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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특성을 받았지만 적당히 살고 싶다-82화 (82/293)

[82화]

“아니, 왜 공격을 멈춘 겁니까? 형님! 다 잡은 고기인데!”

“다 잡은 고기가 아니니까 멈춘 거다. 형세는 유리하지만 놈은 비장의 카드를 감춘 상태였고, 아직 멀쩡했다. 그런 상황에서 정부와 협회의 말까지 어겨 가면서 싸워 봐야 좋을 거 없다.”

흥분한 부하들과 달리 고천수는 냉정하게 상황 파악을 하고 있었다.

“아이고, 아까워라.”

“나도 아깝긴 마찬가지다. 계산이 꼬였어. 아이템의 성능도 그렇고 놈의 역량이 예상 밖이었다. 그래도 시간만 있었으면 어떻게 되었을 것 같은데 말이다.”

하늘에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헬기와 수송기들을 노려보면서 고천수는 인상을 찌푸린다.

놈의 비장의 수만 잘 경계하고 있다가 피한 다음 시간만 넉넉히 있었다면 SS급 황금 마인 기사를 잡을 가능성도 있었는데 아쉬웠다.

“아, 놈이 빠져나가는데요? 형님, 추격대를 편성합니까?”

“그러지. 지금 당장 레가스 그 친구에게 연락을 해서…….”

“그럴 필요 없네. 어설프게 쫓다가 자네 길드의 귀한 인력 잃어버리지 말게나. 어차피 신원은 알지 않았는가?”

한창 차후 대책에 신경 쓰고 있는 판국에 낯선 노인이 그들 사이에 나타난다.

늙었음에도 여전히 예기를 뿜어내는 백가연이 자연스럽게 그들의 대화에 끼어든 것이다.

고천수는 갑자기 난입한 그녀를 불쾌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일어선다.

“저것들 부른 거, 어르신입니까?”

“그렇지. 그럼 나 말고 누가 이렇게 신속하게 움직이겠나? 허허.”

“관료주의에 찌들어 자기들 보신에 바쁜 정부나 길드에 관해선 눈치 보기 바쁜 협회, 국방부를 모두 빨리 움직이게 할 사람은 몇 명 없으니까요.”

퇴물이니 늙은이니 해도 공식 S급 헌터이자 수십 년간 대한민국을 헌신적으로 지켜 온 만큼 백가연은 알게 모르게 인맥이 많았고, 그것을 통해서 지금 이 전투를 멈추게 할 수 있었다.

늘 이상주의니 뭐니 하며 비아냥거림은 들었지만 그래도 그녀를 존경하는 이들이 많은 덕분에 설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안 그래도 이제 3대 길드 최정상에 선 청룡 길드인데 여기서 더 잘되는 꼴을 두고 볼 수 없는 이들이 많은 덕분이었지.’

세부적인 전투 내용은 몰라도 외부에서 바라볼 때는 포위된 진형 안에서 압도적인 화력으로 황금 마인 기사를 압박하고 있는 모습이었기에 설득은 편했다.

그 누구든 간에 청룡 길드의 독재는 원하는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점도 문제였지만, 특히 ‘투쟁’이라는 성좌 청룡의 선호 때문에 계속해서 전쟁과 싸움을 추구하는 점이 문제였기에 정부, 협회 모두 서로 힘을 합쳐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막아 낼 수 있었다.

“아무튼 세세한 건 올라가서 이야기하지. 그리고 밑의 친구들도 철수시키고. 아~ 또 올림푸스에서 온 친구도 부르고 말이야.”

“그러지요. 하나 어르신도 안도할 입장만은 아니라는 걸 알아 두시길. 저 유성원이라는 친구와의 관련성이 있으시니 말이죠.”

“허허, 자네가 내 걱정을 해 줄 줄이야. 그래, 그럼 기왕 이렇게 된 것 같이 가지. 아마 할 이야기가 많을 게야.”

