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 프리 시즌 - 1 】
서울 강남의 대형 빌딩 내부 회의실.
양복을 차려입은 사내들의 회의는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22/23시즌, 웨스트 릴링 FC 메인 스폰에 따른 효과 분석 보고입니다.”
발표자가 클릭하자, PPT의 화면이 차례대로 넘어갔다.
“저희 홍보 3팀에서는 작년 6월에 웨스트 릴링 FC와 22/23시즌 동안 메인 스폰서 계약을 체결하였습니다. 그래서 웨스트 릴링 FC가 영향을 준 비X고의 인지도 및 언급 변화에 대해서 분석하였습니다.”
잘 꾸며진 연간 추이 변화 그래프가 화면에 나왔다.
“기존의 분석 방법인 이미지 개선, 홍보 여부는 우리 기업 소속 연구소를 통해 분석 보고를 받았으며, 추가적으로 인터넷 반응을 구체적으로 알기 위해 소셜 빅데이터를 활용하여 우리 브랜드의 홍보 효과를 분석하였습니다.”
다음 PPT 페이지로 넘어가서, 다각형 그래프의 ‘긍정’ 부분을 가리켰다.
“게다가 우리 브랜드에 대한 SNS 글의 감정도 긍정적인 수치가 많았습니다.”
이번에는 PPT에서 여러 가지 키워드를 보여주면서 설명하였다.
“연관 키워드 분석 결과 ‘맛있다.’, ‘재미있다.’, ‘편의점’, ‘광고 효과’, ‘아이디어’ 등의 우리 브랜드 홍보에 적합한 긍정적인 키워드가 SNS에서 많이 언급되었습니다. 다음으로 홍보 효과는…….”
발표자가 다음 설명으로 넘어가려 하자, 최종 책임자인 홍보부장이 잠시 손을 들어서는 말했다.
“좋아,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거지? 결론으로 바로 가!”
발표자는 빠르게 PPT를 결론 페이지로 이동해서는 말하였다.
“네. 결론은 작년에 2억을 투자했던 메인 스폰 효과는 소셜 빅데이터 분석을 비롯한 이미지 개선, 홍보 여부 분석 보고서로 세 방향으로 나누어서 확인한 결과, 약 5억에 가까운 홍보 효과를 가져왔다고 판단됩니다.”
발표자는 한 박자 쉬고 말하였다.
“웨스트 릴링 FC가 잉글랜드 프로 축구 리그인 리그 2로 승격했기 때문에, 올해는 더욱 좋은 홍보 효과가 기대됩니다. 다년 계약으로 웨스트 릴링 FC와 메인 스폰 계약 갱신을 저희 팀에서는 추진하고자 합니다.”
홍보부장은 잘 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고, 발표자를 비롯한 홍보 3팀에서는 부장의 반응을 기다렸다.
“뭐, 좋아. 솔직히 나는 인터넷 방송이나 SNS의 언급 분석 같은 것은 잘 모르겠지만, 효과가 좋았다는 거지?”
“네. 투자 대비 두 배가 넘는 효과로 분석됩니다.”
“그렇다고 다년 계약까지 필요 있겠어? 내가 축구는 잘 알잖아? 그 흐리멍덩한 감독이 운 좋게 리그 2까지 승격은 했지만, 앞으로 계속 잘할지 못할지 어떻게 알아? 그냥 단년 계약으로 해.”
부장의 말에 발표자 옆에 있던 홍보 3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말하였다.
“하지만 부장님, 만약 웨스트 릴링 FC가 더 상위 리그로 올라가면 스폰 비용은 말도 안 되게 상승합니다. 지금이 저가로 다년 계약이 가능한 절호의 시기입니다.”
“야~ 너는! 내 말 그냥 들어. 단년 계약으로 처리하고 다음 안건 발표해.”
홍보 3팀장은 불만이 가득했지만, 더 이상 언급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홍보부장 입장에서 CX 비X고의 연간 브랜드 홍보 비용만 80억에 가까운 예산이 있었다. 작은 축구 구단 단년 스폰 계약은 적은 금액이라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년 계약은 액수의 규모가 커지기 때문에 부담스러워서 싫었던 것이다.
“형님 이번 시즌에는 CX에서 메인 스폰 비용 4억에 계약 갱신하자고 합니다.”
데이비드는 밝은 얼굴로 웃으면서 대칸에게 자랑하듯이 말했다. 그에 반해 대칸은 노트북으로 보고서를 보면서 시큰둥하게 말했다.
