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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특성을 받았지만 적당히 살고 싶다-292화 (292/293)

[외전 5-기사들의 휴가 (4)]

신중국, 중국 공산당 국경.

세상은 바뀌었지만, 아직 분쟁 지역은 존재하고 있었다.

유럽과 아프리카의 상처는 이제 막 아물기 시작한 것이라 여전히 위험했고, 갈라져 버린 중국과 중국 공산당 정부는 여전히 분쟁 중이었다.

중국 공산당은 무조건 다시 하나로 합쳐야 한다고 하지만 신중국은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지루하군.]

천군대장군. 성좌 66천마의 수하이자 일본을 호령하던 자였지만 지금은 유성원의 휘하에서 그의 지시에 따라 각종 전선을 돌아다니며 싸우는 자.

뛰어난 전투력과 사령 군단 특유의 보급이 필요하지 않다는 점 덕분에 그들은 주로 가장 격렬하고 지루한 전장에 투입돼서 전선을 지키는 역할을 맡았다.

이번에도 신중국과 중국 공산당의 분쟁을 막기 위해서 이곳 국경 지대에 성을 소환해서 대기하는데, 천군대장군은 너무나 오랜 시간 이 국경을 지키고 있어서 불만이 쌓이고 있었다.

[싸우고 싶습니다, 주군.]

“…뭔가 비상사태가 일어난 줄 알았는데… 보고가 그거?”

[우린 싸우기 위해 존재합니다.]

“중국 공산당 애들 수작… 안 부려?”

[한 8천 명쯤 죽이고 나서부턴 더 이상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전투가 일어나는 전장으로 이동을 부탁합니다.]

천군대장군은 정중히 부탁을 했지만, 유성원은 난감해서 어쩔 줄 몰랐다.

이제야 세계는 평화 분위기에 딱 접어들고 각지에서 온화해져 가는 판국이었다. 그중 천군대장군을 보낸 중국 공산당 쪽이 그나마 가장 전쟁 가능성이 높은 전장이었는데, 요새는 다시 조용해지니 천군대장군이 할 일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진언하러 온 거야?”

[예, 폐하. 속히 전쟁할 수 있는 곳으로 부탁드립니다.]

“으으음… 잠시만…….”

유성원은 고민에 빠졌다.

전투와 전쟁을 원하는 천군대장군의 부탁은 납득이 갈 만한 것이었지만, 아무리 세계를 뒤져 봐도 싸울 곳을 찾는 게 쉽지 않았다.

그 난리를 부리던 중동 분쟁 지역이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지역 정도가 후보였지만 여기에 투입할 명분도 없었고, 그나마 중국 공산당 전선이 한계였던 것이다.

‘태평양이 훤히 비게 되니까… 이런 문제가 생기네.’

[싸울 곳이 없습니까?]

“아니, 그건 아니야. 다만 조금 사전 공작이 필요해서 그런데… 그러니까… 휴가라도 다녀오지 않을래?”

[휴가 말입니까? 저희에겐 불필요합니다만?]

“아니, 그러지 말고… 조금만 시간을 줘. 이젠 갑자기 전쟁을 일으킬 수 없는 입장이라고. 그러니까… 한 일주일만 푹 쉬어. 전선 말고 도시라든가? 여기저기 둘러보면서 말이지.”

[으으음, 시간이 필요하시다고 하니 알겠습니다.]

그렇게 간신히 천군대장군을 달랜 유성원은 곧바로 어디 전선에 투입할 곳을 찾기 시작했다.

천군대장군은 휴가라는 것을 잘 몰랐지만 아무튼 일주일을 기다리라는 유성원의 말에 평양 사령부과 도시를 둘러보았다.

성좌 66천마의 수하로서 오로지 전투만을 하기 위해 태어난 그에게 휴가라는 개념은 너무나 생소한 것이었다.

[뭘 해야 할지 모르겠군. 음… 가울프 경인가?]

“오오, 이거 보기 힘든 얼굴을 보게 되는군요. 천군대장군 님 아니십니까? 중국 전선은 평안하신지요?”

[역으로 너무 평안해서 문제다. 가울프 경, 그대는 이곳 평화에 잘 적응한 모양이군.]

