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특성을 받았지만 적당히 살고 싶다-289화 (289/293)

[외전 2-기사들의 휴가]

성좌 영원한 분노와의 싸움 이후 돌아온 기사들은 다시 또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가서 유성원을 보조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삶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유성원에게서 마력만 받으면 유지가 되는 존재들이었기에 딱히 휴일 따위 필요 없었지만, 일단 그들도 일원이었기에 휴식과 휴가가 주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바로 유성원의 측근 중의 측근인 유청의 휴일이었다.

그가 주로 하는 일은 바로 서울의 한국대학교 도서관에 가서 공부하는 것.

별의 기록에서 불려 온 그는 이 지구의 상황이나 문화에 대해선 문외한이었고, 그동안 그 점으로 인해 유성원에게 조언해 줄 수 없는 것이 생기는 걸 막기 위해서 이렇게 시간이 날 때마다 공부하러 나오는 것이었다.

‘으음~ 정말이지 여기는 역사 기록에 관련해선 엄청 잘되어 있는 나라군요. 세상에, 몇 번이고 전란이 있었는데… 500년 전 역사가 일 단위로 기록되어 있을 줄이야.’

“어머, 저기 좀 봐. 외국인인데 엄청 잘생겼다~”

“와, 어쩜! 세상에, 연예인인가? 화보 촬영이라도 온 건가?”

“사진 찍고 싶은데… 안 되려나?”

오늘은 휴가였기에 평소의 갑옷 차림이 아니라, 나름 얼굴을 가리기 위해 안경을 쓴 채 캐주얼한 차림으로 나왔지만 원체 뛰어난 외모를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집중되었다.

유청은 그런 시선을 느꼈지만 신경 쓰는 것엔 일말의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듯 자신의 할 일에만 집중했다.

그에게 있어 외모는 그저 사람의 의심을 거두고 인상을 좋게 만드는 도구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으니 말이다.

물론 유성원이 이런 그의 생각을 알았다면 가진 자의 여유라면서 비난했을 테지만, 아무튼 그에겐 상관없는 일이었다.

‘갑자기 소란스러움이 사라졌군. 조용해져서 좋은데… 음?’

“당신은 여전하군요.”

한참 시끄럽다가 조용해진 것에 만족하던 그는 문득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인기척에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러자 그곳엔 안경을 쓰고 정장 차림을 한 채 우아하게 서 있는 자신의 부인인 중한이 보였다.

“아, 중한이었군요. 그쪽도 휴가입니까?”

“예. 폐하께서 전 부부였던 ‘누구랑’ 조금은 친하게 지내라면서 맞춰 주신 휴가라서 일단 와 봤습니다. 일단은 말이죠. 한 시간 정도라도 대화는 해야 폐하께 성의를 보이는 거니 말입니다.”

“한 시간이나? 가당치 않은 명령이라면 황제 폐하의 명이라도 거부했던 당신치곤 의외군요.”

“지금 모시는 폐하는 좋으신 분이니까요. 물론 ‘별의 기록’에서 나온 그림자인 몸이라 권력에 위협을 받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요.”

겉으로 보면 마치 영화에 나오는 선남선녀처럼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은 장면이었지만, 실제 대화는 부부였음에도 아주 차가웠다.

물론 한 제국을 다스리는 귀족이자 행정관이었던 유청에겐 자신의 가정보다는 국가의 안위가 우선이었기에 일부러 매정하게 대한 것이었고, 중한 또한 그런 그의 성격을 잘 알기에 아예 기대를 하지 않고 있던 것이지만, 유성원이 보기엔 그래도 안타까운지라 둘의 사이를 조금이나마 중재해 보려고 이런 명령을 내린 것이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적응은 어느 정도 되셨는지요? 저는 이리저리 공부하긴 하는데… 역시 적응하기 힘들더군요.”

“당신이 힘든데 저라고 오죽할까요? 경제, 주식, 가상화폐…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과목들이 너무 많아서 힘듭니다.”

“하하, 저도 그건 들었습니다. 실체가 없고 신용도 증명하지 못하는 물건을 사람들이 산다는 소문 말이죠.”

“예. 실제로 있는 일이라서 더더욱 놀랍습니다.”

중세 혹은 전근대 문명에서 살던 두 사람에겐 현대 경제 문명에선 특히나 더욱 충격적인 일이 많았다.

그렇게 계속해서 현대 문명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가 오가고, 분위기는 나름 좋은 것 같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이야깃거리가 떨어진 둘 사이에 오가는 대화는 적어졌다.

“…….”

“…화제를 좀 꺼내 보시든지요? 아직 시간이 19분이나 남았는데 이렇게 있긴 그렇습니다만?”

“으음… 저도 더 이상 말할 만한 주제가 없는데… 아, 혹시 이 시대에서 뭔가 마음이 가는 새로운 취미를 구해 보시는 건 어떨는지요? ‘별의 기록’의 그림자라곤 하지만 그래도 살아 있긴 하잖습니까? 기계가 아닌 이상… 아니, 이건 죽은 아칼론 경에게 실례되는 이야기이겠군요.”

