 밝아진다. 데이빗은 이제 자신의 궁금증을 해결해야 할 차례라고 여겼다.

"근데 방금 물어보신 것이, 좀전에 램파드 씨의 그것과 관련이 있나요?"

"있지. 그것도 아주 많이."

단호히 대답하는 제라드, 데이빗이 아직도 감을 못잡고 있자 제라드는 추가 설명의 필요성을 느꼈다.

"이번 여름에, 아스날의 파브레가스가 바르셀로나로 이적한 것은 알고 있나?"

"네? 모를리 없죠. 얼마전에 그쪽하고 경기를 하기도 했잖아요."

파브레가스 정도의 스타 플레이어가 떠난 것을 모를리 없었다. 제라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래, 그럼 그 친구가 이적하기까지의 과정도 알고 있나?"

이적과 관련된 세세한 내용까지는 몰랐기에 데이빗은 고개를 저었다. 딱히 리버풀 소속의 선수였던 것도 아니고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선수도 아니었기에 모를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선수 본인이 가고 싶다는 의지가 컸다는 게 가장 큰 이유지. 하지만 분명 주변의 권유가 큰 역할을 했어. 네가 알지 모르겠지만 그 친구는 원래 바르셀로나 유스 출신이야. 게다가 스페인 국가 대표이기도 하지. 바르셀로나에서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낸 선수들이나, 대표팀에서 함께 뛴 선수들이 번갈아가며 그를 설득했어. 같이 뛰자고 말이야. 이 경우는 애초에 고향 팀이니 조금 성격이 다를 수도 있지만 개인적인 친분이라고 하는 것은 네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큰 힘을 가지고 있어."

제라드의 긴 설명을 듣고 나자 데이빗은 그제서야 제라드가 그렇게 날카롭게 반응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는 결국 자신이 리버풀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런 가능성을 원천봉쇄하고자 했던 것이다. 은근히 기분이 좋아진 데이빗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알겠어요. 하지만 전 우리 팀을 떠날 생각이 없어요. 그러니 캡틴도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딱히 걱정한 건 아니다."

쑥스러운지 그건 아니라고 단호히 이야기하는 제라드, 하지만 데이빗은 기분 좋게 웃을 수 있었다.

"운전 처음하는 거 맞나? 생각보다 잘하는 걸?"

말을 돌리려는 제라드의 시도, 하지만 그 감상은 사실이기도 했다. 데이빗은 단순했고 화색을 띄며 제라드 쪽을 돌아 보았다.

"그렇죠? 시험 볼때도 잘한다고..."

"앞을 봐!"

소리를 빽 지르는 제라드, 데이빗은 황급히 전방을 확인했고 핸들을 돌렸다. 그리고 간신히 옆차와 부딪히기 전에 스치듯 움직이며 차선을 바로 잡을 수 있었다.

"죄송합니다..."

큰 사고를 칠뻔한 데이빗이 전방에 시선을 고정한 채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고 제라드는 이마에 손을 올리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렉시, 릴리. 보고 싶구나.'

갑자기 집에 있는 귀여운 딸들이 보고 싶어지는 제라드였다. 그는 리버풀에 도착할 때까지 한 순간도 마음을 놓지 못했다.

============================ 작품 후기 ============================

-제라드의 차는 실제와 다를 겁니다. 그냥 제가 멋있어 보이는 차 넣음

-딱히 니가 떠날까봐 걱정되서 그러는 건 아니니깐

-딱히 여러분이 좋아서 연참하는 건 아니니깐

-오해하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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