갑옷 차림에 흉흉한 살기를 띤 천군대장군과 달리 가울프는 갑옷을 벗고 평상복을 입은 채 커피 한 잔을 들고 휴대폰을 보면서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그 또한 나름 심연의 기사인 만큼 자신처럼 전투에 열광하고 적을 쓰러뜨리는 것을 좋아하는 자일 텐데 태연하니, 그것이 묘한 천군대장군이었다.

“평화요? 흠하하핫, 그럴 리가요. 그저 ‘사냥감’을 물색하는 것뿐입니다.”

[사냥감?]

“예. 크게 보면 평화롭지만 또 세세하게 보면 그렇지 않아서 말이죠. 자, 이거 보시죠.”

[으음?]

가울프가 내민 휴대폰에 나타난 것은 ‘불법 쓰레기 투기 조직 기승’이라는 인터넷 기사였다.

조직폭력배와 스캐빈저들까지 끼어들어서 벌이는 불법적인 사업에 대한 내용이었다.

이로 인해서 환경오염은 물론 땅 주인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히는 등등 많은 문제가 있지만, 경찰과 한국 헌터 협회는 다른 일이 많다면서 차일피일 뒤로 미루고 있었다. 하지만 실상은 딱 봐도 그 스캐빈저 조직이 헌터 협회에 연줄이 있는 것이리라.

[이게… 어떤 일이지?]

“우리 계약자는 현재 위상이 너무나 높은 곳에 있고 관리하는 세력이 너무 큰 나머지 아래를 잘 살피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눈치작전이라고 한들 헌터 협회와 한국 정부의 역량에는 한계가 있고… 지난 8년간 세계가 평화로이 유지된 사이에 또다시 이런 버러지들이 설치게 된 것이죠.”

[그래서?]

“그래서~ 취미 생활 겸 벌레 잡이를 하는 거죠. 이거 의외로 재미있습니다. 게다가 이 벌레들은 절대 없어지지 않고 말이죠. 정의를 원하는 자는 언제 어디서든 있는 거 아시잖습니까? 아무튼 저는 사냥감이 정해졌으니 오늘 밤 떠날 생각입니다. 이거 즐겁겠군요.”

평화로운 것처럼 보여도 그늘 속에선 여전히 독버섯과 부패한 쓰레기들이 자라고 있었고, 그것을 처리하는 일을 취미로 삼은 가울프였다.

천군대장군은 가울프의 일이 재미있어 보인다고 생각했는지 곧바로 그에게 제안했다.

[으음, 괜찮다면 그 전장, 나도 끼어도 될까?]

“…중국 전선은 어쩌시고 말입니까?”

[지금 마침 난 휴가를 받은 상황이다. 중국 전선은 조용하고 말이지.]

“허어… 그러면 거부할 이유가 없지요. 하하핫. 그럼 먼저 준비하러 가지요.”

천군대장군은 씨익 웃으면서 일어나는 가울프를 따라서 어디론가 향했다.

그가 원하던 대규모 싸움은 없지만, 세상은 여전히 아슬아슬한 위기 속에 있는 만큼 들여다보면 결국 또 싸울 곳으로 넘쳐 난다.

그렇게 가울프와 함께 천군대장군은 졸지에 다크 히어로인 양 법으로 처벌되지 않는 악(惡)을 악(惡)으로 부수는 취미 생활을 비밀리에 하러 가기로 하였다.

***

그날 밤, 강원도 모 산간.

누구는 세상을 평화롭고 깨끗하게 만들려고 애쓰는 한편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의 생명과 재산을 빼앗는 것은 물론 세상을 더럽히려고 하는 자들도 넘쳐흐르고 있었다.

‘헌터 협회’는 지난 8년간 여러 가지 노력을 했지만 결국 길드들의 반발과 충돌 과정에서 어둠 속에 수많은 스캐빈저들을 낳는 부작용이 생겼고, 이들은 여러 폭력 조직이나 ‘스캐빈저’ 그룹을 만들어서 갖가지 범죄 행위를 하며 살고 있었다.

