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화]
“그럼 작전을 시작하겠습니다.”
그런 암운을 느끼지 못한 채로 길드의 헌터들과 특무부대원들을 태운 수송기는 작전 지역으로 출발했고, 그렇게 일본의 토벌 작전은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우선 위성 장치로 나고야 서부에 있는 대장군급 몬스터의 위치를 확인하는 것. 대부분 성 소환을 하기 때문에 위치를 찾는 건 아주 쉬운 일이었다.
그다음엔 나고야 기지를 비롯해서 폭격기, 해군, 미사일 기지에서 일제히 화력이 쏟아져 내렸다.
“강하 지점에 착탄! 하지만 계속해서 던전 안에서 사령병들이 튀어나오고 있습니다.”
“계속 쏟아부어라. 쏘면 쏠수록 아군이 안전해진다! 퇴로 쪽도 계속 쏴라!”
여기까지는 세계 공통 전략이나 마찬가지였다.
선제 화력 투사 후 각성자 및 헌터 후진입, 그리고 S급 몬스터인 대장군 시리즈를 노리고 9명의 S급들이 일제 공격, 나머지는 주변에 진을 친 채로 아군과 수송기를 보호하며 싸우면서 자리를 지키다가 S급 헌터들이 대장군을 쓰러뜨리면 같이 일제히 퇴각하는 전술이었다.
수송기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S급 헌터들도 슬슬 움직일 준비를 시작했다.
[슬슬 오사카 상공입니다. 준비하시길 바랍니다.]
“음, 역시 국내라서 그런가, 금방 도달하는군. 자, 다들 준비합시다. 그리고 한 번 더 당부 차 말씀드립니다. 이번 토벌은 우리 일본의 명예가 걸린 중요한 사업입니다. 그러니 각자 욕심을 거두고, 반드시 서로 협력해서 S급을 토벌합시다. 아시겠습니까?”
“물론이네.”
“썩 마음에 들진 않지만 어쩔 수 없지.”
“…일단 이번만큼은 아무것도 안 하겠네.”
마지막으로 당부에 당부를 더해서 이번에야말로 성공하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후지와라 길드장이었다.
이번 성공을 위해 그는 길드의 재정과 이익을 생각하지 않고 각종 아이템과 부적들을 구매해서 모두에게 제공까지 했다.
그런 진심을 보여 주었기에 다른 길드들도 그가 대장을 맡은 것에 대해 별 불만을 이야기하지 않고 잠자코 따라온 것이다.
[S급 몬스터 ‘화군대장군(火軍大將軍)’ 발견했습니다! 현재 자신의 성이 부서진 것을 보고 화가 나서 사령병들에게 고치라고 난리입니다.]
“후우~ 좋아! 다들 돌입 준비합시다! 대일본의 미래를 위한 첫걸……!”
콰아아앙!
위대한 한 걸음이 시작되려는 순간, 갑자기 폭발음과 함께 기체가 크게 요동쳤다.
갑작스러운 사태였지만 기체 안에 있던 S급 헌터들은 침착하게 사태의 원인을 살피기 시작했다.
“밑에서 공격인가?”
“아뇨. 제 천리안 스킬로 본 결과 외부에서 공격은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내부에서 난리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안 좋은 소식이지만, 저희와 같이 오고 있는 다른 수송기들도 현재 폭발 중입니다.”
“뭐라고?”
“외부의 상태를 살필 때가 아닐세. 우리도 그렇고 모든 수송기의 기체 내부에서 폭발이 일어났다는 거군. 내가 살펴볼 테니 다들 강하 준비하게. 그림자 은둔술.”
검은 연기로 변한 닌자복을 입은 S급 헌터 하나가 후방의 사태를 살피러 갔고, 하세가와를 비롯한 8명은 곧바로 하강 준비를 했다.
카와사키 길드의 닌자 마스터 클래스인 헌터 무명(無名)은 엔진실로 곧바로 향했는데, 거기엔 누군가가 미친 듯이 웃으면서 계속해서 폭발물을 던져 터뜨리고 있었다.
“딱 봐도 네놈이 범인이군. 어디서 온 누구지?”
“흐히히히… 흐히히히… 이제… 이제 내 마지막 일이 끝났다… 히히히… 이제 푹 쉴 수 있어… 히히히.”
범인은 30대 중반의 남성으로 나고야 기지의 작업복을 입고 있었다.
눈동자가 반쯤 안 보이는 상태로 짙은 다크서클에 새파래진 안색으로 보아 정신 상태든 육체 상태든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제정신이 아닌 것 같군.’
“어라아? 이게 누구야? 잘나신 헌터님 아니야? 히히히… 어때? 너희가 고대하고 열심히 준비해 온 것들이… 나 같은… 나 같은 아무것도 아닌 놈에게 망쳐지는 기분이 말이야!”
