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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수 없어! 데이빗, 정말 축하해!]
한달음에 에리카에게 달려간 데이빗, 그리고 두서 없이 말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얘가 왜이러나 싶은 표정으로 바라보던 에리카는 데이빗이 퍼스트 팀에 올라가게 되었다는 말을 꺼내자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이 휘둥그래지더니 곧 이어 환하게 웃으며 데이빗을 안아주었다.
[고마워 에리카. 사실 아직도 실감이 안나. 믿을 수가 없어.]
[나도 그래. 데이빗, 네가 정말 자랑스러워.]
휘익-
서로 안고 있는 두사람의 귀에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곳은 에리카가 일하는 카페였고 당연히 매장 안에는 손님들이 있었다. 둘의 뜨거운 포옹을 본 손님들이 보기 좋다는 듯 휘파람을 불었던 것이다. 둘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데이빗은 멋적은 웃음을 흘리며 슬쩍 떨어지려했고 에리카는 그런 데이빗의 팔을 잡았다.
[에리카...?]
[괜찮아.]
뭐가 괜찮다는 이라고 말하는 데이빗은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따뜻하고 말캉한 무언가가 자신의 입술을 덮어버렸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환호와 박수소리가 쏟아졌다. 짧은 키스를 마치고 혀를 내밀며 에리카가 떨어졌다.
[여러분, 옆에 있는 이 사람이 누군지 아세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환호를 보낸 손님들에게 질문하는 에리카, 데이빗은 그런 에리카의 모습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으나 에리카는 신경쓰지 않았다.
[아가씨 애인 아니야?]
[애인이겠지. 근데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한데?]
들려오는 대답을 듣고 있던 에리카가 더욱 더 밝은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했다.
[맞아요. 제 애인입니다. 그리고 리버풀FC에서 뛰고 있는 축구 선수이기도 해요.]
그 말에 오-하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곳의 위치는 멜우드 트레이닝 센터 근처, 당연히 대부분의 고객들은 리버풀 팬들이 많았고(최소한 에버튼 팬은 없었다) 그렇기에 리버풀의 선수라는 말에 호기심 어린 눈빛을 보였다.
[아! 누군지 알겠다! 그 리저브에서 괜찮은 활약을 보였다는 친구잖아. 이름이 분명...]
그 말에 사람들의 궁금증은 더욱 더 커졌다. 에리카는 데이빗을 쿡 찌르며 '뭐해, 소개해야지' 라고 재촉했고 얼결에 데이빗은 카페에서 자기 소개를 하게 되었다.
[어...안녕하세요. 저는 데이빗 장이라고 합니다.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리버풀 리저브에서 뛰고 있습니다.]
딱딱하고 밋밋한 자기소개, 에리카는 한숨을 푹 쉬며 말을 받았다.
[이번에 데이빗이 퍼스트 팀에 올라가게 되었어요. 제 애인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데이빗은 훌륭한 선수가 될거에요. 나중에 오늘 이곳에서 데이빗을 만난 것이 추억거리가 될 거라 믿어요.]
당찬 에리카의 말에 손님들은 크게 웃으며 박수를 쳤다. 당사자는 지금 얼굴이 새빨개져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데 여자친구가 나서서 당차게 이야기하니 참 재밌는 상황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때 유독 크게 웃던 한 손님이 일어나 데이빗과 에리카에게 다가왔다.
[여자 친구 말대로 오늘 나에게 행운이 왔나 보군요. 미래의 리버풀을 이끌 재능을 만났다면 충분히 행운이라고 할만 하겠지요. 반갑습니다. 데이빗씨라고 했죠? 내 이름은 폴입니다. 오늘의 행운을 증거로 남기기 위해 사인을 부탁드리고 싶군요.]
정중한 요청에 데이빗은 고개를 끄덕이고 남자가 내미는 종이를 받아 사인을 했다. 에리카는 갑자기 예전에 자신이 사인을 해달라고 했을때 민망한 표정으로 사인이 없다고 했던 데이빗의 모습이 떠올라 픽 웃고 말았다.