“자자, 작업 빨리해. 얼른 버리고 국밥이나 먹으러 가자.”

“예, 인식이 행님. 하지만 이거 형님 능력으로 하면 더 빠르지 않습니까?”

“병신아, 여기서 마력 다 쓰다가 경쟁 조직에게 습격받으면 어쩌려고? 팍씨!”

“헤헤헤, 농담입니다. 행님.”

부하 조직원의 농담을 받아 주면서 담배를 피우는 이 남자, 40대 초반의 배인식.

얼굴 절반에 화상 자국이 크게 있는 그는 과거 B급 헌터였지만 지금은 스캐빈저가 된 자였다.

‘헌터 협회’의 길드 제압 과정에서 반항하다가 치명상을 입었지만 다행히 지금 조직에게 구해졌고, 강제로 스캐빈저로 가입되어서 현재는 조직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오라이~ 오라이~ 얀마! 깊이 들어가지 말고 대강 버려! 이건 속도가 생명이여!”

“후우우~ 편하게 돈 버니 좋긴 하지만, 냄새나는 건 못 참겠군.”

이 쓰레기들은 각 도시에서 나온 것들로 본래는 처리 업체로 가서 적절한 과정을 거쳐서 처리되어야 했지만, 처리 비용을 아끼고자 이들에게 돈을 주고서 불법 투기를 맡긴 것이었다.

처리 업체는 나라에서 보조금도 받고, 또 처리 비용도 기본적으로 받는데 이것을 스캐빈저들에게 더 싸게 맡겨서 불법으로 처리하면 엄청난 이문을 남길 수 있었다.

쓰레기는 인류가 살아 있는 이상 계속 나오기 때문에 나름 짭짤한 사업으로, 다른 스캐빈저 조직들도 넘봐서 경쟁자가 많은 사업이었다.

‘일단 법적 처분도 오래 걸리고, 경찰이나 다른 헌터 협회 놈들은 협박 조금만 하면 수사를 제대로 안 하니 말이지.’

지금 이 시간에도 세계엔 야생 던전이 나타나고 있고, 여러 성좌들의 공격과 세계의 분쟁 경계 때문에 이런 일개 폭력 조직 소탕에 헌터들을 투입할 여력이 없는 현실인 덕분에 숨어서 알차게 꿀 빠는 중인 배인식이었다.

“행님, 작업 이제 한 10분 정도만 지나면 끝납니다.”

“그래? 그럼 우리 먼저 갈까? 참 쉽다, 쉬워~ 쓰레기 좀 버리고 억대 돈이 들어온다니 정말 개꿀 사업이 아닐 수가… 헉!”

“왜, 왜 그러십니까? 행님?”

일하는 것을 잘 지켜보던 둘이었는데, 갑자기 배인식이 호흡 곤란을 호소하며 그대로 가슴을 움켜쥐고 주저앉았다.

배인식은 가슴을 옥죄는 고통에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 주변을 다급히 살펴보았다.

이건 그의 몸에 이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그가 감당할 수 없는 압도적 존재의 살기를 느낀 것이었다.

‘뭐지, 이건? A급 던전의 헬비스트 레이드를 갔을 때도 이 정도 살기는 아, 아니었는데? 아무튼 위험하다. 이건… 이건 너무나 위험해. 어서 도망을 쳐야…….’

[쓰레기에게 딱 맞는 무덤 자리로군.]

“…히익! 해, 행님! 저, 저거 뭡니까?”

사아아아…….

그리고 그들의 앞에 검은 연기와 함께 검은 갑옷을 입은 기사가 붉은 안광을 번뜩이며 나타났다.

배인식은 눈앞의 기사가 살기의 주인임을 인식하고 덜덜 떨면서 일단 그의 정체를 알아내려고 애썼지만, 마법이든 뭐든 그의 스킬에 전혀 감지가 되지 않고 있었다.

“당신은… 대체 뭡니까?”

[그냥 취미로 쓰레기 청소부를 하는 자다.]

“취미… 로?”

[이미 너희에 대한 정보는 모두 알아낸 지 오래다. 무기를 들어라. 최소한 헌터로서 죽게 해 주지.]