“…….”
“흐하하하핫! 무슨 말이라도 해 보라고! 너희가 먼저 잘못한 거야! 사람을… 사람을 어떻게 하루 20시간씩 일을 시킬 수가 있냐고! 우리가 기계냐고… 흐하… 흐하핫! 일본 본토의 미래든 뭐든… 결국 너희는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들의 생활은 전혀 생각도 안 하고 있잖아. 흐하하핫… 가미카제니 뭐니 하던 제국주의 시대랑 뭐가 달라! 히히히히힛!”
들어 줄 사람이 생기자 울분이 터진 듯 남성은 미친 듯이 말을 쏟아 내면서 계속해서 격발기를 눌러 폭발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착지에 적합한 높이가 되기도 전에 수송기가 더 손상을 입어선 안 되기에 무명은 보이지 않는 속도로 표창을 날려 범인의 목을 꿰뚫었다.
“흐힛… 컥!”
“망할 쥐새끼!”
약 반년, 성좌 66천마의 군세를 토벌하기 위해 새로운 기지를 서둘러 짓느라 기존의 블랙 기업을 능가할 정도로 작업자와 기술자, 인부 모두를 쥐어짜서 날짜를 최대한 맞추는 데 성공했지만, 결국 이런 내부 폭발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이 보고를 들은 S급 헌터들은 물론 후지와라 길드장은 어처구니가 없는 걸 넘어서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뭐라고? 이 썩을 것들이! 그 자식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대체 뭐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겁니까?”
“놈은 이미 처리했소. 그리고 일이 이렇게 된 이유보다는 기장에게 이 수송기가 어떻게 되는지 물어봤소?”
길드와 협회, 일본 정부의 종합적 삽질로 인해 쥐새끼들의 인내심이 폭발해서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던 무명은 말을 돌려 수송기의 상태를 물었다.
그러자 후지와라는 표정이 더 어두워지더니 그에게 낙하산을 주며 말했다.
“지금 간신히 균형은 잡았지만 더 이상 비행은 힘들고 불시착해야 할 것 같다고 합니다. 젠장할! 어떻게 준비한 토벌인데!”
“이미 토벌은 진작 물 건너간 거나 마찬가지이지. 다음엔 인선을 제대로 짜고 인원들 피로 관리에 신경 쓰도록 해야겠소. 하나 그것도 어디까지나 저 지옥에서 살아 돌아올 수 있다는 전제하에 생각할 일이지만…….”
“아무튼 멀쩡한 수송기도 있을 테니 우리가 착륙할 곳에 오라고 하세요. 젠장! 토벌 망쳤네.”
그렇게 다른 S급 헌터들이 언성을 높이자 후지와라 길드장은 곧바로 기장실로 가서 멀쩡한 수송기를 몰고 있는 이들을 호출했다.
불시착이라 어쩔 수 없이 화력으로 정리되지 않은 수많은 사령병들과 군세들이 득실거리는 곳으로 가야 했는데, 그것을 뚫고 돌아가는 건 너무나 힘든 일이기에 반드시 다른 수송기가 필요했다.
“기장! 어떤가? 다른 수송기와 연락이 되나?”
“예. 지금 하고 있습니다. 4호기와 7호기가 내려온다고 위치를 잡아 달라고 합니다.”
“좋아! 어서 내려가자! 젠장!”
이미 S급들이 탄 수송기가 원하는 위치에 내릴 수 없는 시점에서 토벌은 실패한 거나 다름없는 상황이 되었다. 관건은 이제 무사히 돌아가느냐, 마느냐였다.
하지만 문제는 지상에서 수송기를 바라보고 있는 성좌 66천마의 대장군들이 그걸 가만둘 리 없다는 것이었다.
놈들은 자신들의 대장군을 노린다는 것을 알고 일부러 화군대장군(火軍大將軍)을 미끼로 세워 두고, 수, 목, 금, 토, 명의 대장군들을 따로 군대에서 빼서 대기시켜 놓는 계략을 세웠는데, 이상한 일이 터진 것이다.
[…저게 무슨 일이지? 왜 저리로 날아가는 거지?]
[글쎄요. 저 ‘날틀’에서 불이 솟아난 걸 보면 사고가 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다른 ‘날틀’들이 뒤따라가고 있군요. 즉, 저기에 있는 전우를 구하려는 것 같습니다, 천군대장군 님.]
[흠하하핫! 이거 아주 운이 제대로 따라 주는 것 같군. 원하는 것을 더더욱 쉽게 얻을 수 있겠어.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지. 바로 다른 대장군들에게도 연락을 넣어라! 이거야말로 천재일우의 기회이니 말이다!]