“취미라. 지금 하고 있는 건 취미가 아닌지요?”

“그런 거, 업무의 연장이잖습니까? 지금 말하는 건 아무런 생산 및 소득, 성과가 없이 순수하게 스트레스를 풀거나 긴장 완화를 위한 활동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걸… 왜 해야 하죠?”

“이러니까 아무도 당신을 사람 취급 안 하죠. 폐하의 이걸 보세요.”

중한은 품에서 휴대폰을 꺼내 저장된 영상을 틀어서 유청에게 보여 주었다.

거기엔 오늘도 줄무늬 사각 팬티에 러닝셔츠 차림으로 침대에서 뒹굴거리면서 TV를 보는 유성원의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마, 말도 안 돼! 어떻게? 당신이! 진정으로 고결한 레이디만이 들 수 있는! 이 성스러운 역기를! 이때껏 들어 올리지 못했던 무게를 들어 올릴 수 있는 거죠?』

『언니가… 언니가 봉 무게를 들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느껴진다. 지금… 내 봉 무게를 들어 주는 언니의 손길이! 느껴지고 있단 말이다! 언니… 언니이이이이이!』

『푸하하하하! 복선 여기서 회수하네. 푸하하하하하핫! 어? 중한? 너 지금 뭘 찍은 거야? 야! 야! 야!』

“얼마나 인간적입니까? 이게 순수하게 취미와 여흥을 즐기는 인간입니다. 당신에겐 그런 게 있나요? 살아 있을 때도 안 그러더니, 죽고 난 이후 지금 본래의 ‘삶’과는 관련 없는 우리이기에 더더욱 취미라는 것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으으음…….”

전 부인이었던 중한의 말에 유청은 잠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생전을 포함해서 이렇게 ‘그림자’로 소환된 지금도 자신은 일, 오직 일과 조직의 운영만을 너무 생각해 왔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뭐, 기대도 안 하지만요. 당신이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 저도 취미 하나쯤은 충분히 만들어서 즐길 수 있습니다. 보여 드리도록 하지요.”

마무리로 중한이 도발을 하자 유청은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서서 읽던 책을 집어넣고는 그대로 대학 도서관을 떠났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전 부인이었던 중한에게 인간 같지 않다는 말을 듣자 은근 무시당하는 기분이 들었던 그는 곧바로 취미 생활이 될 것을 알아보고자 대학가 주변을 거닐기 시작했다.

‘취미… 취미. 음, 스트레스를 풀고, 휴식을 위해 에너지를 쏟는 행위. 어설픈 것을 택해서 취미인 척해 봐야 중한의 눈썰미에는 들킬 거고, 진정으로 즐길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 으으음…….’

고뇌하면서 여기저기 돌아보는 유청. 휴대폰으로 검색까지 해 가면서 취미 생활이 될 것을 찾아보지만, 죄다 그의 취향엔 맞지 않는 것뿐이었다.

일단 성인 남성들의 주요 취미 부분을 짚어 보았지만 마음에 썩 들지 않았다.

‘낚시? 책과 함께 시간을 보내긴 좋지만 나는 사냥 자체를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다. 등산? 산이라면 전투 때 지겹게 다녔는데 무엇 하러 직접 다니겠는가? 으으음… 독서를 취미라고 우겨도 그녀는 또 일의 일환이라고 여길 테니 패스고, 그럼 무엇이 있을까? 여행? 나는 정적인 것을 좋아하는데… 으으음…….’

“으음, 신인 걸그룹인가? 쟤네 어때?”

“글쎄? 잘 모르겠는데? 노래는 일단 유명 작곡가가 쓰긴 했는데… 소속사에서 그다지 밀어주는 것 같진 않은데? 그냥 깔아 주는 건지, 아니면 연습생들 비용 회수만 하고 털려는 건지 모르겠네.”

“비주얼은 나쁘지 않은데 말이지.”

‘…걸그룹? 아, 가희(歌姬)… 같은 건가?’

대학가 주변을 거닐던 중, 문득 광고판에 나오는 춤추고 노래하는 소녀들을 보며 평가하는 남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은 유청은 그쪽을 바라보았다.

광고 속에는 풋풋해 보이는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소녀 5명이 춤추며 노래하고 있었는데, 자신의 시대와 문명 기준에 대입하던 유청은 그녀들을 단순히 노래 부르는 이들이라 생각했다.

『너와 나 함께~ 우리 둘이서~ 손을 잡고 내일을 맞이할 거야~』

‘으음… 단순한 가희와는 다른가? 일단 눈빛부터가 다른데? 으으으음…….’

『소중한 기억들 속에~ 우리의 인연이 계속되길 바라~』

‘으으음… 으으음…….’

화면의 소녀들을 보고 잠시 발걸음을 멈춘 유청은 공연 영상과 뮤직 비디오가 나오는 것을 계속해서 지켜보았다.