[고맙습니다. 데이빗 선수. 갑작스러운 상황이라 당황스러운 건 알겠지만 좀 더 자신감 있는 표정을 지어줘요. 여자친구처럼요. 이제 4만이 넘는 콥들 앞에서 멋진 퍼포먼스를 보여야 하잖아요?]
말을 마치며 손을 내미는 폴의 손을 잡으며 데이빗은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고 씩 웃으며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폴 씨. 열심히 할게요.]
폴이 사인을 받고 오자 하나 둘 손님들이 데이빗에게 다가와 사인을 받기 시작했다. 많은 수는 아니었기에 금방 사인을 마칠 수 있었고 다들 덕담을 한마디씩 남기며 앞으로 열심히 해 줄것을 이야기했다.
[사인을 다 받으셨군요. 그럼 제가 여기 계신 분들에게 케이크 한 접시씩 서비스를 드리겠습니다. 맛있게 드시면서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씩 웃으며 마무리하는 에리카, 손님들로부터 다시 한번 환호가 터져나온 것은 당연했다.
-열심히 해줘요. 데이빗이 정말 리버풀을 구하는 선수가 되주길 바랍니다.
-예전에 리저브 리그에서 본 적이 있어요. 그때 정말 잘하는 선수라고 느꼈던 기억이 납니다. 프리미어 리그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할게요.
-오늘 당신을 이곳에서 만났다는 사실을 자랑거리로 여길 수 있게 된다면 행복할 것 같아요. 좋은 선수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데이빗은 에리카가 아르바이트 교대를 하는 동안 생각에 잠겼다. 좀 전 손님들이 해준 말들이 귓가에 맴돌았다.
아직 크게 기대하고 있지는 않겠지만 혹시나 하는 기대, 부진한 리버풀에 대한 답답함이 느껴졌었다. 데이빗은 주먹을 꽉 쥐었다. 아직 프리미어 리그에 데뷔한 것도 아니다. 벌써부터 들떠서 헤롱거리는 건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기다렸지?]
상념을 끊어내는 목소리, 언제들어도 기분좋은 에리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데이빗은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금방 나왔는데 뭘. 그나저나 오늘 정말 놀랐어.]
데이빗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며 '퍼스트 팀에 올라간 게 그렇게 놀라웠어? 놀랄만한 일이긴 하지만.' 이라고 중얼거리는 에리카, 데이빗은 손을 저으며 말을 이었다.
[카페에서 갑자기 손님들에게 그렇게 이야기 할 줄은 정말 몰랐다니까. 너에게 그런 면이 있는 줄 오늘 처음 알았어.]
데이빗의 말에 눈을 가늘게 뜨며 새초롬하게 노려보는 에리카.
[뭐가, 그래서 이상했어?]
[아니 그럴리가. 그냥 신기했어. 너의 새로운 면을 봐서 말이야.]
[뭐...니가 내 전부를 알고 있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그건 오만이야!]
입술을 삐죽이는 에리카가 귀엽게 느껴졌는제 살짝 에리카를 안는 데이빗, 그리고 귓가에 살짝 속삭였다.
[응, 네 배꼽 옆에 예쁜 점이 있는 걸 알게된 뒤로 처음으로 너에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된 거니까.]
쿡쿡거리며 속삭이는 데이빗의 말에 얼굴이 빨개진 에리카는 데이빗의 가슴을 주먹으로 치며 벗어나려 했다. 데이빗은 행복한 표정으로 그런 에리카를 더욱 강하게 안았다. 잠시간 앙탈을 부리며 투닥거리던 에리카도 잠잠해졌고 곧 데이빗의 허리에 손을 감았다.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 약속할게. 내가 네 애인이라는 사실을 정말 자랑스럽게 느낄 수 있도록 대단한 선수가 될거야.]