‘젠장… 누가 죽을까 보냐?’

배인식은 척 봐도 자신보다 압도적으로 강한 상대를 확인하고는 그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몸을 돌려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헌터이자 스캐빈저들의 생존 원칙인 ‘무모한 싸움, 이길 수 없는 상대에게 도전하지 마라.’를 철저히 지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곧바로 인벤토리에 손을 넣어서 한 장에 수천만 원 하는 전송 주문이 담긴 스크롤을 꺼낸 다음 그것을 바로 찢으려 했다.

살아만 있으면 다음이 있고, 게다가 다음이 있으면 또 다른 사업으로 돈을 벌면 그만. 전혀 아까워하지 않고 바로 찢으려고 손을 교차하는 순간, 의식이 사라져 버렸다.

“흠, 몰이사냥도 썩 나쁘지 않군요.”

배인식이 스크롤을 찢으려는 순간 어둠 속에서 갑자기 나타난 가울프에 의해 그의 목이 떨어졌고, 스크롤만 찢어진 채로 그의 몸을 순간 이동시켜 버린 것이다.

남은 건 자신이 죽었는지도 모른 채 두 눈을 뜨고 있는 배인식의 머리뿐.

그것을 들고 가울프는 천천히 자신에게 다가오는 검은 기사, 아니 이젠 위장을 풀고 본래의 천군대장군이 된 그를 보며 말했다.

“어떠셨는지요?”

[이게 뭐가 재미있는 건가?]

“사냥의 재미 같은 거죠. 추하게 발버둥 치는 악인을 잡는 사냥. 지혜와 기량을 썩히긴 아깝지 않습니까? 그리고 가장 재미있는 건 우리 계약자에게 들키지 않아야 하는 점이지요.”

[으으음, 잘 모르겠군.]

“더 요약하자면, 이 ‘사냥’은 좀 더 공을 들이면서 하는 것에서 즐거움을 찾는 겁니다. 싸움을 비롯한 여러 공작을 섬세히 하는 걸 말이죠. 시간 때우기론 딱이죠. 예? 안 그렇습니까? 잠시 다른 일로 시간을 보내다 보면 또… 이런 멍청이가 사고를 칠 겁니다. 그때까지 다른 재미를 보는 거지요. 아무튼 가시지요.”

[그러지.]

가울프의 말을 모두 납득한 것은 아니었지만 천군대장군은 일단은 좀 더 그와의 일에 어울리기로 했다.

일단 유성원이 준 일주일의 휴가 기간 동안 딱히 다른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그동안은 이런 거라도 하며 시간을 때워야 했으니 말이다.

***

일주일 뒤, 평양 사령부.

유성원은 천군대장군의 욕구를 들어주기 위해서 끙끙대며 적당히 싸울 만한 분쟁 지역에 대한 명분을 만들고 그곳에 무력을 개입할 방안을 짜내어서 간신히 중동 한 지역의 전장을 수배해 놓았다.

하지만 걱정이 여전히 계속되었는데, 천군대장군과 사령 군단의 능력이라면 이 전장도 금방 질리게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무슨 제물 바치는 것도 아니고… 후우~ 이런 단점이 있다니…….’

[부르셨습니까? 주군.]

“어, 그… 저번에 약속한 거 말인데, 그… 규모가 좀 작은 전장이지만 그래도 마련했거든? 일단은 그곳에서…….”

[배려해 주신 건 감사하지만 이젠 괜찮습니다, 주군.]

“어? 정말?”

[예. 저도 취미 생활이 생겼습니다. 그러니 기존처럼 중국 전선을 맡은 채로 경과가 없을 땐 따로 휴식을 취하겠습니다.]

“취… 미? 어… 어어… 그래, 그래. 그러면 나야… 좋지.”

취미가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적어도 그에게 전쟁터를 구해 줘야 하는 부담이 없어진 만큼 유성원은 안도하면서 그의 취미 생활을 허락했다.

물론 그들의 취미 생활이 ‘다크 히어로’처럼 스캐빈저와 범죄 조직들을 멋대로 쳐 죽이고 다니는 거라는 걸 안 것은 훨씬 나중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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