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특성을 받았지만 적당히 살고 싶다-293화 (293/293)

[외전 6-별의 기록]

모든 고난과 역경을 넘어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라는 결말이 지어져도 사람은 결국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생(生)과 사(死)의 균형과 운명만큼은 필멸자의 것이었고, 그것을 피할 수 있는 존재는 성좌가 아닌 이상에야 불가능했다.

그리고 30대에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난 유성원 헌터, 향년 119세. 수많은 아이들과 손주들, 그리고 그를 따르던 기사들과 각 나라의 수장들이 보는 가운데서 고통 없이 잠이 들듯 숨을 거둔다.

누구에게 물어봐도 두말할 거 없이 행복한 삶이라고 할 수 있는 결말을 맞이한 유성원은 슬퍼하지 말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그렇게 영면(永眠)에 들어가게 된다.

…….

…….

…….

…….

…….

“음? …어라? 나 죽었을 텐데? 여긴 어디지? 천국이라기엔 삭막하고, 지옥이라기엔 평화로운데……. 게다가 이 피부 상태랑 보면… 젊어졌어?”

영면에서 눈을 뜬 유성원은 어리둥절해하면서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주변의 풍경이라곤 온통 새하얀 것으로 둘러싸여 있는 장소였고, 자신이 죽은 것을 인지한 그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일단은 기다리기로 했다.

분명 무언가가 나올 것이라는 걸 예상했기 때문이다.

[드디어 왔군요, 나의 사도.]

“…정말 알기 쉬운 모습으로 오셨네요.”

그리고 눈앞에 거대한 지구본 같은 것이 나타나더니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더 말할 필요 없이 그것이 바로 ‘지구’… 즉, ‘별’의 의지였던 것이다.

유성원을 각성시키고, 그에게 이상한 기사도 같은 걸 부여해서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꾼 원흉이다.

“아무튼… 덕분에 즐겁고 다이내믹하게 인생을 즐겼습니다만, 그거 축하해 주러 부른 건 아니신 것 같은데… 아, 맞다. 그리고 만나면 꼭 묻고 싶은 게 있었는데… 대체 왜 기사도입니까? 그거 좀 꼭 알고 싶었네요. 죽는 순간까지 궁금했거든요.”

[‘기사도’는 인류가 스스로를 통제하고 문명을 이루기 위해 만든 ‘제약’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없었다면 인류는 그저 야만적인 생물로 폭군과 무법자들로 가득해서 이토록 발전하지 못했을 거니까요.]

“아… 그래서?”

[인류를 멸망시킨다면 발전시킨 그 요소를 통해서 멸망시키려고 했습니다. 나의 사도여, 초기엔 잘 움직여 줬지만 결국 내 의도를 알고도 배신했죠. 당신 때문에 기생충 같은 ‘인류’는 계속해서 번영하고 또 생명을 연장하게 되었으니 말이죠.]

“나름 지구에서 자연 진화해서 문명을 키운 생명체인데, 기생충이라고 하는 건 좀… 이해를 못하는 건 아니지만요. 아무튼 해 둘 수 있는 건 하고 죽었습니다. 저는~”

[그래 봐야 고작 수 세기, 아니면 수년, 차라리 지금 한 번 싹 밀어서 다시 잿더미로 만들었어야 했는데, 앞으로 미래에 일어날 일을 전혀 생각 못한 겁니까?]

“고작 100년… 아니, 그거보다 조금 더 살긴 했는데, 아무튼 전 최선을 다했습니다. 별이 생명을 유지하도록 말이죠. 남은 건 뒷사람들에게 맡겨야지요.”

결국 유성원이 아무리 ‘별의 수호 기사’니 사도니 해도 그저 한 사람의 인간일 뿐이다.

세계의 지배자가 되든 뭘 하든 단 한순간, 한 세월에 새겨진 작은 발자취와 기록만 남기고 떠난 자다.

아무리 ‘각성’시켜 줬다고 해도 필멸자의 한계 이상을 바라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 분명했다.

[틀린 말도 아니고, 당신은 사도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계획을 방해한 당신이 이대로 죽음의 망각으로 가게 두고 싶지 않습니다.]

“예?”

[나는 당신이 선택하고 이룬 결과와 인류, 그리고 ‘별’의 종말을 끝까지 지켜보게 하고 싶습니다. 유성원, 당신을 ‘별의 기록’으로 남겨서 말이죠.]

“네? 잠시만요? 그거 그냥 제가 아니꼽다는 거 아닙니까?”

자기 의도와 일을 엎어 버린 죗값을 치르라는 건지 아니면 그냥 심술인지, 지구의 의지가 가진 의도가 무엇인지 몰랐지만 졸지에 이대로 죽음 뒤를 갑자기 저당잡히게 되자 반박하는 그였다.

