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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특성을 받았지만 적당히 살고 싶다-66화 (66/293)

[66화]

신강남 정운 병원.

배정수 회장 장례식장이 있는 이곳에서 상주는 그의 동생인 배중수 이사였다.

본래라면 재계, 정계 인사들이 줄줄이 찾아와서 헌화해야 할 정도의 인물이었지만, 바로 어제 그의 잔혹한 취미가 발각된 상황이라서 이렇게 병원 구석에서 조촐하게 장례를 치러야 했다.

‘…안타깝게 되었수다, 형님. 대체 뭘 잘못 건드신 건지는 몰라도~ 아들에 이어 연속으로. 쯧쯔쯔.’

아들과 아버지가 연이서 목숨을 잃은 데 대한 안타까운 마음과 동시에 이제 기업 내 실세가 되었고, 신강남 후원자의 일원이 된 그의 내면에는 기쁨의 환호성도 공존하고 있었다.

말이 이사이지, 그냥 자리에 앉아서 형님의 의견에 따라 회의장에서 거수나 하던 인생이었는데 이번 변고 덕분에 자신의 인생이 변한 것이다.

‘이번 장례를 무사히 치르고 나면 형님 부하들을 모두 흡수해서 내가 무난히 차기 회장이 되겠군.’

형님 같은 추진력은 없지만 일단 혈통이라는 요소에서 오는 정통성과 신강남 강화론을 지지하는 포지션이라는 이해가 일치한 덕분에 배 회장의 세력을 뭉치게 하는 인물로는 최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서 기존 배 회장의 부하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아무튼 이거만 잘 넘기면 나는 회장의 자리에 올라서…….’

“으아악! 네, 네놈이 왜 여기에?”

“화, 황금 마인 기사다! 뭐야?”

“뭐?”

그렇게 즐거운 상상도 잠시, 경호원들과 장례식에 참여한 손님들이 갑자기 경악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황금 마인 기사, 오늘 SS급 마인으로 재지정된 그가 나타난 것이었다.

멀리서 봐도 눈에 띄는 저 황금빛 중갑은 절대 착각일 수 없었다.

혹시 갑옷만 입고 난리 치는 놈인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이미 각성자 경호원 둘이 떡이 된 채로 그에게 질질 끌려옴으로써 가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은 접을 수밖에 없었다.

‘대, 대체 그가 왜? 아니, 그보다 왜 아무도 서울 길드나 다른 곳에 연락을 안 하고 있는 거야?’

쿠웅!

무시무시한 기세로 바닥의 타일을 부수면서 다가오는 모습을 찍는 이들은 있어도 어디에 연락하거나 지원을 요청하는 이는 없었다.

어제만 해도 신강남을 멸망시킬 뻔했기에 오늘 또다시 불러서 전쟁을 일으킬 자는 아무도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성큼성큼 다가온 황금 마인 기사는 배중수 이사 앞에 서더니 그를 향해 티탄의 말뚝을 내밀며 묻는다.

“딱 보니 네가 배 회장 동생인가 보군. 맞나?”

“그, 그렇습니다만? 그, 그런데 무슨 일로? 그, 조, 조의금 내러 온 건 아닌 것 같은데?”

“형님의 자리를 이었으면 싼 똥도 치워야 하지 않나?”

“그, 그게… 아, 아아아아! 그 지하에 있던 사람들 말이군요. 그, 그게… 일단 유족들에게 연락 중인지라…….”

쿠우우우웅! 구구구!

어떻게든 얼버무리려 하자 황금 마인 기사가 티탄의 말뚝을 땅에 휘두른다.

그러자 병원 전체가 진동하면서 땅이 흔들렸다.

이제 그 누구도 황금 마인 기사를 추호도 의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유례없는 SS급 마인이 진짜라는 걸 확인하니, 더 이상 배중수는 체면이고 뭐고 생각할 겨를 없이 그대로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박은 채 빌기 시작한다.

“자, 잘못했습니다. 제, 제가 책임지고 형님이 싼 똥을 치우도록 하겠습니다. 그 법적 조치는 아마 회사 내에서 제멋대로 한 걸 겁니다. 제, 제가 책임지고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과 그들의 삶까지 돌보겠습니다.”

‘…뭔데 이리 쉬워?’

‘…살아야 한다. 살아야 한다. 살아야 한다. 살아야 한다. 형님처럼 머리도 없이 관짝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

“좋아. 그리고 너는 네 형님 같은 취미가 없길 바라지.”

생각 외로 빠르게 이야기가 통하니 뭘 더 할 필요가 없어진 유성원은 마지막 당부만 남기고 돌아선다.

이미 힘도 보여 준 상황에서 감히 황금 마인 기사를 멈춰 세울 자는 아무도 없었다.

알아서 길까지 터 주는 모습을 보며 힘을 가진 자의 위용을 절실히 느낀 유성원은 내색 안 하고 싶어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러니 사람들이 힘과 권력에 미치는 거군.’

