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웨스트 릴링 FC의 라커룸.
“좋아, 잘하고 있어!”
선수들은 하이 파이브를 하면서 서로를 격려하였다.
“간만에 정말 재미있게 축구하네!”
“오늘 호흡이 정말 잘 맞아요!”
“수비도 완벽했다고.”
선수들의 분위기가 정말 좋았고 평소에 항상 불만이던 딜런조차도 웃고 있었다.
“정말 간만에… 아니 이렇게 조직력이 좋은 팀은 처음이네요.”
경기에 참여한 모든 선수들이 만족스러운 표정이었고 웃음이 가득했다.
대칸도 좋은 분위기를 만끽하고 있었다. 축구 매니저에서도 이 멤버들의 전술 완성도가 98%에 달하고 있었다.
게다가,
[좋은 팀워크 경험으로 선수의 능력치가 향상됩니다.]
라는 메시지가 대부분의 선수들에게서 보였다.
“좋아! 전반전에는 모두 잘했어! 모두 완벽했다고!”
대칸은 선수들에게 진심 어린 격려를 하였다.
하지만 대칸에게 다른 문제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선수 교체였다.
대칸은 이번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 매튜에게 ‘전반전만 뛰게 하겠다.’는 말을 하였다. 하지만 지금 선수단의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하…….”
대니얼과 웃으면서 대화를 나누는 매튜에게 교체를 지시한다는 것은 너무나 잔인하다고 느껴질 만큼 지금 당장의 분위기가 좋았다.
그래도 교체를 지시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매튜에게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매튜… 후반전에는…….”
“감독님, 후반전에도 제가 뛰겠습니다.”
“하지만.”
“감독님, 이번 후반전에도 제가 뛸 수 있게 해주십시오. 이런 경기는 제 선수 생활 20년 동안에도 몇 번 경험하지 못했던 경기입니다.”
매튜의 부탁.
대칸이 한숨을 쉬며 매튜를 바라보았고, 여전히 경기를 뛰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는 매튜였다. 그리고 옆에서 보고 있던 김종일 수석 코치가 나서서 대칸을 말리기 시작했다.
“감독님, 선수가 저렇게 원하는데… 그냥 뛰게 하시죠.”
“코치님, 하지만.”
매튜의 이번 시즌에 임하는 각오를 알고 있던 김종일 코치는 대칸을 설득하였고, 결국 대칸은 교체를 포기하였다.
링컨 시티 FC의 라커룸.
링컨 시티는 지금 현재 리그 순위 1위였다. 그리고 객관적인 팀의 전력도 분명 리그 최상위권으로 승격이 충분한 전력이었다.
하지만 전반전에는 호흡이 완벽한 웨스트 릴링 FC에게 상대가 되지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링컨 시티의 수비 조직력이 버텨주었기 때문에 2실점만 했다고 할 수 있었다.
문제는 링컨 시티 감독의 분노였다.
“이 머저리 같은 녀석들! 너희가 선수야? 선수냐고!!”
링컨 시티 감독은 발로 주변 도구들을 차면서 격하게 소리를 외쳤다.
“2:0… 그것도 일방적인 경기 내용이었어! 유효 슈팅이 하나도 없는 전반전이었다고! 너희들 맞는 게 취미야? 당하는 게 적성에 맞아?!”
감독의 말에 선수들은 ‘아닙니다.’라고 대답했지만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반대 팀은 작년까지 5부 리그에 있었던 팀이야! 그런 팀한테 이렇게 당해서야 되겠냐고! 우리는 작년까지만 해도 리그 1에 있었는데!”
감독은 잠시 심호흡을 하고서는 말했다.
“후반전에는 어떻게 해서든지 이겨라! 상대편 다리를 부숴서라도 돌파하고, 몸으로 막아서 수비하라고!!”
감독의 말에 주장이 불안해하며 말했다.
“감독님, 하지만 저 팀에는 칼슨 선수가…….”
“그래서 어쩌라고! 지금처럼 후반전도 발리고 싶어서 그래? 이런 경기 내용으로 부상이 무서워? 그러면 선수 때려치워! 내가 책임질 테니까! 모두 죽인다는 각오로 경기에 임해!”
