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3/87)

(똑똑)

오사무 : 아...

미토코 : 저기...열어 줄래요?

(철컥, 쾅)

미토코 : .........

오사무 : .........

공기가 무겁다...

어쨌든 나는, 좀전까지의 자신의 태도가 창피해서,

그녀를 제대로 바라볼 수가 없기에.

나보다도 상당히 어린 여자애가 이렇게 당당하게 행동하고 있는데,

20대 "중반"의 성인 남성이 죽네 사네하는...

생각하면 할수록 얼굴에서 불이 나려 한다.

그리고 아무리 노력해도 말이 떨어지지...

미토코 : ...죄송합니다.

오사무 : 그래, 그거!

미토코 : 그래서...사과하잖아.

         그렇게 소리 지르지 않아도 말야.

오사무 : 아앗, 아냐아냐!

         중대한 커뮤니케이션 오류!

[정답!]의 리액션은 크게 하라는 퀴즈 방송의 법칙은,

어색한 분위기 속에선 별로 좋은 방향으로 작용하지 않는 듯하다.

미토코 : 커뮤니케이션...오류?

오사무 : 아, 그게, 말하자면...일상 회화로 해석하면

         [사과해야 하는 건 내쪽]이 되는...

미토코 : 어째서?

         아저씨는 그냥 마마를 찾아온 것 뿐인데...

오사무 : 아저씨...아저씨...

미토코 : 거기서 말꼬리를 잡을 필요는...

오사무 : 20대 중반인데 말이지...난.

미토코 : 스물...몇 살?

오사무 : 아니, 그러니까 "중반"

미토코 : .........

오사무 : .........

미토코 : .........

오사무 : .........여덟

미토코 : 그래서, 아저씨는 마마를 찾아온 것 뿐인데,

         갑자기 내가 그런짓을 해서...

오사무 : 정말로 사과할 생각 있는 거?

미토코 : ...뭐라?

오사무 : ...아니, 그러니까 잘못은 내가~

무, 무섭다...

이 아이, 정말로 "그" 호노카씨의 딸...맞지?

미토코 : 그렇지 않아...착각해서 미안해.

         애당초, 냉정히 생각하면 마마랑 도망친 남자가

         태연하게 우리집에 올 리가 없지.

오사무 : 아...

또다...

또, 내가 위로받고 있다.

미토코 : 잠시 냉정함을 잃었던 것 같아.

         이럴때야말로 차분해야 하는데,

         아직 멀었어, 난...

오사무 : 그건...

본래 이 나이대의 여자애라면,

전혀 가질 필요없는 마음가짐으로.

그런 필요없는 반성을 해야할 정도로,

그녀의 경우는 나의 그것따위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여서.

오사무 : 둘 다, 진정했어야, 말이지.

미토코 : 그러게.

오사무 : 하하...

미토코 : 아하하...

그러니까, 이제 그걸로 됐다.

나에게만 잘못이 있다고 믿지만,

이 아이가 믿는 [자신의 실수]를 부정하면 안된다, 라는

그런 생각이 드니까.

미토코 : 그럼, 이거 화해의 징표로...

오사무 : 뭔데?

실은 아까부터 신경쓰였던 보자기에 덮인 쟁반.

미토코 : 그건 말야...

그 보자기를 잡고 싹 들어 올리자...

오사무 : 아...

미토코 : 배 고프지?

         아침부터 아무것도 안 먹었지?

쟁반 위에, 랩으로 싸인 접시와,

뚜껑이 닫힌 그릇.

랩을 걷어내자, 주먹밥이 3개와 다쿠앙이 2조각.

뚜껑을 열자, 온기가 올라오는 된장국.

미토코 : 여기부터, 연어, 다랑어, 매실 짱아찌

         된장국 건더기는, 미역이랑 두부랑 무.

오사무 : .........

미토코 : 자 어서.

         식기전에 먹어요...알지?

오사무 : .........

그건 그녀의 마음 깊숙한 곳의 순수함이 훤히 보이는,

아무 꾸밈없는, 마음속에 스며드는 정성.

미토코 : 왜 그래? 

         뭐 이상한 거 안 넣었다고?

그래서 나도...

꾸밈없는, 진심으로 대해줘야만 한다.

오사무 : 으, 응...그건 알고 있지만.

미토코 : 있지만, 뭐?

오사무 : 실은...그게...

미토코 : 정말, 또 우물쭈물한다.

         좀 더 말을 분명하게 하는 게 좋아, 아저씨.

오사무 : 실은 나...쌀밥을 못 먹어서.

         아니, 알레르기 같은 건 아냐.

         그치만 빵이라면 잘 먹...

(짝!)

(쾅!)

.........

오사무 : 죽고 싶다...죽어버리고 싶다...

......

...

연배있는남자 : 저런, 그건 댁 잘못이네.

               아무리 밥을 잘 못 먹어도 그렇지, 모처럼 해준 음식을

               바보처럼 솔직하게 못 먹습니다라니, 그런 소릴 하는 녀석이 어딨나.

오사무 : 하, 하지만...저는 정말로 쌀은 못 먹어서.

         그,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

연배남 : 아무리 그래도 그런 거절 방법은 아니지. 그런 경우엔 말야,

         [아아, 이렇게 기쁠수가. 우리집은 가족 전원이 주먹밥에 환장해서 말야,

         한 개가 두 개, 어느새 세 개, 네 개......(중략)......그런 방법이 있잖아!?

         (이하 중얼중얼;; 중략 내용은 조상이 주먹밥을 먹다가 죽어서 엄마가 절대 먹지 말라고

          했다는 식으로 둘러대라는 내용 같네요, 지문이 없어서 정확한 해석은;;)

오사무 : .........네;;

젊은남자 : 어이, 어이, 영감님영감님. 오바하지마.

