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7화 (87/87)

히메오 : 역시 못된 남자네, 당신은.

         ...그렇게나 많이 안에다 싸다니.

...5번을 넘기면서부터 세는 걸 그만뒀다.

오사무 : ...별로 나쁜짓했다고 생각 안 하니까요.

히메오 : 애 생겼을지도...

오사무 : 그게 어쨌다구요?

히메오 : 오, 세게 나오는데?

오사무 : 부양 가족 둘도 못 먹여살리는 게 무슨 남자예요.

히메오 : 오사무 씨...

오사무 : ...대신 좀 궁핍하겠지만.

히메오 : 상관없어.

         나...별로 사치스럽지 않으니까.

오사무 : 히메오 씨...

히메오 : 그래, 일단 지금 같은 수준의 집에서 살고,

         지금 같은 수준의 차랑 운전 기사가 있고,

         지금 같은 수준의 대학에 다니고, 지금 같은 수준의 예금이 있으면...

오사무 : 무리무리무리무리무리! 절대로 무리!

히메오 : 추하네, 내 남자인 주제에.

오사무 : 히메오씨가 부잣집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에요.

         이쪽 생활 레벨에 좀 맞춰 보세요.

히메오 : 후후훗...뭐, 처음에는 봐줄게.

         어차피 금방 좋아질 테니까.

오사무 : ...또 과대평가 하기에요?

         당신의 직장 선배는 그렇게 대단한 녀석이 아니라구요?

히메오 : 나,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아버지한테 맞서 망하지 않은 남자 처음 봤어.

오사무 : 히메오 씨 덕분이에요.

히메오 : 맞어...

         문자 그대로, 딸을 덮쳐버렸으니까, 이렇게...

오사무 : 으...

히메오씨가 농담반으로 허리를 움직이자,

이어진 상태의 내 하반신이 기특하게도 반응한다.

...0시를 넘어,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어도,

아직 우리들은 한번도 떨어지지 않았다.

오사무 : 부, 분명 그것도 그렇지만,

         마지막으로 이긴 건, 정말 거짓말 안 보태고, 당신 덕분이에요.

히메오 : 날 이용해 아저씨들을 차례대로 공략해...

         당신, 완전 꽃뱀 남편이네.

오사무 : 부잣집 아가씨가 그런 천박한 말 쓰면 안되요.

히메오 : 부잣집 아가씨라고 해도, 건축 업자의 딸이라고?

         30 이혼남이 딱 어울려.

오사무 : 29예요...

뭐, 확실히 내가 쓴 작전은,

사와시마 그룹에 대해 상당히 효과적이고, 지저분한 것이었다.

사와시마 준페이의 측근을,

그의 딸인 사와시마 히메오를 이용해 [미인계]로 공략한다.

...아니, 약간 어폐가 있지만.

십수년 전, 엄격하고도 과격한, 자신들의 보스 옆에는,

전혀 그 딸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깜찍하고 귀여운 소녀가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히메오씨를 귀여워해줬던 노인들은

그녀의 업무에 대한 [조름]에,

저항 따윈 불가능했다.

오사무 : 하지만...지금도 이런 생각이 들어요.

         정말 이래도 괜찮은 건지...

히메오 : .........

오사무 : 설마, "그" 사와시마 준페이가,

         그렇게까지 [남의 부모]노릇을 하다니, 

아니, 그 이상으로,

친절함에도 정도가 있는 [이웃 아저씨]였다니.

그의 행동원리가 황당하게도 [미토코짱을 구한다]라는,

나나 히메오씨와 완전 똑같은 출발점이었다니.

이런 완전히 맹점이었던 진실은,

히메오씨가 간신히 알아낼 때까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오사무 : 우린 좀 더 얘기할 필요가 있었지 않았나해요.

         그분을 상처주지 않고, 미토코짱도 상처주지 않고.

         ...당신도 상처입지 않는 해결 방법, 있지 않았을까하는.

히메오 : 글쎄...?

         그 아버지가, 그런 뜨뜻미지근한 대화에 응했을 것 같지는 않은데.

         그리고...

오사무 : 그리고?

히메오 : 적어도 난, 전혀 상처받지 않았다고?

         ...이렇게 당신이 다 채워줬는 걸.

오사무 : ...그런식으로

         여러 가지 의미로 들릴 수 있는 표현은 그만하세요.

히메오 : 앗, 아...잠깐...후훗

또 다시 장난스럽게 허리를 움직이는 히메오씨에게

살짝 올려치며 반론한다.

오사무 : 그리고, 무관계한 사람들까지 끌어들이고 말았어요.

히메오 : 오사무 씨...

오사무 : 또 다시 자기 회사를 끌어들이고,

         게다가 이번엔 다른 회사의 운명까지 집어 삼키고,

         그룹 전체에까지 파장을 일으켜...

히메오 : 그럼 당신은, 아버지의 생각이...

         토코짱을 위해 테라스하우스 히노사카를 없애는 게

         올바르다고 생각해?

오사무 : .........

히메오 : 내가 똑같은 짓을 하려고 했을 때,

         내 콧대를 꺾어놓은 당신이 그런 소리를 해?

