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나는 휴대폰 문자로 사진을 받자마자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고 바로 뛰어왔다.
엄연히 아영이의 전속 스태프였기에 그녀의 심부름으로 왔다는 이유를 대자 길드 내에는 쉽게 들어올 수 있었다.
물론 입구 쪽에서 막고 있는 녀석들이 있었지만 그놈들은 지금 벽과 찐한 키스를 나눈 뒤 풀 수면 중이었다.
아무튼 문을 부수고 들어오자마자 안에는 예상대로라면 예상대로랄까, 이미 사건이 터져 있었다.
“젠장! 이렇게 나서는 거 내 체질이 아닌데!”
“황금 마인 기사!”
“와… 여기서 나타난다고? 자, 잠깐!”
놈들이 내 등장에 당황해하는 사이, 나는 일단 빠르게 신소미 길드장님부터 확보했다.
그녀를 품에 안고, 티탄의 말뚝을 꺼내서 놈들에게 겨누기는 개뿔, 곧바로 벽을 부수고 도망쳤다.
“…도망이라고?”
“제길! 당장 잡아!”
‘그럼 내가 바보냐? 여기서 레이드 뛰게?’
일단 실내인 점부터가 안 좋았고, 여긴 또 막 부숴도 좋은 신강남이 아니라 백야 길드다.
거기다 인질을 데리고 싸우는 건 불리하기에 당연히 대피부터 시키는 게 우선이었다.
곧바로 건물을 빠져나가서 도로를 달리며 나는 내 기사들을 불러낸다.
“이럴 때 가장 빠른 게… 섬멸, 아칼론!”
“예! 단장님!”
[예스, 마스터!]
“너희 둘은 이분을 안전한 곳으로! 추격은 내가 맡겠다! 소지품 및 전자 기기를 이용한 추적이 있을 수 있으니 최대한 안전하게 하고! 섬멸은 나에게 돌아와서 위치를 직접 알려 줘!”
둘은 내 명령에 따라서 그대로 떠났다.
그렇게 인질 걱정이 없어진 나는 손님들을 상대하기로 했다.
일단 고천수 길드장은 알겠는데, 옆의 외국인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들 뒤로 약 20여 명이 되는 헌터들이 각자 무장을 한 채로 날 포위하기 시작했다.
총기와 검, 지팡이 등등 통일성 없는 무장을 했지만 그래도 국내 원톱 길드인 만큼 유사한 무기를 가진 인원끼리 잘 뭉쳐서 대응할 준비를 마친 것 같았다.
‘가울프와 크록베인이 언제든 후방으로 뛰쳐나갈 준비가 되었을 테니 뒤쪽 걱정은 없지만…….’
“한 방 먹었군. 설마하니 이런 식으로 나타날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말이야. 황금 마인 기사, 아니 유성원 군이라고 불러 주면 되나?”
“어째 안 좋은 예감만 잔뜩 맞는 거 보니 할망구 말대로네. 하아~ 이 망할 티탄의 말뚝 때문이네. 쩝…….”
물론 이 티탄의 말뚝이 아니었다면 아크데몬 비스트-레그혼도 이기지 못했겠지만, 결국 정체를 들키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이었다.
그리고 앞으로의 일이 또 문제였지만, 일단 지금 당장 날 위협하는 저것들부터 처리해야 했다.
“호칭은 뭐, 마음대로 하시죠. 어차피 인생 X망 했는데 무슨 상관이라고.”
“망했다고 할 것까지 있나? 좋은 선택지가 눈앞에 있는데 말이야.”
“에이~ 사람이 어떻게 돼지우리 안에 들어갑니까? 농담도 적당히 하시죠.”
“이거 참~ 놀랄 일이군.”
자신의 청룡 길드를 ‘돼지우리’라고 칭한 것에 대해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는 고천수였다.
3대 길드에 올랐을 때부터 감히 자신들에게 이렇게 무례하게 구는 자를 만나 본 적이 없었다.
