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4화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두 줄이네. 왜 두 줄이지. 응급 피임약을 먹었는데.”
생리가 끊어져서 혹시나 임신 테스트기를 사용한 알리나는 두 줄, 임신이 된 것을 눈으로 보았다.
“임신 맞습니다. 축하드려요.”
의사의 말에 알리나가 질문을 하였다.
“응급 피임약 먹었는데, 임신이 맞나요?”
“피임약 먹어도 낮은 확률로 임신이 될 수도 있습니다.”
병원에서 확인까지 받았다.
하지만, 니클라스의 일탈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알리나는 그의 집으로 찾아갔다.
“어라~ 이게 누구셔? 한동안 안 보이시던 내 잘난 에이전트 알리나 씨네?”
집에서 여러 명의 벌거벗은 여자들과 파티를 즐기던 니클라스는 알리나가 등장하자 비꼬는 말투로 말했다.
니클라스의 말에도 알리나는 주변에 있는 여자들에게 말했다.
“당신들 당장 여기서 나가세요!”
알리나의 말에 여자들은 니클라스의 눈치를 보다가, 조용히 옷과 가방을 챙겨서 밖으로 나갔다.
집에 둘만 남자, 알리나가 니클라스에게 애원하듯이 말했다.
“니클라스, 제발 이제 그만하자. 너 충분히 놀았잖아. 그러니까 그만하자.”
“하… 또 잔소리하는 거야? 그만하자고 했지. 누나는 내 재계약이나 잘하면 되는 거야! 내 사생활에는 참견하지 말라고!”
니클라스가 공격적으로 말했지만, 알리나는 계속해서 그를 설득하려고 하였다.
“어떻게 하면 정신 차릴래? 어떻게 하면? 너의 재능이 아까워서 그래!”
“하~ 재능이 아까워? 솔직히 지금도 분데스리가에서 먹어주는데? 뭐가 그렇게 욕심이 많아! 그렇게 돈을 많이 벌고 싶어? 내가 성실하다는 이미지까지 있으면 팔기 좋으니까?”
“그게…….”
알리나는 결국에 하지 않으려고 했던 말까지 꺼냈다.
“나, 임신했어.”
“그래 축하… 뭐? 임신?”
생각지도 못한 단어에 니클라스가 취했던 술이 깨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뭐야? 설마… 그날… 그거야?”
알리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자, 니클라스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그의 머리는 복잡했다.
“하… 미치겠네.”
“…….”
“진짜… 아… 피임도 똑바로 못하나.”
“…….”
그러다가, 그는 해서는 안 될 말까지 하였다.
“정말 내 아이가 맞는 거야? 혹시 돈 뜯어내려고 연기하는 거 아냐? 유전자 검사는 해봤어? 누나도 혹시 WAGS가 되고 싶어서 거짓말하는 거 아냐? 다른 남자랑 그 짓을 했을지도 모르는데 내가 어떻게 믿어!”
니클라스의 말에 오히려 알리나의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녀가 알던 약간 건방지지만 축구에 대한 열정이 가득했던 배려심이 깊었던 니클라스가 더 이상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유명세에 취해서 하룻밤 불나방처럼 매일 술에 취해서 클럽에서 춤을 추고 여러 여자들과 밤을 즐기는… 축구보다는 인생을 즐기는 타락한 축구 선수였다.
“쓰레기인 너를 계속 믿고 있었다니… 내가 미쳤지!”
알리나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니클라스의 앞에서 사라졌다.
3일 뒤.
“저희 SGG 에이전시에서는 니클라스 드레 선수와의 계약을 파기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아침부터 걸려온 전화에 니클라스는 깜짝 놀랐다.
“왜요? 저랑 왜? 계약을 파기하겠다는 거예요? 저 얼마 안 있으면 재계약입니다! 엄청난 돈을 벌 기회라고요.”
“저희 회사에서 니클라스 선수를 담당하겠다는 에이전트가 단 한 분도 안 계십니다. 그래서 니클라스 선수와의 계약을 파기하겠다고 사장님께서 결정하셨습니다.”
“알리나 누나… 알리나 에이전트는요? 요즘 연락을 안 받던데, 제가 기분 나쁘게 했다면 사과한다고 다시 이야기를 해보자고 전해주…….”
“알리나 선임 에이전트님은 퇴사하셨습니다.”
니클라스는 그때서야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설탐정 사무실.
“저, 사람을 한 명 찾아주었으면 하는데… 이름은 알리나, SGG 에이전시 소속 에이전트였습니다.”
“그래요?”
탐정은 욕망이 가득한 눈빛으로 니클라스의 의뢰를 받았다. 하지만.
- 니클라스 드레! 사설탐정 사무실을 찾았다
- 탐정과의 인터뷰! 니클라스, 그는 한 여인을 찾고 있다
- 그가 찾는 여인은 누구?
