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3-기사들의 휴가 (2)]
『사랑의 열쇠는 너와 함께하는 그 시간~! 음… 안무는 이렇게였군. 응원단 안무를 새로 짜야 할 것 같은데…….』
중한은 현재 유성원에게 자신이 몰래 촬영한 유청의 영상을 보여 주면서 한숨과 한탄이 섞인 푸념을 하고 있었다.
일단 그 목석같은 인간에게 취미라는 게 생긴 것도 엄청 충격이었지만, 성욕은 하나도 없을 것 같은 인간이 여자 아이돌에 저렇게 심취한 것이 더 큰 충격으로 다가온 중한이었다.
“…폐하, 제가 뭘 잘못한 걸까요? 이것도 저 사람의 계략인 걸까요? 어떻게… 어떻게 세상에, 저런……!”
“어… 으음… 글쎄다. 나도 정말 의외이긴 한데… 개인의 취미에 대해선 뭐라고 하고 싶지 않으니까 말이지. 그나저나 그 유청이… 하하, 아이돌 팬이라니… 놀라울 따름이네. 게다가 얘네, 신인 아이돌이네.”
“이 사람, 그럼 로리콘이었던가요?”
“푸웁! 하하하… 그건 아니지, 아니지. 엄연히 성인인데…….”
중한의 로리콘 경악에 유성원은 손을 저으면서 부정해 주었다.
물론 이미 한번 유청이 보낸 세월을 생각하면 로리콘이라고 해도 부정할 수 없는 나이 차이였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 아이돌의 소녀들은 갓 성인이 된 아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중한의 한탄을 들은 유성원은 내심 호기심이 살짝 생겼고, 몰래 유청의 휴가 날짜에 맞춰서 자신의 외출 일정을 짜기 시작했다.
‘이거 왠지 재미있을 것 같으니 한번 볼까? 중한이랑 같이 조사한다는 명목이면 되겠지.’
“아무튼 폐하, 이게 보통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지 않습니까?”
“아니, 이 정도면 충분히 건전하지. 돈도 엄격하게 월급으로 입금해 둔 것만 사용할 수 있는 만큼 사용하며 굿즈만 사고, 자기 일은 완벽하게 처리하고 난 뒤에 휴가 받아서 저렇게 나가는데… 충분히 정상이야.”
“저, 정상이라고요?”
“어, 정상. 충분히… 납득이 가는 범위지. 뭐, 아내나 여성의 시선으로 보면 기분 나쁠 수 있지만…….”
물론 여성의 시야에선 기묘하게 보일 수 있지만 유성원이 보기엔 아이돌 팬덤 정도야 충분히 정상적인 취미 범위였다.
취미에 돈이 드는 것이야 그 무엇이든 마찬가지였고, 과해서 나쁜 취미란 결국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과 혐오를 가득 담은 중한의 표정을 본 유성원은 이것을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그녀의 오해를 풀어 주려면 손수 유청을 쫓으면서 변호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럴 때 중재를 하는 게 리더의 역할이겠지.’
“폐하?”
“그러면 직접 쫓아가면서 알아보자고! 그날, 보자… 우리도 휴가를 내면 수상해할 테니까 내가 다른 임무로 위장해서 하는 걸로 할게. 그때 가 보자. 문제 될 행동이라면 곧바로 제지할게.”
“그, 그렇게 해 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유청은 적어도 주군에 대한 충성심 하나만큼은 강했기에 문제 될 행동을 하면 유성원이 말릴 수 있을 거라고 믿는 중한이었다.
결국 두 사람은 유청의 휴가에 맞춰서 몰래 그를 추적할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
다음 날, 유청은 이른 새벽 가벼운 옷차림에 커다란 등산 가방을 메고서 곧바로 기지를 떠나 자신의 차량을 타고 시내로 나갔다.
그리고 유성원은 엘드라엔을 탄 채 중한과 함께 높은 하늘에서 그를 추적하면서 행적을 일일이 살펴보고 있었다.