근육질남 : 미안, 예전에 만담 연구회 고문이 된 이후로 푹 빠진 것 같아서 말야.

오사무 : ㄴ, 네;;

내 맞은편에서 하오리(옷)차림으로 정좌하고 있는 나이든 남성은,

1호실 사람으로, 이름은 우에사카 키헤 씨라는 것 같다.

젊은남자 : 옛날에는 어떤 대학의 훌륭한 선생이었다는 것 같지만 말야.

근육질남 : 그런데 발굴 현장에 날조한 석기 거울을 갖다 놓고,

           여자의 스커트 속을 들여다 본 게 발각돼서...

오사무 : ㅇ, 앵?

키헤 : 이런이런, 바보 같은 소리 하지말라고.

       교수랑 조교수랑 섞여 있잖아.

       (위 대화 내용은 구석기유물 조작사건의 후지무라 신이치와

        변태 경제학자인 우에쿠사 가즈히데의 얘기를 패러디한겁니다

        즉, 이 영감의 얘기는 아니라 농담이라는 거죠. 자세한 내용은 검색으로;;)

오사무 : 그게 바보 같은 소린가요...

        (자신에 대한 거짓말을 따지는 게 아니라, 한명은 교수고 한명은 조교수인것을 따지는듯)

젊은남자 : 그래, 형아는 밥을 못 먹으면 뭘 먹어?

오사무 : 아, 으음...스파게티라든가, 피자라든가, 양식을.

...형아?

내가 못 먹는 음식이 있다는 걸 안 것은,

중학생이 되고 나서였다.

그때까지 화식(일본 음식)이라는 것의 존재조차

인식하지 않았던 건지도 모른다.

뭐니해도 그런 집이었으니까.

그리고 처음으로 먹은 밥도,

그,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 가정부가 해줬다.

...쉰 듯한, 끈적끈적한 쌀알이 목구멍에 들러붙어,

곧바로 뱉어낸 후, 몇 번이고 토했다.

젊은남자 : 가정부!? 이 형아 부잣집 도련님이네!?

근육질남 : 뭐, 확실히 키만 멀대같이 크니 말이야.

           아무 고생없이 자랐기 때문 아닌가?

키헤 : 좋아, 결정했다.

       댁은 오늘부터 소주인이야.

       어때, 딱 들어 맞지?

       (원문은 '와카단나'로 젊은 주인, 주인의 아들 정도려나요)

오사무 : 아, 아뇨, 그렇게 잘사는 집은...

         단지 부모님 두분 다 바빴던 것 뿐으로.

거기다, 꽤나 사이가 나빴던 것 뿐.

키헤 : 뭐, 화식과 양식의 다툼은

       이렇게 중화 요리로 해결하는 걸로.

       엇, 리치 들어갑니다?

       (마작 도중인듯)

지금 생각해보면...

금전적으로 유복했는가는 둘째치고,

심리적으로 풍족한 생활을 보냈는가 하면,

고개를 끄덕일 자신은, 전혀 없는 이유로.

그래서 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 항상 실패했는지도 모르겠다.

오사무 : 하아...

키헤 : 어라 소주인, 한 방으로 끝났네.

       멘탕핑 하나 이페, 오야의 만관 가져가겠습니다?

       (마작 용어;;)

오사무 : ...에?

.........

키헤 : 그렇구만...

       회사 전체의 부정을 전부 혼자 뒤집어썼다라...바보네.

오사무 : 아니요, 그때는 어쩔 수 없었어요.

         그렇게라도 안하면 회사의 존속이 위협받았으니까요.

그렇다, 적어도 내가 한 일은 틀리지 않았다.

그때, 임원의 직인이 찍힌 결재 서류를 처분하지 않았다면,

지금 이렇게 일자리를 찾아 떠돌고 있는 사람이

100명은 더 됐을 거다.

젊은남자 : 있잖아 리스토라. 당신한테 좋은 거 가르쳐줄게.

         ('리스토라'의 의미는 리스트럭쳐링의 일본식발음을 줄인 것으로, 정리해고자 정도의 의미입니다)

오사무 : 다, 당신한테 그렇게 불릴 이유는...

젊은남자 : (호노카 목소리로)그렇게 말하지마...

           나랑 리스토라 씨 사인데.

오사무 : .........

젊은남자 : (미토코 목소리로)애당초, 리스토라라고 불리기 싫으면 말야,

           제대로 일 구해서 사회에 공헌하라고.

오사무 : .........으아아아아아악!?

근육질남 : ...기분 더럽지?

           나도 아직까지 적응이 안돼.

키헤 : 핫짱은 말야...

       목소리만 놓고 보면 천재 배우인데 말야.

오사무 : 배우...?

근육질남 : 대학도 안가고 극단에 들어가서,

           배우라든가 각본가라는 걸 하고 있는데 말이지.

           뭐니해도 여자한테 하도 집적거려서.

젊은남자 : 아니 그거 설명 대사로써 성립이 안되니까.

대체 뭐야, 이 사람들은...

내 오른쪽에서 벽에 기대 빨대로 맥주를 빨고 있는 건,

이곳 2호실 사람으로, 야스나가 분타로 군.

현재 대학 3년째인데, 아직 1학년이라는...?

그런데, 전 대학 교수였던 만담가에,

성대 모사가 특기인 극단원에,

아주 예술감이 넘치는 아파트군.

분타로 : 뭐, 그건 그렇다치고, 리스토라...

오사무 : 그러니까 난 리스토라가 아니라,

         부정이 발각돼 해고된 것 뿐으로...

분타로 : 그건 리스토라보다 심한 처사라고.

         재취업 약속도 받지 못한데다가,

         퇴직금 대신으로 준 건 배신자라는 칭호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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