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화]
그로부터 2주 뒤.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다고, 곧 성좌 용봉왕의 중국에 이변이 생긴 것을 주변에서 알아차리게 되었다.
일단 궁금증을 가진 것은 먼저 내부 인원 및 성좌 용봉왕의 나라에 몰래 숨어 들어와 있는 주변국 요원들로, 현재 성좌 용봉왕의 시스템이 깨어졌는데 복구 작업이 너무 늦어지고 있다는 점에서부터 시작해서 근위대장 및 각 지방의 군부대를 지휘하는 지휘관들이 급격히 모여들기 시작한다는 정보가 외국에 넘어간 것이었다.
또한 일부는 아예 군사 위성을 통해 첩보 활동까지 해 대고 있었으니, 더 이상 숨기려고 해도 숨길 수 없었다.
“…이를 어쩌죠? 유성원 헌터님?”
“어쩌긴. 당연히 닥쳐올 거라 예상한 거잖아. 왜 그래? 그나마 다행인 건 중국 공산당이 지금 개쫄아서 머뭇거리고 있다는 거지.”
다른 나라들은 이미 정황적으로 파악하고 있었지만 다행히 국가 시스템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고, 또 이게 혹시 성좌 용봉왕의 계획이거나 함정일 경우까지 상정하느라 다들 쉽게 못 움직이고 있는 게 일말의 다행이었다.
그리고 정보의 불확실성을 보조해 줄 내부의 배신자 같은 게 전혀 없는 곳이라는 게 또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분명 나쁜 요소인데… 이럴 땐 정말 다행이란 말이지.”
“예. 오로지 외부에서의 정황만 수집해서 알아내야 하는 만큼 확신을 얻기 힘들겠지요. 하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면 내부에서도 의심이 생길 겁니다.”
유청의 말대로 시간은 한정되어 있었고, 빨리 새로운 정부 구조를 만들지 않으면 주변국에서 노리고 들어올 것이다.
그래서 근위대장들 및 성좌 용봉왕의 측근들과 지도층들을 모아서 회의를 구성하여 운영할 체제를 고민시켰지만, 이렇다 할 뾰족한 수도 없고 그렇다고 좋은 방안 같은 게 나온 것이 아니며 그저 자기들끼리 의견만 빙빙 돌리고 있었다.
“아니, 보통은 이런 때에 나, 정점! 할 인간이 수두룩 빽빽하지 않나?”
“여기 특성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자기 일에 만족하며 살아가도록 교육시키고, 또 그게 가장 좋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게다가 각 지위의 책임 소재가 명확한 점도 한몫하고 있습니다. 수억 민초의 목숨을 짊어진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니…….”
“여기서 계속 있을 수 없는데, 어쩐다?”
“그리고 제가 슬쩍 가 보니까 다들 어안이 벙벙하던데요? 뚜렷한 의견도 없고 눈치만 보고. 특단의 조치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결국 그런가?”
이번만큼은 유성원도 더 이상 방안이 없는 만큼 결국 스스로 아무것도 못하는 근위대장들과 이곳의 관료들을 모아서 다시 회의를 열었다.
“벌써 2주나 지났어. 시간 끄는 것도 서서히 한계고… 러시아군은 국경에 이미 군과 헌터 부대를 배치하기 시작했어. 이 나라 안에 있는 첩자들이 정보를 전한 거겠지. 한데 댁들은 아직 지도자 대표라든가 그런 거 하나도 선택 못했지?”
“하려고는 했지만 뭐든 다 결점이 있어서…….”
“그거야 당연한 거고… 최선을 골라야지. 하아아~ 아무튼 이제 시간이 많이 없어. 굳건한 체계로 변한다는 걸 보여 주지 못하면 자칫하면 여기서 세계 제3차대전이 발발하게 돼. 최소한 진두지휘를 할 양반이 있어야지. 보자… 그냥 서열로 할까? 제1근위대장?”
“모, 못합니다. 저는 절대 못합니다. 그… 무에 재능이 있어서 각성하긴 했지만 그, 그런 거 맡으면 밤에 잠도 못 자고 신경 쓰여서…….”