- SGG 에이전시, 개인 사생활 침해로 고소당하고 싶지 않으면 접근하지 말라!
- 니클라스 드레의 더러운 사생활!
에이전트도 없이 움직였던 니클라스는 언론의 폭격을 맞았다. 탐정은 위약금보다 훨씬 거금의 돈을 받고 언론사에 정보를 건네었고, SGG 에이전시는 자신의 회사에 소속되었던 직원을 보호하는 조건으로 니클라스에 대한 안 좋은 정보를 비공식적으로 더 풀었다.
그런 과정에서 니클라스는 더 이상 알리나에 대해 찾을 엄두도 나지 않았다.
* * *
“알리나 누나…….”
니클라스가 불쌍한 표정으로 말했지만, 알리나의 표정은 여전히 싸늘했다. 그러고는 데이비드와 윌리엄을 보고 말했다.
“당신들 정말 더러운 방식으로 일하시네요.”
“알리나 씨에게는 정말 죄송합니다만, 저희 영국에서는 선수 영입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서요.”
데이비드는 약간 사악한 웃음을 지었고, 알리나도 쓴웃음을 지었다.
니클라스는 알리나에게 다가가서는 무릎을 꿇었다.
“누나, 내가 잘못했어. 내가 정말 다 잘못했어.”
“…….”
“정말 내가 진짜 다 잘못했다니까.”
니클라스가 알리나에게 애원하며 용서를 빌었지만, 그녀의 입에서는 쉽게 용서의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만하라고. 이미 되돌릴 수 없어.”
“…….”
그녀의 말에 니클라스는 약간 울면서 말했다.
“내가 평생 죽은 아이한테는 사죄할게.”
니클라스는 그녀가 이미 배 속의 아이를 지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알리나는 오히려 벌컥 화내며 말했다.
“죽어? 누가 죽어!”
“…아기…….”
“누구 마음대로 루이스를 죽이는 거야?”
“어?”
“루이스 잘 크고 있거든? 너 같은 쓰레기 아빠가 없어도 잘 크고 있어!”
그녀가 혼자서 아기를 낳았던 것이다. 이 사실을 알자 더욱 간절해진 니클라스는 이제는 그녀의 발을 잡고 애원하였다.
“제발… 제발 한 번만 기회를 줘! 제발 내가 이제 정신 차리고 잘할게.”
“…….”
계속되는 그의 애원에 알리나는 고민하였다.
사실, 알리나는 이미 니클라스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를 얻고 있던 상태였다. 자신이 떠난 이후에 그가 방황하고 있고 술에 빠져 살고 있었지만, 자신을 찾아다닐 정도로 후회하고 있으며, 클럽도 가지 않고 여자를 멀리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알리나는 만약 니클라스가 자신을 찾아와서 진심으로 용서를 구한다면, 한번 기회를 주려고 이미 마음을 먹었던 상태였다.
계속되는 니클라스의 애원에 알리나가 한마디를 하였다.
“알았어. 그만 애원해.”
니클라스가 잡고 있던 그녀의 발을 놓았다. 하지만 여전히 무릎을 꿇은 상태로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하지만, 말로 하는 것은 안 믿으니 직접 보여줘. 앞으로 3년만 조용히 축구만 하면서 성실하게 잘 지내면, 그때 너에게 기회를 한번 줄게.”
“어… 3년이나?”
니클라스의 말에 알리나가 노려보자.
“어! 알았어! 3년 조용히 축구만 할게.”
그는 다급히 무조건 하겠다는 의사를 표현하였다.
니클라스와 알리나, 두 사람의 문제는 일단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 그러자, 알리나는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데이비드와 윌리엄을 보고 말했다.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니클라스가 웨스트 릴링으로 이적하는 건가요?”
데이비드는 여전히 여유로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 네. 당연하죠. 그러니, 저희가 여기까지 니클라스 선수를 데려왔죠.”
데이비드의 말에 알리나는 미심쩍은 시선으로 니클라스를 보면서 물었다.
“너, 선수 계약 어떻게 했어. 혹시 벌써 계약서에 서명한 거야?”
이 상황이 되자, 에이전트로서의 본능이 되살아난 것이다.
“어… 그게…….”
니클라스가 대답을 머뭇거렸다. 그는 자신이 서명하긴 했지만, 그녀가 있는 곳을 알려준다는 말에 조건을 제대로 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에 데이비드가 먼저 말해주었다.
“5년 계약에 계약금 30억, 주급 4,000만 원으로 선수 계약 깔끔하게 했습니다.”
“이런 미친!”
알리나는 자신도 모르게 욕을 하고서는 말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사기 계약을 하셨네요.”
“사기 계약이라니요? 선수가 동의하고 서명한 계약입니다.”