전투는 끝났지만 오히려 해결해야 할 사안이 더 많아졌고, 앞으로 더 큰 혼란과 변화가 예정된 상황이다.

근 몇 달간 비밀에 싸여서 두려움을 주었던 황금 마인 기사의 정체가 밝혀짐에 따라 생길 새로운 질서의 정립이 필요했기에 고천수는 일단 순순히 움직이기로 한다.

그렇게 황금 마인 기사의 도주를 끝으로 현장은 빠르게 정리가 되었고, 건물 피해 정산 및 주변 정리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높으신 분들은 이제 황금 마인 기사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기 위해 협회 본부로 모두 모였다.

“하아~ 다들 왠지 자주 모이는 것 같죠?”

“자주 모이는 이유가 있으니 그런 거겠지.”

“자, 긴말은 됐고 다 모였으니 빨리 진행이나 합니다. 우리도 황금 마인 기사의 정체가 궁금해 미칠 지경이오!”

“장관님, 좀 진정하시고… 크흠! 물론 이분만큼 화난 건 아니지만 저희도 알고 싶은 건 마찬가지입니다. 대체 뭐 하는 놈입니까?”

특히 청와대 관계자와 국방부 장관의 흥분은 이루 말할 수 없었는데, 길드보다 한발 빠르게 접선하려고 오만 짓을 다 했는데 결국 늦어 버리는 바람에 그 정체가 더욱 궁금해서 안달이 나 있었다.

‘이걸 어떻게 말해 줘야 더 재미있을꼬…….’

어차피 정체는 이미 들킨 판국이라 더 이상 부정할 필요가 없는 만큼 백가연은 이상한 왜곡이 들어가지 않게 직접 말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유성원에게 OK는 받아 둔 상태다.

그는 현재 모습을 감추기 위해서 대한민국 영토를 빠져나가 도살왕의 영역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역시 지금 상황에서는 대한민국의 행정력이나 사람들이 닿지 않는 곳이 가장 안전하겠지.’

이미 언론사, 길드, 협회, 정부에 사방팔방으로 진실과 왜곡이 섞여서 소문이 퍼지고 있을 테니 아예 사람이 함부로 못 오는 곳에 있는 게 상책이었다.

그녀가 생각을 하는 동안 이미 그를 어떻게 찾았는가에 대한 설명이 끝나 가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그가 가진 티탄의 말뚝이 아니었다면 정말 그의 정체를 알아내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가 신중한 점도 있었지만 백야 길드의 협조가 더욱 결정적이었습니다.”

“결국 길드의 자율성을 과하게 허락한 제도가 문제였다는 거군. 그러니까 협회에서 정기적으로 헌터들에 대한 검사와 데이터 수집을 해야 한다고 예전부터…….”

“지금은 그 문제를 이야기하는 자리가 아니니 그건 나중에 하시죠. 다음은 세부 프로필입니다. 일단 사진에 보이는 이자가 바로 황금 마인 기사인 유성원입니다. 나이는 올해 서른둘, 독신, 이력은 이렇습니다. 유년, 학창 시절 정부 산하 보호 시설에서 자랐고, 성인이 되자마자 군 입대, 제대 후 아카데미아 스태프로 취직, 이게 전부입니다.”

놀라울 정도로 짧은 이력. 심지어 공식 학력은 보호 시설 내라서 고졸로 취급해 주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제대로 교육받지 않았을 것이기에 그보다 훨씬 아래일 것이다.

이렇게 별 볼 일 없는 청년이 그 황금 마인 기사라니, 더더욱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렇게 다들 놀라는 가운데 청룡 길드의 길드원이 계속해서 브리핑을 이어 나간다.

“예. 정말 놀라울 정도로 이력이 전무해서 언제 각성했는지도 감이 안 오고, 분석하기 애매합니다. 뭐, 이 점에 대해서는 그와 연관이 있는 걸로 추정되는 저기 백가연 어르신이 보충해 주셨으면 합니다. 어설픈 추정보다는 나을 테니까요.”

