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 겨울 이적 시장 - 2 】
시즌 23차전.
박싱 데이가 시작되는 12월 26일에 웨스트 릴링 FC가 경기를 치르고 있었다.
홈구장의 관객 800여 명 사이에… 누가 봐도 전문가 포스를 풀풀 풍기면서 촬영하는 스카우트들이 몇몇 발견된다. 겨울 이적 시장을 앞두고 리그 2 선두를 달리는 웨스트 릴링 FC의 선수들을 관찰하는 모습은 이제 흔한 모습이었다.
대부분의 스카우트들이 웨스트 릴링 FC의 주요 선수들을 관찰한다면… 한 스카우트는 특이하게 수비형 미드필더를 열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이날 경기에 나온 수비형 미드필더는 게리와 제이콥, 그중에서도 제이콥이 맹활약을 하고 있었다. 자신이 가진 ‘사냥개’ 스킬을 활용하여 반대편 주요 공격수가 꼼짝 못 하게 전담 마크를 제대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스카우트는 그런 제이콥의 모습을 보면서 열심히 메모를 하다가, 결국 옆에 큰 동그라미를 그렸다.
2024년 1월 1일 0시.
겨울 이적 시장이 시작되는 새벽에 웨스트 릴링 FC의 전화기가 울렸다. 혹시나 해서 비상대기를 하고 있었던 스카우트 팀장인 레이첼은 전화를 받았고, 바로 메모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메모를 마친 레이첼이 급하게 단장인 아담에게 전화를 하였다.
“급한 이적 제의입니다.”
레이첼의 말을 들은 아담은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감독인 대칸을 비롯하여 주요 구단 운영진을 소환하였다.
새벽 1시, 급하게 집에서 옷만 챙겨 입고 나온 대칸이 구단 사무실에 들어온 시간이었다.
대칸이 회의실로 들어오자, 먼저 대기하고 있던 레이첼과 아담 단장이 반겨주었다. 대칸은 자리에 앉으면서 물었다.
“무슨 일이죠?”
레이첼은 자신이 정리한 이적 제안 서류를 대칸에게 건네주었고, 그는 서류를 읽으면서 두 눈을 크게 떴다.
“제이콥에 대한 이적 제안이라고요? 그것도 이적료 12억(90만 유로)에 금일 계약 체결 조건으로요?”
대칸의 살짝 놀란 말에 레이첼이 고개를 끄덕였고, 그럼에도 서류를 다시 살펴보았다. 확실히… 확실하게 제이콥에 대한 이적 요청이었다.
제이콥 펜(22살, 미드필더-수비수, 320/330)
기술 115/119, 정신 120/124, 신체 85/87
스킬 : 사냥개(R), 설명 : 전담 마크 선수의 모든 신체 능력치를 1 하락시킵니다.
제이콥 펜, 2년 전에 대칸이 감독이 되었던 6부 리그부터 같이 왔던 좋은 수비 선수이다. 특히, 스킬 시스템이 오픈되면서 전담 마크 요원으로 아주 좋은 활약을 해준 선수이다.
게다가 멀티 포지션까지 가능한 유용한 선수라는 장점이 있었지만… 그가 어느 정도 레벨인가? 라는 질문을 한다면 리그 2 선발 수준이나 리그 1 백업 수준이라는 것이 객관적인 판단이었다.
이런 제이콥을 챔피언십에 소속된 스완지 시티에서 12억(90만유로)이라는 몸값으로 이적을 제안한 것이다. 다만 금일 내로 모든 계약 체결을 하는 조건이 붙어있었다.
내부 운영진 회의를 통해서 스완지 시티에서 제이콥을 노리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되었다. 첫 번째, 대칸의 감독 스킬과 제이콥 본인의 스킬의 영향이 컸다. 실제 320대 능력인 제이콥이 350대 능력치의 선수를 상대로 무난하게 수비가 가능했으니, 충분히 헷갈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두 번째는 아직 어린 나이였다. 스물두 살인 제이콥은 상대적으로 어린 편에 속하였기 때문에 아직 성장 가능성이 있다고 스완지 시티 스카우트 팀에서 판단한 것이다.
세 번째 이유는… 지금 당장의 스완지 시티 내부적인 문제였다. 수비형 미드필더 선수들의 줄부상으로 인하여 선수 충원이 급했던 것이다. 당장 다음 경기에 뛸 수 있는 선수가 없어서 부상 선수를 출전시켜야 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래서 이곳저곳 선수를 알아보던 스완지 시티의 스카우트가 제이콥이 전담 마크로 맹활약을 했던 경기를 보았고, 상대적으로 적은 몸값을 확인한 다음에, 이 정도 금액으로 부분적으로 활용이 가능한 유망주를 영입하자는 전략으로 웨스트 릴링 FC에 있는 제이콥을 영입할 것을 결정한 것이다.
