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5화 (65/87)

(드르르르륵)

미토코 : 아...

츠요시 : 역시 히노사카였나...

미토코 : 오제키...왜?

츠요시 : 정원에서 봤다고.

         이야~ 내 먹잇감을 노리는 매의 눈빛은 아직 죽지 않았군.

미토코 : 골을 노리라고, 골을.

츠요시 : 대국(大局)을 보는 사령탑의 눈도 키울까해서.

미토코 : 아니 근데, 너 이미 은퇴하지 않았나? 

         축구부.

츠요시 : 너야말로 귀가부 은퇴한거냐?

미토코 : 별로...가끔은 빼먹고 싶은 날도 있는 것뿐.

츠요시 : 흐음...

(드르르륵)

미토코 : 저기 말야...혼자 있고 싶은데.

츠요시 : 거기서 [아 그러십니까]라면서 물러서는 건 내가 아니잖아?

미토코 : ...그렇게까지 완벽하게 납득시키지 않아도 되는데.

츠요시 : 무슨 일이야? 고민거리가 있으면 상담해줄게.

         오제키와 관련된 일이라든가, 츠요시군과 관련된 일이라든가,

         반에서 마음에 드는 남자애의 일이라든가.

미토코 : 그 세 사람이 하루가 멀다하고 번갈아가면서 말을 걸어와서,

         공부에 지장이 장난 아닌데요. 어떡하면 될까요?

츠요시 : 일단 한번 데이트해주는 게 상책이죠.

         그러면 미처 몰랐던 그의 매력을 알게 돼,

         더더욱 좋아하게 되겠죠.

미토코 : ...하아

츠요시 : 그럼, 이번주는 오제키로.

         다음주는 츠요시군이고, 그 다음주에는...

미토코 : 너 말야...그런식으로 상대를 갈아치우는 여자가 좋아?

츠요시 : 왜 그래~, 결국 내 매력을 알게 될 거라고.

         지금은 시용 기간이라 치고.

미토코 : 진짜, 그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건지.

츠요시 : 노력하면 반드시 꿈을 이룰 수 있으니까 말이지.

         ...현재 시점에서 딱 하나만 빼고 그런 상태니.

미토코 : 지금까지 좌절한적이 없구나...

         어떤 의미로는 무서운 녀석.

츠요시 : 그럼, 이번주 일요일...J2시합 보러 갈래?

         (J리그 2부 리그인듯)

미토코 : 사실 축구에는 흥미가 없는데.

츠요시 : 걱정마, 아마 그날은 타마자와 언터쳐블의 소화 시합이니.

         텅텅 빈 자리에서 독서든 공부든 마음껏 할 수 있다고.

         (소화 시합은 우승에서 멀어진 팀이 하는 시합)

미토코 : 으응...

츠요시 : 응? 가자고 히노사카.

         시합이 재미없는 건 확실하지만,

         거기서 노도가 몰아치는 걸 보여줄 테니까 말야!

미토코 : ...저기 말야, 오제키.

츠요시 : 왜?

미토코 : 너 말야...

         무릎꿇은적 있어?

츠요시 : 갑자기 무슨 소리야?

미토코 : 있잖아...[따님을 제게 주십시오]같은 거.

츠요시 : ...나 그래도 돼?

히메오 : .........

카야 : ........

히메오 : .........

카야 : 그래, 무슨 일?

히메오 : 방 좁네.

카야 : 나가.

히메오 : ㅈ, 잠깐!

         이제 막 왔는데.

카야 : 나, 여러 가지 의미로,

       전혀 당신이 마음에 안 들어.

히메오 : 협조성이 꽝이네...

카야 : 그런 부분이 왕짜증.

히메오 : 조금 정도는 남의 부탁을 들어줘도 되잖아.

         같은 아파트에 사는 사이니까.

카야 : 도대체 저 공사는 언제 끝나?

       업자들이 돌아갈 기색이 안 보이는데.

히메오 : 에? 아~, 그건...그,

         여러 가지로 납득이 가야한다든가,

         결판을 내야한다든가...

