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르르르륵)
미토코 : 아...
츠요시 : 역시 히노사카였나...
미토코 : 오제키...왜?
츠요시 : 정원에서 봤다고.
이야~ 내 먹잇감을 노리는 매의 눈빛은 아직 죽지 않았군.
미토코 : 골을 노리라고, 골을.
츠요시 : 대국(大局)을 보는 사령탑의 눈도 키울까해서.
미토코 : 아니 근데, 너 이미 은퇴하지 않았나?
축구부.
츠요시 : 너야말로 귀가부 은퇴한거냐?
미토코 : 별로...가끔은 빼먹고 싶은 날도 있는 것뿐.
츠요시 : 흐음...
(드르르륵)
미토코 : 저기 말야...혼자 있고 싶은데.
츠요시 : 거기서 [아 그러십니까]라면서 물러서는 건 내가 아니잖아?
미토코 : ...그렇게까지 완벽하게 납득시키지 않아도 되는데.
츠요시 : 무슨 일이야? 고민거리가 있으면 상담해줄게.
오제키와 관련된 일이라든가, 츠요시군과 관련된 일이라든가,
반에서 마음에 드는 남자애의 일이라든가.
미토코 : 그 세 사람이 하루가 멀다하고 번갈아가면서 말을 걸어와서,
공부에 지장이 장난 아닌데요. 어떡하면 될까요?
츠요시 : 일단 한번 데이트해주는 게 상책이죠.
그러면 미처 몰랐던 그의 매력을 알게 돼,
더더욱 좋아하게 되겠죠.
미토코 : ...하아
츠요시 : 그럼, 이번주는 오제키로.
다음주는 츠요시군이고, 그 다음주에는...
미토코 : 너 말야...그런식으로 상대를 갈아치우는 여자가 좋아?
츠요시 : 왜 그래~, 결국 내 매력을 알게 될 거라고.
지금은 시용 기간이라 치고.
미토코 : 진짜, 그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건지.
츠요시 : 노력하면 반드시 꿈을 이룰 수 있으니까 말이지.
...현재 시점에서 딱 하나만 빼고 그런 상태니.
미토코 : 지금까지 좌절한적이 없구나...
어떤 의미로는 무서운 녀석.
츠요시 : 그럼, 이번주 일요일...J2시합 보러 갈래?
(J리그 2부 리그인듯)
미토코 : 사실 축구에는 흥미가 없는데.
츠요시 : 걱정마, 아마 그날은 타마자와 언터쳐블의 소화 시합이니.
텅텅 빈 자리에서 독서든 공부든 마음껏 할 수 있다고.
(소화 시합은 우승에서 멀어진 팀이 하는 시합)
미토코 : 으응...
츠요시 : 응? 가자고 히노사카.
시합이 재미없는 건 확실하지만,
거기서 노도가 몰아치는 걸 보여줄 테니까 말야!
미토코 : ...저기 말야, 오제키.
츠요시 : 왜?
미토코 : 너 말야...
무릎꿇은적 있어?
츠요시 : 갑자기 무슨 소리야?
미토코 : 있잖아...[따님을 제게 주십시오]같은 거.
츠요시 : ...나 그래도 돼?
히메오 : .........
카야 : ........
히메오 : .........
카야 : 그래, 무슨 일?
히메오 : 방 좁네.
카야 : 나가.
히메오 : ㅈ, 잠깐!
이제 막 왔는데.
카야 : 나, 여러 가지 의미로,
전혀 당신이 마음에 안 들어.
히메오 : 협조성이 꽝이네...
카야 : 그런 부분이 왕짜증.
히메오 : 조금 정도는 남의 부탁을 들어줘도 되잖아.
같은 아파트에 사는 사이니까.
카야 : 도대체 저 공사는 언제 끝나?
업자들이 돌아갈 기색이 안 보이는데.
히메오 : 에? 아~, 그건...그,
여러 가지로 납득이 가야한다든가,
결판을 내야한다든가...