『흐흐흠~ 흐흠~ 너를 사랑해. 우리 함께해~ 언제까지나~ 흐흐흠~ 흠!』
“…유청이 콧노래라니……. 그보다 남편 차에 도청기는 좀 심하지 않나? 하하하.”
“차가 아니라, 그이의 옷입니다. 제 목적은 그저 저 사람의 속셈을 알아내려는 것뿐입니다. 저 이상한 취미가 과연 진심에서 우러나온 건지, 아니면 나를 농락하려는 건지 말이죠.”
‘이미 진심이지 않나? 콧노래를 흥얼대면서 노래를 즐기는데?’
아무리 봐도 그런 걸 확인하는 게 아니라 그냥 질투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유성원이었지만, 입으로 떠들어 댈 만큼 어리석진 않았다.
아무튼 계속해서 그의 뒤를 추격하는데, 도착한 곳은 도심에 있는 어느 대형 음반 판매점이었다.
차에서 내린 유청은 커다란 백팩을 하나 메고 건물로 향했고, 그것을 보며 유성원과 중한은 그의 속셈을 추측해 나갔다.
“음… 또 뭘 사러 온 건가요? 방에 그렇게나 많은데?”
“아니, 잠깐만, 그게 아닌 것 같아. 아직 매장이 열리지 않은 시간인데… 유청 성격상, 귀한 시간을 낭비하진 않을 텐데 말이지. 그리고 그렇게 많이 산 팬이라면 충분히 예구나 택배로 물건을 구매했을 거야.”
“그럼 다른 목적이 있다는 건가요? 저 가게에서 다른 무엇을 한다는 거죠?”
“글쎄… 나도 잘 모르겠는데? 뭘 하려는 거지?”
유성원과 중한은 유청의 의도가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상공에서 계속해서 그를 바라보았다.
아직 음반 판매장은 영업을 시작하지 않았는데, 유청은 그 입구에 서서 가만히 그 앞을 보면서 기다리기만 할 뿐이었다.
그것을 본 중한은 소름이 끼친다는 듯 쭈뼛대며 소리쳤다.
“대체… 대체 그 걸그룹이니 아이돌이라는 것이 뭣이기에 저 남자를! 저렇게 기다리게 하는 거죠? 대체 뭐 때문에 저렇게 기다리는 겁니까? 효율과 이성의 괴물인 저 남자가! 예? 폐하, 대체 뭡니까?”
“그 정도로… 놀랄 일이야?”
“그럼요. 저 남자! 예전 폐하가 주최하는 연회조차도 업무 시간의 효율을 맞추기 위해서 냉정하게 예전 폐하가 들어오기 직전에 맞춰서 들어오고, 폐하가 나가면 바로 나가 버릴 정도였습니다.”
“아… 그 황제분에게도 그럴 정도인데 저런다는 건… 와우…….”
유청에게 있어 지금 기다리는 저것은 그가 모시던 예전 ‘황제’, 패황 기사 유천보다도 더 중요하다는 의미였다.
자신의 가문조차 국가의 미래를 위해 없애 버리던, 인간성을 잃은 괴물이라 불리던 유청이 기다리는 것을 보고 있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음반 판매장의 직원들이 하나둘 출근해서 매장 오픈할 준비를 분주하게 해 나갔다.
“아, 문 연다. 과연 대체 뭐가 목적이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저, 저거다!”
그리고 여러 직원들이 오가는 가운데 유성원은 그들 중 한 직원을 발견하고 손가락질하며 소리쳤다.
그 직원이 든 것은 오늘 할 행사에 대해 적힌 플래카드였는데, 내용이 바로 ‘기적처럼 나타난 소녀들! 신인 걸그룹 ‘미라클’ 사인회 행사!’였던 것이다.
유성원이 가리킨 것을 본 중한의 눈이 커지면서 일그러졌다. 그 플래카드엔 당연하게도 그 아이돌 가수들의 사진이 떡하니 인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폐하, 사인회라는 것은 무엇인지요?”
“직접 만나서… 굿즈에 사인을 해 주고 악수 정도 해 주는 거겠지.”