“젠장… 뭐 저런 괴물이…….”

“쉬잇! 으으으, 제발 얌전히 떠나라.”

“서울 길드에 연락한 병신 없지?”

“여길 또 전쟁터 만들 일 있어? 볼일 다 본 것 같으니 얌전히 가게 해.”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중얼거림과 함께 딱히 시키지도 않았는데 고개를 숙이거나 알아서 무릎을 꿇고 있는 인간들을 지나쳐 병원을 나오는 유성원이었다.

그리고 밖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도 자신이 나가는 것을 견제하거나 뭔가 할 생각 있는 걸로 보이지 않았다. 바로 어제 경험한 지옥을 되돌리고 싶은 사람은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다들 조용히 침묵했고, 유성원은 그대로 할 일을 마치고 신강남을 떠나게 된다.

***

협회 조사실.

유성원이 조용히 난리 치고 있을 무렵, 협회 조사실에 있는 신소미는 아직도 직원들과 실랑이 중이었다.

좋은 장사 기회가 온 만큼 신소미는 한 푼도 깎아 주지 않을 기세였다. 그랬기에 협회 직원들과의 실랑이가 길어진다.

“이건 너무 심하지 않소!”

“…고작 이런 정보에 10억? 제정신입니까? 황금 마인 기사 그자는 SS급 마인인데, 이건 도가 지나칩니다.”

“싫으면 관두세요. 3대 길드에 팔면 그만이니까요. 협회에서 걷어 가는 세금이 얼마인데 이 정도도 못해 주나요? 가뜩이나 저번 토벌 피해도 커서 저희도 돈이 필요해요. 아주 많이 말이죠.”

겉으로는 삐딱하게 반발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그냥 적당히 교섭해서 정보료만 챙기고 영상을 보여 주면 끝이었지만, 신소미가 이러는 이유는 오직 유성원을 위해서였다.

만약 정상적으로 거래했는데 정보가 애매하거나 부족하다고 생각할 경우 또다시 유성원에게 정보를 얻으려고 움직일 것이었기 때문이다.

‘다소 협회의 미움을 받더라도 반감을 얻어서 귀찮지 않게 해 드려야지.’

물론 이러면 여러 절차라든가 사건 처리에 불이익이 가해질 수도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S급 몬스터에게 죽을 뻔한 딸을 구해 준 은혜에 비하면 무능한 협회의 불이익 정도는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었다.

또 여차하면 그냥 길드고 뭐고 자리에서 내려와 살면 그만이다.

‘차라리 그게 더 좋을 수도 있겠네. 으음, 나도 같이 잠수 타자고 해 볼까?’

“지금 이게 웃을 일입니까?”

“저한테는 웃겨서 말이죠. 배 회장한테는 한마디도 못하고, 죽고 나서도 그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도 안 하시는 분들이 지금은 제가 중소 길드 길드장이라고 목에 핏대 세우고 뻗대는 거요. 저도 나름 한 성좌님의 사도인데도 말이죠. 후훗.”

성좌가 선택한 자가 중심이 되어서 세워진 길드의 길드장이라는 건 당연히 그 성좌가 선택한 자들 중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자라는 의미다.

배 회장에 대한 조치 하나도 못하는 협회를 질타함과 동시에 주제 파악 좀 하라는 의미를 동시에 넣은 한마디였다.

“그, 그건……!”

“역시 공무원분들이야 그냥 조용히 있다가 퇴직해서 연금 타 먹는 게 베스트이니까, 하긴 이런 거래를 하는 게 적합하지 않은 것 같군요.”

“그게 아니라, 너무 과해서……. 아직 내용도 모르는데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무슨 랜덤 박스도 아니고…….”

“그럼 적어도 가격 협상이라도 하려는 노력을 보이셨어야죠. 전혀 그런 것도 없고……. 내용에 대해서 말해 보자면, 황금 마인 기사의 목적 정도가 들어 있다고 하면 좀 협상할 생각이 드시나요?”

어그로를 충분히 쌓았다고 생각한 신소미는 슬슬 거래를 진행하기 시작한다.

협상의 여지가 있다고 운을 띄우면서 내용물에 대해 살살 푸는 걸로 협회 직원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이다.

목적이 있다는 이야기에 협회 직원들은 이제야 좀 계산이 서기 시작한다.

“으음, 황금 마인 기사에 대한 정보를 얻기가 쉬운 것도 아니고…….”

“목적을 알면 그와 교섭할 여지가 있으려나?”

“찾는 것도 문제이지만 접촉할 시에 무얼 할 수 있냐? 도 다르니까… 근데 10억은 좀 과한데?”

“협회장님이 반드시 얻어 오라고 했으니까 조금만 교섭을 해서라도…….”

자기들은 안 들린다고 생각하고 쑥덕거렸지만, 이래 봬도 A급 헌터인 그녀에겐 모든 것이 다 들리고 있었다.

