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he Answer-36화 (36/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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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참 더럽게 안풀리네.]

침을 뱉으며 중얼거리는 데이빗, 가볍게 한숨을 쉬자 하얀 입김이 났다. 12월이라 날씨가 꽤나 쌀쌀한 편이었고 하늘은 어두운 구름이 낀 것이 눈이나 비가 올 것 같았다. 데이빗은 고개를 돌려 전광판을 다시 확인해 보았다.

LIVERPOOL   :   MAN 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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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로 지고 있는 현재, 후반 30분이 지나고 있었다. 파체코가 가벼운 감기 증상을 호소하여 명단에서 빠졌고 자신은 그간 계속 출장했다고 하여 오늘 경기는 벤치에서 시작했었다. 리버풀 리저브를 이끄는 최강의 투 톱이 빠져서였을까, 맨시티 리저브를 맞아 전반 12분만에 선제골을 얻어맞은 리버풀은 후반에 들어서도 이렇다할 찬스를 잡지 못한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맥마흔 감독은 이런 답답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카드로 데이빗을 선택했고 지금부터 5분 전 데이빗이 투입되었다.

데이빗은 자신을 왜 진작 내보내지 않았냐고 시위하듯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며 맨시티 수비진을 위협했다. 에어리어 밖에서 때린 중거리 슈팅을 시작으로 방금전 왼쪽 사이드를 허물고 페널티 박스에 침투, 오른발로 감각적인 감아차는 슈팅을 시도, 먼쪽 포스트를 겨냥했지만 골대를 맞고 골라인 아웃되고 말았다. 회심의 슈팅이 불발되자 데이빗도 아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뭐 좋아. 아직 시간은 충분하니까.]

아쉬운 장면일수록 빨리 잊어야 한다는 사실은 지난 경험을 통해 이미 배웠다. 11월에 있었던 경기에서 한 경기에 골대를 2번이나 맞췄던 적이 있었다. 그때 평정심을 잃고 조급한 플레이를 하고 말았던 경험이 있기에 지금 골대를 맞추었지만 빠르게 스스로를 납득시킬 수 있었다.

데이빗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던 것일까, 방금 데이빗에게 허무하게 뒷공간을 내주며 위기상황의 원인이 된 수비수가 들러 붙으며 뭐라뭐라 말을 하는 것이 들렸다. 주의깊게 듣지는 않았지만 욕설도 좀 섞인 것이 도발적인 멘트가 아닌가 싶었다.

'귀가 두개 있는 이유는 이런 쓸데 없는 소리를 흘리라고 있는 거지.'

저렇게 도발하는 녀석들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워낙 리저브 리그에서 독보적인 기록을 이어나가고 있는 데이빗이었기에 각 팀들 사이에서 요주의 인물로 꼽히고 있었던 것이다. 그랬기에 데이빗을 마크하는 수비수들은 거친 플레이, 도발적인 멘트 등 데이빗의 멘탈을 흔들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했고 이런 러프 플레이, 트래쉬 토킹에 어느정도 면역이 생긴 지금이었다. 무엇보다 저런 상대에게 가장 큰 엿을 먹여주는 방법은 골을 선사해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맨시티는 데이빗에게 일격을 맞을뻔 하자 한골 지키기에 들어가며 수비 숫자를 대폭 늘렸고 공격수 한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하프라인 아래로 내리며 걸어잠그기 시작했다. 빽빽하게 들어찬 상대 수비를 보며 데이빗은 자신을 투입하며 했던 맥마흔 감독의 말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네가 들어가면 아마 맨시티는 수비를 강화할거야. 거의 10백에 가까운 모습으로 걸어잠글테지. 내가 너에게 기대하는 것은 아웃 넘버를 만들어내는 거야. 모양새는 상관없어. 빠른 패스도 좋고 드리블도 좋아. 중요한 것은 순간적인 노마크를 만들어 내는 거야. 너라면 할 수 있어.'

데이빗은 다시 한번 왼쪽 사이드로 빠지며 공을 요구했다. 드리블에 아무리 자신이 있다고 해도 바글바글 밀집해 있는 수비진 사이에서 드리블을 시작하는 것은 그리 현명한 판단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데이빗의 제스쳐를 본 스피어링이 가볍게 공을 밀어주었고 왼쪽 사이드에서 수비수와 1:1로 대치를 시작했다.

'앞에 있는 건 하나, 하지만 커버 들어올 준비를 하는 녀석도 하나. 합쳐서 둘.'

크로스를 올리자니 에어리어 내에 수비수가 너무 많았다. 수비수도 그 사실을 알고 있는지 크로스보다는 돌파에 초점을 두고 막는 모양새였다. 아무리 뛰어난 드리블러라도 상대 수비가 드리블을 예상하고 막는 상황에서 돌파하기란 쉽지가 않다.

'하지만 뚫어야 해.'