정부, 협회, 그리고 세계 길드 회의에서도 한자리를 차지할 정도로 파급력이 큰 길드였기 때문이다.
아주 오랜만에 이딴 취급을 받으니 불쾌감보다는 역으로 신선한 느낌이었다.
“하긴 그러니 신강남 사태 같은 걸 일으켰겠지. 아무튼 젊은 혈기에 휩쓸리지 말고, 지금 싸우는 건 그렇다 치고, 앞날을 생각해야 하지 않겠나?”
“자기는 수단 방법 안 가리고, 세상 따위 생각하지 않고 그 자리에 올라갔으면서 남한테는 미래를 생각해야 하니 마니 하는 겁니까? 그런 말은 적어도 미래를 위해 노력하신 분들이나 입에 담을 말입니다. 그러니 쓰레기는 그냥 쓰레기끼리 쓰레기답게 지저분하게 싸웁시다.”
척…….
나는 그렇게 말하며 티탄의 말뚝을 고천수를 향해 겨눴다.
이런저런 미사여구를 들이대면서 설득하려 해 봤자 내겐 아무 소용없는 일이었다.
뒷감당? 미래의 일? 알 게 뭐냐? 그저 내 앞길에 방해되는 놈, 내 근처에 있는 사람들을 노리는 놈을 쳐부수면 그만이다.
까놓고 아포칼립스가 된다고 한들! 뭐든 잘하는 아칼론도 있고, 든든히 잘 살면 그만이다.
***
건방진 소리를 하는 황금 마인 기사와 실컷 말다툼을 벌인 고천수는 눈앞에 뜬 자신들의 성좌 청룡이 보이는 반응에 즐거워하고 있었다.
말을 나누기 시작하면서부터 한시도 쉬지 않고 자신의 길드에 이어 성좌까지 모욕을 한 덕분에 성좌 청룡은 지금 머리끝까지 화가 난 상태였다.
[‘성좌 청룡’이 ‘황금 마인 기사’의 ‘돼지우리’라는 발언에 분노합니다.]
[‘성좌 청룡’은 이어서 ‘쓰레기’라는 모욕적인 발언을 한 저 ‘황금 마인 기사’를 당장 없애라고 당신에게 명합니다.]
[‘성좌 청룡’은 그를 투쟁의 상대를 넘어 ‘진노’하게 한 대상으로 규정하고 반드시 없애라고 명합니다. 물론 그에 따른 보상은 기존의 것보다 월등히 챙겨 주겠다고 합니다.]
‘후후후… 이 정도면 판돈은 넉넉히 올랐군.’
굳이 ‘투쟁’의 원한이 있는 상대인데 대화를 나눈 것은 이렇게 판돈을 올리기 위해서였다.
상대인 저 황금 마인 기사가 아주 예상 그대로의 반응을 해 준 덕분에 판돈이 오를 대로 올라서 기분이 좋은 고천수였다.
‘그동안 적절한 상대가 없어서 아쉬웠는데, 드디어 이걸로 나도 SS급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군.’
“길드장님, 지시하신 전력 모두 불렀습니다.”
“좋아.”
그리고 고천수는 단순히 판돈을 올리기 위해서 황금 마인 기사와 떠든 것이 아니었다.
SS급 황금 마인 기사가 일으킨 신강남 사태 같은 일이 자신들의 인공섬이나 혹은 이권이 개입된 곳에서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서 미리 청룡 길드에서는 사전에 대비했고, 출동 체계를 갖추고 있던 것이었다.
“그래, 그럼 한번 쓰레기끼리 다투어 보세나! 전원, 황금 마인 기사를 공격하라! 생포는 생각 안 해도 된다. 무조건 제압해라!”
“…자자! 우리도 갑시다!”
거기에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서 이해관계가 일치한 올림푸스 길드까지 합세한 상황.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진형이 유지된 상태에서 총기, 마법, 화살이 황금 마인 기사를 둘러싸고 장대비가 쏟아지듯 쏟아지기 시작한다.