가희라곤 했지만 그녀들은 어디까지나 연회나 파티 같은 곳의 분위기를 띄워 주는 악기 비슷한 것이었는데, 이렇게 노래라는 것을 듣는 건 유청에겐 생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더구나 소리뿐만 아니라 여자 아이돌들이 열심히 땀 흘리며 춤추고 노래하는 광경에 눈이 가고 있었는데, 뮤직 비디오가 지나간 뒤 공연 영상 쪽에서 한 소녀가 그의 눈에 밟혔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미라클의 둘째! 환희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오오오…….’

유청의 눈에 띈 것은 딱히 미모나 노래 솜씨가 아니었다.

춤과 노래를 하면서 보이는 열정과 꿈으로 가득한 순수한 눈빛이 그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것이다.

어렸을 적부터 귀족이자 기사로 자라면서 권력 다툼과 대륙의 대전쟁에 뛰어드는 것은 물론 인간을 숫자와 물자로 계산해야 하는 참모였기에 더더욱 인간에 관해선 냉철한 시각을 가지고 있는 그였는데, 그녀의 눈빛과 흐르는 땀을 보자 마치 그녀의 생명력이 자신에게 들어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음악 정도라면 나쁘지 않겠지.’

그렇게 유청은 그대로 해당 음반 판매점으로 들어가서 방금 나온 소녀들의 노래와 뮤직 비디오가 실린 음반을 구입했다.

***

한 달 뒤, 평양 사령부.

던전에서 돌아왔지만 그들은 단순한 헌터가 아니었기에 여전히 일이 한창이었다.

물론 출퇴근이 모두 같은 곳에서 이루어졌고, 이제 세계 최강의 세력이었기에 근무 강도는 예전보다 낮아졌지만 그래도 할 일이 없진 않아서 늘 바쁜 상황이었다.

굳이 더 말하자면 쉬기 위해 더욱 열심히 일하는 것이리라.

“으으음… 이건 다 끝났고. 보자, 슬슬…….”

“폐하, 송구스럽지만 휴가를 좀 주셨으면 합니다.”

“…어, 그래. 가… 뭐? 휴가? 유청이 네가 휴가를? 먼저?”

유청의 깜짝 발표에 당황한 유성원은 허우적대며 놀랐다.

그동안의 유청은 제발 좀 쉬라고, 어디 좀 가라고 노래를 불러야 청에 못 이겨서 쉴 정도로 워커홀릭인 남자였는데, 그런 그가 갑자기 스스로 휴가를 요청한 것이다.

유성원이 깜짝 놀란 얼굴로 바라보았지만 유청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 번 자신의 의사를 밝혔다.

“예, 휴가 말입니다.”

“며칠? 며칠이나? 정말 의외네? 네가 휴가라니!”

“이틀이면 됩니다, 폐하. 오래 자리 비울 생각은 없습니다. 그저 몸과 마음의 휴식이 좀 필요한 정도입니다.”

“뭐,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알았어. 바로 일정 조율해 놓을게. 이 정도는 내가 할 수 있으니까~ 푹 쉬다가 와.”

당연하지만 다른 누구도 아니고 수년, 거기에 코어 던전 안에서도 유성원을 보필한 유청이었기에 즉시 휴가를 허가했고, 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쉬는 날을 알려 주었다.

그리고 그날 업무가 끝난 뒤, 유청은 자신에게 마련된 숙소로 돌아왔다.

본래라면 기사단의 성소가 있기에 필요 없다고 거절했던 것이지만 그래도 머물 곳이 있어야 하며, 개인적인 일로 쓰라는 의미에서 유성원이 마련해 준 공간이었다.

“폐하의 선견지명엔 놀라울 따름이군요. 이런 공간 하나가 마음의 휴식을 줄 줄이야.”

달칵.

그렇게 불을 켜자 그의 방 안의 풍경이 드러났는데, 여성 아이돌의 포스터와 굿즈로 가득 차 있는 모습이었다.

심지어 벽지는 핑크빛. 소녀들을 모시기엔 이게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한 유청이 직접 골라서 작업한 것이었다.

그는 돌아오자마자 씻는 것을 마친 뒤 편안한 차림으로 PC를 켜고서 인터넷 라이브로 중계하는 가요 방송을 틀고, 서랍에서 형광 응원봉까지 꺼내 흔들면서 순수한 열정을 가진 소녀들을 팬으로서 응원하기 시작했다.

“순수열정 환희! 기적의 소녀들! 파이팅! 오오… 그 기세입니다. 헛! 헛! 헛!”

아마… 유청에 대해 아는 기사들이나 사람들이 이것을 보면 경악을 넘어서 현실 부정을 할 정도로, 현재 유청은 화면 속의 아이돌들이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에 푹 빠져서 열정적으로 응원하고 있었다.

참고로 유청은 자신의 취미에 대해서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부대로 들어오는 물자와 택배류를 승인하고 체크하는 보급 담당의 일을 하는 중한에게는 이미 들킨 지 오래였다.

그녀는 과연 그 무뚝뚝하고 기계같이 냉정하던 (전)남편이 가진 새로운 취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