조금 비겁한 것 같지만 이런 자리에서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고, 부끄러워할 이유가 못 되었다.

그들이 떠드는 소리를 들으며 속으로 다음 수를 계산하던 그녀는 교섭을 받아들일까, 말까 고민한다.

“그러면 5억은 어떻습니까?”

“절반이나 깎는 건 너무 심한 게 아닐지? 7억으로 하죠.”

“으음, 좋습니다.”

“먼저 서류를 준비하시죠.”

처음부터 7억 정도로 깎을 생각이었는지 협상은 극적으로 타결된다.

그리고 각자 서류와 영상 상영 준비를 한 다음 서류와 도장이 오가고, 인벤토리에 넣는 과정까지 마쳤다.

정보 하나로 7억을 얻어서 기분이 좋아진 신소미는 곧바로 태블릿 PC를 꺼내 영상을 보여 주기로 했다.

“사전에 하나 말씀드리자면 유성원 그는 ‘협회’에 대해 큰 반감을 가지고 있으며 배 회장에게 살해당할 뻔해서 정서적으로 많이 불안정하여 그 점이 크게 드러나 있는 상태입니다. 협회 입장에서 불편한 소리가 많을 테니 그래도 참으시고 끝까지 봐 주시길 바랍니다. 상영한 다음엔 촬영 원본 파일이 있는 USB까지 모두 드리도록 하죠.”

“후우~ 알겠습니다. 자네, 기록 준비하게.”

“7억짜리라니 긴장이 될 수밖에 없네요.”

곧 진술 영상이 시작되었고, 그 안에는 우중충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유성원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시나리오대로 협회에 대한 불만을 쏟아 내면서 배 회장에게 잡혀간 사실과 그의 악독한 취미 때문에 지하실에 갇힌 사람들이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를 생생하게 진술해 낸다.

『…아무튼 그 밀실에 나타나서 적들을 다 죽이고 절 구해 준 가울프라는 심연의 기사가 말하길 ‘기사도의 구도자인 황금 마인 기사와 함께 악(惡)과 싸우고 명예를 찾아다닌다.’라고 했습니다. 피해자인 저는 그래서 구해졌고… 어쨌든 결국 ‘황금 마인 기사’님은 저희 같은 밑바닥 인생들에겐 엄청 좋은 사람이라는 거죠.』

“…악과 싸우고 명예를 찾아다녀? 자기가 무슨 돈키호테야?”

“그러고 보니 정민수와 레그혼을 처리했으니…….”

신소미와 함께 짠 시나리오이지만 유성원은 처음에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하지만 어차피 이미 기사도의 길을 강제로 강요당하고 있는 마당이고, 협회나 세간에 이미지도 좋게 해야 활동하기가 그나마 편하다는 계산이 있을뿐더러 차후 혹시나 정체가 들켰을 때 싸움부터 시작하지 않을 거리가 된다.

『…아무튼 수상한 조짐 보이면 저 바로 스캐빈저 활동하러 갈 거니 그렇게 아세요… 으아앗! 이거 뭐야! 놔줘! 이런 배신! 이, 이러는 게 어딨습니까? 으아아!』

“마무리로 정보의 신선함과 희귀성을 위해 B급인 아카데미아 천(天) 클래스에 있는 제 딸에게 맡겨서 그를 감금하고 있습니다. 한 3개월 정도 놔두면 되겠죠? 아무튼 저희는 이 사안에 대해 절대 노출하지 않을 것을 제 성좌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합니다.”

“흐음… 좋습니다.”

각성자가 성좌를 걸고 맹세까지 했으니 더 이상 이 거래를 의심할 여지는 없었다.

만일 정말로 그녀 쪽에서 정보가 유출이 된다면 끔찍한 대가를 치를 것이다.

“그럼 이만~ 수고들 하십시오.”

“예. 그쪽도 길드 일 잘하십시오.”

그렇게 거래를 마친 신소미 길드장과 협회 직원들은 사무실을 나와 서로 갈라졌다.

그리고 협회로 돌아가던 직원들은 뉴스를 켰는데, 속보가 눈에 들어왔다.

『황금 마인 기사, 배 회장 장례식에 나타나다.』

『배 회장 사건 피해자들에 대한 구제를 약속받고 얌전히 사라져.』

『그는 대체 누구이며 어째서 이런 짓을 하는 것인가?』

“으음… 역시!”

“정보의 신빙성이 확 올라가네요. 그 지하실에 있던 피해자들을 구하려고 했다는 걸 보면…….”

미리 짜지도 않았는데 적절하게 나온 황금 마인 기사의 속보 덕에 거짓으로 만든 시나리오가 맞아떨어지게 되었다.

그러자 협회 공무원들은 이 정보가 거의 확실하다고 생각했는지 발걸음을 더욱 서두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오해와 거짓은 앞으로 더 큰 파장을 불러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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