“…어우, 젠장! 뒤쪽에서 어느새?”
공격해 오는 양이 한 트레일러 분량이 아니라는 걸 자신을 향한 포화 세례를 맞으면서 충실히 느낀 유성원은 고천수가 왜 저런 말도 안 되는 교섭을 했는지를 눈치챈다.
사면이 포위된 상태로 일방적으로 얻어맞는 이 상황을 극복하고자 유성원은 움직이기 시작하지만 시야도 안 보일 정도로 공세가 쏟아지니 미칠 지경이었다.
‘젠장! 아프진 않지만 이거 너무 많아서 미치겠네. 게다가 계속 이렇게 공격받으면…….’
암만 무재(武才) 스킬이 있어도 이건 강을 손으로 막는 것과 같았다.
갑주는 조금씩 손상되는 동시에 자가 수리 기능으로 마력을 흡수해서 수리하고 있었다.
즉, 데미지는 받고 있었고 소모는 이루어진다는 뜻이었다.
‘대피하면 귀신같이 따라와서 또 때려 대고. 아오! 또 내가 가면 귀신같이 도망치고!’
심지어 건물에 대한 손해 배상은 생각을 하는 건지 마는 건지 따라와서 쏴 대고 또 쏴 대고, 마법은 또 유도가 되는 건지 쏴 대면서 끊임없이 공격해 오고, 공격을 들어가면 곧바로 흩어져서 겨우 잡아 봤자 두셋이 한계였다.
‘젠장, 이 정도 숫자는 예상 못했다고…….’
게다가 자신을 포위하고 있는 헌터의 숫자, 족히 2천 명 가까이 되어 보이는 걸 봐서는 신강남 사태 이후 대비를 철저히 한 것이리라.
건물 사이사이로 피해 가면서 갑옷 수복 시간을 벌며 유성원은 어떻게 이 상황을 타개할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다.
‘대강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로 잘할 줄은 몰랐는데… 제기랄! 역시 자기들 밥줄이 걸리면 능력 발휘를 한다는 건가? 제길! 제길! 제길! 그럼 이 실력으로 저 이 목사나 잡으러 가지! 젠장!’
너무 일을 잘해서 열이 받은 유성원은 고천수를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이렇게 된 이상 머리라도 노려보고 싶었지만 재주도 좋은 고천수는 이미 고천용과 채지영을 자신의 좌우에 대기시켜 둔 상태였다.
‘으음… 이대로 쭉 가면 결국 개미에게 갉아 먹혀 죽는 기분을 맛보는 상태가 될 것 같으니 선택은 하나뿐… 으아악!’
펑!
눈앞에 화염구가 터지는 바람에 생각이 끊긴 유성원은 결국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랐다.
지금 일방적으로 당하느라 서서히 말라 죽을 것 같은 이 구도를 깨기 위해선 그만큼 큰 기술을 사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엘드라엔을 부르자니 화망이 장난 아니게 구성된지라 그 큰 몸집이 나오면 필시 큰 타격을 입을 것이다.
그러니 남은 방법은 하나, 패황천검류. 그냥 위력으로 하는 게 아니라 마력을 최대로 퍼부어서 피하는 속도를 넘는 범위에 갈겨서 다수의 헌터들을 한 방에 날려 버려야 했다.
‘할망구가 가능한 한 인명 피해는 내지 말아 달라고 했지만 내가 죽을 순 없고, 주변에 아마 싸울 사람 말고는 다 도망갔겠지.’
결단을 내린 유성원은 곧바로 티탄의 말뚝을 잡고서 가울프와 크록베인을 부른다.
그냥 대놓고 패황천검류 같은 큰 기술을 사용하려 하면 제대로 피해를 줄 수 없기 때문에 연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마치 일점 돌파해서 도망치는 척하다가 날려 버릴 생각이었다.
“우리가 일점 돌파하려고 하면 분명 진형을 두껍게 하거나 사람들을 뭉쳐야 하니까 딱 큰 기술 쓰기 좋지.”