아침까지 대칸과 코치들, 그리고 운영진의 회의가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고려한 것은 이적료였다.
“12억(90만 유로)이라는 이적료는 제이콥의 몸값으로는 넘치는 금액인 것은 확실합니다.”
아무리 챔피언십 팀이라고 해도, 12억(90만 유로)을 지불한다는 것은 확실히 금액을 많이 오버하는 일이었다. 물론 이 금액이 금일 내 계약 조건이기 때문이라는 것도 감안해야 했다.
“그리고 현재 팀의 입장에서도 제이콥은 멀티 백업이나 전담 마크 요원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김종일 코치의 말… 하지만 바로 매튜가 반론을 들었다.
“하지만 주전 선수들을 밀어낼 능력은 안 됩니다.”
체력 담당 코치인 차승진 코치가 거들었다.
“게다가 신체적인 발전도 매우 더딥니다. 사실상… 발전에 한계가 온 것이라 생각됩니다.”
전술 코치와 공격 담당 코치도 이적에 손을 들었다.
12억(90만 유로)이라는 금액은 확실히 제이콥의 몸값에 비하면 비싸다고 판단하는 내부 코칭스태프였다.
“하지만… 제이콥이 없으면 수비 백업이 약해지는데…….”
유일하게 김종일 코치만 반대를 하는 입장을 계속 표명하였다.
“무엇보다 제이콥의 의사도 한번 물어봐야 하지 않을까요? 제이콥 선수는 여태까지 성실하게 팀을 위해 충분히 충성을 했던 선수입니다. 선수의 의사를 듣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요?”
대칸의 의견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김종일 코치가 찬성하였다.
“그게 맞겠군요. 그럼 제이콥의 의사를 듣고 그가 원하는 방향으로 선택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제이콥과의 면담을 토대로 결정하자는 내부 협의가 완료되었다.
아침.
자신에게 이적 요청이 들어왔다는 소식에 아홉 시가 되기도 전에 제이콥과 그의 에이전트가 구단에 도착했다.
그리고 바로 제이콥은 대칸 감독과 스카우트 팀장인 레이첼, 아담 단장과 면담을 시작하였다.
“제이콥 선수에게 먼저 전화로 말했지만 챔피언십 소속의 스완지 시티에서 이적 제안이 왔습니다.”
제이콥은 에이전트를 통해서 이미 돌아가는 사정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저희는 제이콥 선수에게 먼저 의사를 묻는 것으로 의견을 조율했습니다. 제이콥 선수는 이적을 원하시나요?”
아담의 질문에 제이콥은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분명히, 에이전트와 사전에 대화를 했을 때에는 이적하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챔피언십 소속 스완지 시티로부터 나쁘지 않은 계약금과 주급을 에이전트를 통해서 답변을 받았고, 상위 리그에서 뛰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제이콥이 고민하는 동안에 에이전트가 말을 하였다.
“저희 제이콥 선수는 이적하는 방향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칸은 에이전트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제이콥! 솔직하게 말해다오. 이적을 하고 싶은 거니? 아니면 팀에 남고 싶은 거냐?”
“감독님…….”
“네가 어떤 선택을 하든지 나는 다 이해할 수가 있다. 하지만 네가 선택해야 하는 거야! 에이전트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대칸의 말에 에이전트의 표정이 찌그러졌지만 대칸은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제이콥, 너의 의견을 말해다오. 네가 진심으로 원한다면 네 계약 기간이 2년이나 남아있지만 보내주겠다.”
대칸의 말에 제이콥은 망설이다가 숨을 크게 내쉬고서는 말했다.
“감독님, 죄송하지만 저는 스완지 시티로 가고 싶습니다. 프로 선수로서 챔피언십의 레벨에서 제대로 뛰어보고 싶습니다.”
아무리 웨스트 릴링 FC가 좋은 팀이고 상위 리그로 승격을 노리는 팀이라고는 해도, 2단계나 높은 챔피언십에 있는 스완지 시티와는 레벨이 달랐다.
게다가 비록 후보 선수 대접이기는 하지만 많은 주급을 약속했기 때문에 제이콥은 당연히 이적을 하고 싶었다.
제이콥의 의사를 확인한 대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하지만 네 선택에 불안한 점이 있다는 것은 스스로도 알고 있지?”
“네. 후보 선수로 영입된 것도 알고 있으며 지금 당장 스완지 시티에서 박싱 데이를 잘 넘기기 위해서 저를 영입하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가고 싶습니다.”