“흠, 정말 너무 별 볼 일 없어서 오히려 추정이 안 될 줄은 몰랐군. 아무튼 백가연 학원장님, 아니 어르신, 부탁합니다.”

“허허, 이렇게 큰 기대를 받은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군.”

청룡 길드가 ‘연관성’을 언급하면서 지적을 하자 좌중의 시선이 그녀에게 몰렸지만, 대중들의 시선을 받는 게 익숙한 백가연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로 일어나서 유성원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한다.

“보자… 그러면 어디서부터 해야 할까? 각성자 타입부터 말하는 게 좋겠군. 일단 각성자 역량부터 할까? 우선 이 친구의 레벨은 45, 클래스는 보면 알겠지만 ‘기사’ 계열, 스테이터스는 4종 모두 SS급, 갑주는 전설 등급, 넷의 기사와 드래곤 하나, 총 다섯의 소환수를 다루고, 전투 스타일은 순수 근접 전투 위주이지만 아시다시피 광범위 대군 스킬도 보유하고 있지.”

“무슨 말도 안 되는 스펙…….”

“준대형 성좌의 사도급을 넘어선 스펙 아닌가?”

“대체 어떤 성좌가 그런 총애를 일개 인간에게?”

“중대형 길드급 화력을 혼자 보유하고 있는 셈인데!”

웅성웅성…….

대략 알고는 있었지만 백가연의 입을 통해서 실제로 듣는 거랑은 차원이 달랐다.

길드 관여자들은 물론 정부와 군부도 놀라워하면서 그동안 생각하고 있던 유성원의 가치를 2배, 3배 더 올려야만 했다.

하나 놀랄 일은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더 놀라운 건 이 친구, 어느 특정 성좌 소속이 아닐세. 그래서 성좌에 대한 맹세도 통하지 않는 몸일세.”

“…미친! 어떻게 성좌 없이 SS급을! 불가능해! 어르신! 진짜 그거 제대로 알고 하는 말 맞습니까?”

“내가 지금 거짓부렁을 말해서 득 될 일이 있나? 의심하려면 하게나. 아무튼 이렇게 괴물 같은 놈인데, 이제 궁금한 건 그거 아닌가? 대체 그럼 이런 놈이 왜 길드나 그런 곳에 속하지 않고 바닥에서 기어 다니면서 여기저기 사고 치는 것인가? 라는 점이겠지?”

이 부분이 바로 모두가 공감하는 바였다.

저 정도 괴물 스펙이면 누구도 밑바닥에 놔두지 않을 거고, 어딜 가든, 누구에게 이야기를 하든 헌터 업계 최고의 대우는 확정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냥 협회에 멀쩡히 신고만 해도 인생 역전이 가능한 막대한 돈과 권력을 얻을 수 있는데, 심지어 헌터에 대한 정보를 더 자세히 입수할 수 있는 아카데미아 스태프 출신인데 말이다.

“내가 보기엔 오히려 더 자세히 알아서 그런 게 아닐까 싶네만? 일견 화려하고 멋진 삶과 권력을 얻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서는 사실 얼마나 피바람이 몰아치는 치열한 전투와 정치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테니 말이지.”

“그러면 아예 싸움에서 멀어져야 하는데, 놈은 그러면서도 레벨 업과 싸움 준비를 충실히 했습니다만? 싸움을 피하는 놈이라면 역으로 그게 더 이상한 게 아닙니까?”

“그게 이 친구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증거지. 그렇게 각성했으면 성공을 열망할 법한데, 그러지 않으면서도 레벨 업을 게을리하지 않잖나. 아무튼 한 단어로 요점만 정리하면 이 친구가 이러는 이유는 세상에 순응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봐야겠지.”

순응. 즉 환경이나 상황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하나 좌중들은 그가 저지른 일을 생각하면 도저히 그 뉘앙스가 이해가 안 되었다.