천군대장군의 호령에 지군대장군과 인군대장군은 예를 갖추고는 곧바로 각자의 군마를 불러내어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 시각, 이미 땅에 불시착한 수송기의 주변에는 근처 던전에서 나온 사령병들이 물밀 듯이 몰려들었고, 수많은 사령 군대까지 몰려왔다.
하나, 역시 S급 헌터는 존재감이 남달랐는데… 불시착하자마자 각자 화려한 스킬과 무력으로 사령 병사들을 쓸어버리고 있었다.
“뇌격일섬(雷擊一閃)!”
“부정한 것들이여, 모두 성불하라! 멸진부!”
“흡! 약한 것들이 끝없이 몰려오네만, 한시라도 빨리 착륙 지점을 확보해야 하네!”
“알겠습니다요!”
싸움에서는 유리했지만, 문제는 다른 수송기가 착륙할 지점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적진 한복판에서 사령병들이 끝없이 밀어닥치며 방해하니 돌아 버릴 지경이었지만, 살아 돌아가려면 무리해서라도 공간을 확보해야 했다.
그렇게 후지와라 길드장을 비롯해서 몇 명의 S급 헌터들이 착륙 지점을 확보했고, 곧 수송기 하나가 착륙하게 되었다.
남은 한 대는 공중에서 맴돌면서 해치를 열고 마법사와 궁수, 저격수 등등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이들이 벨트를 맨 채 지상에 있는 사령병을 제압하기 시작했다.
“됐어! 자, 빨리 다들 타! 빨리 움직여! 죽기 싫으면!”
“마법사들은 무조건 수송기의 안전부터!”
“조종사는 언제든 이륙할 수 있게 준비해 놓으라고 해!”
“저, 저기! 화군(火軍)의 깃발이! 이어서 목군(木軍), 토군(土軍)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수송기가 착륙한 것도 잠시, 이미 사냥감을 감지하고 쫓아온 다른 대장군 직속 부대들이 속속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사령장군에서부터 사령무사, 사령승병, 사령궁수 등등… A급, B급, C급의 상급 몬스터들이 각자 무기를 들고 돌입! S급 헌터들을 노리지 않고 교묘하게도 수송기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날틀… 을 제거해라!]
[날틀만 없으면 우리의 승리다아……!]
“젠장! 이 자식들, 수송기만 노리고 있어! 빨리! 막아!”
“전력을 다해서 막고 있다고! 천뢰부! 젠장! 누가 좀 수송기에서 떼어 내 봐!”
S급 헌터가 9명이나 있음에도 이 상황을 힘겨워하는 이유는 누가 뭐래도 수송기 때문이었다.
광역 섬멸 스킬을 잘못 써서 수송기가 휩쓸리게 되면 그야말로 끝인 것이다.
하나, 그래도 기본 인원이 적고 각자 무력이 높은 만큼 어찌어찌 수송기에 탑승했고, 광역 섬멸 스킬로 앞을 쓸어버리고 아슬아슬하게 대장군들이 다가오기 전에 간신히 수송기를 띄울 수 있었다.
“와, 진짜… 죽을 뻔했다.”
“그러게요. 수송기가 몇 번 터질 뻔했는데, 다행이네요.”
“토벌은 못했어도 좋은 훈련은 된 것 같습니다. 하하핫. 아무튼 빨리 가면…….”
“진짜 심장 쫄깃했네. 하하하…….”
길드의 S급 헌터들은 아슬아슬하게 살아 나온 상황을 기뻐하고 있었다.
그리고 생사를 넘나드는 전투 덕에 처음에는 그저 단순히 말로 화합을 약속했던 것을 넘어서 연대감이라는 것도 생긴 터라, 후지와라 길드장은 사고가 났지만 아주 무의미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휴우~ 그래, 우리 S급들에게 아무 피해가 없으니 다행이지. 정말로 천만다행…….’
쿠우우우웅……!
안심하던 차에 갑자기 묵직하고 큰 소리가 수송기 내에 울려 퍼졌다.
그러자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던 S급 헌터들을 비롯해서 수송기 내에 있던 모든 이들이 긴장하기 시작했다.
처음 올 때, 천리안 마법으로 밖을 보았던 헌터가 다시 마법을 써서 밖을 살피려 했지만, 그 순간 벽면 한쪽을 뚫고 불타는 검이 찔러 들어왔다.
“제, 젠장! 떨어진 게 아니었어!”
“불타는 검… 이, 이건!”
그그그극!
그리고 뚫린 틈이 벌어지면서 전신이 화염으로 불타는 갑옷을 입은 사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화군대장군(火軍大將軍). 그는 벌어진 틈 사이로 무시무시한 적의를 담아 S급 헌터들을 노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