[다수의 ‘성좌’의 게임판을 엎어 버린 당신의 업적이라면 충분히 ‘별의 기록’에 남는 데 이견도 없겠죠. 해방되는 건 이 ‘별’에서 인류가 절멸하는 그 순간입니다.]

“아니, 이건 횡포나 다름없…….”

‘지구’의 선고와 함께 유성원의 시야는 다시 사라졌고, 미중유의 어둠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

…….

…….

“우와아아아아아악!”

‘…여긴 어디지?’

의식 없이 지내던 어느 날, 갑자기 기묘한 목소리가 들려오면서 의식이 돌아오고 눈이 떠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자신의 몸은 한참 싸울 때 입었던 금빛 신수의 갑옷을 입고 손엔 티탄의 말뚝이 들려진 채로 서 있었는데, 눈앞에는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흑인 아이가 자신을 바라보며 놀라고 있는 중이었다.

“뭐, 뭐야, 이거? 이름이… 뭐라고 읽는 거지? 이유… 서우언? 이라고 읽는 건가? 세상에 무슨… 이런 능력치가…….”

‘…풍경도 많이 낯선 곳이고… 으으음…….’

그리고 그 아이는 자신의 앞에 있는 상태창을 보면서 유성원의 이름을 읽으려고 하지만 낯선 것 같았다.

그렇게 잠깐의 소요 상태 동안 유성원은 계속 주변을 살펴보면서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하려고 했고, 자신이 어떻게 된 건지 의식이 잠기기 전에 ‘지구’에게 들었던 말과 조합해서 완전히 알아채게 되었다.

‘일단 여기가 어딘지 잘 모르겠지만… 결국은 나도 가울프, 크록베인, 섬멸, 아칼론, 유청 등등… 같은 입장이 되었다는 거군. 보자, 도시는… 뭔가 엄청 SF적인데? 미래에 온 건가?’

자신과 소년이 있는 장소는 빌딩의 옥상이었고, 주변엔 거대한 고층 빌딩들과 날아다니는 자동차들, 그리고 곳곳에 모노레일이 가득한 모습이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에 도착하면 마주할 법한 광경을 보면서 감탄하던 유성원은 자신을 부르는 소환자의 목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저, 저기… 서우언?”

‘으으음… 여기가 어딘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뭘 해야 할지, 지구는 왜 날 이렇게 만든 건지. 생각할 건 엄청 많지만… 일단은!’

“뭐가… 잘못된 건가?”

“잘 불렀다! 날 부른 소환자여! 내 이름은 유성원! 별의 수호 기사로서 별을 위협하는 적들과 싸우던 기사! 그래서, 어떻게 어떤 식으로 날 부르게 된 거고? 나에게 바라는 게 뭐지?”

일단은 자기소개부터 한 다음 이 소환자와 정보 공유를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는 그였다.

대화는 이 각성 시스템에 의해 자동으로 통하게 되는 건지 아주 자연스럽게 대화를 할 수 있었고, 소년은 자신을 ‘템버’라고 소개하면서 지금 이곳에 대해 설명했다.

“여, 여기는 ‘킬리만자로 시티’야. 나, 나는 얼마 전에 각성해서 ‘헌터 아카데미’에 입학해서… 퀘스트를 수행하라고 해서 얻은 보상으로 당신을 소환했어.”

‘…아, 과연 나랑 유사한 방식인가? 잠깐, 그… 킬리만자로 시티면… 아, 여긴 아프리카군. 그럼 지구라는 건데?’

“아, 아무튼 그럼 내가 너의 소환자이니까… 그… 대장 맞는 거지?”

“일단은 맞지. 그나저나… 내 이름 혹시 모르나?”

“이유서우원?”

“유성원.”

“모, 몰라. 대부분의 역사는 300년 전의 세계 대전쟁으로 사라진 지 오래라서 당신 같은 이상한 황금 기사에 대한 건 몰라.”

300년 전 세계 대전쟁이라는 말에 유성원은 인상을 찌푸렸다.

대체 한순간 자고 일어난 것 같은 사이에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 ‘지구’가 무슨 상황인 건지 긴가민가했기에 계속해서 물었다.

“세계… 대전쟁? 나도 이 ‘지구’ 출신이라 그런데… 좀 더 자세한 설명을 요구한다. 아, 그래. 지금 연도가 몇 년이지? 대전쟁이 났다곤 해도… 연도까지 잊어버리진 않았을 텐데?”

“그러니까… 2831년인데?”

‘…거기서 300년 전이면… 2500년대… 그러면 내가 죽고 난 이후… 거의 800년이나 지났나? 그런 거치고는 많이 발전한 것 같지 않은 게… 대전쟁 이후 재건했다고 하면 납득이 되는 건가?’

“그나저나 ‘지구’ 출신이라고? 그러면 ‘사라진 역사의 인물’인 거야? 세, 세상에!”

‘…놀라고 싶은 건 나라고…….’