오사무 : 그런 일도...있었죠.

그 무렵의 우리들이, 지금의 우리들을 본다면,

대체 뭐라고 생각할까...

히메오 : 저기 말야, 할 수 있는 만큼 했잖아, 우리.

         상처받는 사람이 가장 적은 방법을 찾아,

         며칠이고 철야로 일하고, 최선을 다해 속였잖아.

오사무 : 속였다는 게 문제지만요...

미치하마 상사의 누군가가...

시키조 코퍼레이션의 누군가가...

나와 히메오씨의 진짜 목적을 알게 되면 뭐라고 할까.

히메오 : 그래도 말야 오사무 씨...

         당신이 자신이 한 일을 어떻게 평가하든,

         난 당신을 전적으로 지지해.

오사무 : 히메오, 씨...

정말로...

그 무렵의 우리들이, 지금의 우리들을 본다면...

특히 히메오씨는 절규하겠지...

히메오 : 왜냐하면 당신은, 내 소중한 사람을 위해...

         토코짱을 위해 최선을 다했으니까.

         그리고...혹시라도, 조금은, 날 위해서.

오사무 : 그건...

         나에게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거니까요.

히메오 : 응...

비중이, 그녀의 말과는 조금 다른 건

그냥 말 안 하겠지만.

히메오 : 난 사와시마 부동산 대표이사, 사와시마 준페이로부터,

         나에 대한 전권을 위임받았습니다.

오사무 : 그 말은...

히메오 : 즉...

         내가 인정한 건, 아버지도 인정한 게 돼.

         당신은 내가 볼 때, 올바른 일을 했다고, 알았어?

오사무 : 그렇다는 건...

         결국 난 사와시마 준페이씨한테 이기지 못했다는 건가.

히메오 : 맞어.

         당신이 아버지의 진짜 적이었다면, 박살났을 거야.

오사무 : 아직 멀었구나, 난.

히메오 : 그야...아직 젊으니까요.

오사무 :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요?

히메오 : 젊어젊어!

         요기만 봐도 아직도 이렇게나...

오사무 : 으아아아앗!

         자, 잠깐잠깐...그렇게 움직이면...

히메오 : 으...아, 아...저, 정말...젊다니까...

준페이 : 뭐야?

??? : ............으!?

      ㅈ, 저기...여보세요...

준페이 : 날 비웃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아니면 내가 잘못됐다고 할 생각인가?

??? : 아, 아뇨...

준페이 : 말해두지만...

         이번 일뿐만 아니라도 나한텐 아무 잘못 없어.

         그러는 게 최선이었어.

??? : .........

준페이 : 너희들의 소꿉장난 같은 생활 따위,

         언젠간 반드시 파탄날 거라는 게 훤히 보여.

??? : 저, 저기...

준페이 : 그 아이는 좀 더 크고

         확실한 힘으로 지켜줘야 해.

         그런 것도 모르는 피라미들이...

??? : 카, 카고시마 준이치로 씨...죠?

준페이 : .........뭐?

??? : ㅈ, 저, 저는...

      히노사카 미토코, 입니다...

준페이 : .........

??? : 테라스하우스 히노사카의...

      히노사카 호노카의 딸인...미토코, 입니다.

준페이 : .........

??? : 저, 저기...

준페이 : 어어라아아앗!?

??? : 꺄앗!?

      ㅈ, 죄송합니닷

준페이 : 아...

미토코 : 어, 어떡하지, 어떡하지!?

         엄청 화난 것 같은데.

히메오 : 뭐하는 거야...아버...카고시마씨.

오사무 : 아~, 으음...

         카고시마 씨, 히메오씨랑 착각하신 걸거야.

         그거 히메오씨 휴대폰이니까.

히메오 : 오, 오사무 씨!?

당황과 분노가 섞인 표정으로 날 노려보는 히메오씨에게,

한쪽눈을 깜빡거리며 애드립임을 전한다.

히메오 : 아...

오사무 : 첫대면부터 다퉜다나봐.

         미토코짱한테 화내는 게 아냐.

미토코 : ...그래?

히메오 : ㅁ, 맞아맞아!

         사람을 찾아낸 건 다행이었지만,

         그 차용증서일로 좀 흥분을 해서.

오사무 : 상대방 사정은 전혀 듣지도 않고,

         갑자기 흥분해서 막 소리질렀다나봐.

히메오 : 에, 에~!?

         아...으음...

         죄송합니다, 맞는 말이에요.

미토코 : 정말, 히메오 언니 또 실수했구나?

         내 은인한테 그렇게 화내면 어떡해~

히메오 :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미토코짱의 의혹의 눈초리를 피하기 위해 한 거짓말은,

미토코짱 안에 있는 히메오씨의 포인트를 대폭 깎아 내렸다.

...계산대로♪

히메오 : 나~중~에~보~자~

...미토코짱의 의혹의 눈초리를 피하기 위해 한 거짓말은,

히메오씨 안에 있는 오사무씨의 포인트를 대폭 깎아 내렸다.

...이건 아닌데.