카야 : ...설마 이미 끝난지 오래됐다는 소리는 아니겠지?

히메오 : 어떻게 그걸!?

카야 : .........

히메오 : 아~, 방금 발언은,

         대화를 흥을 돋우기 위한 연출로...

         그래, 날조 같은 거라고 생각해주면.

카야 : 됐어, 빨리 용건이나 말해.

       이대로 의미불명한 상황에 앉아있기 싫으니까.

히메오 : 실은 말야...나, 지금 좀 어려운 상황에 처했어.

카야 : 당연하지.

       아이돌의 일일 부서장 놀이는 언제까지 할 생각?

히메오 : 아~, 그런 소리를 들어도 어쩔 수 없다는 건 자각하고 있지만,

         오늘은 그 일이 아니라 말야.

카야 : 언제까지 오사무군을 갖고 놀 작정이야?

히메오 : ㄱ, 갖고 놀아!?

카야 : 그는 말야, 당신의 몸종으로 썩을 인재가 아냐.

       사실은 얼마든지 대단한 일을 할 수 있다고.

       쓸데없이 부려먹는 건 이제 그만해.

히메오 : ㄱ, 그를 발견해 채용한 건 나야! 이 사와시마 히메오!

         그러니까 어떻게 이용하던 내 마음이야!

카야 : 그냥 괴롭힐 생각으로 강제로 끌고 간 주제에.

히메오 : 지금은 아니라고, 지금은!

         처음 만났을 때랑은 완전 틀리다고!

         그 사람도, 그리고 나도!

카야 : 그래서 고민하는 거지?

히메오 : 뭐를!?

카야 : 이제와서 오사무군한테 반해버렸으니까,

       앞으로 어떻게 대해야할지 모르겠지?

히메오 : .........

카야 : .........

히메오 : .........

카야 : .........

히메오 : 어라아아앗!?

카야 : 그건 이제 됐으니까.

       슬슬 자각하라고.

.........

카야 : 자, 오렌지 주스.

       이거 마시고 진정해.

히메오 : 꿀꺽, 꿀꺽.........후우.

         아, 소란피웠네.

카야 : 소란피웠다고 생각하면,

       [죄송합니다]가 뒤에 붙어야 되는 거 아냐?

히메오 : .........꿀꺽, 꿀꺽, 꿀꺽

카야 : ...아, 됐다.

       그래, 즉 당신이 상담하고 싶다는 건,

       오사무군 얘기지?

히메오 : 실은 최근, 숙취가 심해서 밤에 잠을 잘 못자.

카야 : 한방울도 안 마셨는데?

히메오 : 이렇게, 뭐라고 해야하나,

         오사무씨 얘기가 나오거나, 그 사람을 떠올리게 되면,

         머리속에서 알콜이 분비돼서 흥분된다고나 할까...

카야 : 그러니까 그건 숙취가 아니라...

히메오 : 이런일이 생기다니...

         그 사람, 좀 이상하지 않아?

카야 : 이상한 건 당신이야. 그것도 엄청.

히메오 : 그 말은...

         역시 [그 가능성]을 얘기하는 거야?

카야 : 으음...이것도 대답해야 돼?

히메오 : 오사무 씨...혹시 날 좋아하는 걸까?

카야 : 안되겠다 나가.

히메오 : 진지하게 묻는 거야...

         일반적으로 볼때 저 사람 남자로선 어때?

카야 : 내가 오사무군에 대해 일반론을 얘기할 리가 없잖아.

히메오 : 어째서?

         혹시 당신, 남성과의 연애 경험이 없다든가?

카야 : .........

히메오 : 그럼 난처한데...

         이런 얘기를 토코짱한테 하기도 그러니.

카야 : 무슨 무서운 소릴 하는 거야 당신.

히메오 : 그렇겠지, 교육상 나쁘겠지.

카야 : ...앵?

히메오 : 그렇다고 해서, 남자한테 상담하는 것도 아니니.

         아~, 어떡하지. 이대로는 업무에 지장있을 것 같아.