다른 건 둘째 쳐도 세상에 순응했다는 놈이 어떻게 신강남 사태를 일으킬 수 있는 건지. 이건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신강남 사태 같은 건 그저 이 친구에겐 자기를 지키려다 일어난 사고 같은 거지. 안 그런가? 오경훈 길드장?”

“지금 저를 건드리지 마십시오. 정말 빡치기 직전입니다. 감히 그딴 식으로 우리를 속이다니……. 으그극!”

“먼저 잠자는 사자를 깨운 건 배 회장인데 왜 그러나? 아무튼 이 경우가 특이했을 뿐 이 친구는 본격적인 헌터 일을 할 생각이 없다는 게 기본 마인드일세. 다만 혹시나 각성한 걸 들키거나 자신에게 위협이 될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서 저렇게 연마한 거고 말이야.”

“망할 자식이. 그러면 배 회장만 족치지, 왜 신강남에…….”

“그야 자네, 그 친구랑 싸울 때 아주 제대로 불난 집에 부채질하지 않았나? 지금 시대에 배 회장의 말도 안 되는 취미를 폭로한 것에 대해 소용없다느니 뭐니 했고, 배 회장 죽은 걸로 그냥 꼬리 싹 다 잘라 버리고, 그 인간이 만든 감옥 시설에 대해 제대로 법적 처리를 한 게 있나?”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배 회장 사건의 사후 처리는 유성원이 직접 나타나서 유족들과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을 받은 것을 제외하고는 관련자들은 신강남의 오점이 될 부분이라 쉬쉬해 가면서 제대로 처벌되지 않았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정부 관료도 부끄러운 듯 고개를 들지 못하고 먼 산을 바라볼 뿐이었다.

“아무튼 이 친구가 시사하는 바는 꽤 크네. 성좌 없이, 평범했던 인간이 어느 날 갑자기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뜻이니까 말이야.”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상관있지. 만약 이 친구가 세상에 순응하지 않고 희망을 가졌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 봤나?”

순응한다는 것은 결국 희망을 버리고 포기한다는 의미였다.

고통에 저항하지 않고, 불의에 분노하지 않으며, 모든 것을 순리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것.

물론 혹자들은 그것이 어른이 되는 것이라며 말하곤 하지만, 아예 희망이 없는 사람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 그저 살아 있기만 한 기계 부품일 뿐이다.

“길드 간의 싸움과 다소의 분쟁으로 시끄러웠겠지만 결국 이 세상에 또 새로운 희망이 되어 주었겠지. 하나 지금 그 친구는? 세상에 대한 실망으로 가득 찼기 때문에 아무 기대도 하지 않았고, 아무 바람도 없는 상태이지. 오직 자신의 안위와 안녕만 생각할 뿐. 이런 거대한 기적이 일어났는데도 말이야.”

기적 같은 SS급 헌터의 존재.

하나 그가 나타나도 인류는 이미 메말라 버린 사막 같은 곳이라서 먼저 포기해 버린 현실.

결국 세상을 이렇게 만든 게 누구냐 하면 바로 이 자리에 참여한 이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부끄러움을 느끼는 자는 극소수뿐, 대부분은 헛소리라는 눈빛을 띤 채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뭐 말로 해서 알아들을 거였으면 진작 세상은 바뀌었겠지. 아무튼 내가 해 줄 수 있는 이 친구에 대한 설명은 여기까지라네. 이제 다음에 어찌해야 할지 생각하는 건 자네들 몫이겠지.”

그렇게 백가연은 다시 의자에 앉았고, 고천수, 오경훈 등등 사람들은 서로 눈치만 보면서 어찌해야 할지 갈등하기 시작한다.

결국 알고 나니 더욱 머리 아픈 문제일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모르고 그냥 적대했을 때가 더 나았을 정도로 차후 황금 마인 기사의 문제에 대해선 무언가 뾰족한 대책이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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