성좌 용봉왕의 판별의 단점까지 겹쳐 놓으니 돌아 버릴 지경인 유성원이었다.
재능과 성격이 꼭 일치한다고 볼 수 없는 이 현실 속에 결국 제1근위대장도 이 꼴이니, 당장 수뇌부 구성을 해야 하는데 답이 안 나오는 것이었다.
“…뭐, 걷지도 못하는 사람한테 뛰라고 강요할 순 없으니 일단 구성을 해. 형태라도… 그리고 유청이랑 천검군 애들 붙여 줄게. 배워! 내가 욕 좀 먹겠지만 어쩔 수 없지.”
“배… 배우라굽쇼?”
“그래, 어쩔 거야. 중국 공산당이나 러시아에 먹히는 것보단 낫잖아. 심지어 저 러시아 놈들이 먹으면 여기 사람들 막 제2국민 같은 처지가 될걸? 애초에 융화도 안 되잖아. 인간의 가능성을 생각할 정도로 내가 희망찬 인간은 아니라서 말이지.”
성좌들의 존재가 나타남으로 인해 인종과 문화의 갈등은 예전보다 강해진 편이었다.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신화와 문화에 가까운 성좌들로 서로 뭉치고 서로 추구하는 것으로 인해 서로를 적대시까지 하는 만큼 혼란한 상태였다.
이미 성좌가 국가 운영의 핵심을 장악한 곳까지 있고, 그들은 외부의 적이 내부를 단결시키는 데 최고의 효과를 가지고 있음을 알기에 그 전략을 잘 사용하는 중이었다.
“분명 내정 간섭이니, 실질적인 지배니 어쩌니 하면서 태클 엄청 들어오겠지만 어쩌겠어. 나는 성좌만 없애면 그만이지, 세계에 멸망 전쟁을 일으키곤 싶지 않아. 아니면 대안 있어?”
“그,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나도 이렇게 강요하는 형태로 하고 싶지 않은데… 하아아아~ 아무튼 이거 내정 간섭인 거 알고 있고, 유청아~ 일하자. 대표는 제1근위대장 네가 해. 이름만 올려 두고 책임은 유청이 지도록 조율해 줄게.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아, 알겠습니다.”
결국 제1근위대장을 수뇌로, 유청을 보좌관으로 둔 임시 정부 형태로 시작하게 되었다.
사실상 외부에서 보기엔 유성원의 꼭두각시 정부 같은 것이지만 물론 지배받는 당사자도 다 알고, 하는 쪽이 더 싫은 형태였다.
하나, 양측 모두 수억에 달하는 국민들과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선 다른 방안이 없기에 협조할 수밖에 없었다.
***
정통성과 명분. 거추장스러운 것이라고, 쓸모없는 것이라고 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그래도 인간 사회에 있어서 아직 중요한 것이었다.
성좌 용봉왕의 사망,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본체는 여전히 저 하늘 높은 곳에 있겠지만 이곳 지구에서는 더 이상 존재를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이른바 게임 오버로, 더 이상 참여할 수 없는, 그런 상태와 비슷하게 된 것이었다.
『…고로 이번 ‘성좌 용봉왕’ 님의 욕심으로 말미암아 일어난 분쟁으로 결국 추방되었고, 제1근위대장 장범 님의 지휘 아래에서 ‘국가 재건 위원회’를 새로이 설립, 임시로 국가 운영을 하게 될 것입니다. 제1근위대장 장범 님은 이후 국민 투표를 통해서 국가 체제를 정하여 ‘성좌 용봉왕’ 님이 계셨던 시대를 계속 이어 나갈 것이라고…….』
“저, 저게 무슨 개소리야? 성좌 용봉왕이 사라졌으면 당연히 우리 인민 정부의 품으로 돌아와야지 않나?”
“그, 그렇습니다, 주석님. 이건…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제기랄! 이걸 좀 더 일찍 알았다면…….”
그리고 중화인민공화국, 중국 공산당 정부는 성좌 용봉왕이 사라졌다는 뉴스를 보면서 속앓이를 하는 중이었다.
