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3화]
“그러니까 영어로 하면 ‘딕 오브 제우스’, 혹은 일본어로 하면 ‘스바라시 제우스노 친친모노’ …라는 거죠?”
“…맞네. 참 민망한 소리지만 뭐, 그런 사도도 있는 법이지. 그래서 다들 언급을 잘 안 하는 거고 말이야.”
“골 때리네요.”
“정말 골 때리지만, 얕볼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네.”
‘얕볼 수 없는 힘? 하긴 제우스의 사도라면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겠지.’
기묘한 기운부터 해서 찜찜한 느낌 모두 그에게서 느껴지던 것인 만큼 뤼카이온 그자가 심상치 않을 수도 있다는 예감을 받았다.
특히나 지금 자신들은 저 성좌 올림푸스 길드를 막기 위해 성좌를 모으고 있으니, 더더욱 저런 자가 가까이 있으면 운신하기 힘들어질 것이다.
“가능하면 거리를 두고 싶은데… 가까이 있으면 문제가 되겠네요. 경계해야 할 대상이 늘 테니…….”
“아니, 아마 자네는 걱정 안 해도 될 걸세.”
“예? 하지만 성좌 제우스의 사도잖아요? 그리고 올림푸스 길드인데요?”
“뭐, 그렇긴 한데… 저 인간은 ‘남자’에겐 관심이 극히 적네. 아니, 아예 없다고 해도 좋을 지경이지. 지금 인사 온 것도 아마 부하들이나 길드의 직원들이 시켜서 온 걸 게야. 아까 실컷 말한 그의 별칭에서 알다시피… 그의 능력은 ‘자손을 만드는 것’에 있거든.”
‘자손을 만드는 것’.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성교다.
신화 속 제우스의 이야기를 현대 시점에서 보면 희대의 강간마라고 해도 모자랄 정도였다.
물론 신의 행위를 인간의 척도로 재는 것도 이상하고, 또 어떤 뼈와 살이 붙었을지 모르거나 아니면 인간이 저지른 일을 신에게 책임 전가한다거나 아니면 혈통을 속이기 위해서 댄 변명이 내려오면서 그런 설화로 발전한 경우도 있지만, 아무튼 그 이야기에 기반한 성좌 제우스가 저 ‘뤼카이온’이라는 남자에게 내린 능력은 그에 관련된 것이었다.
“그 능력은 바로… 그의 정을 받은 자손은 무조건 ‘각성자’로 태어난다는 거지. 그것도 태어나자마자 못해도 C급 이상. 지금도 그 기록은 깨지지 않은 상태이지.”
“켁! 세상에…….”
“어떻게 보면 고증을 철저히 지킨… 영웅을 만드는 자이기도 하지만, 아무튼 그래서 저자의 업무는 별거 없네. 종마(種馬)처럼 건강을 유지하면서 열심히 2세 생산을 하는 거지.”
“참… 별의별 각성자가 다 있네요. 그러면 아예 정자만 채취해서 시험관 아기라도 만들어서 클론이라도 생산하면? 진짜로 이 목사가 저 인간을 봤으면 군침 흘렸겠네요.”
“아니, 아쉽지만 그런 연구는 이미 했을 걸세. 하지만 오직 정상적인 성행위를 통해야만 그의 능력이 발현이 된다네. 일종의 제사나 의식 같은 거지. 만약 자네가 말한 게 가능했다면 이미 세계는 올림푸스 길드의 것이었겠지.”
“…그러면 상대가 될 사람은 어떻게?”
무릇 종족 번식은 남성만으론 되지 않기에 모체가 될 여성도 필요하다.
저 뤼카이온의 능력이야 ‘자손을 무조건 각성자’로 만든다고 쳐도, 성행위를 하고 체내에서 길러 주고 낳아 줄 모체가 있어야 한다.
그것을 어떻게 구하느냐가 문제인데……. 거기까지 도달하자 백가연의 표정이 더욱 급격히 안 좋아졌다.
“…보통은 지원자를 받는다든가, 기부를 많이 한 곳에 가서 선출하기도 하네만, 역시… 시험관 아기 같은 게 아니라 직접적으로 해야 하는 점에서 거부감이 크기도 하지만, 역시 문제는 저 당사자겠지.”
“아… 안 봐도 알겠네요. 자기 능력도 능력이겠다, 뒷배도 있고, 명분까지 있으니 답이 없겠네요.”
저 유피테르 가드라는 놈들이 있으니 무력적으로도 문제없고, 성좌 제우스의 사도면 돈이든 권력이든 전혀 부족할 게 없을 것이다.
올림푸스 길드가 있기에 현 세계에 성좌들과의 전쟁이 크게 번지지 않은 채 현 상태를 유지시키고 있는 거나 다름없었으니 말이다.
“…그래, 그래서 저놈은 늘 세계를 돌아다니며 오만 여자들에게 손대면서 허리를 움직이곤 하지. 경우를 안 가리고 말이야.”
“어우… 끔찍해라.”
