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8화]
성좌 종말자의 코어 던전.
성좌 종말자와의 대화로 인해 승리에 대한 모든 조건도 들어 놨겠다, 눈앞에 보이는 모든 골렘과 종말기장만을 쓰러뜨리면 된다는 심플한 조건에 감사해야 했지만, 조건이 쉽다고 해서 난이도가 쉬운 건 아니었다.
지평선을 가득히 메우고 있는 골렘 군단의 처리는 오히려 단순한 병력이기에 쉬울 수 있었지만, 역시 만만치 않은 것은 종말기장. 하나하나가 SS급 헌터에 비견되는 마력, 거기에 성좌가 직접 만든 ‘기계’라는 점에서 초월적인 성능이 있는 건 예상하고 있었다.
[대상의… 전투 레벨이 상승. 이쪽도 대응 레벨을 상승시킵니다. 탈것인 황금 용을 중점으로 노리겠음.]
“그거 비겁한 거 아니냐? 아니지… 대상 선언을 했으니 비겁하지 않은 건가? 으음… 미묘하다. 엘드라엔, 어떻게 생각해?”
[…일단 이 고된 회피 기동을 끝내고, 널 땅 밑에 던져 버리고 싶구나.]
콰아아아앙!
유성원이 상대 중인 것은 종말기장 베타. 현재 지구를 침략한 종말기장들 중 서열 2위인 기체로 알파는 이 전장에 없으므로 사실상 최종 보스 격인 기체.
그 외에도 19대의 종말기장들도 만만치 않았지만, 이놈은 가장 만만하지 않았다.
낙천적인 말로 어떻게든 힘겨움을 숨기고자 했지만 실제 상황은 역시 만만치 않았다.
‘젠장! 무재가 있는데도 이렇게 힘들다니……!’
[대상의 전투 레벨이 또다시 상승… 대응 레벨을 추가로 상승합니다.]
“아이, 씨! 진짜 그만해!”
[해당 명령은 거부되었습니다.]
전투는 계속해서 서로 작용과 반작용이 이루어지듯, 유성원이 무재로 적응해 나가면 금방 종말기장 베타가 또 가속을 올렸다.
인간의 재능엔 한계가 없다곤 하지만, 인간의 육체엔 골격과 근육의 가동 영역의 한계라는 게 존재했다.
“크윽!”
[0010011010101010]
티탄의 말뚝과 초진동검의 충격. 인간의 육체 기동 한계를 넘는 수가 찔러 들어오는 것을 막으려면 그것보다 더 빠르게 움직여야 하고, 손과 발 모두 사용해야 했기에 서서히 감당하기 힘들어지는 유성원이었다.
게다가 상대는 엘드라엔을 우선으로 노리기 때문에 역으로 그것까지 보호해야 해서 더 힘들었다.
‘막아 내는 것도 버거워. 그러면…….’
각오를 다진 유성원은 방어를 하다가 타이밍을 잡고 엘드라엔의 등에서 뛰어 종말기장 베타의 팔을 붙들고 품 안으로 파고들어 끌어안았다.
차라리 땅에 떨어져서 싸우는 게 속 편하겠다는 유성원의 계획으로 그가 예상 밖의 행동을 하자 종말기장 베타에게서 기묘한 소리가 났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 중량 과부하 감지. 그러나 중량으로는 비행 시스템 파괴 및 부하를 늘리는 것은 불가능. 출력 상승으로 해결.]
콰아아아!
티탄의 말뚝을 들고 있는 유성원의 무게는 예상보다 다소 부하는 심해졌지만 출력을 올리는 것으로 충분히 감당이 가능하다고 자신 있게 말하면서 종말기장 베타는 유성원이 잡은 팔을 풀고 초진동검을 휘두르려고 했지만, 유성원은 그럴 틈을 주지 않았다.
“그래? 그럼 이건 어때?”
투투투투투투!
유성원은 끌어안은 품 안으로 여분의 티탄의 말뚝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그래, 심심하면 엘드라엔의 위에서 ‘투창’ 역할로 던지려고 상점에서 사 두었던 그 물건들이다.
그리고 그것들이 꼬옥 끌어안고 있는 유성원과 종말기장 베타 사이에 쏟아지자 엄청난 중량이 둘에게 실렸다.
[통제할 수 없는 중량 감지.]
“본래 티탄을 묶기 위해서 만들어진 물건이다. 하나로도 엄청난 무게를 가지고 있지만 여럿이면 더 무겁지!”
[비행 유닛 최대 출력. 현재 기체 통제 불가. 추락에 대비합니…….]
“아니!”
하지만 아직 전투 중이라는 걸 자각한 유성원은 자신의 머리로 종말기장 베타의 머리를 들이받았다.