카야 : ...설마 이미 끝난지 오래됐다는 소리는 아니겠지?
히메오 : 어떻게 그걸!?
카야 : .........
히메오 : 아~, 방금 발언은,
대화를 흥을 돋우기 위한 연출로...
그래, 날조 같은 거라고 생각해주면.
카야 : 됐어, 빨리 용건이나 말해.
이대로 의미불명한 상황에 앉아있기 싫으니까.
히메오 : 실은 말야...나, 지금 좀 어려운 상황에 처했어.
카야 : 당연하지.
아이돌의 일일 부서장 놀이는 언제까지 할 생각?
히메오 : 아~, 그런 소리를 들어도 어쩔 수 없다는 건 자각하고 있지만,
오늘은 그 일이 아니라 말야.
카야 : 언제까지 오사무군을 갖고 놀 작정이야?
히메오 : ㄱ, 갖고 놀아!?
카야 : 그는 말야, 당신의 몸종으로 썩을 인재가 아냐.
사실은 얼마든지 대단한 일을 할 수 있다고.
쓸데없이 부려먹는 건 이제 그만해.
히메오 : ㄱ, 그를 발견해 채용한 건 나야! 이 사와시마 히메오!
그러니까 어떻게 이용하던 내 마음이야!
카야 : 그냥 괴롭힐 생각으로 강제로 끌고 간 주제에.
히메오 : 지금은 아니라고, 지금은!
처음 만났을 때랑은 완전 틀리다고!
그 사람도, 그리고 나도!
카야 : 그래서 고민하는 거지?
히메오 : 뭐를!?
카야 : 이제와서 오사무군한테 반해버렸으니까,
앞으로 어떻게 대해야할지 모르겠지?
히메오 : .........
카야 : .........
히메오 : .........
카야 : .........
히메오 : 어라아아앗!?
카야 : 그건 이제 됐으니까.
슬슬 자각하라고.
.........
카야 : 자, 오렌지 주스.
이거 마시고 진정해.
히메오 : 꿀꺽, 꿀꺽.........후우.
아, 소란피웠네.
카야 : 소란피웠다고 생각하면,
[죄송합니다]가 뒤에 붙어야 되는 거 아냐?
히메오 : .........꿀꺽, 꿀꺽, 꿀꺽
카야 : ...아, 됐다.
그래, 즉 당신이 상담하고 싶다는 건,
오사무군 얘기지?
히메오 : 실은 최근, 숙취가 심해서 밤에 잠을 잘 못자.
카야 : 한방울도 안 마셨는데?
히메오 : 이렇게, 뭐라고 해야하나,
오사무씨 얘기가 나오거나, 그 사람을 떠올리게 되면,
머리속에서 알콜이 분비돼서 흥분된다고나 할까...
카야 : 그러니까 그건 숙취가 아니라...
히메오 : 이런일이 생기다니...
그 사람, 좀 이상하지 않아?
카야 : 이상한 건 당신이야. 그것도 엄청.
히메오 : 그 말은...
역시 [그 가능성]을 얘기하는 거야?
카야 : 으음...이것도 대답해야 돼?
히메오 : 오사무 씨...혹시 날 좋아하는 걸까?
카야 : 안되겠다 나가.
히메오 : 진지하게 묻는 거야...
일반적으로 볼때 저 사람 남자로선 어때?
카야 : 내가 오사무군에 대해 일반론을 얘기할 리가 없잖아.
히메오 : 어째서?
혹시 당신, 남성과의 연애 경험이 없다든가?
카야 : .........
히메오 : 그럼 난처한데...
이런 얘기를 토코짱한테 하기도 그러니.
카야 : 무슨 무서운 소릴 하는 거야 당신.
히메오 : 그렇겠지, 교육상 나쁘겠지.
카야 : ...앵?
히메오 : 그렇다고 해서, 남자한테 상담하는 것도 아니니.
아~, 어떡하지. 이대로는 업무에 지장있을 것 같아.
카야 : 저, 저기 말야...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
히메오 : 뭔데?