“4억? 너무 적은 거 아냐? 작년에는 우리 팀이 5부 리그 소속이었고, 올해는 프로 리그인 리그 2 소속인데?”
“그래도 작년의 두 배인데요?”
“다른 구단은 얼마나 받는데? 리그 2 소속 팀의 평균 메인 스폰 비용은 얼마야? 게다가 우리는 유니폼만이 아니라 대형 전광판에 광고도 하잖아?”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데이비드의 입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그러자 대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안 되겠다. 우리 구단도 이제는 더 이상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하면 안 돼! 운영 지원 팀을 만들고 기획 팀도 만들어서 체계적으로 스폰도 지원받고 구단을 운영해야지.”
데이비드는 고개를 끄덕이고서는 전화로 아담에게 다른 리그 2 구단에서는 어떤 식으로, 얼마만큼의 금액으로 메인 스폰을 받는지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하였다.
“웨스트 릴링 FC에서 바로 확답을 안 하는데요?”
부하 직원의 말에 홍보 3팀장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대답했다.
“그래… 그럼 그렇지. 고작 4억에 계약하려 하겠어? 그 팀에서도 홍보 효과를 분석했을 건데?”
데이비드가 아무것도 몰라서 알아보려고 미룬 것을 착각한 홍보 3팀이었다.
“그럼? 부장님께 수정 보고 올릴까요?”
“그래. 이번에는 적어도 6억은 필요하다고 올려, 그리고 저번에 홍보 효과 분석한 자료 모조리 붙임 자료로 첨부해서 무조건 계약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네, 팀장님.”
* * *
“어이~ 거기 조심하라고!”
“천천히 올리세요.”
뉴레인 스타디움의 대형 광고판에는 새로운 CX 비X고 광고가 설치되고 있었다. 대칸은 설치되는 모습을 보면서 옆에 있던 아담에게 물었다.
“수석 코치님 우리 메인 스폰 재계약했나 보네요?”
“네. 어제 데이비드가 한국에 가서 계약 기간 1년에 6억으로 사인했다고 연락 왔습니다. 오늘 아침부터 사람들이 와서 광고판을 설치하네요.”
‘대기업의 행동이 빠르기는 빠르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대칸은 구단 운영진도 문제지만, 이제는 구단 운영도 체계적인 방안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2주 전.
김종일 코치가 한국으로 휴가를 떠나기 전에 대칸 감독과 대화를 나누었다.
“감독님.”
“네. 코치님, 둘만 있으니 말 편히 하시죠?”
대칸의 말에 김종일 코치는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편하게 말했다.
“좋아. 내가 한국에 돌아가기 전에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말씀하세요. 코치님.”
김종일 코치는 살짝 고민하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여태까지는 운 좋게 팀을 운영해서 여기까지 왔다는 것은 알지?”
“…….”
“솔직히 에드워드, 라이언, 마크라는 하위 리그에서는 크렉이라 불릴 만한 선수를 세 명이나 데리고 경기했으니, 하부 리그에서는 이기기 쉬웠지. 게임으로 치면 이지 모드에서 플레이했던 거니깐.”
에드워드를 비롯한 공격수들은 하위 리그에서 데리고 있기에는 사기인 것은 맞았다.
“대칸 감독의 선수 보는 눈이 좋은 것은 인정해. 그리고 좋은 선수들을 영입했던 것도 능력이지. 다른 사람들은 운이라고 해도! 어쨌든 선수를 잘 알아보고 영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능력이니깐. 프로 리그까지 승격시킨 능력은 인정한다고. 하지만 경기 운영과 전술 관련해서는 아직도 부족해.”
뭐… 솔직히 대칸 감독이 전술적인 부분과 경기 운영은 코치들에게 맡겼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프로 리그야. 작년과는 다르다고, 마지막 게이츠헤드와의 경기 기억하지? 그 경기처럼 상대 팀에도 우리 팀 선수들과 비슷한 역량의 선수들도 많을 것이며 더 강한 선수들이 있는 팀도 많을 거야.”
대칸의 뼈를 때리는 말… 팩트 폭력을 직접적으로 행사한 김종일 코치였다.
“이제 우리 팀도 정식 프로 팀으로 프로 리그에서 경기하려면 제대로 된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태까지처럼 주먹구구식으로 팀을 운영해서는 안 된다고, 팀별 맞춤형 전력 분석과 전술 수립이 필요해.”
“흠… 하지만.”