다른 짓을 못하게 하려고 했지만 이미 기계라서 실행이 가능한 건지 추락하는 가운데에서도 종말기장 베타의 등 뒤로 반투명한 막이 생성되기 시작했으나 이미 땅에 거의 도착한 상태. 유성원이 위에 있는 채로 그대로 땅에 도달한 것이다.
“이미 늦었어!”
쿠우우웅!
땅 밑에 있던 골렘들과 함께 휩쓸려 거대한 충격음과 먼지를 퍼뜨리는 유성원과 종말기장 베타. 하지만 둘 다 이 정도로 쓰러질 레벨이 아니기에 금방 벌떡 일어서기 전에 유성원은 잡고 있던 티탄의 말뚝의 아래에 있는 날 부분을 그대로 등 쪽 비행을 담당하는 기기 부분에 꽂아 버렸다.
“잡았다! 이 말뚝, 본래 이 용도거든! 크윽!”
하지만 종말기장 베타의 초진동검이 유성원의 복부를 관통했고, 그대로 수평으로 가르려고 했지만 유성원은 다급히 초진동검을 잡은 손 부분을 발로 차서 뒤로 빼냈다.
[시스템 체크. 비행 기능 상실. 하나 자동 수복 가능. 그리고 전투 속행 가능.]
“으윽… 덕분에 나도 이럴 때 먹으려고 쌓아 둔 약들을 먹을 수 있게 돼서 아주 감사하다!”
티탄의 말뚝에 의해 부서진 비행 모듈 부분이 서서히 복구되어 가는 광경과 동시에 유성원도 포션을 입에 털어 넣었다.
서로 한 방씩 먹인 치열한 싸움 속에서 서로를 노려보는 둘.
그나마 지상에서 싸우기 편한 상태인 이 시간을 낭비할 수 없던 유성원은 패황 기사 유천의 검을 빼 들고서 다시 달려들기 시작했다.
[젠장, 깡통 이거 너무 단단한걸? 꼬꼬곡!]
[꽈악! 코어… 코어를 노려라. 멍청한 닭대가리야.]
[시끄러. 아오! 안 부서지잖아!]
그리고 유성원이 분투를 하는 동안에도 다른 이들의 전쟁은 지속되고 있었다.
성좌 도살왕의 사도인 레그혼과 덕덕은 골렘 전선을 지원하는 중으로 골렘들의 코어를 뽑으며 분투하고 있었다.
수많은 골렘들과 사투를 벌이는 천검군, 남은 19대의 종말기장과 맞서 싸우는 기사들. 유성원과 달리 기사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는데, 바로 종말기장들이 가진 특수한 장비 때문이었다.
“젠장, 뭐야, 이거? 마력을 두른 검이 통째로 잘렸다고?”
[하이퍼 플라즈마 플레임 커터(Hyper Plasma Flame Cutter)입니다. 마정석 코어 엔진에서 나오는 이 고출력 절삭기는 고작 그런 원시적인 쇳덩이와 인체의 마력으론 막아 낼 수 없습니다.]
“말이 많은 깡통이군. 제길!”
천검군 제1부대장 진석은 잘려 나갔지만 피가 나오지 않는 왼팔과 반으로 갈라진 검을 잡고, 자신의 앞에 선 종말기장을 노려보았다.
과연 멸망급 성좌의 부하라고 해야 할까? 상식을 넘어선 무기의 화력과 위력이 결국 인간 ‘중’에서 빛나던 ‘기사’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드레이크 미사일 전탄 발사.]
[제1종 철갑탄으로 뚫리지는 않음. 제3종 아다만티움 철갑탄 사용 승인됨. 오토 개틀링 캐논 발사.]
[제아무리 단련했다고 한들 인체 기관. 솔라 레이 버스트를 직접 보고도 시신경을 보존하리라 생각하면 오산.]
[라이트닝 블래스터, 제2파 발사 준비 완료.]
SF에서 본 것 같지만 그보다 훨씬 더 강력한 이 무기들은 효율적으로 인체를 파괴하기 위해 연구된 각종 무기들이었다.
넓은 범위를 커버하는 미사일, 아다만티움 철갑탄, 보기만 해도 안구를 직접 태워 버리는 열광선, 전력을 담은 뇌전포.
개중엔 기사들 개개인의 능력으로 막아 낼 수 있는 것도 있었지만 그 방어의 한계를 넘어선 것은 무조건 피해야 했고, 당하게 되면 여지없이 육체와 신체를 파괴하고 있었다.
“으윽!”
“끄아아아아!”
“눈… 내 눈이! 하지만 그 정도로 물러설 수 없지!”
‘음… 이거 좋은 상황은 아니군요.’
