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다음 날 아침, 아이언 포트리스 내부 식당.
인류 최후의 보루로 만들어진 곳답게 내부 식당은 많은 수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을 만큼 엄청난 규모를 자랑했다.
유성원 일행을 비롯해서 고블린들까지 배식을 받고 다 같이 식사를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유성원은 현재 가장 상석에서 벽면 쪽에 있는 대형 화면에 나오는 뉴스를 보며 젓가락질을 하는 중이었다.
『대한민국에 이런 날이 온 적이 있었을까요? 비극 같던 ‘토벌 전쟁’ 뒤, 유성원 일행의 스캐빈저 토벌에 이어 청룡 길드 또한 스캐빈저 토벌에 나서겠다고 하면서 사실상 저번 ‘토벌 전쟁’은 확실히 성과가 있었다는 정부의 이야기가…….』
“저 양반, 머리 잘 쓰네.”
대놓고 가불 패턴을 던져 놨는데, 아주 머리 좋게 빠져나가고 있었다.
자신들도 스캐빈저를 잡는다는 결정은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는데, 몬스터와 싸우는 것보다 각성자끼리 싸우는 경험을 더 많이 쌓은 건지 반나절 만에 자신들보다 더 많은 수의 조직을 처리한 것까지 뉴스에 나온 것이다.
“게다가 야간 반나절에 6개 조직이라. 역시 내전 세력 다툼의 경험이 다른 건가요? 아, 맞다. 쟤네는 밥만 먹고 내전 뛰었겠구나.”
“애초에 제공받은 정보망과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망의 차이가 클 테니까 말이지. 우린 제공받은 것에 한해서 돌 뿐이고.”
“그보다 저자가 그 푸른 도마뱀의 수괴군요. 으음… 기억해 두었습니다.”
본래라면 유성원의 좌우에는 신소미 모녀가 자리하고 있어야 했지만, 둘은 스캐빈저 토벌에는 참여하지 않고 현재 던전으로 레벨 업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보통은 유성원과 같이 레벨 업을 하곤 했지만, 그가 너무 강한 탓에 자신들 실력이 오르지 않는다면서 적절한 D급 던전을 돌면서 전투 감각을 찾기 위해서 간 것이었다.
그렇게 되자 유성원의 좌우에 자리 잡은 것은 백가연과 유청이었다.
“저기, 미리 말해 두겠는데요. 감탄하거나 생각하는 건 좋지만 우리, 회의는 회의실에서 합시다. 예? 밥 먹다 체하겠어요. 유청, 너도 마찬가지다.”
“흥, 선수를 칠 줄이야.”
“시간은 금인데 말이죠.”
아쉽다는 듯한 반응을 보이는 둘을 놔둔 채, 유성원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계속해서 뉴스를 바라보았다.
다음으로 나오는 것은 세계 소식이었다.
『다음은 세계 소식입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성좌 도살왕’ 계열의 스캐빈저와 ‘신종 아크데몬 비스트’로 보이는 몬스터가 나타나서 도심이 습격당하고, 파괴와 약탈이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이에 맞선 러시아 연방 헌터군은 큰 피해를 입고 후퇴한 상황이며, 러시아 정부는 ‘성좌 용봉왕’과 대한민국 정부에 공식적인 지원 요청을 할 것을 고려 중인 상황입니다.』
“와, 쟤네도 참 징하네. 잡초라고 해야 할까? 포기하는 법이 없네요.”
“그보다 신종 아크데몬 비스트가 더 무섭군. 기존 코어 던전에 대기하고 있던 녀석일까?”
“와규랑 닮은 ‘소’ 타입인 거 보니까 뭐, 형제나 그런 거 아니겠어요? 그리고 외양이 한우인 거 보니까… 저거 이름은 아마 ‘목X촌’이나 ‘횡X한우’ 일까요?”
“아무튼 ‘신종’이니 주의해야겠지. 그럼 다 먹었으니 먼저 가서 기다리겠네.”