카야 : 저, 저기 말야...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

히메오 : 뭔데?

카야 : 집주인씨가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얘기, 들은적 있어?

히메오 : 지금은 없대.

         진학 문제에 온통 신경이 쏠려있대.

카야 : .........

히메오 : 한때는 오사무씨를 좋아하는가하는 생각도 했다는 것 같은데,

         결국 토코짱의 착각이었대나봐.

         당연하지, 아무리 그래도.

카야 : ...믿어? 그걸?

히메오 : 믿고 믿지 않고를 떠나서...

         나랑 토코짱 사이에 비밀 같은 건 없는걸.

카야 : 그, 그래...

히메오 : 최근에 말야, 매일밤마다 대화하고 있어.

         그날 있었던 얘기, 친구 얘기, 유행하는 것에 대한 얘기...

         뭐든 가리지 않고 쉴새없이.

카야 : ㅎ, 흐음.

히메오 : 근데, 어젯밤 그랬어.

         토코짱,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기 때문에,

         그를 아버지와 겹쳐 봤다고.

카야 : .........

히메오 : 전에는 자신도 잘 몰랐다는 것 같은데,

         실은 요전번에 말야, 토코짱의 아버지 얘기로 소동이 좀 있어서...

카야 : 틀렸다 이건...

히메오 : 에...?

카야 : 그치만, 뭐...

       알지를 못하니까 돌진하는 건가.

       ...조금은 부러울지도.

히메오 : 자기완결 하지마.

         그러면 난 뭘 위해서 창피한 얘기를 다...

카야 : 자신의 마음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어.

       그런 건 당연한 거야.

히메오 : 그걸 모르니까 이렇게...

카야 : 그러니까...또 다른 자신한테 물어봐.

히메오 : 뭐야 그게...수호령 같은 걸 불러내라고?

         ㅈ, 저주받으면 어떡하라고~

카야 : 걱정마.

       이미 밖으로 나온 것 같으니까.

히메오 : ㅇ, 아까부터 무슨 소리야...?

카야 : 다중인격이라는 거...알어?

히메오 : 그, 그건...응.

         이래봬도 심리학 강의도 들었으니...

카야 : 그래.

히메오 : ㅅ, 설마...?

         하지만 나, 그럴 리가...

카야 : 글쎄.

       그런 특수한 케이스의 얘기가 아니니까.

       조금 더 일반적으로, 누구든 갖고 있는 다른 인격이라고나 할까.

히메오 : 무슨 소리야...?

         전혀,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

카야 : 그럼 다음 질문.

       스크루 드라이버라는 거 알어?

히메오 : 십자?

         일자?

카야 : 칵테일.

히메오 : 칵테일이라니...술 말야?

         그런 걸 내가 알 리가.........어, 어라...

카야 : 겨우 두세 방울밖에 안 넣었는데...

히메오 : 에? 에? 에? 뭐야~?

         나, 나...나아.........아하하하하하...

카야 : 그럼...남김없이 얘기해볼래?

.........

(빵~!!)

(다다다다...)

히메오 : 봐, 벌써 왔다고.

         꾸물대지 말고 서둘러!

오사무 : ㅈ, 잠시만 기다리세요.

         아직 넥타이가...

히메오 : 먼저 차에 가있을 테니까.

         준비 다 되면 와.

오사무 : ㄴ, 네~!

일요일 오후.

평소 같으면 몸을 쉬게 할 귀중한 휴일도,

오늘만은 공포의 정신 교육일.

반년에 한번 있는, 사와시마 그룹 간담회.

그룹 기업의 톱들이 일제히 모이는,

입식(立食) 파티의 형식의 의식.

오사무 : ...아, 싫다.

         가기 싫어.

(철컥)

미토코 : 아...

오사무 : 아...

미토코 : .........

오사무 : ...좋은 아침

미토코 : 지금 대낮.

오사무 : 그, 그러네, 아하하...

미토코 : .........

오사무 : 하하, 하...

실은 이렇게 얼굴을 마주하는 건 3일만.

