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특성을 받았지만 적당히 살고 싶다-280화 (280/293)

[280화]

[그리고 ‘별’에게 선택받은 수호자인 너에게 예의를 갖추기 위해서 이 자리에 섰다. 비록 먹혀서 사라질 ‘별’이라곤 하지만 그분의 ‘머리’를 두 개나 부르게 된 곳이기도 하니 경의를 표하지.]

“그래, 친절히 알려 주니 감사할 따름이다. 그럼 이제 ‘별’의 수호자끼리 겨루면 되는 건가?”

[그저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 모습을 보였을 뿐이다. 나와 겨루고 싶다면 이 ‘머리’의 두뇌에 있는 내 ‘성’으로 와라. 그럼…….]

그렇게 말한 성좌 영원한 분노의 ‘별의 수호자’는 몸을 돌려 진체의 입안으로 들어가려는데, 뭔가를 떠올린 유성원이 손을 들어 다급히 그를 불러 세웠다.

“…성? 아! 그 전에 하나만 묻자!”

[뭐지?]

“두 번째 머리가 나타났을 때… 그 머리에 잡아먹힌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지? 그거 하나만 알려 줘! 거기에 중요한 사람이 있어.”

[아… 먼저 이 안에 먹혀 들어온 자들 말인가? 음, 너희가 밥을 먹으면 진행되는 일과 아주 유사한 일이 벌어진다, 라고만 대답해 두지. 그럼…….]

“뭐? 잠깐! 야! 이봐! 기다려!”

하나 유성원의 부름에도 ‘성좌 영원한 분노’의 별의 수호자는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유성원을 데리고 왔던 테라 블루윙은 다시 날아올라 성좌 영원한 분노의 입을 떠나 유성원을 아까 전 엘드라엔을 타고 있던 곳으로 데려간 뒤 그대로 떨어뜨리고는 돌아갔다.

꾸아아악!

“…아, 아니! 데려다주려면 좀! 엘드라엔! 읏챠.”

허공에서 떨어지려던 유성원은 재빨리 엘드라엔을 불러서 그녀의 등에 올라타고는 성좌 영원한 분노의 수호자가 한 말을 되새겨 보았다.

저 거대한 성좌 영원한 분노의 진체에게 먹히는 일이 식사하는 일과 같다고 한다면, 결국 목구멍 아래로 내려가서 위장으로 가 소화가 된다는 이야기로밖에 해석이 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머리 쪽에는 ‘머리들’ 담당인 ‘별의 수호자’가 있다는 이야기인데… 위장 쪽으로 갔다는 건 내려가야 한다는 건가?”

[왜 그러나?]

“머리가 너무 아파서 그래. 아무튼 애들이 오고 있는 곳으로 돌아가자.”

이 문제는 혼자서 생각하고 결정하기엔 너무 무거운 일이었기 때문에 유성원은 엘드라엔에게 함대로 가자고 전하면서 기수를 돌렸다.

그렇게 또다시 몇 시간, 여러 가지를 고뇌하면서 비행하니 저 멀리 성좌 영원한 분노를 상대하기 위해 근 1여 년간 준비한 특전 함대가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맨 앞에 특별히 거대한 특별 요새 전함 나이트 캐슬을 기준으로 좌우에 항공모함, 구축함, 전함 모두 합쳐서 10척이었는데, 본래 목표는 12척이었지만 2척은 시간 부족으로 최종 롤아웃을 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렇게 유성원은 나이트 캐슬함에 착지, 곧바로 유청을 비롯한 기사들을 소집해서 먼저 정찰을 가서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멸망급은 늘 만만치 않았지만, 이번엔 특히나 더 그런 것 같다. 상대 쪽에도 나와 같은 ‘별의 수호 기사’가 있는 것 같다. 게다가 엄청 강해 보였어. 그리고… 전력이야 알다시피 무조건 그쪽이 더 압도적이고 말이지.”

“그렇습니까? 아무튼 신속히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되니 바로 작전을 세우도록 하죠. 지금 이 시간에도 이 ‘별’의 바다와 대지가 먹혀 들어가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래, 시급히 나서야지. 하지만 어르신도 구하고 싶긴 한데…….”

“폐하, 하지만 그것은 현실적으로 무리인 이야기입니다. 보십시오.”

유청이 띄운 화면에는 거대한 성좌 영원한 분노의 모습이 작게 축소되어 그려져 있었다.

올림푸스 길드로부터 협조받은 자료였는데, 위성사진과 심해의 사도들이 몸소 움직여서 만든 것으로 거대한 성좌 영원한 분노의 진체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보다시피 성좌 영원한 분노의 진체는 긴 뱀의 형태로 나타나 있습니다. 저 심해 아래에 거대한 차원문이 열려 있고 거기서 머리가 쭉 뻗어 나와 있는 형태죠. 당연하지만 그 차원문 너머엔 거대한 우주와 함께 이 지구보다 훨씬 거대한 성좌 영원한 분노의 진체의 몸통과 연결되어 있을 겁니다.”

“…먹은 것은 자연히 몸으로 간다는 거니까… 즉…….”