밥 먹는 데서는 회의를 하지 않는다고 했으니 먼저 간다는 걸로 의사를 대신하는 백가연이었다.
그 뒤 식사가 끝나고 유청, 진석, 백가연, 최충선, 커피를 든 유성원까지 다섯이 중앙 통제실에 모여서 본격적으로 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유성원이 선수를 쳤다.
“러시아 쪽에 난리가 났지만 거기는 알아서 하라고 하고, 우린 출장 안 갈 거다. 지금 벌여 놓은 것만 해도 머리가 아플 지경이니 말이야. 알았지? 아무리 스킬이니 이거저거 있어도 내 역량으로는 한계가 있으니까 적당히 봐줘라.”
“물론입니다, 폐하. 병사도, 검도 다룰 수 있는 한계를 아는 게 최고입니다.”
‘사실 지금도 이미 용량 초과인데… 하아아~’
지금 진행하는 큰 건은 ‘청룡 길드 타도’와 ‘탈조선 영역 만들기’.
그 일환으로 자신의 인망과 명성을 높이기 위한 청룡 라인의 스캐빈저 토벌이 같이 진행되고 있었지만, 이제 조금 있으면 갈라지게 된다.
“일단 청룡의 판단은 서로의 스캐빈저 라인을 없애기로 한 것 같습니다. 아마 자기들만 정보 라인을 잃을 수 없으니 너희도 똑같이 없애라! 하는 거겠죠. 올림푸스에서는 난감해하고 있지만, 뭐… 우린 곤란할 거 없구요.”
“저희는 그런 비열한 조직 따위 안 키우니 말이죠.”
“어라? 천검군엔 그런 거 없어? 정보 조직이나 암부 같은 거? 너희 기사들이야 그런 거 안 한다고 해도 천검군엔 있을 법한데? 다음에 기회 생기면 소환해 봐야겠다.”
“소환하실 거면 보급대장 중한 경부터 소환해 주십시오. 평시 병사 운용엔 그가 최고입니다, 폐하.”
“행보관이라…….”
유청이 이름부터가 행정 보급관 냄새가 나는 기사를 추천하자, 유성원은 군대에 있을 적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참고로 지금 복무하는 병사들은 아주 예전처럼 내무 생활과 작업만 하면서 시간을 때우는 게 아니라, 실질적인 F급 던전 사냥 작업과 수색을 겸하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거기서 나오는 수입도 나름 수입이었기에 보급관들이 부대 운영에 쓴답시고 모조리 가져가 버렸고, 병사에게 돌아오는 혜택은 전무했다.
그래서인지 안 좋은 선입견이 있었다.
“으음… 일단 보류하자. 급한 것도 아니니까~ 아니면 멀블린이나 고블린 쪽에 문제 있어?”
“전혀 없습니다. 현재 거기는 고블린 병사들이 벌어다 주는 마정석을 유지비로 쓰면서 열심히 얻어 낸 단서를 통해 새로운 자원 개발에 힘쓰는 중입니다. 원래부터 기질이 있던 건지 생각보다 수월하더군요.”
“뭐, 보통 고블린들이 선하지는 않아도 멍청한 종족은 아니라고 나오니까. 아무튼 충선 아저씨는 그쪽에 지원 사업하는 거 준비는 어떻게 되어 가나요? 다녀오기도 했잖아요.”
남쪽 삼도 지원 사업. 당연히 전라도도 들어가기에 고향에 대해 잘 아는 최충선에게 견적을 내도록 지시를 내렸던 참이었다.
“가니까 아주 난리도 아니더군요. 하아아~ 시장, 도지사부터 해서 온갖 기업인에 길드 관계자까지……. 도망쳤다고 손가락질하던 인간들이 막 태세 전환해서 뛰어오는데, 세상일이란 게 참~”
“그거야 예상했던 반응 아닌가요?”