갑작스럽게 주어진 이 상황에 대해서 자세히 모르지만, 유성원은 계속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의 능력과 상황에 대한 체크를 지속했다.

아무래도 자신이 죽고 난 이후 역시 수백 년이 지나고, 결국 인류는 그 본성을 못 이기고 서로 대전쟁을 일으킨 것 같았다.

‘그렇지. 아무리 잘 만든 시스템이라도 수백 년 이상 지나면 부패하거나 이상이 생기거나 누군가 제멋대로 뜯어고칠 테니 말이지.’

“아무튼… 지금은 그 대전쟁 이후 통합됐던 세계는 다시 자국 중심으로 돌아가고, 여러 성좌들이 이 ‘별’에 또 강림해서 위태로운 상황이라고 했어. 특히 그… 성좌 강철의 벽거수랑 성좌 웃는 죽음의 기사, 성좌 용의 대장장이 같은 성좌들이 이 ‘별’을 멸망시키려 하고 있고, 거기에 저항하는 게… 지금 상황이라고 선생님이…….”

‘아무래도… 역사는 반복되나 보군.’

평화롭고 질서 있는 세계를 만들어도 어느새 인류에게 다시 위기와 혼란이 찾아오게 된다.

그것을 깨달은 동시에 유성원은 이 ‘별’ 지구의 의도를 금방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인류를 멸망시키는 걸 막았으니, 또 그 위기에 떨어뜨려 놓고 망하는 것을 지켜보든가, 아니면 또 막아 볼 테면 막아 보라는 것이었다.

‘게다가 날 해방시키는 조건이… 인류 멸망이라면, 이거 나한테 계속 인류를 위해서 싸우라고 하는 거네.’

해석하고 보니 웃을 수 없는 진실.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 한 계속 싸워야 하는 자신의 운명을 깨달은 유성원은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명백한 보복성 인사 조치, 그리고 거스르면 인류 멸망인 이 선택지 앞에서 이제 완벽히 ‘기사’가 된 유성원이 택할 수 있는 건 단 하나뿐이었다.

“후우~ 그럼 어쩔 수 없지.”

“음? 뭐라고?”

“자, 그럼 어디 가 볼까? 템버 군! 일단 이 시대의 상황과 문화부터 좀 파악해야겠지. 그리고 뭘 해야 할지, 어떻게 하면 이 ‘별’과 ‘인류’를 구할지 차차 생각해 보자고!”

“아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나는 아직 일개 아카데미 학생이라고! 별이니 인류니 구하는 건 아직 생각도 안 하고 있는데… 자, 잠깐! 멋대로 가지 마! 가려면 그 황금 갑옷부터 갈아입으라고!”

외양은 30대로 돌아왔지만 엄연히 100살도 넘은 노친네인 유성원은 상당히 뻔뻔해진 상태로 먼저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갑옷? 아, 근데 이 안에는 아마 맨몸일 텐데? 벗어도 되나? 소환자의 명령이니 벗을 수밖에 없군.”

“아아아악! 버, 벗지 마! 그럼 벗지 말라고! 그, 그럼 일단 빨리 옷 가게부터 가자!”

“좋아. 그러자고~ 그러자고~”

소환자이자 주인인 템버는 당황하면서 그를 따라갔고, 유성원은 또다시 시작된 새로운 모험과 이번 인류의 위기는 어떻게 헤쳐 나갈지에 대해 생각하며 템버에게 계속 이 세상에 대해 물으면서 그가 안내하는 가게를 향해 순순히 걸어갔다.

‘이게 그 녀석들이 보던 풍경인가?’

“아악! 황금 갑옷! 너무 눈에 띄잖아, 진짜! 내가 다 쪽팔려!”

역시 황금 갑옷은 너무나 튀는 건지 주변의 시선이 집중되자 투덜거리면서 당혹스러워하는 템버였다.

반면 유성원은 이제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져서 태연했고, 역으로 당황해하는 템버를 보며 마치 예전에 처음 각성자가 되었을 때의 자신이 생각나는지 피식 웃으면서 중얼거렸다.

“이거 유청이랑 애들이 봤으면 엄청 웃었겠는데…….”

“부르셨습니까? 폐하. 그리고… 왠지 젊어지셨군요.”

“…어? 너? 하하… 하하하하! 그렇지. 아! 그랬었지! 하하하핫! 하하하하핫!”

이름을 말하자마자 뒤에서 나타난 유청을 보며 유성원은 무언가 눈치채고는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별의 기록에 등록된 유성원의 존재는 그 혼자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가지게 된 스킬과 능력에서 엮인 ‘기사’들도 모두 포함된 것이었다.

그것을 깨달은 이상 이제 몇 번이든 인류의 위기가 오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자신 혼자선 못할지 몰라도, 과거 멸망급 성좌와도 같이 싸운 동료들이 있으니 말이다.

외전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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