데이빗의 말에 행복한 표정으로 눈을 감는 에리카, 그리고 조그맣게 속삭였다.
[지금도 네가 자랑스럽고 행복해.]
[두근두근 하네.]
심장이 평소보다 빠르게 뛰는 것을 느낀 데이빗은 이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꿈에도 그리던 퍼스트 팀이다. 실제로 올라가게 된 지금 가슴이 뛰지 않는 다면 그것이야말로 이상한 일일 것이라 생각했다.
흥분된 마음에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지만 이른 아침 자연스럽게 눈이 떠졌다. 괜히 급해지는 마음에 후다닥 준비를 마치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거의 뛰다시피 한 데이빗은 멜우드 트레이닝 센터에 도착한 데이빗은 문제점을 발견했다.
[...아직 안열었네.]
갑자기 흥분이 확 가라 앉는 것을 느낀 데이빗이었다. 여기까지 와서 다시 돌아가는 것도 웃기다고 생각한 데이빗은 트레이닝 센터 앞에서 간단히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기 시작했다. 얼마간 몸을 풀고 있자니 구단 직원이 도착하여 데이빗을 보고 놀라움을 표했다.
[맙소사, 벌써 와 있는거에요? 지금 시간이 몇 신지나 일고 있어요?]
[아 드루씨, 오늘 이상하게 눈이 빨리 떠져서 말이에요.]
[그래도 그렇지, 내가 여기 정문 경비를 맡은 이래 나보다 빨리 나온 사람은 데이빗이 처음이에요.]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드며 문을 여는 드루, 데이빗은 감사를 표하며 트레이닝 센터 내부로 들어왔다.
[아, 맞다 드루 씨, 제가 오늘 부터 퍼스트 팀에 올라가게 되었거든요. 근데 제가 그쪽 라커룸은 가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할 까요?]
[오 데이빗, 드디어 올라 갔나요? 축하해요. 데이빗처럼 열심히 하는 선수라면 분명 올라갈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라커룸이 어디냐고 물었죠? 그러니까...]
[일찍 왔군.]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데이빗이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캡틴! 안녕하세요.]
[응, 반가워. 오늘부터 퍼스트 팀에 합류하게 되었다지?]
[네, 어떻게 아셨어요?]
자신의 소식을 캡틴이 알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운지 눈이 휘둥그래지는 데이빗이다. 제라드는 어깨를 으쓱하며 별거 아니라는 듯 이야기했다.
[팀의 주장은 그정도 소식은 알고 있기 마련이지.]
[그렇군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대단해요-라고 말하는 듯한 데이빗의 표정이 부담스러웠는지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리는 제라드, 그리고 옆에 있던 드루에게 간단히 인사를 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따라와라.]
[네.]
희희낙락하며 제라드의 뒤를 쫄랑쫄랑 따라가는 데이빗이다. 제라드는 웬지 머리가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페르난도 같은 녀석이 또 하나 들어온 것 같군.'
별 대화를 나누어보진 못했지만 웬지 그런 느낌을 받는 제라드였다.
'뭐 페르난도 같은 공격수라면 언제든 환영이지만 말이야.'
짧은 시간이지만 자신의 눈을 사로 잡은 루키였다. 기대가 안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제라드는 이 어린 친구가 어떤 플레이로 자신을 즐겁게 해줄지 기대가 되었다.
[여기가 퍼스트 팀이 쓰는 라커룸이다.]
문을 열며 들어가는 제라드, 데이빗은 리저브 팀의 그것과 별반 차이가 없음을 알았다. 내부 공간이 조금 더 넓다는 것을 제외하면 똑같다고 보아도 무방했다.
'하긴 라커룸이 차이가 나봐야 거기서 거기겠지.'
그러면서 주위를 두리번 거리는 데이빗이다. 늘어서 있는 라커를 두리번 거리는 그를 보며 제라드가 한 마디 던졌다.
