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 * *
다음 날 아침 단장실.
대칸과 데이비드는 뜨거운 커피를 마시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형님, 솔직히 아무리 생각해 봐도, 대니얼 에이전트의 말에 허점이 없어요. 이번 이적은 우리 구단에는 재정적인 이익을 주고 대니얼에게는 프로 리그 진출과 지금보다 많은 주급, 그리고 에이전트는 수익을 얻는… 모두가 만족하는 그림이 그려지는 가장 이상적인 선수 이적입니다.”
“…….”
“게다가 대니얼 선수와 선수단의 사기를 생각한다면 파는 것이 맞아요.”
데이비드의 말에 대칸은 차분히 입을 열었다.
“지금 보이는 대로라면… 보내주는 것이 맞겠지. 하지만!”
“하지만?”
“이번 이적으로 유일하게 불행해지는 사람은 누굴까? 그건 바로 대니얼이야!”
“네? 그게 무슨 말인가요?”
궁금해하는 데이비드에게 대칸은 차분히 말을 더했다.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이번 이적은 대니얼에게 불행의 신호탄이 될 거야. 그리고 이 카드를 사용해서 대니얼과 대화를 해볼 생각이야.”
데이비드는 아직 이해를 못 했지만, 그래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형님 뜻대로 하시죠.”
오전.
사무실에 대니얼과 그의 에이전트가 같이 방문하였다. 그리고 두 사람은 데레사 여사의 안내를 받아서 단장실로 들어와서 미리 준비하고 있었던 대칸과 마주 보고 앉았다.
“오늘 다시 인사드리네요. 대니얼 선수의 에이전트인 제이미 바커스입니다. 상황은 알고 계실 테니 다른 말씀은 안 드리겠습니다. 이적 여부를 결정하셨나요?”
에이전트의 말에도 대칸은 무시하고 대니얼에게 말했다.
“대니얼, 잠시 단둘이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대니얼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대칸은 에이전트에게 말했다.
“자리를 비켜주시겠어요?”
대칸의 부탁에 에이전트가 밖으로 나가고, 단장실에는 대칸과 대니얼만 남게 되었다.
대칸은 일단 커피를 한 잔 권하면서 물었다.
“지금 우리 팀에서의 생활은 어때?”
“뭐… 좋지. 여긴 좋은 팀이야. 너같이 쿨한 감독에 능력 있는 코치, 그리고 사람 좋은 팀원들까지… 사실 이 정도 팀을 보기가 힘들지.”
대니얼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서는 이어 말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리그 1(3부 리그) 소속 팀으로 이적을 막을 정도는 아니야. 프로에서… 그것도 3부 리그에서 나를 부른다고.”
사실, 대니얼의 마음은 이미 링컨 시티에 가있는 상태나 다름없었다.
“대니얼… 이건 아주 중요한 문제야. 네가 만약 나의 이야기를 듣고도 가겠다면 나는 말리지 않겠어, 하지만 잘 생각해 보라고.”
대칸이 진지하게 말하였다.
“지금 링컨 시티가 너를 원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저 팀의 수비수들이 모두 부상당해서 급하게 너를 영입하려 하는 것이다.”
뭐… 이 정도 레벨의 정보는 대니얼도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좋아, 네가 만약 링컨 시티로 이적을 했다. 그러면 너는 어떻게 될까? 고작 한 달? 5경기? 많으면 6경기 정도 주전으로 경기에서 뛰겠지. 하지만 주전 선수들이 복귀한 그다음은?”
대니얼은 고민하다가 ‘주전 경쟁?’이라고 말했다.
“아니, 어림없지! 부상당한 링컨 시티의 주전 수비수들의 몸값이 얼마인지 알아? 너의 열 배가 넘어! 그런 선수들을 두고 너를 쓴다? 절대 그럴 리가 없지.”
“…….”
“주전 수비수들이 복귀하면 너는 기회도 못 받고 2군으로 밀려날 거야. 25인 로스터에도 못 들 거라고.”
대칸의 말에 대니얼의 표정이 살짝 바뀌었다. 리그 1인 링컨 시티로 간다는 생각만 했지… 대칸이 말한, 이후에 경쟁도 못 할지도 모른다는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2군에서 이번 시즌을 보낸 다음에 팔려가거나 방출되겠지.”
“…….”