제이콥은 자신이 가시밭길을 걷더라도 스완지 시티로 가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하였다.
결국, 대칸은 고개를 끄덕였고 아담 단장이 정리하였다.
“그럼 제이콥 선수가 이적하는 것으로 확정하겠습니다.”
회의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오후 네 시, 훈련장에서 제이콥은 선수들에게 인사를 하였다.
“게리 주장, 고마웠어요.”
“그래 제이콥, 가서도 잘해라! 우리의 사냥개!”
“대니얼 씨, 많이 배웠습니다. 그리고 술 좀 줄이시고요.”
“이 꼬맹이가!! 우리 팀의 어린애들이 한 명씩 한 명씩 사라지는구나……. 너도 상위 리그 팀으로 가니… 잘해라!”
“에드워드! 같은 팀이라서 좋았다. 앞으로 유명해져도 날 잊지 말라고.”
“하하, 제이콥 씨나 저희를 잊지 마세요.”
“라이언 씨, 잘 챙겨주셔서 고마웠습니다.”
라이언은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소리 없는 웃음을 지으면서 악수로 인사를 하였다.
그리고 다른 선수들과도 간단하게 인사를 나눈 제이콥에게 마지막으로 김종일 수석 코치와 매튜가 다가왔다.
“제이콥… 네가 이적을 하겠다고 하니… 말리지는 않겠다. 하지만 그 팀에 가서는 더 열심히 그리고 조심히 플레이를 해라. 영국 축구는 경기에서만 거칠기만 한 것이 아니야. 팀 내 경쟁도 살벌하다고… 우리 팀같이 생각하면 안 된다.”
“네, 코치님! 여태까지 잘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매튜는 제이콥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헤이, 브로… 내가 항상 말했지. 선수의 생명은 뭐다?”
“몸… 건강이다.”
“항상 건강하고 몸 관리 잘해라.”
매튜는 제이콥과 격렬하게 포옹을 한번 하고서는 먼저 자리를 떠났다.
마지막으로 구단을 떠나기 전에 대칸이 머물고 있는 감독실에 들어왔다.
“감독님,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뭐야? 인사까지 하러 다니는 거야? 내가 동양인이라고 동양식으로 헤어지네?”
대칸의 농담에 제이콥은 웃었지만… 뭔가 서운한 그의 감정이 표정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대칸은 그런 제이콥의 표정을 보고서는 입을 열었다.
“제이콥, 사실… 말 안 하려고 했지만… 그동안 인연을 생각해서 말한다.”
대칸은 축구 매니저로 분석한 제이콥의 장단점에 대해서 하나하나 말해주기 시작했다.
“너의 장점은 누가 뭐래도 성실함과 전담 마크 능력이다. 네가 경기를 뛰면서도 느꼈겠지만 전담 마크를 하면 반대편 선수가 맥을 못 추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제이콥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스완지 시티에 가면… 아마 주전 경쟁은 쉽지 않을 것이야. 하지만 너의 전담 마크 능력만큼은 최고니, 그런 방면으로 감독이나 코치들에게 어필을 해라. 특정 반대편 에이스에 대한 마크는 네가 최고라고!”
“네, 감독님.”
“그리고 주의해야 할 점은 네가 팀을 이적한 직후에 신체적인 문제를 겪게 될 거야. 아무래도 챔피언십 레벨의 피지컬은 이곳과는 차원이 다르니 더 조심하고, 그리고 만약에 한계에 부딪친다고 해도 좌절하지 마라. 너의 특징만 더욱 발전시키라고.”
대칸은 본인의 감독 스킬에서 벗어나게 되어 신체 관련 능력치가 떨어지는 부작용에 대해서도 경고하였다.
조언을 마친 대칸은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며 제이콥을 떠나보냈다.
훈련장.
“자! 다들 알겠지만 제이콥이 떠났다.”
“…….”
“제이콥의 계약 기간이 무려 2년 반이나 남아있었다. 하지만 그가 원해서 우리는 놓아주었다. 우리 팀은 언제든지 선수가 원한다면 더 높은 곳으로 보내줄 의향이 있다.”
갑작스러운 대칸의 말에 선수들이 어리둥절하면서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확실히 미리 말해두자면! 우리는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간다! 불편하게 다른 팀으로 이적해서 적응한다고 고생하지 말고, 우리 팀을 더 높이 올리자!”
“네!”
대칸의 주도하에 오래간만에 연습 도중에 파이팅 구호를 외쳤다.
“고! 고! 고! 웨스트! 웨스트! 릴링!! 고고고!!”
제이콥이 떠나서 아쉬웠지만 대칸은 다 같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자고 말했고, 선수들은 팀과 함께 더 높은 곳으로 향하겠다는 다짐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