“심지어 ‘제우스의 권능’이 깃들었는지 여성의 주기는 따지지도 않고 가능하다며~ 연중 365일 돌아다니면서 여기저기 다 건드린다네. 신분의 고하 같은 건 상관없이 무슨 치외법권인 것처럼 말이지. 아니, 좀 더 비유를 하자면 초야권을 요구하던 영주 같은 걸로 말해야 하나? 아무튼 최악인 놈이지.”
“맙소사…….”
“특히 미국에서는 대통령 딸과 부인을 건드리고도 무죄 방면된 적이 있을 정도일세.”
“우웩…….”
뤼카이온이라는 자에 대해 들으면 들을수록 끔찍한 것을 본 표정이 되는 유성원이었다.
실제로 끔찍한 행보를 자랑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진저리 난다는 표정을 지은 유성원은 이 화제에 대해 끝내고 싶었지만, 아직 궁금한 점이 남아 있었다.
“…음, 상종 못할 새끼라는 건 알겠네요. 그래도 하나 궁금한 게… 아이는 그럼 결국 어떻게 되나요? 올림푸스 길드에서 강제로 데려가나요? 아니면 모친 쪽에 맡기나요?”
“모친 쪽에서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두네. 어차피 태어난 아이는 자동으로 성좌 제우스의 권속으로 시작하게 되니 말이지.”
“아… 상관없다는 거군요. 하아아~ 아무튼 알아서 좋을 게 하나도 없는 인간이네요.”
“하지만 경계는 해야 하지. 유부녀고 뭐고 안 가리는 놈이니 말이야. 혹시라도 조심하게.”
“에이, 설마 쟤네가 그런 멍청한 짓을 하겠어요? 지금 이 상황에서 저한테 대의명분을 주는 미친 짓을요. X도 봐 가며 놀려야죠. 그리고 모두에게 기사들을 붙여 놨으니 여차하면 바로 뛰어갈 겁니다. 그러니… 어? 이런, 벌써 시간이! 저는 그럼 다음 스케줄 소화하러 갈 테니, 어르신! 성좌 일 하실 거면 연락 주고 하십시오. 그럼!”
그렇게 유성원은 인사를 하고서 백가연과 헤어졌다.
확실히 기사들까지 붙어 있으면 적어도 유성원의 주변 사람들은 안전하리라.
그리고 저 제정신이 아닌 놈이라도 지금 이 ‘아시아의 제왕’을 건드릴 생각은 하지 않을 거고, 또 할 거였다면 진작 유성원이 멸망급 던전에 들어간 타이밍을 노렸으리라.
생각을 마친 백가연은 자신의 일을 마치러 다른 곳으로 향했다.
***
올림푸스 길드, 한국 지부 천공섬.
같은 시각, 성좌 제우스의 사도인 뤼카이온은 이미 사무실로 돌아와서 영상 통화를 켠 채 보고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주변으로는 유피테르 가드들이 마치 석상처럼 둘러서서 경호하는 한편, 반나체 차림을 한 여성 10여 명이 한쪽 벽에 나란히 서서 대기 중이었다.
모두 다 오늘 ‘씨’를 뿌려 농사지을 그의 일거리들이지만, 지금은 보고가 먼저였다.
[그래, 일은 제대로 처리했나?]
“글쎄요~ 제가 남자 보는 눈은 별로 없어서 말이죠. 겉보기엔 별거 있어 보이지 않았는데…….”
[그 별거 있어 보이지 않는 남자가! ‘멸망급 성좌’를 이 ‘별’에서 추방시켰다. 아니! 그것도 모자라! ‘성좌 종말자’가 꾸미는 ‘우주 규모급’ 야망까지 좌절시켰어! 별거 없을 리가 없지 않은가!]
“하하핫, 그런가요? 그러면 그런 거겠죠.”
능글맞게 대답하는 뤼카이온의 태도에 화면 속 올림푸스 길드 간부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성좌 제우스의 사도만 아니었으면 당장이라도 죽일 듯한 기세.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게 현실이니 혈압만 높아졌다.
화면 속 간부 중 하나가 손가락질하면서 뤼카이온에게 성질을 냈다.
[좀 진지하게 일하게! 자네도 엄연히 우리 위대한 ‘올림푸스 길드’의 일원일세.]
“저야 늘 제 일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이번에 제 일에서 벗어나는 임무를 맡았을 뿐이죠. 지금 저 뒤에 일감이 쌓인 거 안 보이십니까?”
[그야 알지! 하지만 그것만이 자네가 해야 할 일은 아닐세! 우리 ‘올림푸스 길드’의 번영과 이 세계를 우리가 섬기는 ‘열 두 성좌’님들의 세계로 완벽하게 만들어야 하는 게 우리 임무! 자네도 그 임무에서 자유로운 게 아닐세!]
“그렇지만 전공이 다른 건 어쩔 수 없잖습니까? 저는 이거~ 이거~ 하나밖에 못하는 몸이라서요.”