[좋은 계획이다, 계약자여. 전쟁 속에서 눈에 띄게 진화해 나가는구나. 흠하하핫.]
“…아, 제발 그런 말은 하지 말자. 나는 싫어. 나는 말이야. 호수 딸린 집에서 평온하게 사는 게 목표라고! 가자!”
[그 모습으로 평온하게 산다고 해도 말이지~]
어깨를 으쓱하며 유성원을 따라나서는 가울프였다.
맨 뒤에 크록베인이 붙어서 다시 건물들을 엄폐물로 삼고 헌터들이 있는 진형 한쪽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달려간다.
그들이 움직이는 것만 봐도 포위를 뚫고서 도망가려는 의도가 뻔히 보였기에 고천수는 곧바로 헌터들에게 지시를 내려 그들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으려고 한다.
그런데 그때,
“어때? 크록베인?”
[킁킁… 주인… 예상대로 몰려오고 있다.]
“좋아! 여기서 내가 마력 모으는 걸 모르게 하려면… 엘드라엔! 방어 마법! 가능한 화려하게!”
[참 바라는 것도 많구나!]
샤아아아아아!
유성원은 패황천검류를 쓰기 전 하늘 위로 엘드라엔을 소환한다.
그리고 그녀에게 곧바로 마력을 운용해서 방어 마법을 사용하라고 지시를 내렸고, 청룡 길드와 올림푸스 길드의 헌터들은 드래곤이 나타나자 각자 무기를 그쪽에 겨누고 화력 집중을 시작한다.
“쏴라! 모조리 쏴!”
“탄약 더 가져와!”
“야! 나는 활쟁이인데! 왜 마정석탄을 가져오냐? 촉에 달린 거 가져오라니까!”
“마법 시전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대마법 준비됐나?”
“예! S+급 마력 기준으로 대비를…….”
충실하게 훈련한 대로 엘드라엔에게 화력을 투사하고 그녀의 마법과 브레스에 대비하는 헌터들이었지만 그것은 연막.
상태창 미니맵에 헌터들이 쫙 모여 있는 곳을 향해서 티탄의 말뚝을 겨냥한 유성원은 패황천검류의 스킬을 쏘기 위해 마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좋았어. 바로 지금……! 산이 나를 막으면 산을 베고, 강이 나를 막으면 강을 베리라. 천하통일의 패도를 향한 나의 길은…….”
[애애애애애애애애앵! 아아! 양측은 즉시 전투를 중지하라. 양측은 당장 전투 중지하고 거리를 두고 물러서라! 이것은 대한민국 정부와 협회, 서울시에서 내리는 명령이다. ‘청룡 길드’와 ‘올림푸스 길드’는 당장 공격을 중지하고 물러나라. 만약 이 명령을 무시하고 전투를 지속할 시 법적, 행정적, 경제적 조치는 물론 협회를 기반으로 토벌대를 구성하여 대응할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한다…….]
“…뭐?”
크게 한 방 갈기려는데, 갑자기 사방에서 방송이 울려 퍼진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청룡 길드의 공세가 뚝 멈추었고, 유성원 또한 어리둥절해하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수송기를 비롯해서 헬기들이 다수 떠다니고 있었고, 주변엔 다른 길드의 트레일러는 물론 탱크들까지 출동한 상태인 게 보였다.
“어, 으음… 그러니까… 일단 튀자. 전투를 중지하라고 했지 도망치지 말라곤 안 했으니까! 너희는 바로 들어가! 아! 엘드라엔! 너도 마찬가지!”
그리고 전투가 멈춘 것을 안 유성원은 기가 막힌 논리를 내세우곤 재빨리 엘드라엔은 소환 해제, 가울프와 크록베인은 성소로 돌아가게 했다.
그러고는 청룡 길드의 헌터들은 물론 올림푸스 길드의 헌터들이 군인들과 실랑이하는 틈을 타서 포위망을 돌파해 그대로 사라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