“아뇨. 직접 당해 보면 다릅니다, 대장님! 아버지, 할아버지뻘 되는 양반들이 손 비비면서 ‘아유~ 최충선 헌터님, 저희가 헌터님의 큰 뜻을 전혀 몰라뵈었습니다아아아~’ 하면서 능글맞게 웃는데…….”
상상만 해도 끔찍한지 안색이 파래지는 최충선이었다.
말만 들어도 그 광경이 상상이 된 유성원은 예상했던 일이라는 듯 썩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풉, 그래서 내가 안 가고 아저씨를 보낸 거죠. 아무튼 오늘 어떻게 일하는지 방법을 보여 드릴 테니까 말이죠. 다른 건 없으면… 바로 나갈 준비합시다. 어르신, 정부에서 러시아 쪽 어쩌고저쩌고하면 바쁘다고 바로 거절해 주세요. 그럼 우린 일하러 갑니다.”
그렇게 아이언 포트리스에는 백가연만 남기고, 스캐빈저 건은 이제 자기들끼리 해결하라고 미룬 뒤 그들이 트레일러를 타고 향한 곳은 바로 대전이었다.
대전광역시. 그곳에는 특별한 악(惡) 성향의 성좌는 존재하지 않으며 성좌 산거정의 부하들인 약탈자 계열 몬스터들이 주로 서식하고 있었다.
던전 등급도 B등급 몬스터가 최대여서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조용한 도시였다.
하나, 안전한 도시라고 해서 다른 도시보다 나은 것은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안전하기에 스캐빈저들이 더더욱 뒷세계를 잡으려고 난리 치는 곳이 바로 여기였다.
“결국 모두 다 사람이 있으니까 말이지. 그럼 어디부터 가 볼까? 아영이가 조사해 준 학교들? 아니면 도시 사람들에게 쫓겨나서 만들어진 빈민가?”
“일단 인수하라고 했던 아동 보호 시설이랑 고아원부터 처리하시죠. 직접 사인하시라고 모아 놓으셨답니다. 그리고 거기 갈 때는 갑옷 입지 말고 다른 거 입으시고요. 여기, 백가연 어르신이 주신 서류들입니다.”
“아… 맞다. 그거 하라고 했었지. 후우우우~ 그래, 내가 해야지.”
‘보호 시설’이라는 단어를 생각할 때마다 안 좋은 과거가 뇌를 찌르듯 고통스럽게 스쳐 지나간다.
어린아이들과 부상당한 군인, 헌터를 보호하는 시설이라고 해 놓고 아비규환처럼 굴러가던 곳. 인간이 인간을 잡아먹고 사리사욕을 채우던 곳이었다.
“폐하, 표정이 많이 안 좋으십니다만?”
“불쾌한 기억이 떠올라서 그래. 후우~ 일단 자매 복지원, 여기부터 가자. 인수해서 조용히 처리한다.”
백가연과 합의한 내용을 다시 머리에 새기면서 목적지를 정한 유성원의 트레일러는 곧바로 자매 복지원으로 향했다.
그동안 유성원은 백가연 어르신이 조사한 자료에 나온 자매 복지원의 데이터를 보면서 희미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
2시간가량 뒤, 대전 자매 복지원.
오늘도 평온한 하루를 보내고 있는 이 커다란 복지원의 주인이자, 복지원의 재정을 맡은 에즈라 재단의 이사장인 박주변 원장은 현재 장부를 적느라 정신이 없었다.
역시 시대가 바뀌어도 인간 장사만 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그녀는 짭짤히 얻은 수익을 세고 또 세었다.
“흐흐흐, 이번에도 제법 쏠쏠하네요. 어머나!”
쿵!
갑자기 건물 아래 운동장이 소란스러워진 걸 깨닫고 박주변은 직원에게 상태를 물었다.
“이게 무슨 일이죠? 또 애들이 사고 친 건가요? 아니면 새롭게 각성한 애라도 나온 건가요?”
이곳 대전 자매 복지원은 약 700명 가까운 고아들과 장애인들을 돌보고 있는 시설이었다.
