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당신의 진술을 녹음하고 촬영한 영상을 얻고, 그다음 당신에게서 그 기억을 지우는 거죠. 그리고 그 영상을 파는 겁니다.”
“…그게 됩니까?”
“그런 ‘시나리오’죠. 이런 시대에 안 되는 걸 생각하는 게 더 어렵지 않을까요? 아니면 기억을 지운다는 부분을 수정해서 저희가 감금해 두었다고 하는 건 어떨까요?”
“으음~ 아무튼 같이 작당하자는 거군요. 그거 괜찮은 생각입니다.”
어차피 쫓기는 것도 쫓기는 거고, 협회를 적대시하면 진짜로 이제 스캐빈저밖에 남은 길이 없기 때문에 유성원은 그녀의 방안을 채택하기로 한다.
정보를 파는 것도 이익이고, 자신의 집을 만들기 위해 돈은 많을수록 좋았으니 말이다.
“어차피 한동안 던전이고 뭐고 어디 갈 생각 없이 잠수 탈 계획이었거든요.”
“잠수라……. 그거 좋네요. 그러면 야산에 감금해 두었다고 하면 좋겠네요. 감시자는 으음~ 아영아, 너 수업 며칠 빠질 수 있니? 아무리 E+ 등급이지만, 비싼 정보를 들고 있는 몸이니 B급인 네가 맡아 줘야 할 것 같은데?”
“그럼요! 헤헤!”
아주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할 기세다.
하지만 백야 길드 최강자가 아영이뿐이니 어쩔 수 없는 문제였다.
또 그쯤 되는 인물이 경계를 해야 진짜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기에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근데 문제는 그 정보의 시나리오를 어떻게 짜느냐는 건데……. 생각이 있나요?”
“일단 어느 정도 의미 있는 정보도 섞어 줘야겠죠? 당신이 너무 의심받지 않으려면 말이죠.”
“의미 있는 정보라. 일단 녀석이 심연의 기사 가울프라는 이런 소개는 필수고……. 무슨 소설 쓰는 기분이라 머리가 복잡해지네요.”
“또 나름 대의명분 같은 것도 넣어 줘야 하니 당신이 영상에서 말한 걸 참고로 해서 황금 마인 기사에 대해 꾸며 보도록 하죠. 시간이 많이 없어요. 촬영도 해야 하니까 빨리 정하죠.”
곧바로 동의한 유성원은 진실과 거짓을 적당히 섞은, 협회에 팔아먹기 좋은 정보를 꾸며 내기 시작한다.
간단한 대본을 마련한 뒤 영상 촬영을 했으며, 협회에 대한 감정적인 메시지까지 포함시켜서 빠르게 완료한다.
시나리오는 대충 이랬는데, 길드장의 설득에 차량에 탑승했고 그녀의 설득에 진술을 했지만 마지막에 배신당해서 제압당하고 어디론가 감금당한다는 스토리였다.
『…이게 전부입니다. 솔직히 짜증 나기도 하지만 평생 도망 다닐 수도 없으니 말할 수밖에 없죠. 하아~ 그렇지만 화나네요. 거기 잡혀간 사람들은 죽으나 마나 관심도 없으면서 배 회장이라는 양반이 죽으니 난리 치는 거, 아주 기분 개더럽습니다. 아무튼 수상한 조짐 보이면 저 바로 스캐빈저 활동하러 갈 테니 그렇게 아세요… 으아앗! 이거 뭐야! 놔줘! 이런 배신! 이, 이러는 게 어딨습니까? 으아아!』
“으음… 아주 잘 찍혔네요. 마지막 감정 연기가 매우 실감 나는데요?”
“밑바닥에서 살려면 이 정도는 해야죠. 아무튼 저는 이대로 아영이를 따라가면 되는 거죠?”
“예. 나머지는 제가 교섭하도록 하죠. 따로 일이 있으면 아영이에게 연락하겠습니다.”
그렇게 촬영까지 마친 다음 유성원은 아영이에게 끌려가는 형태로 단둘이 트레일러를 나가서 움직이게 된다.
약간의 불안감을 가진 가운데, 사실상 자신 대신 위험을 무릅써 준 그녀가 있는 차량을 바라본다.
“무슨 일 없겠지?”
“있으면 어떻게 할 거예요?”
“어떻게 하긴, 나서서 구해야지. 내가 아무리 나밖에 모르는 놈이라도 받은 만큼은 은혜는 갚는 몸이란다.”
유성원은 아무리 사정이 궁해도 인간쓰레기는 되지 말아야 하는 법이라고 생각했다.
자신마저 인간쓰레기가 되면 인간쓰레기인 놈들을 욕할 수 없으니 불편하고 귀찮아도 도와줄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의 대답이 마음에 든 듯 아영이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그의 옆을 떠나지 않는다.
“근데 엄연히 내가 끌려가는 형태이니까 너무 웃지 말아 줄래?”
“에이~ 뭐, 됐어요. 어차피 E+급 헌터가 B급에게 뭘 한다고 대응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뭐, 그건 그런가? 아무튼 나는 산에 짱박히러 갈 건데, 넌 어떻게 할래?”