“그러니까 지금 저이가… 아침 일찍 나와서 저기에서 기다리는 이유가 저… 저 아이들을 만나서 악수하고 사인받으려고 그러는 거라고요? 맙소사…….”
“어어어어! 아, 안 돼! 중한!”
지금 일어난 일을 도저히 현실이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은 중한이 힘이 쭉 빠지는지 그대로 엘드라엔에서 떨어질 뻔한 것을 유성원이 간신히 잡아 주었다.
유청과 아마 평생을 부부로 살았고, 한 번 생까지 넘었는데 현재 눈앞에 계속해서 보이는 그의 새로운 모습에 강한 충격을 받은 듯했다.
“자, 자! 중한! 숨 쉬어! 숨을 크게 몰아쉬고, 진정해! 이건 어쩌면 시작일지도 몰라.”
“이게… 시, 시작이라고요?”
『훅훅… 오, 오셨습니까? ‘미라클엠파이어’ 님! 오늘은 반드시 1등을 빼앗으려고 했는데 졌다능!』
『오랜만이군요, ‘미라클예루짱’ 님. 그리고 뒤엔 ‘모찌모찌빵짱’ 님이시군요. 안 오실 줄 알았는데 오시다니, 정말 마음이 든든합니다.』
『아닙니다. 어찌 ‘미라클엠파이어’ 님만 보내겠습니까? ‘미라클’의 흥행을 바라는 동지로서 같이 힘이 되어 드려야지요.』
그리고 밑에선 현재 먼저 줄 서 있는 유청의 뒤로 다른 남성들이 줄을 서기 위해서 다가왔는데, 유청과는 안면이 있는지 서로 닉네임을 대면서 예의 있게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거의 군계일학이라고, 연예인보다 훨씬 잘생기고 기품 있는 유청이 평범한 남성들과 교우를 다지는 광경에 중한은 또 한 번 충격을 받았는지 유성원의 옷깃을 꼬옥 잡으며 경악의 목소리를 내었다.
“저, 저저저저 남자가? 저저저저저런 범부(凡夫)들에게 머리를 숙이며 예를 표한다고?”
“…아니, 그냥 평범하게 친교를 다지는 거잖아. 나 같은 놈이랑도 어울리는데…….”
“폐하께선 폐하이셔서 그런 겁니다. 저자가 어떤 자인지 모르시는군요. 상대할 가치가 없다고 계산한 자에 대해선 일절 무시하거나 예를 갖추더라도 냉랭한 반응을 보입니다. 그런데 저, 저런 아무런 능력이나 재능도 없는 범부들을 마치 같은 천검군의 동료를 대하듯이 하다니!”
“중한, 아무튼 진정하자. 일일이 놀라거나 충격받으면 끝이 없잖아. 그나저나 미라클엠파이어라니… 그 정도 의미라는 건가?”
닉네임도 단순히 충동적으로 지은 것이 아니라, 섬기겠다는 의미를 담은 것으로 추정될 정도였다.
미라클엠파이어. 제국, 유천의 통일 제국과 유성원의 헌터 제국을 섬기던 신하인 그가 이번엔 취미 레벨이라곤 하지만 새로이 마음을 맡긴다는 의미였다.
“대체 어느 정도이기에 그렇지? 으음…….”
『그나저나 역시 신인인데… 너무 조급한 사인회가 아닐지? 게다가 아직 저희 셋뿐이지 않습니까? 이거 아무래도 기획사가…….』
『하늘은 진심을 보이는 자를 알아준다. 조급해할 거 없습니다. 저희를 끌어당긴 매력이 있는 그녀들은 지금은 미약할지라도 분명 대성할 겁니다.』
『크으으으… 저런 오글거리는 말도 역시 비주얼이 되는 사람이 하니까 뭔가 다르네. ‘미라클엠파이어’ 님이야말로 저희 팬클럽의 기둥이십니다.』
유청의 카리스마에 자연히 감화된 듯 다른 두 사람은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고 조아릴 기세였다.
수만의 병사와 대군과 한 국가를 이끌던 클래스는 어디 안 간다는 듯 팬클럽 동료들(?)을 이끌면서 시간을 보낸 그는 사인회가 시작되자 자리를 이동했다.
