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특성을 받았지만 적당히 살고 싶다-272화 (272/293)

[272화]

“죽여라.”

“아니, 너희 성좌님 좀 뵙자고.”

“거절한다. 내 목숨이 사라질지언정… 이 아프리카의 빛을 내 손으로 사라지게 할 수 없다. 우리 성좌님을 없애고 싶으면 아프리카 10억 인구의 목숨부터 빼앗을 각오를 해라!”

‘…성좌 종말자가 그리워질 지경이군. 말이 안 통하네.’

어떻게 다른 우주에서 내려온 성좌 종말자랑은 말이 통하고 금방 의견 교환이 되는데, 같은 지구의 인간인 이들과는 이야기가 통하지 않는 건지. 이 거지 같은 상황이 한탄스러운 유성원이었다.

말을 해도 안 통하니 답답해진 그는 일단 모를란테에게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럼 확인이나 하자. 근래 저 위에서 저지른 미친 짓… 너희 성좌님의 지시냐? 너도 미친 짓 말린다고 했었잖아.”

“그래, 그랬지. 하지만! 이건 신이 인도하신 길이다! 성좌님께선 지원하는 자신을 믿고 계속 나아가라고 하셨다. 이렇게 된 이상 온 세계를 검은 민족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지금 물러서면 세계는 다시 우리에게 족쇄를 채울 거라고 말이다!”

“…아니, 그걸 왜 그대로 믿냐? 지금 나한테조차 이렇게 뚫렸는데! 정신 나갔어?”

“그럼! 신의 말씀을 거부하겠는가? 그분께서 말씀하셨으니 우린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하… 광신은 멀쩡한 사람도 제정신이 아니게 만드는 건가? 이를 어쩐다?’

여기서 싸워 이기고 다 없앤다고 해도 지금 활활 타오르는 전쟁을 끝낼 순 없다.

아마 더욱더 치열하고 가혹한 전쟁으로 세상이 가득 찰 것이다.

누군가 말하길 제3차 세계 대전은 무엇으로 싸울지 모르나 제4차 세계 대전은 돌과 막대기로 싸울 것이라고 한 예언이 떠오른 유성원은 자신들이 지금 인류 멸망의 기로에 서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자, 어서 죽여라. 그럼 나는 신의 곁으로 돌아갈 것이다!”

“아니… 미친 자식아, 신의 곁으로 안 가. 내가 진짜 성좌의 축복을 받아서 승천한 애를 봤는데, 걔 정도로 미친 짓을 해야지 신의 눈에 들지, 그냥 순교하는 걸로는 아무 호감도 못 산다…….”

[크하하하하하하핫! 하아하하하하하핫! 하하하하하하하하핫! 하하하하하하! 내가 이거 보는 재미 때문에 도저히 이 ‘별’에서 인간들과 노는 걸 못 끊는다니까! 카하하하하핫! 카하아하하하핫!]

한창 순교하려는 모를란테 부장과 실랑이를 벌이는 유성원 사이에서 갑자기 전원이 연결되지 않은 모니터가 켜지더니, 거기서 성좌 마천루의 습격자의 호쾌한 웃음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유성원은 당황한 얼굴로 모니터와 모를란테 부장을 번갈아 보았는데, 모를란테 부장은 아주 당연하다는 듯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는 가운데 성좌 마천루의 습격자는 계속해서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걸로 이야기하는 건가요?”

[하하하핫! 푸하하하핫! ‘별의 수호 기사’였나? 아무튼 노는 꼴이 너무나 우스워서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진짜 우습기 짝이 없어.]

“…뭐가 우스운 거죠?”

[아, 미안하네. ‘별의 수호 기사’여. 그대와는 관련 없는 건데… 푸흡! 푸흐흐흐! 푸하하하핫! 하지만 인간이라는 존재가 너무… 너무 재미있어서 말이야. 물론 내가 이 맛에 ‘별’의 인간들을 갖고 놀지만, 이번엔 정말이지… 걸작이야. 이 ‘별’에 오길 너무 잘했어.]