슈팅을 때릴 각도도 아니었다. 아예 못때릴 만한 위치는 아니었지만 확률이 낮다고 생각한 데이빗은 마음을 정하고 공을 툭툭 차며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수비수의 자세, 그리고 커버를 준비하는 수비수의 움직임을 보니 자신을 사이드로 몰고자 하는 의도가 명백했다. 중앙쪽 내지 대각선 침투를 허용하여 슈팅 각도를 내주느니 라인으로 몰아내는게 낫다고 판단한 듯 싶었다. 데이빗은 한차례 헛다리 집기를 통해 간단히 페인트를 걸고 상대의 의도대로 사이드 라인쪽 깊숙히 파고 들었다. 페인트 동작에 반템포 늦은데다 데이빗의 순간 가속을 따라가지 못한 수비수는 한발짝 뒤쳐져 쫓을 수 밖에 없었고 뒤에서 커버하던 수비수가 필사적으로 달려드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수비수가 둘이라면 둘 사이의 공간을 파고들어라-

배운 적은 없지만 본능적으로 체득하고 있는 원칙이었다. 마크맨은 자신보다 한발 뒤쳐져 따라오고 있었고 커버들어오는 수비수는 자신의 앞을 가로 막는데 성공했지만 필연적으로 원래의 마크맨과 거리유지에 실패하고 말았다. 데이빗이 노린 공간이 창출되는 순간이었고 그곳으로 급격히 방향을 전환했다.

갑작스레 상대 수비수 둘 사이을 파고 들게 되면 상대에게 혼동을 안겨주게 된다. 지금도 수비수 둘은 갑작스런 데이빗의 방향전환에 반템포 늦었고, 거기에 누가 달려들어야 하는지 주저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말았다. 그 한순간의 주저가 치명타가 되었고 순식간에 데이빗은 둘 사이를 빠져나와 버렸다.

'위치가 아까 딱 골대를 맞춘 위치인데.'

급박한 상황이었지만 피식 웃음이 나왔다. 데이빗은 마치 아까 골대를 맞춘 불운은 신경쓰지도 않는다는 듯 그대로 슈팅모션을 가져갔다. 심지어 감아차는 것도, 노리는 곳도 아까와 동일했다. 심지어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날아간 슈팅이 골대에 맞는 것까지 같았다. 한가지 다른점이 있었다면 이번에는 골문 밖으로 튕겨져 나간 것이 아니라 골문 안쪽으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데이빗은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동료들을 바라보며 환한 웃음을 지으며 팔을 크게 들어올렸다.

드문드문 차 있는 관중석, 프리미어 리그 경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썰렁한 경기장에 한 금발의 남자가 경기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손에 수첩과 볼펜을 들고 뭔가를 열심히 적어가며 보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다. 추운 날씨라 글씨를 쓰기 힘든지 호호 입김을 부는 모습이다.

[여기 계셨습니까.]

[늦었잖아. 이미 경기 거의 다 끝나간다고.]

늦게 합류한 남자에게 툴툴거리는 금발의 남자, 하지만 시선은 경기장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에게서 떨어질 줄 모른다.

[죄송합니다. 생각보다 일 처리가 늦어져서 말이죠.]

사과의 말을 건네며 옆자리에 앉아 방금전까지 금발의 남자가 적고 있던 수첩을 들여다 본다.

[좀 수확이 있었습니까?]

그 질문이 거슬렸던 것일까, 수첩을 팡 하고 덮으며 한숨을 내쉬는 모습이다. 뭐라 한마디 하려고 입을 열고자 했지만 다시 큰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감독님을 기분 나쁘게 하려고 한 질문은 아니었습니다. 네, 저도 답답한 건 마찬가지 아닙니까. 왜 우리가 리저브 경기를 보며 쓸만한 선수를 찾아야 하는지 말입니다.]

[웃기는 일이야.]

내뱉듯이 중얼거리는 금발의 남자, 이어 속에 있는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우리의 에이스 미켈이 부상으로 빠진 건 어쩔수 없다 이거야. 그런데 그런 에이스의 대체자를 왜 리저브에서 찾아야 하는건지...]

그러면서 맨시티의 라인업을 보며 돈 많은 놈들은 참 부럽다고 중얼거린다.

[이거 보라고. 이 라인업이면 솔직히 프리미어 리그 하위권 팀은 잡을만 하지 않나?]

그러면서 손을 꼽으며 이름을 읽기 시작했다. 대충 오누하, 데드릭, 구이데티, 튜트 등의 이름이 호명되었다.

[그렇군요. 하지만 리버풀의 리저브도 만만친 않지 않습니까? 오히려 요즘 성적은 리버풀 리저브가 훨씬 좋습니다만.]

[그래, 오늘 실제로 경기를 보니 확실히 좋은 선수가 많더구만.]

부럽다는 듯 입맛을 쩝쩝다시는 모습이 조금 불쌍해 보이기도 했다. 그러더니 수첩에서 한장을 뜯어내 남자에게 건네준다.

[일단 쓸만해 보이는 선수들을 여기에 추려봤네. 여기에 있는 선수들 중에서 임대를 결정했으면 좋겠군.]

[알겠습니다.]

종이에 적힌 이름을 확인하는 남자, 종이에는 욘 구이데티, 제이 스피어링, 앤드류 튜트, 그리고 데이빗 장 등이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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