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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글리시는 요즘 기분이 아주 좋았다. 처음 팀을 맡을 때만 해도 자신에 대한 불안한 시선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왜 굳이 예전 찬란했던 명성을 스스로 깎으려 드는가, 달글리시의 축구는 구시대적이다, 현대 축구에는 통하지 않을 거란 시선이 많았고 본인도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현역때나 지금이나 결과만 내면 모든게 달라지지.]
의심받던 전술적인 역량에 대해서도 호평 일색이었고 선수단 장악력, 팀 케미스트리 관리 등 모든 면에서 최고의 명장이라는 말을 듣고 있었다. 특히 리버풀FC에 대해 호의적인 지역 언론(리버풀에코와 같은)은 예전의 전설이 위기에 빠진 팀을 구해내는 과정을 크게 다루고 있었다. 당연히 리버풀을 지지하는 많은 이들은 달글리시 감독이야 말로 세계 최고의 감독이며 그를 진작 복귀시키지 않은 것이 아쉬울 정도라 이야기하고 있었다.
[사실 내가 한 일은 별로 없는데 말이지.]
쓴 웃음을 지으며 자신에 대한 칭찬이 실린 면을 넘기는 달글리시 감독이다. 칭찬을 들어 기분이 좋지 않은 사람이야 어딨겠냐만은 요즘엔 좀 계면쩍은 느낌이 더 컸다. 그리고 넘긴 페이지에서 달글리시는 자신의 복귀를 축복과 영광의 그것으로 만들어 준 주인공의 모습이 크게 실린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자연스레 인자한 미소가 지어지는 달글리시, 보기만 해도 뿌듯하고 배부른 느낌이 이런거라 생각했다.
[이 녀석이 없었다면 아마 복귀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골을 넣고 포효하는 모습의 데이빗이 신문에 실려 있었다. 지난 아스날 전에서 원맨쇼에 가까운 모습으로 승리를 이끈 데이빗은 2일 전에 열린 34라운드 버밍엄과의 홈경기에서도 선제 결승골을 기록하며 팀 승리의 일등공신이 되었다. 1월에서 2월이 지나는 동안 데이빗의 맹활약을 보며 많은 이들이 초심자의 운일 것이다, 반짝 활약이 아니라고 말 못할 것이다, 검증이 더 필요하다 등 많은 의문을 표했지만 4월 말로 접어든 현재 그런 의문은 쏙 들어갔다. 오히려 그의 앞에 붙는 수식어는 리버풀, 나아가 잉글랜드를 대표할 공격수, 호날두와 메시에 버금가는 재능 등이었고 어마어마한 찬사가 쏟아지고 있었다.
[이럴때일 수록 선수가 흔들리면 안되지.]
선수를 흔드는 것은 단지 비판과 비난만이 아니었다. 지나친 칭찬도 선수의 멘탈을 해이하게 만들 우려가 컸고 달글리시는 이를 잘 알고 있었고 데이빗이 그렇게 되지 않도록 잡아줄 의무가 있었다. 어제 회복 훈련을 마치고 데이빗과 짧은 면담을 가졌고 달글리시는 흡족하게 대화를 마칠 수 있었다.
[자존심이 없는 친구는 아니야. 하지만 자만하는 성격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저는 아직 멀었어요. 아직 이곳에서 이룬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당찬 데이빗의 말을 떠올린 달글리시 감독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재능을 가진 선수가(달글리시는 그렇게 생각했다) 정신적으로도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니 기쁘지 않을리 없었다. 그래서 약간은 걱정하며 시작했던 면담이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마칠수 있었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선수는 많다. 하지만 육체와 정신, 두가지 모두를 가진 선수는 정말 희귀하지. 나는 정말 엄청난 행운을 얻은 것 같군.]
기분 좋게 신문을 읽고 있던 달글리시 감독, 곧 그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만치니 감독, 데이빗 반드시 영입할거야
맨체스터 시티의 감독 로베르토 만치니가 여름 이적시장에서 반드시 데이빗 장을 영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데이빗은 아주 매력적인 선수입니다. 그만한 재능을 가진 선수라면 어느 팀이라도 그를 원할 것이 분명하죠."
"우리는 그에게 좋은 선택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한층 더 높은 수준을 원하고 있고 그는 우리의 구상에 반드시 필요한 핵심 플레이어가 될 것입니다."
맨체스터 시티는 만치니 감독의 구상을 지원하기 위해 이번 여름 이적시장에서 다시 한번 천문학적인 이적료를 준비했다고 한다. 맨체스터 시티 뿐만 아니라 메시 이후 가장 빛나는 포텐셜을 보이고 있는 데이빗의 영입을 위해 많은 구단들이 군침을 흘리는 실정이다. 레알 마드리드의 무리뉴 감독도 데이빗의 활약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이야기하며 관심을 드러냈고 첼시 또한 그를 영입하는데 관심이 있다고 밝혀......
굳이 다 읽어볼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 달글리시 감독이 신문을 접었다. 아마 돈 좀 있다 싶은 구단은 다 찔러볼 것이 분명했다. 시대를 불문하고 어린 나이에 포텐이 터진 선수에 대한 가치는 어마어마했다. 부상만 없다면 앞으로 최소 10년 이상을 버텨줄 만한 재목이다. 군침을 흘리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이런 기사가 날 거라고는 생각했지. 나같아도 그랬을테니까.]
쓴 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려본다. 사실 리버풀이 빅클럽이라고는 하지만 엄청난 자금력으로 무장한 다른 클럽에 비해 재정적으로는 열세가 분명했다. 돈으로 승부해서는 선수를 지킬 수 없는 것이 리버풀이었고 달글리시도 이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스티븐도 정말 대단한 친구지. 데이빗이 스티븐을 보고 느낀 바가 있었으면 좋겠군.]