“예. 이 ‘별’을 넘어 ‘우주’로 넘어가서 ‘사람’을 찾겠다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쿠궁!

유청의 말은 유성원에게 큰 충격을 안겨다 주었고, 동시에 어르신을 찾으러 갈 수 없다는 절망까지 합쳐져서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백가연 어르신. 이 망할 세상에 그래도 인간의 선의와 희망이 있다는 걸 알려 준 작은 은인.

어쩌면 강한 힘을 얻고 폭주할 수 있었던 유성원에게 기둥이 되어 준 사람이었다.

부모 없이 시설에서 자란 유성원에게 인간으로서의 도리는 지킬 수 있게끔 큰 계기가 되어 준 분인데, 그런 분을 버려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절망스러웠다.

“…잠깐만, 방법이 아예 없진 않을 거야. 아직 기사 신호 잡히니까 저 안으로 들어가서 이동한 다음에 구하면? 그리고 이쪽에 남은 기사를 이용해서 돌아오면 되잖아.”

“기사단의 성소 스킬이 사용이 되면 물론 가능할 겁니다만, 문제는 그게 안 될 경우입니다. 만약 되지 않는다면… 포기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렇지. 후우우~ 좋아, 그럼 일단 들어가서 기사단의 성소가 되는지 확인하고 그쪽 방침은 정하자. 어르신을 구할 수 있으면 구해야지. 당연히!”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 돌입 멤버를 정하시면…….”

기사들 일부는 밖에서 괴수들과 전투를 벌이고, 일부는 내부에 돌입해서 성좌 영원한 분노의 별의 수호자를 없애는 것이 기본 전략의 틀이었다.

이 특별 요새함만 내부로 들어가고, 남은 배들은 새로운 무장과 함께 성좌 영원한 분노의 진체를 견제하고 세계로 뻗어 나가는 괴수들을 막는 게 주 임무였다.

그리고 외부 임무는 역시 천군대장군과 그 아래의 사령 군단 몫이었다.

“언제나 번거로운 임무만 맡겨서 미안해, 천군대장군.”

[아닙니다. 싸움은 우리가 바라던 것이며, 규모 큰 전쟁은 언제든 환영할 일입니다.]

“그래, 고맙다. 후우우~ 준비는 철저하지?”

[물론입니다. 바다 위라는 조건을 대지로 바꾸기 위해 신형 마정석 엔진을 탑재한 함대에서 냉동포 및 기상 조작 마법을 준비하고, ‘성좌 얼어붙은 지배자’의 사도들과 군세까지 합류한 상태로 모두 수월합니다.]

“그래.”

이미 태평양 한가운데서 싸우는 걸 가정한 만큼 바다를 건너지 못하는 사령 군단의 물량과 천군대장군을 비롯한 대장군들이 싸우기 쉽도록 보조할 수단은 준비되어 있었다.

전투 영역을 모두 얼음판으로 만들어서 육지처럼 싸울 수 있게 성좌 얼어붙은 지배자와 동맹을 맺고 막아 내기로 한 것이었다.

“상대도 결국 악(惡) 성향이지만… 지금은 이 ‘별’의 위기이니 어쩔 수 없지. 그리고 유청을 비롯한 천검군과 가울프, 크록베인, 섬멸은 나와 함께 내부로 투입한다.”

“예.”

“하나 문제는 머리가 둘이라는 건데… 딱 봐도 머리 하나를 잡고 나면 하나가 남았다고 할 수 있잖아? 그것까지 가정해서 잡고 나오면 바로 싸울 것도 생각하고, 기사단의 성소가 안 열릴 경우도 대비하자.”

“예, 폐하.”

기본적인 토대는 모두 준비했기에 임무를 부여하는 것은 상당히 빠르게 진행되었다.

남은 건 현장의 상황을 보고 배치를 짜는 것인데, 그건 도착하고 나서 현장에서의 움직임을 보고 결정하면 된다.

그래서인지 임무 부여도 금방 끝난 유성원은 다시 홀로 남아 걱정스러운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하아아아~”

“걱정되시나 보군요.”

“어르신만 걱정이 아니라 이 앞날도 걱정이야. 저거 잡아도 그냥 인류끼리 싸우다가 멸망할 것 같아서 미치겠어. 별다른 방안도 안 떠오르고……. 유청, 어쩌면 좋겠냐? 진짜로 그냥 인류 통일 전쟁이라도 할까?”

“그러면야 저는 기꺼이 폐하를 따를 것입니다. 하나 역시 그 전에 ‘대화’로 해결해 보는 건 어떨까요?”

“풉! 이제 와서?”

상당히 어처구니가 없었는지 유성원은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지금 아프리카와 유럽은 천만 명이 죽고, 인종 갈등이 너무나 심해져서 세계 곳곳에서 난리인 상태였다.

간신히 성좌 영원한 분노의 위협으로 전쟁을 막았는데, 지금 다시 ‘대화’라니.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지금 이런 상황이기에 오히려 할 수 있는 일이 아닐지. 그리고 때로는 칼로 안 되는 일을 해결할 수 있는 게 펜입니다. 생각해 보면 양측 다 피해가 커서 증오도 크지만, 그래도 ‘전쟁’ 자체를 멈추고 다시 평화롭게 돌아갔으면 하고 바라는 것도 인간입니다.”