“네!”
감독의 말에 링컨 시티의 선수들은 독기 어린 눈빛으로 후반전을 준비하였다.
[네, 심판의 휘슬과 함께 후반전이 시작됩니다.]
[그런데 양 팀의 선수 변화가 전혀 없습니다. 웨스트 릴링 FC 감독이야… 잘하는 선수들을 건드릴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만… 링컨 시티 감독은 전혀 이해가 안 되네요? 무슨 의도일까요?]
해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링컨 시티의 수비수가 돌파하던 라이언을 몸으로 밀어서 날려버렸다.
[아! 라이언 선수 쓰러졌습니다.]
[저런 플레이는 안 되죠! 공과 상관없이 선수가 돌파하지 못하도록 반칙을 합니다.]
[다행히 라이언 선수가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후반전이 시작되고 반대편의 반칙이 심해지자… 다혈질인 딜런이 가장 먼저 흥분한다.
[앗, 딜런 선수 화를 냅니다.]
[아무리 짜증 나게 만들어도 저렇게 신경질을 내면 안 됩니다.]
[심판이 두 선수에게 구두로 경고를 줍니다.]
대칸은 딜런의 행동에 카드가 안 나온 것을 다행이라 생각하며 말했다.
“제이든 코치님, 이삭 선수와 딜런 교체 부탁드립니다.”
“네.”
제이든 코치는 최대한 빠르게 이삭을 준비시켰고, 다행히 딜런이 문제를 일으키기 전에 선수 교체에 성공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딜런의 플레이가 조금씩 거칠어지는 것을 느끼고, 대칸은 이삭을 투입한다.
딜런이 나가고 살짝 경기의 분위기가 진정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후반 23분.
“에드워드, 뛰어!”
오래간만에 경기에 투입된 이삭은 팔팔 뛰는 생선처럼 경기장을 뛰어다녔다. 그리고 간만에 하프라인 부근에서 상대편 패스를 가로채고서는 바로 역습에 들어갔다.
[웨스트 릴링 FC의 역습! 2:2 상황입니다. 에드워드 선수와 이삭 선수가 빠르게 침투합니다.]
비록 수비수가 두 명이 있지만 에드워드와 이삭에게 있어서 두 명은 충분히 뚫을 수 있는 숫자였다.
[2:1 패스!]
한 명의 수비수는 콤비플레이로 바보로 만들고…….
[아~ 에드워드 선수의 팬텀 드리블이 나옵니다! 환상적입니다!]
에드워드가 마지막 수비수까지 제치고 들어갔다. 그리고.
뻥~ 철렁!
[완벽한 골입니다. 에드워드 선수가 때린 공이 골대 구석에 정확하게 들어갑니다.]
골을 넣은 에드워드는 반대편 코너 라인에서 골 세리머니를 하였고, 이삭을 비롯한 동료들이 달려와서 에드워드를 위로 덮쳐 깔아뭉개면서 축하해 주었다.
[후반 23분에 에드워드 선수와 이삭 선수가 환상적인 콤비 플레이를 보여주면서 웨스트 릴링 FC가 3:0으로 앞서갑니다.]
3:0… 스코어가 더 벌어지자, 링컨 시티의 플레이는 더욱 거칠어졌다.
퍽.
삐익!
[아, 또 반칙입니다.]
[링컨 시티 선수들! 심정은 이해됩니다만, 저런 플레이는 안 됩니다.]
[레오 선수가 그라운드에 넘어져 있습니다.]
[심판은… 아… 옐로카드가 뭡니까? 레드카드 나와야죠?]
[하지만 이미 판정은 내려졌습니다. 웨스트 릴링 FC의 주장인 게리 선수가 격렬하게 항의하지만 판정은 번복되지 않습니다.]
“칼슨, 부탁한다!”
후반 25분, 레오가 심각하지는 않지만 더 이상 경기를 뛰기는 부담스러운 부상을 당하자, 대칸은 급하게 아치를 미드필더로 올리고, 칼슨을 윙백으로 투입한다.
그리고 역시나…….
삐삑!!
[아, 경기장에서 몸싸움이 일어납니다.]