대니얼의 입장에서는 정말 생각도 하기 싫은 미래였다.
“게다가 링컨 시티는 지금 리그 1에서 강등권인 팀이야. 아니, 솔직히 지금 최하위라서 강등이 예정되어 있는 팀이지. 그 팀에서 반년만 있으면… 리그 2로 내려오게 될 거야.”
이 사실도 대니얼이 충분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우리 웨스트 릴링 FC도 리그 2로 승격하겠지……. 그러면? 같은 레벨이지?”
물론, 가정이 있긴 했다. 링컨 시티가 강등되는 것은 높은 확률의 가정, 그리고 웨스트 릴링 FC가 승격하는 것은 대니얼 자신이 남는다면 높은 확률의 가정.
2단계 차이의 팀이었지만 대칸의 가정대로라면 같은 레벨의 팀이 되어버리는 링컨 시티였다.
대칸은 대니얼의 표정에서 살짝 고민하는 것을 느끼고서는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였다.
“대니얼, 링컨 시티에서 제안한 계약금과 주급은 얼마 정도야?”
대니얼은 순순히 대칸에게 말을 해주었다.
“계약금만 6천만 원(4.5만 유로)을 약속하고 주급은 리그 수준에 맞춰서 협상 테이블에서 이야기를 하자고 했어.”
역시, 대칸이 예상한 레벨이었다.
“아마, 에이전트가 협의했기 때문이겠지. 에이전트의 입장에서 너의 계약금이 중요하지… 주급이 중요하겠어? 아마 협상 테이블에서는 계약금을 많이 줬으니 주급은 적당히 하자고 말하겠지. 그리고 에이전트도 동의할 것이고.”
에이전트의 수수료는 계약금에서 일부 비율로 받았기 때문에 대니얼도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네가 이적하지 않는다면 지금 당장 주급을 올리는 재계약을 추진하겠어. 물론 계약금은 없지만 계약 기간은 기존과 동일하게!”
에이전트에게는 수익이 없겠지만… 대니얼에게만 돈을 더 주겠다는 대칸의 제안이었다.
“대니얼, 지금 내가 여기저기에서 확인하고 네가 말한 정보를 에이전트가 몰랐을 것 같아? 그 녀석들이 더 잘 알았겠지. 하지만 당장의 이득만 생각하고 너를 현혹시킨 거라고. 너를 구렁텅이로 넣으려던 에이전트에게 엿을 먹이자.”
대칸의 말에 대니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리고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 사실 나도 에이전트가 맘에 안 들긴 해.”
“그렇지.”
대칸과 대니얼은 서로 마주 보면서 살짝 웃었다.
대니얼은 잠시 고민을 하다가 말했다.
“주급 재계약에 승격 보너스, 그리고 출전 수당도 올려줘.”
“…에?”
“싫어?”
대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 정도 조건으로 대니얼을 붙잡는 것도 감지덕지였다. 그리고 대니얼이 추가로 말했다.
“아, 추가로 이번 시즌 승격 실패하면 위로금도 지불해 줘. 아주 거액으로!”
“그 정도는 당연하지. 그리고 네가 있는데 우리 팀이 승격을 못 하겠냐?”
대니얼과의 세부적인 내용의 대화를 마친 대칸은 문을 열고 밖에 있던 에이전트에게 들어오라는 말을 하였다.
그러자, 대니얼이 자신의 에이전트에게 말하였다.
“아, 제이미 씨 당신은 안 들어오셔도 됩니다.”
그리고 추가로 이유를 말하였다.
“지금부터 당신은 제 에이전트가 아니까요. 오늘부로 당신은 해고입니다.”
“네?”
당황하는 에이전트에게 대니얼은 다시 ‘해고!’라고 외치고서는 뒤돌아섰고, 에이전트는 이유를 물어보았지만 대니얼은 ‘당신 양심에 물어보라고.’라고 말하며 에이전트를 해고했다.
데이비드와 대칸은 바로 대니얼과 재계약을 진행하였다.
“흐음…….”
계약 기간은 그대로인데… 생각보다 많이 높아진 주급에 출전 수당… 그리고 승격 보너스까지…….
많은 금액의 지출이 예상되었지만 대칸과 데이비드는 대니얼을 지켰다는 마음에 싱글벙글 웃고 있었고, 대니얼의 표정도 밝았다.