프로라면 돈을 더 많이 주는 곳으로 가는 것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스티븐 제라드는 자신의 몸 값을 스스로 깎아버리며 헐값이나 다름 없는 금액에 리버풀과 계약을 체결했다. 비록 팀은 우승 트로피 하나 제대로 들어올리지 못하며 실망스러운 행보를 이어갔지만 지금에 이르러 제라드는 리버풀을 지지하는 이들에게 있어 절대적인 존재가 되어 있었다. 달글리시는 데이빗이 리버풀에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아직은 큰 걱정은 하지 않고 있었지만 불안한 감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올해, 무조건 4위 안에 들어야 한다. 그리고 다음 시즌, 뭐가 되었든 반드시 트로피를 들어 올려야 해.]
선수를 지켜내는 방법 중 돈 못지 않은 것이 트로피를 들어올릴 수 있을만한 경쟁력을 가진 팀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팀 성적이 개판이라면 탑 클래스의 선수들은 이적하기를 꺼려하는 부분이 있다. 달글리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부분에서 데이빗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똑똑-!
그때 조금은 급한듯한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달글리시 감독은 상념을 접고 방문객에게 들어오라고 이야기했다.
[들어오세요.]
벌컥-
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는 새미 리 수석코치였다. 얼굴 표정이 굳어있는 것이 별로 반가운 소식은 아니겠다고 달글리시는 생각했다.
[아 새미? 무슨 일인가? 훈련 중에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오늘 훈련은 새미 리 수석 코치의 주관에 이루어졌다. 감독이 모든 것을 챙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고 유능한 수석코치의 존재는 그렇기에 중요했다. 새미 리는 리버풀에서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내 왔고 본인의 능력도 괜찮다는 것을 증명해 왔기 때문에 달글리시도 믿고 맏길 수 있었다. 새미 리 수석코치는 다급한 어조로 용건을 쏟아 냈고 달글리시 감독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고 말았다.
[좋지 않은 일이 생겼습니다 감독님. 훈련 중에 데이빗과 조 콜이 충돌하는 바람에 둘 다 부상을 입었습니다. 일단 검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다음 경기 출전 여부는 불투명합니다.]
[심각한 부상은 아닙니다. 발목을 가볍게 삔 정도니까요. 하지만 다음 35라운드 경기에는 출전시키지 않을 것을 권하고 싶군요.]
팀 닥터의 소견을 들은 달글리시 감독은 이마를 짚으며 침음을 흘렸다. 큰 부상이 아닌 것은 천만 다행이었으나 이 중요한 시기에 데이빗의 이탈은 타격이 컸다. 아스날 전과 버밍엄 전을 모두 잡으며 다시 한번 상승세를 타고 있는 팀 분위기가 가라 앉을 수도 있었다.
[도저히 무리입니까?]
애타는 달글리시 감독의 마음을 팀 닥터라고 왜 모르겠는가. 그도 눈이 있고 귀가 있으니 현재 데이빗이 선수단 내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을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진통제를 투여한다면 뛸수야 있겠지만 별로 권하고 싶은 방법은 아닙니다. 1주일 정도 휴식을 취하면 괜찮아 질거라 생각됩니다만 무리하게 되면 염증이 커질 위험이 있습니다.]
만약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정도의 무대였다면 달글리시 감독은 진통제 처방을 주문했을 것이다. 굳이 자신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선수들이 먼저 요구할게 분명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지금 일정이 과연 그정도의 비중인가 하고 묻는다면 고개를 저을 수 밖에 없었다.
[어쩔수 없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다친 선수들의 회복에 최선을 다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게 제가 할 일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쓴 웃음을 지으며 자리를 떠나는 달글리시 감독, 이미 다음 경기를 대비한 엔트리를 모두 짜 놓은 상태였지만 불가피하게 수정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선수단 분위기는 어떤가?]
자신의 집무실로 돌아온 달글리시가 피곤한 듯 눈을 감으며 물었고 새미 리 코치는 굳은 어조로 대답했다.
[스티븐과 제이미가 잘 추스리고 있지만 그리 좋은 편만은 아닙니다. 한순간에 우리가 가진 공격 옵션 중 두 장을 잃어버렸으니까요.]
[...그렇겠지.]
사실 조 콜의 부상은 별로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고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도 아니었다. 그는 이번 시즌 20경기 정도에 출장하여 1골 1어시스트에 그치고 있었고 잦은 부상으로 들쭉날쭉한 경기력을 보이고 있었다. 사실 달글리시 감독으로서도 팀이 잘 맞아가고 있는 지금 굳이 그를 구상에 넣을 생각은 없었다. 재능이야 인정하는 바였지만 극악할 정도로 수비가담 의식이 부족했고 팀 플레이에 문제를 드러내곤 했기에 지금에 이르러 그는 마치 계륵과 같은 존재였다.
[우리는 가장 강력한 무기를 잃은 셈이니까. 같이 뛰는 그들은 더 잘 알고 있을테니까.]
4개월도 안되는 시간 동안 데이빗은 어느새 팀 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자원이 되어 있었다. 가장 많은 골을 기록하기도 했지만 가장 필요한 순간에 골을 넣어 준 선수가 데이빗이었기 때문이다. 수아레즈도 분명 좋은 활약을 보였지만 그의 활약 또한 데이빗과 함께 함으로 생긴 시너지가 크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해도 이대로 있을 수는 없지. 가자고. 가서 우리가 해야할 일을 해야지.]
머리를 싸매고 앉아 있어봐야 답이 나오는 상황이 아니었다. 선수 하나에 좌지우지 되는 팀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 달글리시 감독은 분연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없으면 없는대로, 남은 선수들끼리 승리를 거둘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게 바로 감독인 자신의 임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