[라커는 이름이 붙어 있는 것 말고 아무거나 쓰면 된다.]
[아, 네!]
역시 캡틴이야-라고 중얼거리며 주인 없는 라커를 찾아가는 데이빗을 보며 제라드는 다시 한번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옷 다 갈아 입었는데, 운동하러 안나가시나요?]
몸이 근질근질한지 당장이라도 뛰쳐 나갈 것 같은 데이빗의 모습에 제라드는 실소를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잠깐 앉아 있어. 오늘은 일단 여기에서 다른 동료들은 기다리는 게 좋을 것 같군.]
여기서 인사하고 같이 운동하러 가는게 더 좋을테니 말이야 라고 덧붙이는 제라드였다. 데이빗은 아-하는 탄성을 흘리며 자리에 주섬주섬 앉았다.
[......]
[......]
눈을 감고 앉아 있는 제라드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산만한 모습의 데이빗, 제라드는 딱히 말을 걸지 않았고 데이빗은 눈을 감고 있는 캡틴의 휴식을 방해할 만한 배짱이 없었기에 라커룸 안은 조용했다.
[2경기 남았다.]
[네?]
뜬금없는 제라드의 말에 화들짝 놀라며 대답한 데이빗, 제라드는 데이빗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올해 우리는 우리를 지지하는 팬들을 실망시켰다. 선수들의 부상, 새로운 영입의 실패, 그 어떤 것도 우리가 그들을 만족시키지 못했다는 사실에 대한 변명이 되지 못한다.]
읊조리듯 담담히 이야기하는 제라드의 모습은 진한 아쉬움과 함께 책임감이 느껴졌다. 데이빗은 오히려 마음이 차분히 가라 앉는 것을 느꼈다.
[우리는 남은 2경기를 모두 이겨서 팬들에게 다음 시즌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해야 한다. 그것이 언제나 우리를 지지하는 콥들에 대한 우리의 의무다.]
말을 마치고 데이빗의 눈을 강렬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제라드, 데이빗은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네가 리버풀의 새로운 희망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군.]
벼락을 맞은 듯한 찌르르한 울림이 데이빗을 관통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고 온 몸이 부르르 떨렸다. 어찌보면 부담스러운 기대였다. 고작 리저브에서 막 올라온 루키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다. 눈 앞에 있는 찌푸린 인상의 남자와 함께 콥들 앞에서 환하게 웃으며 승리의 세레모니를 취하고 싶었다.
[예전에 TV에서 그런 인터뷰를 본 적이 있어요.]
[음?]
조금 뜬금없다고 느낀 것일까, 제라드의 고개가 갸웃했다. 데이빗은 별로 신경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캡틴이 토레스 선수와 함께 해서 행복하다고, 그는 최고의 스트라이커라고 칭찬했던 인터뷰였을 거에요.]
제라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 지는 잘 몰랐지만 그런 인터뷰는 실제로도 자주 했고 사실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생각했어요. 내가 리버풀의 스트라이커라면, 캡틴 제라드와 함께 호흡을 맞추며 골을 넣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고 말이에요.]
[그래서 언젠가는 캡틴이 최고의 파트너를 꼽을때 페르난도 토레스가 아닌, 데이빗 장이라는 이름이 나오길 꿈꿔왔어요. 그리고 지금.]
살짝 말을 끊으며 제라드의 눈을 응시하는 데이빗, 제라드는 강렬한 그의 눈빛에서 강한 열망과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 꿈을 현실로 만들 기회, 첫 걸음을 시작했어요. 솔직히 이야기하면 아직 팬들의 앞에서 인정받아야겠다는 실감은 들지 않아요. 하지만 나를 위해서, 내 꿈을 위해서 반드시 그렇게 될거에요.]
씩 웃으며 이야기를 마치는 데이빗, 제라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꼭 그렇게 이야기 하지. 하지만 쉽지 않을 거야.]
[물론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