대칸의 변명 따위는 듣고 싶지 않다는 듯이 김종일 코치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전술 코치, 골키퍼 코치, 전력 분석 팀, 스카우트 팀, 이 네 가지 부분은 프리 시즌 내에 꼭 채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제까지 아마추어처럼 어설픈 정보를 기반으로 동네 축구 하듯이 대충 경기를 할 수는 없잖아.”
“…….”
김종일 코치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웨스트 릴링 FC는 좋은 곳이야. 영국이라고 해서 내가 걱정했던 인종차별도 없고, 오히려 순박하고 좋은 사람들이 많은 구단이고 팀이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처럼 아마추어식으로 운영하면…….”
김종일 코치는 잠시 말을 끌고서는 말했다.
“내가 이 구단에 더 이상 있을 이유가 없겠지.”
김종일 코치는 자신의 말을 대칸에게 충분히 전달하고서는 휴가를 즐기러 한국으로 돌아갔다.
확실히, 프로 구단으로 변경되면서 예전처럼 팀과 구단을 운영할 수는 없었다. 팀을 운영하는 데에도 많은 사람들이 추가로 필요했다. 구단을 운영하는 데에도 많은 조직이 추가로 요구되었다. 지금까지 하던 대로 해서는 안 되었다.
생각에 빠졌던 대칸이 현실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옆에 있던 아담에게 말하였다.
“아담 수석 코치님?”
“네. 감독님.”
“저랑 잠시 대화를 하실까요?”
대칸은 아담과 같이 뉴레인 스타디움으로 잠시 나갔다. 그러고는 텅 빈 관중석에 앉아서는 아담에게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아담 씨에게는 항상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하하… 감독님 뭘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하하하.”
아담은 여전히 담담한 웃음을 지어주었다.
“사실… 제가 아담 씨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뭔가요?”
대칸은 아담에게 이 말을 꺼내는 것이 참 어려웠다.
“우리 구단이 성장하기 위해 희생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희생?”
대칸은 자신이 생각했던 해결책을 아담에게 말하였다.
“구단을 체계적으로 운영하고 팀을 확실하게 서포트할 조직을 새로 구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일을 하기 위해서는 아담 씨가 우리 구단의 단장이 되어주셨으면 합니다.”
아담이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말이 대칸의 입에서 나왔다.
아담도 고민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지금의 자신은 수석 코치의 업무뿐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구단 지원과 관련된 총괄적인 업무를 하고 있음을 잘 알았다.
“거참… 2년 전에는 생각지도 못한 수석 코치를 제안하더니, 이제는 꿈에도 생각도 안 해본 단장직을 제안받네. 하하하.”
대칸은 아담에게 진심 어린 부탁을 더하였다.
“솔직히 단장 자리를 믿고 부탁드릴 분은 아담 씨밖에 없습니다. 부디, 단장으로 오셔서 데이비드와 저를 도와주시고, 구단 운영의 총괄을 맡아주시기 바랍니다.”
대칸의 부탁, 아담은 잠시 고민할 시간이 필요했다.
데이비드가 한국으로 가면서, 에드워드를 데리고 갔기 때문에 아담은 요사이에 부인과 함께 둘이서 오붓하게 저녁을 먹고 있었다.
오늘따라 아담이 유독 고민에 빠진 표정으로 저녁 식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포크로 깨작거리기만 하였다. 그러자 아담의 부인이 먼저 말을 걸었다.
“고민 있으세요?”
“고민…….”
부인의 말에 아담은 자신이 가진 고민을 이야기하였다. 대칸이 자신에게 단장직을 제안하였는데, 본인이 단장직을 잘 수행할지를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아담이 웨스트 릴링 지역 유지로서 많은 인맥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평생 농사만 짓고 살아온 자신이 프로 축구 구단 운영이라는 것을 할 수 있을지가 걱정이었다.
“해보세요.”
“정말? 당신은 그렇게 생각해?”
아담의 고민에 부인은 비교적 쉬운 결정을 내려주었다.
“여보, 해보면서 배우면 돼요. 어차피 전문적인 일은 고용한 전문가들이 할 거예요. 그저 당신이 하던 대로 크게 농사를 짓는다는 생각으로 전문가들을 고용해서 구단 농사를 지어보세요. 당신 사람 부리는 데에는 재주 있잖아요.”
아담이 했던 농사는 일반적인 농사는 아니었다. 고용인만 수십 명이 되는 대규모 농사, 그런 농사를 진행하면서 많은 사람을 다루어 봤던 아담이었다.
아담은 부인의 충고를 듣고서는 단장직을 수행하기로 결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