[양 팀 선수들 모두 흥분했어요!!]
[칼슨 선수의 태클에 링컨 시티 11번 아르민 선수가 넘어졌거든요.]
칼슨이 이번에도 자신의 역할대로 반대편 선수를 부상당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번 플레이로 칼슨과 함께 링컨 시티의 선수도 같이 퇴장을 당하면서 열 명씩 뛰는 경기로 전환되었다.
칼슨이 퇴장당하자… 대칸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루이! 몸 풀리면 바로 투입한다. 3분 내 몸 풀어!”
“네.”
대칸은 급하게 루이에게 몸을 풀라고 지시하였지만.
“아악!!”
대칸이 그라운드를 보았을 때, 이미 매튜가 쓰러져 있었다.
“죽어! 죽으라고!!”
“미친 새끼들!!”
매튜가 쓰러지자, 웨스트 릴링 FC와 링컨 시티 FC 선수들의 싸움이 일어났다. 특히, 평소에 냉철한 프로 정신이 돋보이는 게리가 분노하여 먼저 주먹을 상대편 선수에게 날렸고, 상대편 선수들과 주먹다짐과 몸싸움이 격렬하게 일어났다.
삑! 삑! 삑!
바깥에서 대기하던 심판들까지 투입되어 싸움을 말렸고, 결국 게리를 비롯한 세 명의 선수… 총 네 명의 선수들에게 심판은 레드카드를 주었다.
[아… 이러면 안 됩니다.]
[프로 축구에서 난투라니…….]
[게리 선수의 심정은 이해합니다만 이건 잘못된 행동이죠.]
[하지만, 매튜 선수의 부상이 심각해 보입니다. 고통스러워하면서 실려 나가네요.]
[이제 경기장에는 양 팀의 선수 각각 여덟 명씩 남아있습니다.]
실려 나오는 매튜를 보는 대칸의 머리는 복잡했다. 축구 매니저를 통해서 매튜에게 여태까지 없었던 십자인대 파열이라는 붉은색 부상이 있는 것을 확인하였고… 왜 자신이 늦게 교체를 생각했는지에 대한 자책감이 들기 시작했다.
삐삐삑~
[네, 경기 종료됩니다.]
[웨스트 릴링 FC가 승리했지만, 잃은 것이 많은 경기입니다.]
[칼슨 선수, 게리 선수 그리고 샘 선수의 퇴장… 레오 선수와 매튜 선수의 부상이 있던 경기네요.]
[경기는 3:0으로 승리했지만 다음 경기가 걱정되는 웨스트 릴링 FC입니다.]
* * *
경기 다음 날.
“매튜는… 일단 내일 수술에 들어가겠습니다. 그리고 대략 다섯 달 정도의 부상 회복 기간이 필요합니다.”
팀 닥터의 말에 긴급회의에 참석한 운영진은 다 같이 아쉬움을 금치 못하였다.
특히, 대칸은 고개를 푹 숙이고서는 자책감을 더 심하게 느꼈다. 붉은색 부상을 확인했기 때문에… 예상은 했지만 너무나 안타까운 진단이었다.
“하… 그럼… 매튜에게 이번 시즌은?”
김종일 수석 코치의 물음에 팀 닥터는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다.
“절대로 없습니다. 사실상 선수 생활을 걱정해야 하는 시점입니다.”
잔인하지만 냉정하게 현실을 이야기하는 팀 닥터였다.
회의를 마치고 대칸은 심각하게 자책감을 느낀다. 그리고 이런 대칸의 심정을 아는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리를 피해주었지만 김종일 수석 코치만 대칸에게 다가와서 말해주었다.
“감독님, 매튜의 부상… 그건 감독님의 책임만이 아닙니다. 전반전을 마치고… 교체하려던 것을 막은 저에게도 책임이 있고, 조용히 보고만 있던 팀 닥터분도 자책을 하더군요. 매튜의 부상은 모든 코칭스태프의 책임입니다.”
“하지만… 만약 제가 후반전에 교체만 빨리 해주었다면.”