“그렇지만 과연 말을 들을까? 그 사람들에게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해?”

“폐하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면 됩니다.”

“…원고 같은 거 없이?”

“예. 그저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말 그대로 하시면 됩니다. 그럼 적어도 속은 편해질 겁니다. 시간이 남으니 방송 세팅이라도 할까요? 방송용 세팅 기기들도 준비해 왔습니다만…….”

유청의 말은 전혀 논리적이지도 않고 설득력도 없었지만, 잠시 생각한 유성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의 의사를 내비쳤다.

그래, 어차피 가만히 있어도 이 답답함이 나아지지 않기도 하고, 그의 말대로 이 망할 세상에 시원하게 욕이라도 한마디 하면 좀 나아질 것 같다는 생각으로 발표회 같은 것을 준비하게 되었다.

“뭔… 시설이 이렇게 본격적이야?”

“그야 폐하는 이제 평범한 사람이 아니잖습니까? 사람들에게 긴급 기자회견 및 중대 발표랍시고 속여서 연락을 던져 놨으니 아마 세계 사람들 대부분이 보게 될 겁니다.”

“아니, 그렇게 할 거까지야. 하아아~ 그래, 어차피 죽을지도 모르는 싸움하러 가는데… 뭐 어때!”

단상에는 방송용 카메라들이 잔뜩 깔려 있고, 방송 송출을 시작한 가운데 검은 정장을 입은 유성원은 메이크업까지 받은 상태로 단상 위로 가서 마이크를 잡고 음량 조절을 한 뒤 본격적으로 말문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그… 이거 보시는 여러분, 그… 전 유성원 헌터입니다. 여러 이상한 호칭들이 많이 붙었고… 또 어느 날 갑자기 날벼락처럼 각성자가 되어서 여기까지 오게 된 놈입니다. 저는 지금 성좌 영원한 분노의 진체를 공략하기 위해 가고 있습니다. 여태껏 몇 개의 멸망급 성좌를 쓰러뜨렸지만… 이번엔 솔직히 많이 힘든 상대라서… 어쩌면 살면서 마지막이 될지 모르기에 여기에… 하고 싶은 말 몇 마디를 남기고자 합니다.”

뭔가 유언 같은 분위기였지만, 어쨌든 이미 세계를 절반가량 제패한 것으로 알려진 유성원 헌터가 발표를 한다니 시청자 수는 급격히 늘어났고, 위치만 보면 낮과 밤 상관없이 거의 세계 전역에서 방송을 시청하는 격이 되었다.

『지금 나는… 인류에 희망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성좌 영원한 분노를 잡아도… 결국 세계는 또다시 증오와 ‘성좌’의 영도 아래 서로에게 칼을 겨눌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인류의 마지막 전쟁이 될지도 모릅니다. 아니… 어쩌면 이 방송 자체가 제가 인류에게 전하는 마지막 메시지일지도 모르죠.』

“뭘 말하고 싶은 걸까?”

“글쎄…….”

“싸우지 말라는 말을 하고픈 걸까?”

“흥! 과연 듣기나 할까?”

막 중대 방송 같은 걸 기대하던 사람들은 유성원의 뻘소리에 의아해하거나 혹은 비웃으면서 슬슬 관심을 놓기 시작했다.

어차피 뻔한 소리가 나올 거라 생각하고 방송을 꺼 버린 이들도 있으며, 개중엔 무시해 버리고 다시 자기 할 일을 하러 돌아가는 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유성원의 말은 계속되었다.

『저는 제 말로 뭔가 바뀔 거라는 기대도,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이제 돌아오지 못할 싸움을 앞두고, 가슴에 담아 두었던 이야기가 하고 싶을 뿐입니다. 예. 각성한 이후… 계속 칼질만 하다가 죽기에는 좀 억울하기도 하고 말이죠. 아… 몽둥이질인가? 아무튼 예… 가끔은 왜 내가 ‘별의 수호 기사’ 같은 것에 선택되었는지 의아하기도 해요. 여러분도 그러시겠지만요. 대체 저 같은 놈이 뭐가 좋다고 이 ‘지구’가 택한 건지, 참…….』

그렇게 유성원은 마치 라디오의 사연 코너에서 사연을 소개하는 것처럼 생각나는 대로 떠들어 나갔다.

각성한 일부터 시작해서 싸움이 없었을 시절의 일상, 거기에 쓰라린 부분이긴 하지만 자신의 어두웠던 과거까지.

그냥 담담하게 인간 유성원으로서의 이야기를 계속할 뿐이었다.

뭔가 중대한 발표가 나올 것 같다가 난데없이 라디오 타임이 되니 사람들의 흥미는 금방 식어 버렸고, 방송을 보는 숫자도 점점 줄어 갔다.

이는 예상했던 반응으로 유성원도 슬쩍 시청자 숫자를 보았는데, 뭔가 발표가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한 정부나 첩보 기관들 정도만 남을 거라 예상했지만 그래도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계속 남아서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