그래서인지 가끔 성좌의 선택을 받거나 각성하는 아이들도 나오기에 물었지만, 직원의 입에서 나온 건 의외의 사실이었다.
“그, 그게, 갑작스럽게 손님이 왔다고 합니다.”
“오늘은 손님맞이할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을 테니 돌아가라고 하세요!”
“그게… 물리적으로 막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게 누구냐면…….”
“물리적? 아, 헌터인가요? 각성한 아이들을 사고 싶어서 안달인 건 알겠지만, 아직 각성한 애가 없다고 전하세요. 계집을 사는 게 급하다면 대충 방에서 먹고 가라고…….”
그녀의 복지원에 자주 오는 고객들은 주로 스캐빈저들과 대전 지역을 주름잡는 헌터 길드였다.
돌보던 아이들 중 각성자가 나타나곤 하는데, 그것을 아카데미아에 보내면 쥐꼬리만 한 위로금을 받는 반면 스캐빈저들은 두둑한 돈에다가 마정석까지 듬뿍 얹어서 준다.
그 외에도 얼굴 좀 반반한 아이들은 교육시키고 식욕 관리해서 보내는 식으로 팔곤 했다.
더 웃긴 사실은 이렇게 아이들을 팔아치우면서도 복지원이기에 국가에서 지원금까지 받는다는 것이었다.
“아니, 아무것도 안 했는데… 직접 증언이 굴러들어오네. 예정대로 인수하려고 왔는데… 뭐야, 이거?”
들어오니 대놓고 자백을 하고 있는 상황을 본 유성원 일행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본래 계획이라면 그냥 돈지X로 시설을 사서 아이들과 장애인들을 보호할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되면 그는 둘째 치고 기사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악이다! 이건 용서할 수 없는 악입니다! 폐하!”
“…뭐야? 당신들은? 아, 아니! 화, 황금 용기사? 어째서 여기에?”
낯선 목소리를 듣고 박주변이 고개를 돌리자, 거기에는 황금 갑옷을 입은 기사 하나와 그 뒤에 청백색의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나란히 선 채 어처구니없다는 듯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물론 유성원은 투구를 쓰고 있기에 얼굴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분노하고 있는 것을 일반인인 박주변도 알아차릴 정도로 무서운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어째서이긴, 너 같은 인간 잡으러 왔지. 각오는 되어 있나? 일단 인신매매를 한 것 같은데… 자세한 건 잡고 나서 이야기해도 될 것 같아. 진석, 이 아줌마와 직원 신병을 확보하고 이 방을 지켜라. 유청! 너는 나와 같이 천검군 병사들을 이끌고 여기 시설을 점령한다.”
“명령대로 하겠습니다, 폐하!”
“자, 잠깐만! 가, 감히 누구 마음대로 이런 짓을… 으으읍!”
“모든 것은 폐하의 뜻대로다. 가만히 있어라, 마녀.”
박주변은 필사적으로 용기를 내어 반발하려 했지만, 금방 진석에게 제압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유성원은 유청과 함께 천검군 정예 병사들을 불러내어 시설에 근무하는 직원들을 제압해 나가기 시작했다.
“살려만 놔라. 팔다리 정도는 잘려도 응급처치만 하면 되니 상관은 없다. 차량… 아니, 저렇게 생긴 철마차! 같은 걸 타고 도망치려는 놈들도 제지해라.”
“알겠습니다, 폐하!”
“크악! 사, 살려 줘!”
“이, 이 자식들, 전부 헌터급인가? 판타지 만화에 나올 것같이 생긴 주제에!”
“으아아악! 내 팔! 내 팔!”
고작해야 어린아이들과 장애인들을 상대로 폭력을 가하던 일반인들은 헌터급 전투력을 가진 천검군 정예 병사들에게 압도적으로 제압당하고 말았다.
유성원으로부터 팔다리를 잘라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기에 천검군 병사들은 자비 없이 그들을 유린해 나갔고, 이 자매 복지원을 점령하는 데는 채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