미토코 : 저, 저기, 실례합니다.

         카고시마 준이치로 씨, 이신가요?

준페이 : ㅇ...어...맞어...

미토코 : 처, 처음 뵙겠습니다...

         전, 테라스하우스 히노사카의...

준페이 : 미토코, 짱, 인가...

미토코 : ㄴ, 넷

준페이 : 그래...미토코짱이라고...

미토코 : 아저씨...

준페이 : 많이...컸구나

미토코 : 아...

히메오 : .........

오사무 : .........

숨을 죽이고 미토코장과 사와시마씨의 대화를,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이 귀를 귀울이고 있는 나와 히메오 씨.

이건 히메오씨가 계획한,

[골치덩어리 아버지에게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

자신의 추억을 부수면서까지 지키려고 했던,

이웃 여자애와의, 목소리만의 만남.

미토코 : ㅈ, 저기, 저기...

         오늘은, 드릴 말씀이 있어서.

준페이 : ...뭐니?

미토코 : 제가 태어난 해...

         아저씨가 빌려주셨던 돈...

준페이 : ......

미토코 : 마마가, 절 키우기 위해,

         아저씨한테 무리하게 부탁해 빌린, 100만엔 얘기를.

준페이 : 그, 글쎄...무슨 소린지?

미토코 : 차용 증서도 분명히 남아 있었어요.

         마마 글씨에, 우리집 실인까지 찍혀져 있었어요.

         그러니까 틀림없이, 전 아저씨한테 빚이 있어요.

준페이 : 으...

미토코 : 죄송합니다...지금 당장은 갚을 수가 없어요.

         사실은 아파트를 팔아서라도

         갚아야 하지만...죄송합니다.

준페이 : 몰라!

         난 그런 돈 몰라!

         모르는 걸 받을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미토코 : 모르시면 안돼요!

         저, 아저씨한테 돈을 빌린 게 아니면 안돼요!

준페이 : 끈덕지기는!

         빚 같은 건 없는 게 좋잖아!

         왜 자기를 그렇게 궁지로 모는지 이해를 못 하겠군!

미토코 : 그야...아저씨의 돈으로...

         전 지금, 이렇게 즐겁게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준페이 : 아...

미토코 : 힘든 일도, 괴로운 일도, 슬픈 일도...

         지금 이렇게 여기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거예요.

준페이 : 그러...냐

미토코 : 오늘도 너무 기쁜 일이 있었어요.

         아저씨가 절 구해주시지 않았다면,

         겪지 못 했을지도 모르는 하루였어요.

준페이 : 으...

미토코 : 고맙습니다...아저씨.

         저 지금, 행복해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너무, 행복해요...

준페이 : 크...으, 으으...윽

히메오 : 분하네...

오사무 : 뭐가요?

히메오 :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볼런티어...

         이렇게까지 진심어린 감사를 받은 적이 없어.

오사무 : 아하하...

히메오 : 그걸, 단지 돈만 빌려준 것뿐인 사람이 말야~.

         왠~지 허무해지네.

오사무 : 단지 돈만 빌려준 것뿐인 사람...이라.

히메오 : ?

정말로 그런 걸까?

히메오씨가 가장 처음에 이르렀던 가설.

내가 깜빡 속아넘어간 거짓말.

100%부정할 근거, 있나...?

히메오 : 오사무 씨?

이웃집 아저씨가,

아픈 아이를 위해 100만엔을 빌려줬다.

예전에 옆집에 살던 아저씨가,

외톨이가 되어버린 아이를 거둬들이기 위해,

동네를 통째로 사려고 했다.

전자는 나름대로 이해가 가지만,

후자는...글쎄?

히메오 : 오사무 씨!

오사무 : 에? ㅇ, 아...왜요?

히메오 : 왜 그래?

         [돈 빌려준 사람]이 뭐 어때서?

오사무 : 아, 그게 말이죠...

         [돈 빌려준 사람]이 그렇게 부러우면,

         대부업자 딸이나 하시죠, 라는.

히메오 : ...벌써 그렇게 됐어.

오사무 : 아하하하하...아하하하하하하

그게...어쨌다고?

미토코 : 저기, 아저씨?

준페이 : ㅇ, 왜 그러니...?

사실이 어떻든,

진실은 우리들과는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듯...

미토코 : 메리 크리스마스.

히메오&오사무 : 메리 크리스마스!

준페이 : 으...으으으으윽...!

         흐윽, 흐, 으...으으으으윽~

지금 우리들이 행복하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 않은가.

히메오 : 아~, 추하다 아ㅂ...카고시마 씨.

오사무 : 거울로 자기 얼굴을 본 후에 말씀하시죠?

미토코 : 아하하하하, 정말이다.

         오사무 군, 거울 보고 와.

오사무 : 설마!?

우린 이렇게,

언제까지나 셋이서, 함께 껴안고, 웃고.

따스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그렇지만 괴롭고, 힘들고, 슬픈 날도 있어.

하지만 마지막에는...반드시 마지막에는...

행복한 미래가 승리하리라고, 믿고 있으니까.

-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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