의자에 앉은 채로 허리와 하반신을 들썩거리면서 자신의 장기를 자랑하는 뤼카이온이었다.
그 말대로 성좌의 축복은 오로지 ‘씨를 뿌리는 행위’에만 몰려 있어서 그 외에는 민간인이나 다름없는 그였다.
다만 그 씨앗에서 ‘C급 각성자’를 확정적으로 탄생시키기에 그 가치는 남달랐지만, 아무튼 지금 이 사안에 대해선 전공이 다르다는 그의 의견은 틀리지 않았다.
“그리고 굳이 그럴 게 아니라, 전선에 있는 용사들 두셋을 몰래 불러내서 암살이라도 때려 버리면 될 거 아닙니까?”
[그게 암살이 될 몸인가? 아니, 시도한다는 가정을 우리가 안 해 본 줄 아나? 예언까지 동원해서 할 수 있는 방안을 모두 구상했지만 놈을 잡을 방안이 없네.]
“예예.”
[게다가 그쪽의 사람을 비우면 언제든 우리를 잡아먹으려고 하는 ‘복수의 티탄’과 그냥 ‘별’을 먹는 짐승인 성좌 ‘영원한 분노’가 튀어나올 수 있네. 자네에게 그놈을 잡으라는 등등… 그런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니야. 그냥 감시! 감시만 좀 제대로 해 줬으면 하네.]
“유피테르 가드 중 한 명에게 맡기도록 하죠.”
[아니아니! 그들은 역으로 경계를 받는 친구들이니까 자네가 하라는 거야. 자네에 대한 세간의 인식을 생각하면 이 일에는 자네가 최적일세. 제발 좀 부탁하네. ‘멸망급’까지 잡은 그놈이 우리 성좌님들까지 해하면 큰일이지 않은가!]
올림푸스 길드 간부들의 사정하는 말까지 이어졌지만, 뤼카이온은 그다지 내키지 않았다.
물론 지금 삶에 불만이 있는 건 아니었다.
위대하신 성좌님 덕분에 자신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고서 여자들과 자기만 해도 돈이 들어오고, 대우가 좋아지며, 축복까지 내려지니 싫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런 점에 감사한다면 오히려 성좌 제우스를 지키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긴 했지만, 근래 그는 살짝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다.
[아무튼 명심해 두게!]
“예예. 자, 그럼 지겨운 임무가 끝났으니 본격적으로 일해 볼까?…….”
지겨운 회의가 끝나고, 그는 그대로 뒤에 서 있는 여성들을 불러서 본격적인 자신의 업무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 일을 하면서도 그의 머릿속은 뭔가 나른하고 지겨운 감성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쁘진 않은데, 너무 계속되다 보니 은연중에 지루함이 깃든 것 같은 상황?
아무리 맛있고 좋은 음식이라도 계속 먹으면 물리는, 그런 원리였다.
‘으음~ 뭔가 자극이 필요해. 하지만 웬만한 곳은 다 건드렸고, 모녀 덮밥 같은 것도 진작 다 해 봐서 시시하단 말이지.’
가뜩이나 지루한데, 더 재미없는 일을 시키니 일할 의욕이 나지 않는 뤼카이온이었다.
그렇게 사무적인 ‘씨 뿌리기’ 작업을 끝내고 난 뒤, 조금이라도 간부들의 의견에 신경 써 달라는 유피테르 가드들의 잔소리에 어쩔 수 없이 유성원의 파일이라도 보기로 했다.
“참 나, 내가 이걸 본다고 해서 뭐가 되겠냐고?”
[그래도 길드원으로서의 자각 정도는 있으셔야 합니다. 또한 일단은 한국 지부 책임자 아니십니까?]
“내가 여기 있는 걸로 아카데미아라든가, 신규 길드 지망생이 뚝 사라지는데, 뭐가 책임자야? 흥.”
[…….]
“젠장!”
저 친위대라고 붙어 있는 유피테르 가드도 결국엔 길드의 일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보존해 주고 지켜 주는 존재일 뿐, 감정적 교류나 유대감을 쌓은 게 아니다.
그저 업무를 위해서 지켜 주고, 지킴을 받는 관계. 그런 만큼 업무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면 놈들과는 단 한마디도 주고받지 않았다.
여자에 대한 농을 한다든가, 술을 마신다든가, 식사를 한다든가. 모두 권해 보았지만 저놈들은 아무것도 응하지 않고 오직 저런 태도뿐이었다.
“아, 됐어. 내 마음대로 하지. 너희는 너희 일이나 하라고!”
지루함도 짜증 나는데, 저 유피테르 가드 놈들이 더 짜증 나게 해서 환장할 지경이었다.
그래서 유성원의 파일을 집어 던지려는데, 슬쩍 드러난 그의 가족에 대한 자료에 눈이 가는 그였다.
그러자 무언가 머릿속에 번뜩인 그는 집중해서 그것을 보기 시작했고, 새로운 재미있는 것을 찾았는지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