카야 : 집주인씨가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얘기, 들은적 있어?
히메오 : 지금은 없대.
진학 문제에 온통 신경이 쏠려있대.
카야 : .........
히메오 : 한때는 오사무씨를 좋아하는가하는 생각도 했다는 것 같은데,
결국 토코짱의 착각이었대나봐.
당연하지, 아무리 그래도.
카야 : ...믿어? 그걸?
히메오 : 믿고 믿지 않고를 떠나서...
나랑 토코짱 사이에 비밀 같은 건 없는걸.
카야 : 그, 그래...
히메오 : 최근에 말야, 매일밤마다 대화하고 있어.
그날 있었던 얘기, 친구 얘기, 유행하는 것에 대한 얘기...
뭐든 가리지 않고 쉴새없이.
카야 : ㅎ, 흐음.
히메오 : 근데, 어젯밤 그랬어.
토코짱,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기 때문에,
그를 아버지와 겹쳐 봤다고.
카야 : .........
히메오 : 전에는 자신도 잘 몰랐다는 것 같은데,
실은 요전번에 말야, 토코짱의 아버지 얘기로 소동이 좀 있어서...
카야 : 틀렸다 이건...
히메오 : 에...?
카야 : 그치만, 뭐...
알지를 못하니까 돌진하는 건가.
...조금은 부러울지도.
히메오 : 자기완결 하지마.
그러면 난 뭘 위해서 창피한 얘기를 다...
카야 : 자신의 마음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어.
그런 건 당연한 거야.
히메오 : 그걸 모르니까 이렇게...
카야 : 그러니까...또 다른 자신한테 물어봐.
히메오 : 뭐야 그게...수호령 같은 걸 불러내라고?
ㅈ, 저주받으면 어떡하라고~
카야 : 걱정마.
이미 밖으로 나온 것 같으니까.
히메오 : ㅇ, 아까부터 무슨 소리야...?
카야 : 다중인격이라는 거...알어?
히메오 : 그, 그건...응.
이래봬도 심리학 강의도 들었으니...
카야 : 그래.
히메오 : ㅅ, 설마...?
하지만 나, 그럴 리가...
카야 : 글쎄.
그런 특수한 케이스의 얘기가 아니니까.
조금 더 일반적으로, 누구든 갖고 있는 다른 인격이라고나 할까.
히메오 : 무슨 소리야...?
전혀,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
카야 : 그럼 다음 질문.
스크루 드라이버라는 거 알어?
히메오 : 십자?
일자?
카야 : 칵테일.
히메오 : 칵테일이라니...술 말야?
그런 걸 내가 알 리가.........어, 어라...
카야 : 겨우 두세 방울밖에 안 넣었는데...
히메오 : 에? 에? 에? 뭐야~?
나, 나...나아.........아하하하하하...
카야 : 그럼...남김없이 얘기해볼래?
.........
(빵~!!)
(다다다다...)
히메오 : 봐, 벌써 왔다고.
꾸물대지 말고 서둘러!
오사무 : ㅈ, 잠시만 기다리세요.
아직 넥타이가...
히메오 : 먼저 차에 가있을 테니까.
준비 다 되면 와.
오사무 : ㄴ, 네~!
일요일 오후.
평소 같으면 몸을 쉬게 할 귀중한 휴일도,
오늘만은 공포의 정신 교육일.
반년에 한번 있는, 사와시마 그룹 간담회.
그룹 기업의 톱들이 일제히 모이는,
입식(立食) 파티의 형식의 의식.
오사무 : ...아, 싫다.
가기 싫어.
(철컥)
미토코 : 아...
오사무 : 아...
미토코 : .........
오사무 : ...좋은 아침
미토코 : 지금 대낮.
오사무 : 그, 그러네, 아하하...
미토코 : .........
오사무 : 하하, 하...
실은 이렇게 얼굴을 마주하는 건 3일만.
최근 제시간에 퇴근하는 업무 패턴으로 볼때,
이렇게 못 보는 건 정상이 아니어서.