“갖고 논다니… 그럼 설마?”

[그래, 저 까만 인간을 부추긴 게 나다. 푸흐흐흡! 정말 걸작이지. 특별한 힘이나 자본, 기술 그 무엇 하나 주지 않고 그냥 그럴싸한 말만 했을 뿐인데, 철석같이 믿고 같은 동족을… 피부색만 다르다고, 푸하하하하! 돼지 먹이처럼 갈아 버리고, 태우고, 찌르고, 죽이고! 푸하하하하하!]

광기가 느껴지는 웃음소리와 저 인간을 얕보는 태도. 아프리카를 돕고 있느라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을 뿐, 결국 성좌 마천루의 습격자 또한 그리 선한 성향의 성좌는 아님이 분명했다.

그것을 지금 처음 알았는지 무릎을 꿇고 예를 갖추던 모를란테가 충격받은 표정으로 넋을 잃은 채 모니터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성좌… 님? 이게 무슨… 아니야. 이건… 이건 우리 성좌님이 아니야.”

“으음… 평소엔 어떠셨는지 대강은 알 것 같네요.”

[그래야 인간들이 따르니까~ 자비롭게 이거저거 다 챙겨 주면서 그럴싸한 말을 해 주니, 넙죽넙죽 따르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모를란테 부장을 무시하는 것도 모자라서 화면의 아이콘은 여러 나라에서 웃음을 뜻하는 이모티콘 형태로 비웃음을 보내고 있었다.

‘ㅋㅋㅋ, ZZZ, lololololololol’ 같은 문자들이 주르르륵 지나가는 동시에 성좌 마천루의 습격자의 말은 계속되었다.

[어쨌든 내 계획도 이제 마무리되었고, ‘별의 수호 기사’가 친히 와 주었으니 반가워서라도 설명해 줘야겠지. 하하하핫! 사실은 그게 더 즐겁기 때문이지만 말이야.]

“…즐거움? 설마 성좌 마천루의 습격자, 당신이 추구하는 건…….”

[그야~ 즐거움이지. 그것도 폭력과 유혈로 서로 치고받는 게 아주 좋아. 크흐흐흐, 크흐흐흐흐흐! 그 규모가 크면 클수록 더욱! 더욱! 더더욱! 더더더욱! 그것도 혼란스럽고 추하고 피가 많을수록 좋지. 이 ‘별’은 그런 면에서 아주 만족스러운 곳이었어. 고작 피부색 하나로 이렇게까지 치졸하게 싸울 수 있을 줄이야.]

“…치, 치졸?”

[정말이지… 푸흐흐흡! 푸하하하하! 다시 생각해도… 푸흐흐흡! 웃음이 멈추지 않는군. 푸하하하하하! 푸하하하! 푸하하하! 피부색! 피부색 하나로! ‘별’이 멸망할 때까지 서로 죽고 죽이면서 싸울 수 있는 생명체라니! 아이고! 배야! 사상 최초로 웃다가 죽는 ‘별’이 될지도 모르겠어. 콜록! 콜록! 콜록! 콜록!]

그의 광소는 결코 끊이지 않았다.

하긴 수많은 ‘별’에 있던 다양한 생명체들을 보고 느낀 성좌라는 존재에겐 고작 해야 피부 껍데기 한 장 차이 가지고 이렇게 서로를 적대하고 인류가 멸망할 대전까지 일으킨다는 게 정말로 그 어떤 개그보다도 웃긴 일일지도 모른다.

“…….”

“…….”

그리고 그의 웃음소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모를란테는 물론이고 유성원의 표정까지 썩어 들어갔다.

그래, 인류 전체에 대한 비웃음과 모멸, 거기에 모를란테 부장은 믿었던 성좌가 자신들을 배신했다는 충격까지 더해져서 말이다.