근래 조짐이 이상하긴 했지만 유성원 헌터가 성좌 용봉왕과 손을 잡고 남하할지도 모른다는 보고서가 올라온 탓에 중국 공산당 정부는 그저 국경 수비를 강화하고 어떠한 공세나 외교적 도발을 일체 하지 않고 있었다.
“일단 위원회를 구성한다고 하긴 했습니다만, 내부엔 유성원 헌터의 부하들이 자리하고 있어서 사실상 괴뢰 정부가 될 걸로 보입니다.”
“아무튼 유성원 헌터 놈에게 빨리 국제 서신을 보내서 항의하게! 그리고 러시아, 미국에도 같이 항의해 달라고 연락하고! 멀쩡한 정부가 있는데! 무슨 괴뢰 정부를 세운다는 말도 안 되는 짓거리를!”
형태만 보고도 괴뢰 정부라는 걸 알기 쉬운 만큼 중국 공산당 정부는 곧바로 항의 서한을 보냈고, 외교 채널을 총동원하여 압박을 넣기 위해 애썼다.
하나 그렇다고 상대가 드리겠습니다! 할 리가 없기 때문에 주석은 무력적 수단까지 준비를 명했다.
“국경에 군을 보내 놔! 공군, 해군 모조리! 그리고 우리 헌터 부대도 싹 다!”
“하지만 그러면 서쪽의 경계가 허술해지는데… 성좌 진황의 부대는 견제 안 해도 되겠습니까?”
“그 진흙 덩어리 자식도 생각이 있으면 우리보단 저쪽 본토를 노리겠지! 아무튼 시키는 대로나 해!”
그렇게 외교적 수단과 함께 군대까지 투입할 준비를 하는 중국 공산당이었다.
어떤 일이 일어나서 성좌 용봉왕이 사라진 건지는 모르지만, 북경을 비롯한 중국의 중심 지역은 반드시 회복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각성자의 시대까진 수많은 헌터들로 인해 잘나가던 중국이었지만, 성좌의 시대가 시작되고 성좌 용봉왕에게 하북 지역과 그 주변을 빼앗기고, 성좌 진황, 성좌 도살왕으로 인해 네 갈래로 찢어진 뒤로는 위용이 사라진 중국이었다.
“반드시… 우리는 대중화의 시대로 돌아가야만 해. 근 수십 년간 우리가 겪은 굴욕을 잊었다고 하는 겐가?”
“아, 아닙니다.”
넷으로 갈라진 중국 공산당 정부가 더 이상 국제 사회에서 예전 같은 취급을 받을 수 없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단순히 보면 국력이 4분의 1. 그렇다곤 해도 여전히 인구수 수억에 달하는 국가였지만 현재 위상은 세계 최강국, G2라고 이름을 날렸던 시대에 비하면 낭떠러지 레벨로 추락한 신세였다.
국가가 쪼개지니 이빨을 감추고 있던 주변국과 타국에서 과거 아편전쟁 이후 중국을 뜯어먹던 열강들처럼 무자비하게 중국에 횡포를 부리기 시작했다.
물론 그것이 자신들이 그동안 부렸던 패악질의 결과물이라는 것은 전혀 깨닫지 못했다.
모든 것은 중화(中華)의 패권을 위해 저지른 것이라고 이미 마음속에서 합리화해 버렸기 때문이다.
“지금 되찾아야 해. 아직… 아직 제대로 혼란을 수습하지 못했을 거야. 아니, 했더라도 지금! 완전히 정통성 있는 정부의 형태를 갖추지 못했을 터. 지금 균열을 내야만 본래의 중화인민공화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조금은… 성좌 진황에 대해서도 고려해 주십시오. 놈은 성좌 용봉왕의 영토엔 하나도 피해를 안 입히면서 저희 산업 단지와 각종 공장, 시설에 계속 테러를 가하고 있습니다. 일시적으로 군을 빼면 더 큰 피해가…….”
“부서진 시설은 다시 지을 수 있네. 하지만 성좌 용봉왕이 무단 점거했던 우리 땅은 지금이 아니면 돌려받는 게 불가능할 수 있어. 어쩌면… 최악의 경우 우리가 그들에게 흡수되는 형태가 될 수도 있지.”