최근 제시간에 퇴근하는 업무 패턴으로 볼때,

이렇게 못 보는 건 정상이 아니어서.

미토코 : 무슨 소린지...모르겠어.

그 이후, 왠지 마주치는 게 어색해져서...

아니, 분명 서로 피하고 있다.

미토코 : 오사무군도 가는구나, 파티.

오사무 : 우리 회사 입장에서는 아주 큰 행사니까 말이지.

         사장이하, 중역급은 전원 참석.

         ...그러면 비서가 따라가는 건 당연.

미토코 : 흐음.

다만, 오늘만은 평상시와 입장이 완전 반대로,

내가 히메오씨에게 도움을 받게 되겠지만.

미토코 : 오늘...늦어?

오사무 : 끝나는 게 9시니까 말이지.

         트리튼에서 여기까지 차로 오면, 10시 정도려나.

미토코 : 10시...라.

오사무 : 아, 미안해...

         오늘 과외는 쉬는 걸로.

미토코 : 어쩔 수 없지. 일 때문인데 뭐.

         ...밥 먹고, 술 마시는 일.

오사무 : 그냥 평소처럼 일하는 게 훨씬 편하다는...

미토코 : 글쿠나...

         어른의 세계는 복잡하구나.

오사무 : 뭐, 그렇지...

실은 금요일에도 (과외를)건너 뛰었지만

그 얘기는 둘 다 하지 않았다.

미토코 : ㅈ, 저기 말야...

오사무 : 에, 왜?

미토코 : 아...

오사무 : 왜 그래, 미토코짱?

미토코 : 아니야...서둘러야지.

오사무 : 아직 시간이 좀 남았는데.

미토코 : 오사무군은 그래도

         히메오 언니가 없어.

오사무 : 미토코짱?

뭐지, 이 배려는?

상호대(大)간섭을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남 챙기기 좋아하는 집주인이...

미토코 : 어서 가.

오사무 : ㅇ, 응.

미토코 : 선물 같은 건 됐으니까. 편하게 다녀와.

         트리튼 같은데는 좀처럼 가기 힘드니까.

오사무 : 실은 태어나서 처음.

미토코 : 아하하...나도 한번도 안 가봤어.

오사무 : 그럼...다녀올게.

미토코 : 응...

(드르르륵)

왠지 묘하게 마음에 걸리는 미토코짱의 태도가

신경쓰이지만, 난 현관의 문을...

미토코 : 아! 잠깐만 기다려!

오사무 : 에?

연 순간,

미토코짱이 붙잡았다.

미토코 : 다시 매...

오사무 : 미, 미토코짱...

정확히는 목에 걸려 있는

연지색 넥타이를.

미토코 : 또...꼬였잖아.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고쳐지질 않네.

오사무 : ㅁ, 미안...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라.

그러고 보니, 처음 매어줬던 건,

내가 여기로 오고 첫출근하던 날이었나.

지금은 이제, 그 회사도 사라졌다.

반년전의 쑥쓰러운 추억은,

확실히 과거가 되어 버렸다.

미토코 : 좀, 비싸보이는 정장이네, 이거.

오사무 : 이 날을 위해서라고 히메오씨가...

미토코 : 그..래

이전의 그 검은 정장을 고른 그녀치고는,

나름대로 무난한 걸 골라줬다.

수행원이 아니라 극히 평범한 게스트처럼 보이는 것과,

어떻게 봐도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가격대라는 걸 빼면.

미토코 : 자, 끝.

오사무 : 아, 고마워.

미토코 : 역시 팔 아프다.

         여전히 목이 기니까.

오사무 : 하하...

전에는 그 말에 쓸데없는 말꼬리를 잡아

미토코짱을 화나게 했었지.

기억력 좋다, 나도.

그렇게...좋아했었군, 그때도.

미토코 : 저기, 오사무 군.

오사무 : 응?

미토코 : .........

오사무 : 미토코짱...?

미토코 : 잘 다녀와.

(부르르르릉)

히메오 : 정말 오래 걸리네.

오사무 : 죄송합니다.

         넥타이를 좀 다시 매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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