알리나는 답답한 마음에 바로 자신의 전 에이전시인 SGG에 전화를 하였다. 그리고 전 직장의 동료와 여러 가지를 대화하였다.
“다행히, 저 멍청한 녀석이 제대로 계약 해지도 안 했네요.”
SGG 에이전시는 바보가 아니었다. 그에게 계약 해지를 요청했지, 정식 서류를 통한 계약 해지를 했었던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니클라스가 새로운 에이전트를 고용해서 후처리를 해야 했는데, 하지 못했다.
알리나는 니클라스의 권리를 위해서 데이비드와 바로 협상에 들어갔다.
“에이전트 없이 한 계약… 무리라고 생각하지 않으신가요?”
그녀의 말에 데이비드가 웃었다.
“하하하, 아무리 우겨보셔도 이미 계약은… 완료되었습니다.”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제 개인 정보를 팔아서 니클라스와 계약하신 것 같은데…….”
그건 사실이었다.
“정상적인 계약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니 다시 하시죠. 아니면 언론에 제가 인터뷰라도 해볼까요? 니클라스도 제가 하라는 대로 할 것 같은데?”
알리나의 말에 니클라스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그녀가 죽으라면 시늉이라도 할 니클라스였다.
그녀의 협박에 윌리엄 운영 팀장은 당황했지만, 데이비드는 예상했던 일이다. 자신이 악역을 하면서 두 사람의 유대감이 깊어지는 것까지도… 레전드 보고서에서 권유했던 내용이기 때문이다.
데이비드는 원하는 상황대로 돌아가는 것이 마음에 들었고 이제는 마무리에 들어갈 타이밍이었다.
“흠, 그럼 재계약을 가시죠.”
“재계약이요?”
선수 계약이 아닌 재계약을 데이비드가 말하자, 알리나가 당황했다. 하지만, 여기서 다시 데이비드의 ‘언변(C)’ 스킬이 터졌다.
“무리한 계약이었지만, 계약은 계약입니다. 그래도 저희가 도의적인 부분에서 계약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은 인정하니, 재계약으로 가시죠.”
재계약으로 기존의 조건보다는 좋게 해주겠지만, 절대로 협상 테이블에서 끌려가고 싶지 않다는 데이비드의 의도였다. 그런 그의 말에 알리나는 원칙적으로는 틀린 것이 없었기 때문에 밀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웨스트 릴링이 그렇게 짜다고 하던데, 소문대로 악랄하시네요.”
“대신에 저희 팀이 니클라스 선수와 같은 문제아들을 고쳐 쓰는 것으로도 유명하죠?”
데이비드의 말에 알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니클라스의 재계약이 현장에서 추진되었다. 그의 계약 기간은 동일하게 5년이었지만 주급은 6,000만 원으로 상승하였고 옵션의 규모가 크게 증가하였다.
두 장의 재계약서에 니클라스와 데이비드가 서명하고 한 장은 니클라스가 받았고, 다른 한 장은 윌리엄이 조심스럽게 가방에 챙겼다.
“아쉽지만, 이렇게 끝내야겠네요.”
알리나의 말에 데이비드가 말했다.
“흠, 저희는 아직 안 끝났습니다.”
그런 데이비드의 말에 윌리엄은 준비했던 또 다른 계약서를 꺼내었다.
“스카우트 계약서?”
그것은 알리나를 고용하는 스카우트 계약서였다.
“저희가 처음에 집을 방문해서 한 말은 진심이었습니다. 젊은 선수를 잘 발굴하는 유능한 에이전트, 저희처럼 유망주를 선호하는 구단에는 필요한 인재죠. 저희 팀에 스카우트로 오시죠.”
그리고 니클라스를 보면서 한마디 더했다.
“오시는 김에 저기 방황하던 녀석도 같이 챙겨주시고요.”
데이비드의 말에 알리나는 살짝 놀랐고, 니클라스는 그저 웃었다. 그리고 그녀는 천천히 자신의 계약서를 보면서 말했다.
“주급 300만 원은 기본이고, 제가 원하는 추가 조건이 아주 까다로운데요?”
“말씀해 보시죠.”
“취직 시 집은 제공되나요? 집이 제공이 안 된다면 주거비 지원 정책은 어떻게 되나요? 육아 시간은 얼마나 보장되죠? 아니면 미혼모나 한부모 가정을 위한 지원책이 있나요? 구단 내 보육 시설은 있나요? 자녀를 위한 추가 수당은 당연히 있겠죠? 휴가 사용은 자유로운가요?”
그녀는 니클라스의 계약 때보다 더욱 많은 질문을 하였고, 윌리엄이 입이 아플 정도로 여러 가지를 설명해 주어야 했다. 대신에 웨스트 릴링은 니클라스라는 잠재력이 뛰어난 선수와 새로운 에이전트를 고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