대칸의 말에 김종일 코치는 여전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축구 선수에게 부상은 불행한 운명입니다. 감독님이 막아주었다면 고마운 일이지만… 못 막아주었다고 감독을 탓할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게다가 선수 본인이 뛰겠다고 강력하게 주장한 일입니다.”
김종일 코치는 계속해서 대칸을 위로해 주었지만 대칸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응어리가 남아있었다.
그날 밤.
“아… 아… 아~”
대칸은 집에서 술에 잔뜩 취한 상태로 해롱거리고 있었다.
“형님!”
그리고 오늘 대칸이 걱정되었던 데이비드가 마침 집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대칸은 데이비드를 보면서 술주정을 부렸다.
“내가 잘못했어! 내가 실수한 거라고! 매튜가 다친 것은 나 때문이라고!!”
“형님! 그게 무슨 형님 잘못입니까! 경기를 뛰면서 부상을 당하는 것은 선수들도 알고 있는 일이에요. 그리고 다들 각오하고 있는 일입니다.”
데이비드의 위로… 하지만 대칸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가진 능력이라면! 조금만 더 조심했다면! 분명 방지할 수 있었을 거야!”
“형님… 20년 넘게 선수 생활을 했던 매튜 코치에게 운이 없었던 것뿐입니다.”
“그래도! 그래도!! 내가 조금만 더 잘했다면!!”
대칸은 한참을 더 소리 지르면서 자신에 대한 화를 표출하였다.
일주일 뒤.
“오 감독님?”
매튜가 입원한 병실 문을 열고 대칸이 들어오자, 그는 환한 얼굴로 반겨주었다.
“감독님, 커피 한잔하실래요?”
누워있는 매튜가 옆에 놓인 커피 캔을 건네자, 대칸은 거절을 하였다.
“어제 경기 간신히 이겼던데요? 중위권 팀을 상대로 제가 없다고 너무 표 나는 것 아닙니까? 감독님. 하하하.”
매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화를 건네었고, 대칸은 미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서는 말했다.
“미안해요.”
“네? 뭐가 말입니까?”
“매튜가 아무리 고집부렸어도 하프타임에 교체를 했어야 했는데… 그게 아니라면 딜런을 교체할 때라도 매튜 선수를 교체했어야 했는데…….”
대칸의 후회하는 모습에 매튜는 오히려 웃으면서 말했다.
“아닙니다. 감독님… 오히려 하프타임에 교체 안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독님의 권위를 무시하고 고집부린… 제 의견을 존중해 주셔서 고맙고요.”
“…….”
“어차피 이번 시즌이 제 마지막 시즌이었습니다. 생각보다 은퇴가 빠르긴 했지만 제가 원하던 대로 하다가 당한 것이라, 할 말도 없네요.”
“매튜…….”
“부상 달고 뛰는 것도 지긋지긋합니다. 이제 편하게 앉아서 코치나 하려고요.”
매튜는 대칸에게 먼저 악수를 권하면서 말했다.
“앞으로 전담 코치로 잘 부탁드립니다, 감독님.”
대칸은 악수를 하면서 말했다.
“매튜 코치님, 제가… 언젠가 이 빚은 꼭 갚아드릴게요.”
“뭐… 사실 빚이랄 것은 없지만 그래도 챙겨주신다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매튜는 여전히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면서 대칸과 악수를 나누었다.
다시 일주일 뒤, 웨스트 릴링 FC의 훈련장.
“똑바로 뛰라고, 똑바로!”
“대니얼 라인 컨트롤 제대로 하고!”
“피터, 너는 앞으로 센터백 주전이야! 여태까지처럼 느슨하게 플레이해서는 안 된다고!”
매튜는 훈련장에 목발을 짚고 나왔다. 팀 닥터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걱정했지만 매튜는 어차피 입으로 지시하는 거라 괜찮다면서 코치로 복귀하였다.
그리고 매튜가 복귀하자, 웨스트 릴링 FC의 선수들의 눈빛이 살아났다. 특히, 센터백인 대니얼과 피터가 활발하게 움직였다.
“다들 제대로 하라고!”
소리 지르는 매튜를 보면서 선수들은 웃으면서 훈련에 임하였다.
그렇게 매튜는 웨스트 릴링 FC의 수비 코치로 그라운드에 다시 복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