“산요? 산은 왜요?”
유성원은 자신이 세운 계획에 대해 그녀에게 차분히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이제 자신은 돈도 있고, 알리바이를 만들어서 자유로운 몸이다.
사람들 사는 곳에 있다가는 또 어떤 분쟁에 휘말릴지 모르기에 산속에 집을 만들어서 대충 반자연인 생활을 하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산속에 있다고 해서 레벨 업을 멈출 건 아니야. 그저 내 보금자리를 만들고 싶을 뿐이지. 던전 사태 이후 야산이나 국립공원들이 야생 몬스터 때문에 운영이 안 돼서 가격들이 많이 내려간 상태라 내 돈으로도 살 만할 것 같더라고~”
“오오…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산속 수련장. 남자의 로망이죠.”
“아, 그런데 감금당하는 놈이 산을 구입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네. 뭐, 살 예정인 곳에 들어가면 되려나?”
“그냥 아무도 소유 안 한 곳에 들어가면 되죠. 예를 들어 옛 북한 지역 말이에요. 거기면 산도 깊고, 어지간한 야생 몬스터랑 스캐빈저들은 상대도 안 될뿐더러 지뢰 지대도 있어서 사람이 올 곳이 아니잖아요.”
거기라면 아예 산을 사든지 뭘 하든지 돈 걱정할 필요도 없다.
적절한 건물 자재와 도구만 챙겨서 가면 되고, 가끔 내려와서 식료품 구매만 하면 그만이다.
그녀의 명석한 생각에 눈이 뜨인 유성원은 진심으로 감탄한다.
“너 혹시 천재니?”
“이래 봬도 천(天) 클래스! 아카데미아 우등생이거든요?”
“아니, 솔직히 거기는 스테이터스만 높아도 가는 데잖아.”
“그래서 공부를 더 빡세게 시켜요. 학원장님 지침이라 진짜 빡세요. 막 영화에 나올 법한 소리를 하는데, 큰 힘엔 책임이 따르고 그래서 더 많이 알아야 한다나요?”
“뭐, 그분이라면 그런 말 해도 되긴 해. 직접 실천하신 분이니까~ 물론 나 같은 놈이 그걸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지만, 그래도 그 양반이 정답인 건 맞아.”
하나 때로는 오답인 인생이 인간으로서는 행복할 때가 많다.
정답엔 대가가 따르고, 진실은 때론 가혹해서 사람들이 거부할 때가 많으니 말이다.
어쨌든 잡혀가는 신세라는 시나리오상 유성원이 직접 도구를 구입할 수 없어서 신아영에게 맡기기로 한다.
“그럼 여기서 얌전히~ 계세요. 맛있는 거 많이 사 올게요.”
“많이 안 사와도 되니까, 물건이나 똑바로 사 와.”
“연장 많이 챙기라는 거죠? 알았어요!”
캠핑이라는 것에 흥분한 건지 신아영은 신나게 마트로 향했다.
그것을 보며 한숨을 내쉰 유성원은 일단 자신의 상태창을 열어 주변에 적이나 감시하는 이가 없나 살피면서 신아영을 기다린다.
‘그러고 보니 배 회장 쪽 사건은 어떻게 되었지?’
자신이 처리하긴 했지만, 지하에 인간 동물원을 만들어 놓고 놀던 그 인간에 대해서 과연 어떻게 이야기가 나왔을지 궁금해 뉴스를 검색해 보았다.
배 회장에 대한 처벌이나 명예 실추 그런 건 기대하지 않지만, 그곳에 잡혀 있던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가 알고 싶었던 것이다.
‘기사가 왜 이렇게 없어?
죄다 서울 길드와 황금 마인에만 관심이 있는 건지 배 회장이나 그에게 당한 사람에 대한 기사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관련 검색어를 아무리 써 봐도 찾기가 힘들었다. 혹시나 내용이 있을까 싶어서 기사를 눌러 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들뿐이었다.
“아, 기레기 새끼들 진짜!”
그렇게 여기저기 낚시 기사의 조회 수를 채워 주고, 페이지를 열심히 뒤지고 나서야 이와 관련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배 회장의 자택 지하에 갇혀 있던 피해자들의 경우 협회에서 유족들과 연락을 취한 뒤, 적절한 치료 시설로 보낼 예정이다. 하나, 치료비 및 정신적 배상 문제에 관해서는 현재 배 회장 일가는 모두 전멸했고, 친족들이 있긴 하지만 그들은 배 회장의 범죄와 관련이 없다면서 법적인 조치를 준비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게 다냐?”
심지어 연락이 안 될 경우에 대해서는 누락되어 있었다.
그들이 어떤 운명이 될지는 이미 자신이 수년간 ‘보호 시설’에서 살아 봤기에 눈에 선했다.
‘뭐긴, 죽을 때까지 침대에 묶어 두거나 어디 대충 처박아 놓겠지. 성인이 되면 떠날 나와는 다르게, 그 양반들은 엄청난 정신적 고통을 겪었으니 재활 비용도 엄청날 텐데…….’