전투에 참여하고 있는 유청은 저 첨단 무기의 향연으로 싸워 대는 종말기장들을 보며 곤란하게 여기고 있었다.
현재 저 고출력 첨단 무기들 앞에 기사들은 인간을 넘어선 초인의 경지이며 다들 하나씩 전설을 가진 자들이라 잘 버티고 있었지만, 이 상황이 지속돼서 좋을 게 없었다.
‘일단 병사들은 잘 싸우고 있지만 계속 쓰러지고 있고, 우리 기사들을 포함해서 다들 지금은 잘 버티고 있지만 고전하고 있다. 무엇보다 문제는 저 기계들은 체력의 안배라는 것 없이 계속해서 싸울 수 있는 반면 우리 쪽은 싸움에서 소모가 일어나고 있다. 조금이라도 휴식을 해야 하지만 20기나 되는 기체들을 감당하기가 힘들어.’
“제발 좀 죽어라!”
[거부한다.]
‘다들 상처 입으면서도 분투하고 있지만 문제는 승리할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 뭔가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할 것 같은데… 음?’
콰아아아아아앙!
그렇게 고뇌하는 유청의 눈앞에 한 줄기 서광이 내비치듯 전장을 뒤흔드는 거대한 폭발 소리가 들려왔다.
너무나 엄청난 폭발이라서 전장에 있는 모두 잠시 전투를 멈추고 그 후폭풍을 견딜 정도라 종말기장들을 포함해서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유성원과 기사들은 무슨 일인지 궁금해하는 반면, 종말기장들은 마치 있을 수 없는 일이라도 보듯 지지직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시끄러움을 표하고 있었다.
[…처리 완료. 나 은하 기사 아칼론, 숙명을 베었노라.]
“아칼론 경! 설마 혼자서?”
‘그러고 보니 저 녀석, 이 녀석들에 대해 아는 것 같았었지.’
폭발의 여파가 사라진 곳에 고고히 서 있는 KMG 아칼론.
승리를 선언하는 그의 손에는 넝마가 되어 활동을 정지한 종말기장의 본체가 들려 있었다.
그리고 그의 주변에 아무도 없는 모습을 보아하니 그는 혼자서 종말기장과 싸워 승리를 쟁취한 것이었다.
[이해 불능. ‘KMG-아칼론’의 스펙은 ‘종말기장 이타(η)’를 압도하지 못함.]
깜짝 놀란 종말기장 베타는 유성원마저 버려두고 아칼론에게 달려가서 그를 노려보며 항의하듯 말하고 있었다.
하나 공중에 떠 있는 아칼론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종말기장 베타를 바라보며 담담히 대답했다.
[인정함. 하나 아쉽게도 귀하들의 정보는 내 데이터베이스 안에 있음. 수많은 별들을 황무지로 만든 악명 높은 ‘종말의 세력’. 은하를 누비는 우리와 이미 수없이 대면했었음.]
“아니, 그런 게 있으면 진작 말하지.”
[마스터에게 알리지 않은 것은 ‘성좌 종말자’와 협력할 가능성이 존재했기 때문임. 만약 그랬을 경우 나는 마스터를 멈춰야 했음. 하나 마스터는 옳은 선택을 했음.]
종말기장 베타를 쫓아와서 혼자 중얼거리는 유성원에게 설명까지 덧붙여 주는 아칼론이었다.
하지만 종말기장 베타는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아칼론의 말에 반박했다.
[정보가 있으면 오히려 승패의 차이를 앎. 불가능에 도전하여 리소스를 낭비하는 건 어리석은 일임.]
[‘별’에게서 직접 벼려진 그대들과 달리 나는 우주를 구하고 지키고자 하는 ‘은하 기사(銀河騎士)’의 손에 만들어진 존재. 같은 기계라곤 하나 그 목적과 의지는 확연히 다름.]
[의지? 이해 불명. 우리는 도구(Tool)임. 그것에 의지가 있을 리 없음.]
[나는 ‘은하 기사’의 손에 만들어진 ‘검’. 성인(聖人)의 검. ‘아스카론’의 이름을 본뜬 자. 만들어졌다곤 해도 나에겐 ‘인간’의 의지와 꿈이 실려 있음. 그게 본 나와 너의 차이임. ‘종말기장 베타’.]
[부정. 부정. 부정. 부정.]
아칼론의 말을 들은 ‘종말기장 베타’는 눈 부분에 붉은빛을 점멸하면서 초진동검을 들고 복구된 비행 모듈을 이용해서 아칼론에게 달려들었다.
하나 아칼론 또한 호버 바이크를 탄 채로 자신의 검을 들고 ‘종말기장 베타’를 향해 맞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