“그, 그렇죠. 지금 그쪽은…….”
성좌 용봉왕이 직접 운영하는 중국과 4분의 1로 줄어들어서 운영되는 중국 공산당의 국가적 역량 차이는 이미 수십 년 동안 무서운 속도로 벌어져 버렸다.
성좌 용봉왕은 인간의 재능을 꿰뚫어 보고 그에 맞는 지위와 대우를 해 주는 극단적인 효율 정책으로 꽌시와 각종 부정부패, 벌어진 계층 카르텔로 인해 인재 풀을 제대로 활용 못하는 중국 공산당 정부와 차이가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만큼 지금 그곳을 얻는다면 중국 공산당 정부는 과거의 영광을 되살릴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곳을 회복해야 한다. 지금 이대로 고사(枯死)하는 것보단 나은 선택일 거야. 다소 무리를 하더라도 반드시 수복해야 한다.”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외교부는 뭐 하고 있나? 답변서는 준비되었나?”
“예. 지금 올라온다고 합니다. 곧바로 보낸 다음 UN에도 회의를 소집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주석의 명대로 그들은 이 좋은 기회를 토대로 성좌 용봉왕에게 빼앗겼던 영토를 찾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상대가 이미 이것을 예상하고 움직였더라도 지금 아무것도 안 한다면 후회할 거라고 생각하기에 그들은 알아도 움직일 수밖에 없는 처지인 셈이다.
그리고 그들의 소식은 자금성에서 아직도 체류 중인 유성원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정확히는 현 국가 수뇌인 제1근위대장에게였지만, 곧바로 그의 손에서 유청에게 넘어가고 유성원에게 넘어갔다.
“하… 이거 제대로 화났네. 성좌 용봉왕이 무단 점거하던 땅은 본래 우리 중화인민공화국의 것이다. 그가 사라졌으면 중화인민공화국의 품으로 돌려줘야 하는 것이 당연하며 인민들을 우리의 품으로 되돌려 보내라… 인가? 뻔한 소리네.”
“이제 여기서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중요하겠죠. 일단 돌려줄 생각은 전혀 없지만요.”
“그렇지. 줄 생각 절대 없지. 주면 무슨 꼴 날지 훤히 보이는데…….”
과거 저 잘난 중화인민공화국에 영국이 돌려준 홍콩이 어떻게 되었는가?
또 그들이 세계의 패권에 가까웠을 때 무슨 짓을 저질렀는가?
심지어 국토가 4분의 1로 쪼개지고도 그들은 정신을 차리지 않았다.
고로 인류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절대 해선 안 되는 행위가 바로 이 성좌 용봉왕의 땅을 그들에게 돌려주는 것임은 무조건 확정이었다.
“그러면 이제 이걸 어떻게 거부하느냐, 인데. 준비는 해 놓았지. 문제는… 갑자기 무력 도발을 하느니 어쩌니 하는 건데…….”
“그, 그! 국경에 중공군들이 모여들고 있다는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저희 근위대도 출동했고, 그…….”
“천군대장군을 보내 놨어. 여차하면 한국 전쟁 때 당한 걸 그대로 갚아 줄 수 있을 것 같아.”
오래전 한국 전쟁 때 북한에서 머리수로 밀어붙였던 물량 공세를 생각하며 일본을 고생시켰던 무한의 사령 군단들로 대응할 준비를 마쳐 놓은 상태였다.
“아무튼 이쪽은 예정대로 일을 진행하면 되고, 그리고 다음 건…….”
“성좌 진황 측에서 보낸 서류입니다.”
“그래, 이게 문제지. 쩝…….”
중국을 4등분한 또 하나의 성좌 세력. 성좌 진황에게 보낸 서찰의 답신이 와 있었다.
어쩌면 이번 사태를 해결할 열쇠가 될지 모르는 세력. 중국 서부를 장악하고 있는 그들은 성좌 용봉왕의 세력과 맞먹는 강력한 정령 군단과 각종 원소 마법들로 무장한 군대를 보유 중이었다.
그렇기에 이 서찰의 내용은 매우 중요한 것이었고, 유성원은 그것을 조심스럽게 풀어 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