어린 시절 보호 시설에 있는 동안 이미 그런 이들을 수없이 봐 왔다.
몬스터 사태 및 던전 사태에서 열심히 싸웠는데 가족과 나라로부터 버려진 병사들. 어린 유성원은 그런 그들의 운명을 지켜봤었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보호 시설에 왔지만, 국가와 보호 시설도 여력이 없다는 이유로 ‘고의’로 죽음으로 밀어 넣는 모습이었다.
‘무울… 물… 물 한 잔만… 제발…….’
‘아파… 이봐… 누구 없어요? 팔이랑 다리가 아파요.’
‘아아, 이렇게 죽는구나.’
어린 유성원이 보기에 그것은 지옥의 광경이었다.
보호 시설에서 마냥 보호받지 못하고 어린아이도 일손을 도와야 했던 만큼 작은 물건을 나르거나 식사, 물을 운반하면서 여기저기 다녔고, 그 덕분에 잔혹한 현실을 어릴 때부터 진하게 맛보았다.
‘302호 환자, 진짜 질기네. 밥도, 물도 안 줬는데 이틀을 넘겼다고? 하~ 질기다, 질겨.’
‘이미 마누라랑 자식들은 자기를 버렸는데 그런 줄도 모르고 돌아가야 해, 하면서 우는 게 찌질하다니까…….’
‘어휴~ 내일 또 4명 들어온다는데……. 자리를 어떻게 비우냐?’
‘몰라. 어떻게든 해야지. 성원이 얘! 너 뭐 하니? 오늘 저녁 굶고 싶어? 멍 때리지 말고 할 일 해!’
“여전히 X같네. 하지만 어떻게든 해야겠지.”
그냥 두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인 그였다.
어설프게 도와준다고 손을 대면 안 하느니만 못하고, 자신마저 위험하기에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아니, 복잡하게 생각할 거 없잖아? 그냥 황금 마인 기사로서 한 번 더 찾아가면 되는 거지.’
서울 길드와 강남 에이스를 정면에서 때려 부순 지금, 황금 마인 기사에 대한 공포심과 두려움은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그러니 오늘 밤, 그 배 회장 친척 중 지금 가장 권력에 가까운 놈을 찾아가서 가볍게 상담하자고 생각한다.
‘이걸 떨쳐 내려면 어쩔 수 없겠어.’
유성원은 자신이 갇혀 있던 지하실 맞은편에 있던 여자가 도통 잊히지 않았다.
개 사료와 벌레로 가득한 밥을 게걸스럽게 먹는 그 비참한 모습. 해결하지 않으면 어릴 때 마음속에 새겨진 상처처럼 평생을 따라붙으리라.
“저 왔어요! 짜잔! 정말 많이 샀죠?”
그렇게 오늘 밤 움직일 계획을 세우는 사이, 마트를 다녀온 신아영이 양손 가득 물건이 가득 담긴 봉투를 들고 유성원에게 다가온다.
보통 각성자라면 무게 여유가 있으면 인벤토리를 쓰면 되는데, 왜 굳이 저러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기분을 내기 위한 것이라 생각하고 유성원은 봉투를 받아서 자신의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그러고 보니, 혹시 배 회장이 죽고 나면 그 기업은 누가 수습하는지 아나?”
“그거요? 으음~ 알아보면 금방 나오겠지만, 왜요?”
“사후 처리할 게 있어서 말이지. 들어 봐. 나 지하실에 갇혀 있을 때…….”
이미 한번 알려진 적이 있던 배 회장의 은밀한 취미에 대해 알려 주고, 거기에 잡혀 있던 사람들이 당하던 일을 전해 주자 아영이는 금방 같이 분개했다.
그리고 곧바로 유성원이 알고 싶어 하는 정보에 대해서 빠르게 알아내 주었다.
“그러니까, 지금 임시 회장을 맡고 있는 건 사내 이사로 있는 동생 배중수네요. 이 사람이 배 회장의 뒤를 이어서 회사 정리와 장례, 법적인 조치를 담당하고 있어요. 사는 곳은…….”
“당연히 신강남이겠지. 형제이자 임시 회장이라면 일단 지금은 배 회장 장례식에 가 있겠군.”
“예. 아마 그러겠죠. 배 회장 장례식은… 신강남 정운 병원이네요. 역시 부자가 같은 장례식장은 좀 그랬나 봐요.”
“좋아. 지금 가서 깽판을 쳐 주지. 어차피 난 네가 잡아갔다는 설정이니까 문제없을 거다. 서울 빠져나가서 적당히 산속에서 야영하고 있어라.”
유성원은 신아영이 알려 준 위치를 기억하고 곧바로 길을 나섰다.
지하실에 잡혀 있던 여자의 모습과 보호 시설에서 방치되던 자들의 모습을 떠나보내기 위해 그는 바쁘게 발걸음을 움직였다.
내면은 아직도 평범한 그는 이런 상처는 더 이상 늘리고 싶지 않았기에 한시라도 빨리 해결하고 싶었다.