그래서인지 모를란테 부장은 주저앉은 채로 멍하니 있는 한편, 유성원은 고개를 돌려 모니터를 노려보았다.

“…….”

[그렇게 노려봐서 어쩔 거지? ‘수호 기사’라고 해 봐야 너도 이 ‘별’의 꼭두각시일 뿐, ‘성좌’인 나에게 손을 댈 수는 없지. 아, 물론 내 ‘꼭두각시’들을 모두 없앨 순 있긴 하네. 하지만 지금에 와서 그건 상관없지. 나는 이미 ‘목적’을 이루었으니 말이야. 이 ‘별’에 돌아올 필요 없이 느긋하게~ 너희가 스스로 파멸해 가는 장면을 즐겁게 구경하면 되거든. 푸크크크크!]

“젠장…….”

이를 악물면서 성좌 마천루의 습격자가 떠들어 대는 모니터를 노려보는 유성원이었다.

하지만 그 말대로 이미 목적을 완수한 그를 지금 어떻게 할 수 있는 방안이 없었다.

기껏해야 이 아프리카에 있는 헌터와 간부들을 모두 죽인다고 해도, 그리고 추방시킨다고 해도 이미 굴러간 광기의 스노우볼은 멈출 수 없을 지경이 되어 있었다.

[하나 재미있는 거 알려 줄까? 지금 ‘네오 스페셜 사(社)’에서 세계 주요 국가를 향해서 ‘전략급 무기’ 사용을 계획하고 있지. 아주 조금 부추기니 슬슬 하는 꼴이… 푸흐흐흡! 시도가 막혀도 그것이 들키면 너희 인간들은 이제 보복하겠다고 똑같거나 혹은 더 심한 짓으로 돌려주겠지? 푸하하핫!]

“…미쳤어.”

[뭘~ 그러나? 인간이 다양하듯 ‘별’ 또한 다 각자 스타일이 다른 법이지. 그리고 나는 그 취향이 오직 피조물의 ‘파멸적인 즐거움’에 몰려 있어서 문제지만 말이야. 마치… 어린 인간 아이들 같은 취향이지.]

어린 시절 아이들이 자신의 호기심과 또 학교에서 배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 작은 곤충이나 동물에게 천진난만하게 잔혹한 짓을 저지르는 느낌으로 말하는 성좌.

작은 거미집에 개미를 집어넣고 잡아먹히는 것을 보든가, 아니면 잠자리 몸통에 실을 매고서 살아 있는 풍선처럼 가지고 다닌다든가.

장수풍뎅이의 싸움을 보고 싶다고 암컷을 따로 가두어 놓고 수컷 2마리를 싸우게 만드는 그런 레벨의 짓거리를 즐기는 성좌가 바로 성좌 마천루의 습격자였다.

“발상은 멸망급… 이라기엔 치졸하지만, 실제 행동은 멸망급 그 자체라…….”

[자, 그럼 어디 ‘별의 수호 기사’여, 이 혼란과 증오로 가득 차서 모두 죽고 멸망할 때까지 싸울 미래를 어디 바꿀 수 있을까? 푸키키킷! 바꾼다고 해도 어차피 나는 계속 남아 있고, 또 다른 사도들을 구하면 돼. 아니면~ 지금 남은 피부 까만 인간들을 부추겨서 너의 행동을 막아도 되고, 그것도 아니면 이번엔 또 누구를 부추기러 가 볼까? 푸흐흐흡! 푸흐흐흡!]

“…젠장!”

성좌 마천루의 습격자의 농지거리에 유성원은 화가 났지만, 그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별의 수호 기사로서 남들과 다른 빠른 강력함을 얻었고, 마력을 코스트로 얼마든지 부릴 수 있는 군대와 그저 뽑기만 하면 나와 주는 전설의 기사들이 모두 같이 있는데도 지금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이걸 어쩌지? 이건 진짜 터무니없게 미친 성좌잖아?’

그냥 사악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반전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진짜 인류를 장난감처럼 갖고 노는 걸 즐기는 놈이었다.