“아, 안으로 들어갔다. 중한, 우리도 가야 할 것 같은데?”
“걱정 마십시오. 영상 장치도 달아 놨습니다. 지금 띄우겠습니다.”
“…….”
중한도 어지간하다는 생각을 하며 유성원은 영상을 지켜보았다.
‘미라클’이라는 그룹은 역시 신인이라 그런지 음반 판매장 한구석에 사인회장이 마련되어 있었는데, 당사자들의 표정을 보면 큰 기대라고는 없이 일단 일을 위해 와 있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들에게 가는 장면을 보는 도중 유청을 따르는 다른 팬이 그에게 말하는 게 들려왔다.
『그런데 ‘미라클엠파이어’ 님은 왜 여기까지 오셔 놓고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리십니까? 오히려 잘생기신 만큼 어필이 될 텐데요? 기억도 해 줄 거고 말이죠.』
『저는 아이돌을 응원하러 온 거지, 연애를 하러 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모찌모찌빵짱’ 님. 저는 그들이 열정과 노력을 통해서 아이돌로서 찬란하게 빛나는 것을 응원하는 입장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 외모는 역으로 독입니다.』
『…그, 그런 깊은 뜻이! 역시 ‘미라클엠파이어’ 님은 그릇이 다르십니다!』
‘애초에 아이돌 팬클럽 같은 걸 할… 그릇은 아니지.’
유성원은 대화를 들으면서 속으로 딴지를 걸었다.
그리고 어느새 사인회장에 도착한 그들은 각자 아이돌들에게 가서 인사, 악수 및 사인을 받거나 선물을 건네주기 시작했다.
『리더 성현 님, 미라클 사인회 축하드립니다. 노래 잘 듣고 있고, 앞으로 활동 분명 번성하실 겁니다. 이거 받으십시오.』
『고, 고맙습니다! 여, 열심히 하겠습니다! 아, 맞다. 사인은 어떻게 해 드릴까요? 성함도…….』
『유청입니다. 그리고 메시지는 필요 없고, 사인이면 됩니다. 그리고 아라 님, 힘찬 댄스와 퍼포먼스 앞으로도 잘하시길 바라지만 몸 건강 꼭 챙기십시오. 여기 선물입니다.』
『어, 어머……! 정말 고맙습니다.』
『…….』
『…….』
『…….』
사인회장에 사람이 적은 덕분에 유청은 리더를 비롯한 멤버 모두에게 인사와 선물을 건네면서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물론 그의 행동을 보고 다른 이들도 따라서 모두에게 사인을 받고 인사를 나누었지만, 이런 행동은 늘 그렇듯 먼저 행동한 유청이 압도적으로 빛나 보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격려와 선물 전달 등등을 마친 유청과 팬클럽 일동은 나가면서 또다시 대화를 나누었다.
『그나저나… ‘미라클엠파이어’ 님의 최애돌은 환희 양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어째서 리더부터 시작해서 연령순으로 인사를 나누신 건지?』
『‘미라클’은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하는 꽃. 한데 벌써부터 인기에 따른 알력 다툼이 생기면 언젠가 분쟁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하나 된 마음으로 열정을 불태우는 것을 돕기 위해선 일단 리더의 권위를 세워 주고, 그룹에 분란 요소가 될 일을 차단해야 합니다. 환희 양은 그다음에 챙겨도 늦지 않습니다.』
『세상에 그, 그런 깊은 뜻이!』
『아무튼 오늘의 오전 임무는 완수했습니다. 다 같이 식사나 하러 가시죠.』
같은 팬클럽인 두 사람은 남자가 봐도 멋진 유청의 통찰력과 행동에 감격한 듯 마치 시종처럼 그를 따라가면서 어울렸다.
그리고 유성원은 너무나 많은 충격을 받은 나머지 반쯤 정신줄을 놓은 중한을 돌보며, 유청이 진심으로 아이돌에 빠진 것에 대해 ‘대체 왜?’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