“자, 재계약이 끝났네요. 대니얼 씨, 웨스트 릴링 FC의 수비를 잘 부탁합니다.”
재계약을 마친 데이비드가 대니얼에게 악수를 청하였고, 대니얼도 만족스럽게 악수를 하였다.
* * *
한 달 뒤.
시즌 33차전.
“야! 제대로 막으라고! 똑바로 해!”
대니얼이 괴성을 외치면서 다른 선수들을 지적한다. 그리고 수비 지역의 선수들은 대니얼의 말을 그대로 들었다.
“패스!”
윙백인 칼슨이 가로챈 공을 대니얼에게 패스하였다. 그러자 대니얼은 전방에 뛰어가는 라이언을 보고서는 공을 찼다.
뻥!
길게 날아간 공은 정확하게 오프사이드 트랩을 뚫고 들어가는 라이언의 앞에 떨어졌고, 라이언은 단 한 번의 망설임도 없이 페널티 에어라인에서 슛을 때렸다.
철렁!
“와~”
라이언의 골이 터지자, 뉴레인 스타디움의 모든 관중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라이언은 자신에게 좋은 패스를 해준 대니얼에게 달려와서는 그의 품에 안기는 세리머니를 하였다. 그리고 다른 선수들도 두 사람에게 달려와서는 골을 축하하였다.
재계약 이후에 대니얼은 평상시대로 돌아왔다. 아니, 예전보다 더욱 좋은 플레이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런 대니얼을 중심으로 웨스트 릴링 FC의 안정감은 더욱 굳건해졌다.
시즌 33차전도 웨스트 릴링 FC의 승리로 경기를 마쳤다. 그리고 뉴레인 스타디움의 홈팀 라커룸에 대니얼이 지친 표정으로 쉬고 있었다.
마침 대칸이 라커룸으로 들어왔다.
“헤이~ 브로. 오늘 경기도 멋졌어!”
두 사람은 주먹을 맞대면서 자축하였고, 오늘 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던 대니얼의 표정에는 생기가 가득했다.
“아~ 대니얼, 저번 겨울 이적 시장 기간에 내가 링컨 시티로 가지 말라고 했던 말 기억하지?”
“…….”
대칸의 약간 짓궂게 웃는 모습에 대니얼은 할 말이 없었다.
“너 대신에 링컨 시티로 이적한 수비수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려줄까?”
“알아… 안다고, 나도 계속 확인했거든.”
대칸이 말했던 대로… 자신을 대신해서 링컨 시티로 이적한 수비수는 4경기 주전으로 뛴 다음에 주전 수비수가 복귀하자마자 바로 2군으로 이동하였다.
그리고 링컨 시티의 현재 순위는 여전히 최하위…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리그 2로의 강등을 피하기가 힘들었다.
대칸은 대니얼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너의 선수 커리어가 꼬이는 것을 내가 막아준 거야. 넌 나를 평생의 은인으로 기억하라고. 응? 알겠지?”
대니얼은 머쓱해하면서도 ‘잘해보자!’라고 말을 하고서는 그냥 넘기려고 하였다. 그러자 대칸이 집요하게 말했다.
“야, 너 기억하지? 술에 취해서 전화해서는 ‘너와의 의리 때문에 리그 1을 포기하고 남았다.’, ‘만약 네 말대로 안 되면 알지!’, ‘승격 못 하면 죽여버린다!’라고 술주정이나 하고… 쯧쯧.”
기억하고 있던 대니얼은 살짝 붉어진 얼굴로 변명을 하였다.
“야… 그건… 그냥 술에 취해서.”
“뭐? 술 취해서 말했다고 용서해 달라고? 뭐… 내 고국에는 술에 취하면 죄를 감면해 주는 경우가 있지만 영국은 아니잖아?”
대칸의 말에 대니얼은 그저… ‘알겠다. 알겠어… 고맙다. 그리고 더 잘해보자.’라고 계속 말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에.
“하지만 아직 하나는 남아있네.”
“뭐가? 남았어?”
“승격.”
“…….”
“우리 팀… 웨스트 릴링 FC는 아직 승격하지는 않았잖아. 그러니… 승격부터 하고 나머지 이야기는 하자고, 그때 가서 나를 더 놀리든 말든 해.”
프로 리그로 올라가려는 집념이 담긴 대니얼의 모습에 대칸은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