이 정도로 미치면 합리를 넘은 의심을 품기 좋았는데, 지금 이 상황을 모두 녹화했음에도 이걸 대중에게 공개해 봤자 오히려 자신들이 미친놈 취급받을 정도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거의 이건 동시 송출해서 전 세계에 중계해도 믿지 못할 레벨이야.’

“마… 말도 안 돼… 우으어어…….”

‘이 양반을 증인으로 세우려고 해도… 이미 정신이 나가 버렸고…….’

충격에 정신이 나가 버린 모를란테는 그대로 힘을 잃고 땅에 쓰러졌다.

결국 이 일을 해결할 방도가 없다는 걸 깨닫자 무력감이 전신에 몰려오면서 절망이 몸을 타고 흘렀다.

‘…젠장! 일 처리가 너무 경솔했어. 처음부터… 처음부터 이놈들이 난리 치는 걸 막아야 했는데!’

후회가 몰려왔지만 이미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일이 진행되었다.

최소한, 어쩌면 그때… 와 함께 몰려오는 후회 속에서 유성원은 지금 이 상황을 수정할 방법을 끊임없이 생각해 보았다.

“…….”

티탄의 말뚝과 성좌 마천루의 습격자를 멍하니 번갈아 보면서 어떻게든 지혜를 짜내려고 해 봤지만 떠오르는 게 없었다.

그렇게 비통스러운 얼굴을 찡그리던 유성원은 참담한 마음으로 통신기를 열고 어느덧 도시 심층부까지 진군을 하고 있는 유청과 천군대장군을 향해서 말을 전했다.

“전군… 후퇴해라.”

[예? 폐하, 갑자기 무슨 일이십니까?]

“후퇴라고 말했잖아. 다들 더 이상 피해 입히지 말고 모두 싹 후퇴해. 이유는… 가서 말해 줄게.”

[예, 폐하. 알겠습니다.]

적어도 더 이상 싸워 봐야 얻을 것도 없으며 사상자만 늘어난다는 걸 알기에 유성원은 일단 아군을 모두 후퇴시키기로 했다.

사실상 패전(敗戰). 싸움으로만 모든 것을 해결하고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 유성원의 완벽한 패배였다.

인류의 위기와 혼돈, 혐오와 증오, 그리고 성좌 마천루의 습격자가 뿌린 악의로 가득 찬 세계를 구할 방안을 떠올리지 못한 그는 힘없이 성소를 통해서 퇴각 지점으로 빠르게 후퇴한 뒤에 집결했다.

“…….”

“폐하, 도대체 왜 그러십니까?”

“유청… 이제 어떻게 하지? 이거 어떻게 해야 해?”

무력감과 절망에 빠진 유성원은 간절하게 지혜를 구했다.

전설의 기사, 한 제국을 다스렸던 기사 유청이라면 답을 줄 거라 생각하며 빌딩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하나도 빠짐없이 설명했다.

그리고 지금 세계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까지 모두 알렸지만, 유청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고 그의 입에서 나온 건 해답이 아니었다.

“…죄송합니다, 폐하. 저도 전쟁에서 이긴다든가, 국가를 운영하는 방법만 알지, 이런 광기를 제어하는 방법은… 잘 감이 오지 않습니다. 지금 제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기왕 이렇게 된 거 폐하께서 모든 인류를 지배하면 되지 않나 하는 겁니다. 어차피 광기에 지배당하게 되면 더 이상 아무것도 볼 수도, 느낄 수도 없게 되니 말이죠.”

“그 답을 원한 게 아니라고……. 이렇게 되면…….”

유성원은 곧장 휴대폰을 꺼내 백가연 어르신에게 연락을 취했다.

이런 마당이 되면 결국 의지할 수 있는 건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의 지혜였다.

부디 그분에게서 지구 전체가 이 광기와 폭력에 잠식되기 전에 막을 방도가 나와 주길 바라는 유성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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