미토코 : 무슨 소린지...모르겠어.
그 이후, 왠지 마주치는 게 어색해져서...
아니, 분명 서로 피하고 있다.
미토코 : 오사무군도 가는구나, 파티.
오사무 : 우리 회사 입장에서는 아주 큰 행사니까 말이지.
사장이하, 중역급은 전원 참석.
...그러면 비서가 따라가는 건 당연.
미토코 : 흐음.
다만, 오늘만은 평상시와 입장이 완전 반대로,
내가 히메오씨에게 도움을 받게 되겠지만.
미토코 : 오늘...늦어?
오사무 : 끝나는 게 9시니까 말이지.
트리튼에서 여기까지 차로 오면, 10시 정도려나.
미토코 : 10시...라.
오사무 : 아, 미안해...
오늘 과외는 쉬는 걸로.
미토코 : 어쩔 수 없지. 일 때문인데 뭐.
...밥 먹고, 술 마시는 일.
오사무 : 그냥 평소처럼 일하는 게 훨씬 편하다는...
미토코 : 글쿠나...
어른의 세계는 복잡하구나.
오사무 : 뭐, 그렇지...
실은 금요일에도 (과외를)건너 뛰었지만
그 얘기는 둘 다 하지 않았다.
미토코 : ㅈ, 저기 말야...
오사무 : 에, 왜?
미토코 : 아...
오사무 : 왜 그래, 미토코짱?
미토코 : 아니야...서둘러야지.
오사무 : 아직 시간이 좀 남았는데.
미토코 : 오사무군은 그래도
히메오 언니가 없어.
오사무 : 미토코짱?
뭐지, 이 배려는?
상호대(大)간섭을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남 챙기기 좋아하는 집주인이...
미토코 : 어서 가.
오사무 : ㅇ, 응.
미토코 : 선물 같은 건 됐으니까. 편하게 다녀와.
트리튼 같은데는 좀처럼 가기 힘드니까.
오사무 : 실은 태어나서 처음.
미토코 : 아하하...나도 한번도 안 가봤어.
오사무 : 그럼...다녀올게.
미토코 : 응...
(드르르륵)
왠지 묘하게 마음에 걸리는 미토코짱의 태도가
신경쓰이지만, 난 현관의 문을...
미토코 : 아! 잠깐만 기다려!
오사무 : 에?
연 순간,
미토코짱이 붙잡았다.
미토코 : 다시 매...
오사무 : 미, 미토코짱...
정확히는 목에 걸려 있는
연지색 넥타이를.
미토코 : 또...꼬였잖아.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고쳐지질 않네.
오사무 : ㅁ, 미안...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라.
그러고 보니, 처음 매어줬던 건,
내가 여기로 오고 첫출근하던 날이었나.
지금은 이제, 그 회사도 사라졌다.
반년전의 쑥쓰러운 추억은,
확실히 과거가 되어 버렸다.
미토코 : 좀, 비싸보이는 정장이네, 이거.
오사무 : 이 날을 위해서라고 히메오씨가...
미토코 : 그..래
이전의 그 검은 정장을 고른 그녀치고는,
나름대로 무난한 걸 골라줬다.
수행원이 아니라 극히 평범한 게스트처럼 보이는 것과,
어떻게 봐도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가격대라는 걸 빼면.
미토코 : 자, 끝.
오사무 : 아, 고마워.
미토코 : 역시 팔 아프다.
여전히 목이 기니까.
오사무 : 하하...
전에는 그 말에 쓸데없는 말꼬리를 잡아
미토코짱을 화나게 했었지.
기억력 좋다, 나도.
그렇게...좋아했었군, 그때도.
미토코 : 저기, 오사무 군.
오사무 : 응?
미토코 : .........
오사무 : 미토코짱...?
미토코 : 잘 다녀와.
(부르르르릉)
히메오 : 정말 오래 걸리네.
오사무 : 죄송합니다.
넥타이를 좀 다시 매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